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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 ‘소년이 온다’서 정면으로 응시
출처 서울신문 : https://www.seoul.co.kr/news/society/2024/10/11/20241011004005?wlog_tag3=naver
육체·정신적 고향 광주와의 인연
아버지 한승원이 보여 준 5·18 사진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 탐구 계기
“한강은 광주의 딸… 가슴 뜨거워져”
2005년 11월 문학사상사 주관으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상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한강 씨가 작가인 아버지 한승원 씨와 함께하고 있다. 문학사상사 제공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은 ‘광주의 딸’로 불릴 만큼 광주와 인연이 깊다.
한강은 1970년 11월 광주 북구 중흥동에서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났다. 광주 효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간 그는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한강에게 광주는 생태적 고향인 동시에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의 원류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은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 및 삶의 비극성을 집요히 탐구해 왔다. 이 같은 작품세계가 형성된 계기가 광주민주화운동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강은 서울로 이사한 뒤 부친으로부터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접했다며 “열세 살 때 본 그 사진첩은 내가 인간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때부터 간직해 온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세 번째 장편 ‘채식주의자’부터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다. 그는 15세 소년 동호의 죽음을 중심으로 당시 광주에서 숨죽이며 고통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펼쳐 내고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이를 통해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라고 서술한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광주 시민들의 축하가 쏟아졌다. 광주 시민 박모(27)씨는 “한강은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다뤘다. 수상 소식을 듣고 너무 반가웠고 한국 최초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한강이 가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전남대 학생인 이모(23)씨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처음 읽고 느낀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인간 내면을 잘 들여다본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날 한강의 수상이 발표되자 “우리 광주·전남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데 이어 광주의 딸인 한강 작가가 문학상을 받게 돼 너무도 가슴이 뜨겁다”며 “두 사람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 그리고 전라도를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멋진 쾌거”라고 말했다. 김범태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은 “트라우마가 어떻게 세대를 넘어 계승되는지 역사적 사실을 특별하게 다룬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쁘다”고 밝혔다.
광주 홍행기·서미애 기자
빛명상
잃어버린 영혼
내가 진규씨를 만난 것은 5년 전의 일이다. 그는 전라도 광주 생으로 나를 찾았을 무렵이 서른 하고도 너댓은 되었으니, 지금은 서른하고도 여덟에서 아홉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무슨일인지 가끔씩 전하던 전화도 없고 편지마저 끊어져 며칠 전, 나는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었다.
“저어, 여기 대구의 초광력학회입니다.”
“하이고, 선생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세상에……. 사는 것이 힘들다 보니 큰 은혜를 입고도 자주 찾아 뵙지도 못했습니다. 무고하시지요?”
진규씨의 어머니는 ‘초광력 학회’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목소리를 알아차렸다.
“물론입니다. 저야 무고하지요. 댁내는 편안하시지요?”
“모두 선생님 덕분이지요. 저희도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만 그만 하고요…….”
“저어, 다름이 아니라……. 요즘 통 진규씨가 전화가 없어서…….”
“하이고, 진규가 선생님께 연락을 않고 떠났는개비네…….”
“예에……. 늦게 공부한다고 유학 갔습니다.”
“유학이요?”
“예에. 본디 그 아이가 공부에는 취미가 많았던 아이라…….”
“아니, 어디로 유학을 떠났습니까? 언제요?”
“그러니께……. 겨울에 출발했는디……. 참, 선생님께 편지는 드리고 떠난다고 했는디…….안 보냈는가, 아니면 못 받으셨나 봅니다. 그냥 갈 아이는 아닌디…….”
“편지요?”
“예에. 전화로 오래 통화하면 선생님 바쁘신 데 폐 끼치는 일 된다고……. 몇 번 전화드렸더니 안 계셨던 모양입니다. 출타 중이라서요…….”
“예. 저도 좀 바빴습니다. 편지도 못 받았는데……. 제가 다시 한번 찾아보지요……. 그런데 어디로……?”
“예에. 즈그 성이 있는 호주로 갔습니다. 늑막에 무신 공부가 되겠습니까만은 그래도 여기서 그동안 충실히 준비 했으니께……. 영어라도 공부하고 오겄지요. 우리는 그저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다 미쳐서 인간 구실 못할 아이를 그 만큼 만들어 주신 것이 다 선생님 덕분 아닙니까…….”
