2017년 9월 2일 묵상 본문 : 이사야 12장 1절 - 6절 – 하나님이 행하신 일은 찬양의 이유가 되며 복음증거로 이어지게 합니다
시작 기도
주님 하루를 시작하며 말씀 앞에 서고자 합니다.
내 안에 죄의 부정성과 마음의 더러움을 아십니다.
홍수로 인해 떠밀려오는 부유물처럼 저의 마음속에 죄의 부유물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주옵소서.
주의 은혜로 다시금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주님과 교제하게 하옵소서.
새로운 영을 허락하시고 새 마음으로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함께 해 주시기를 소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본문은 메시야를 통해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을 때 부르는 노래를 보여줍니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셨으나 회복시키시고 평안을 주심에 대한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구원이시며 힘이시고 하나님을 통해 기쁨을 얻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또한 하나님의행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백성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독려합니다. 심판과 징계의 시간을 지나 회복과 평안의 모습을 노래하며 하나님 백성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묵상
터널이 길면 길수록 터널을 빠져 나올 때 느끼는 감격은 커진다.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이지 않아 방황하다 빛을 보면 감격이 나오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구원은 징계를 받고 심판을 받던 백성들에게 가장 큰 기쁨과 위로가 된다.
심판과 징계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심판과 징계가 깊고 길면 길수록 하나님의 구원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메시야를 통해 주어지는 선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과 기쁨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증거하며 베푸신 은혜를 선포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며 회복과 기쁨을 얻은 자들의 당연한 반응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교회마다 찬양을 하며 노래하는 것은 쉽게 생각하고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다들 어렵게 느낀다.
그 이유는 사람들에게 거절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찬양하는 것은 쉽지만 전도하는 것은 어렵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전하는 것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찬양과 하나님을 향한 선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전하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놀라운 구원과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전하고 선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 찬양과 선포는 그 기원이 동일한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5절에서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가 행하신 일을 온 땅에 알게 하는 일이 같이 나타난다.
우리에게 행하신 일, 나에게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과 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내 안에 많은 모습도 찬양과 선포,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전하는 것이 분리되어 있다.
찬양은 쉽게 하면서도 전도는 쉽게 하지 못한다.
이것은 신앙의 이중성을 의미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에 대한 부족한 이해에 기반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신 구원과 은혜가 뭔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모르면 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은 대화를 통해 자신과 대화하던 사람이 메시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보인 반응을 요한복은 2장 28절과 29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여인은 그리스도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만난 분이 메시야 임을 확인하고 즉시 마을에 들어간다.
자신을 비난하며 조롱하고 사람처럼 대우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만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그 여인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으며 주저함이 없는 모습이었다.
요한복음 4장 39절부터 42절에서 보면 여인의 소개로 그리스도를 만난 마을 사람들도 동일한 반응을 보여준다.
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내 삶에 나타나는 이중성은 그리스도와의 만남,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부족함을 보여준다.
구원의 감격과 베푸신 은혜를 아는 것은 자연스럽게 복음 증거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 일을 전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닌 기쁨의 일이요 전하고 싶은 일이 되어야 한다.
이 모습이 구원 받은 백성들, 구원의 감격을 찬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내 안에 주님과의 대화가 풍성하고 그 가운데 기쁨과 감사가 넘쳐 자연스럽게 복음의 증거는 모습이 되길 소망한다.
죄에서 구원하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 변화시키신 능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더 깊이 알고 전하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말씀 앞에서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생명을 알고 은혜를 안다고 했지만 제대로 증거하지 못한 것은 바르게 알지 못함임을 고백합니다.
내가 만나 교제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지 않고 거부할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한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시고 기쁨과 감격을 가감 없이 증거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과의 온전한 대화가 복음 증거의 힘이 되며 능력이 됨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힘과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온 세상이 알도록 선포하게 하옵소서.
말씀으로 교제하며 믿음의 길을 걷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