이런저런 얘기로 진규씨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고 나는 그동안 내게 왔던 편지가 있는 서랍을 열었다. 하루에도 수깁 통씩 오는 편지를 그날그날 읽는다는 것은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대개는 한가한 시간을 틈내 일고 답장할 것은 따로 보관하곤 하는데, 어쩌면 읽지 못한 편지 가운데 진규씨의 편지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지는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문득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멀리 기약 없는 기을 떠나면서 전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편지 한 통 보내지 않고 가다니……. 유난히 애정을 가졌던 진규씨였기 때문에 나의 서운함은 그날 하루 종일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회장님, 이건 국내 편지이고 이것은 외국에서 온 편지들입니다.”
며칠이 지나서 아침에 사무실에 나가니 총무가 어제 도착한 편지들을 들고 들어와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또 한무더기의 편지가 와 있었다. 마침 별 일이 없었기에 편지들을 훑어 보다가 외국에서 온 편지 중에 아주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진규씨였던 것이다.
선생님 보세요.
선생님. 저 박진규입니다. 기억하시죠?
그동안 바쁘신 일정에 몸은 건강하신지……. 저는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봉투를 보시고 놀라셨겠죠? 예. 맞습니다. 저는 지금 호조에 있습니다.
인사도 못 드리고 이렇게 불쑥 호주에서 편지를 오리려니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든 ㄴ군요. 광주에서 편지를 섰었는데, 차마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건 제가 선생님을 만나기 전의 정리되지 않았던 긴 얘기들을 넋두리처럼 늘어놓은 편지였거든요.
어차피 선생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는 얘기를 왜 그렇게 길게 늘어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떠나기 전날, 편지를 다시 읽다가 부치지 않고 그냥 떠나기로 했던 겁니다.
먼저, 제가 호주까지 왜 왔는지 궁금하시죠?
저는 늦게나마 공부를 좀 해 보려고 왔습니다. 굳이 호주를 택한 것은 아무래도 이 곳에 형님이 살고 계시고 해서 부모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지만, 정말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혼자라도 미국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지금은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대학에 있는 랭귀지 스쿨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 곳도 벌써 이민 역사가 한 이십 년은 족히 되나 봅니다. 한국 교포들이 많아서 크게 불편한 일은 없습니다.
그곳은 지금쯤 봄이겠지요? 봄꽃들이 만발하여 전국을 뒤덮고 있겠습니다. 이곳은 가을 이에요. 그러니까, 그곳이 여름이면 여긴 겨울이 되는 것이죠. 참으로 이 지구라는 행성이 묘하다는 생각이, 아니 우주의 진리가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지구 안에서 이렇게 계절을 바꿔 살고 있는 것이 말입니다.
이곳은 아주 깨끗하죠. 공기도 한국에 비할 바 없이 맑습니다. 종일 거리를 쏘다녀도 셔츠 깃이 더러워지지 않는 곳이라면 선생님께서 얼마나 부러워하실까요? 자연을 오염시키는 것에 가장 분개하시고 안타까워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처음 선생님께 갔을 때가 생각나는군요. 그땐 누나의 환영 때문에 제 장신이 아닌 상태였지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 만일 선생님을 만나 뵙지 못했더다면, 지금의 제 모습을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지요. 뭔가 선생님과 우주의 마음이 주신 선물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습니다. 틈틈이 영어 공부를 했고, 늦게나마 대학을 마치려고 합니다. 물론 전공은 그대로 사회학이죠. 혹시 모르는 일 아닙니까? 제가 공부를 마치고 선생님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게 될지도요.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왜 하필 외국까지 나가서 공부를 하려고 하느냐……, 하시겠지요?
글쎄요, 아직 저는 한국에 알 수 없는 공포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몫도 아니고 올곧게 제 몫이기에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하지만, 아직은 제게 시간이 필요하고 공부는 하루라도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겠기에 이렇게 유학 길을 서둘렀습니다.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선생님,
이제 아르바이트를 나갈 시간입니다. 공부를 하면서 힘들거나 어려우면 언제든 이렇게 선생님께 편지를 올리겠습니다.저를 위해 응원의 기도를 보내 주실 거죠? 광력봉과 씰을 꼭 가지고 다닙니다. 이젠 그것이 없으면 불안해서 잠시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광력봉과 씰이, 그리고 선생님이 제게는 우주이고 힘이며 든든한 후원인 셈이지요.
그럼 다음 날을 기약하며…….
호주에서 박진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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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규씨가 굳이 이 땅을 떠나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기사 그 일이 어떻게 그리 쉽게 치유 받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할 것인가…….
“회장님, 광주에서 손님이 오셨는데…….”
“들어 오시게 해”
“그런데……, 좀…….”
“왜? 무슨 손님인데 그래?”
“사람을 꽁꽁 묶어서 데리고 왔어요. 왠지 좀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요…….”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
나는 직감적으로 묶인 사람에게 나쁜 기운이 씌워져 있음을 알았다.
“누나를 살려야 돼. 누나를 살려야 돼……. 누나를…….”
“하이고 입 좀 다물어라. 입 좀 다물어…….”
소란스럽게 들어선 사람들은 거의 한 떼에 가까우리 만큼 여러 명이었다. 건장한 청년 셋은 묶인 남자를 붙잡고 부모인 듯한 촌로 두 분은 묶인 남자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아 보려고 애를 썼다.
예상대로 묶인 남자는 한 눈에 보기에도 탁기가 완연했다. 그의 눈동자는 풀려 있었지만, 뭔가를 갈구하는 강렬한 광채를 보이고 있었으며, 뭔가 심한 공포로 몸부림치는 듯했다.
“붙잡지 마시고 놔두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강렬한 욕구로 몸부림치던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동자를 마구 굴리며 더욱 불안해했다. 나는 마음으로 우주의 빛을 청했다. 우선 그를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내 손이 그를 묶은 포승에 닿자 그가 움찔 놀랐다.
“그냥 놔두시지요…….”
건장한 남자 중 한 명이 내 손을 저지했다.
“이렇게 묶인 상태로 어떻게 광력을 받겠소? 나한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온 것이 맞다면 내가 하는 대로 놔두시오.”
“선생님께서 다치실까 봐 그렇습니다. 낯선 사람을 보면 마구 달려들어 물기도 하거든요.”
나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그의 포승을 천천히 풀었다. 행여 나에게 달려들어 해를 끼칠까 청년들은 그의 팔을 잡은 상태였다.
“그 팔을 놓으시오. 내가 알아서 하리다.”
포승을 다 풀자 그의 눈빛이 빛나며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내가 누군지 아시겠소?”
“개새끼!”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이고, 이 놈이 미쳐서 그럽니다. 용서하시오. 잉”
그의 어머니인 듯한 촌로는 그의 입을 다시 틀어 막았다.
“놔두세요. 괜찮습니다.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 광력을 받지요…….”
그리고 나는 그 젊은이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어디가 불편해요? 마음이 불편합니까?”
“죽일 놈!”
“자자,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나를 똑바로 보세요. 자아…….”
“죽여 버릴 거야!”
나는 그의 폭언을 아랑곳하지 않고 똑바로 그의 눈을 응시했다. 그의 눈은 분노와 두려움으로 이글거렸고, 핏발이 성성한 채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어떤 큰 충격으로 잠깐 자기의 정신을 놓아버린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그의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저씨! 누나를 살려야 돼. 누나를 살려 줘. 누나가 살려 달래…….”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갑자기 나의 멱살을 잡고 그렇게 외쳤다. 건장한 청년들이 내 멱살을 잡은 그의 손을 풀려고 달려들었다.
“놔 두시오.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손이 아주 차가웠다.
“누나가 어딨는데요? 누나가 어떤 위험에 처했지요?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까요?”
나는 여전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의 말에 갑자기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그리곤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자 누나를 함께 구합시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안돼. 누나를 구할 수 없어. 누나는 죽었어…….”
스스로 나의 멱살을 잡았던 그의 손이 풀리면서 그가 소파에 주저 앉아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앞에 앉아 얼굴을 가린 그의 손을 잡았다.
“구할 수 있어요. 말해 봐요. 구할 수 있을 거야…….”
“구할 수 없어. 누나를 구할 수 없어…….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가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주의 마음에 간절히 그의 아픔을 닦아낼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그가 울자 긴장돼 보였던 청년들도 부모인 듯한 촌로도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이들 모두에게는 함께 견뎌야 할 슬픔이,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 그만이 유독 이 아픈 병이 든 것은 그 만큼 그의 마음이 여리고 순수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휴우…….”
실컷 울었는지 고개를 들던 그가 나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응시하며 탁기가 정화되길 간절히 빌었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나만 바라보던 그는 힘없이 옆으로 쓰러져 이내 잠이 들었다.
“한참 잘 겁니다. 광주에서 오셨군요. 먼 길 오셨습니다. 경황 중에 인사도 못드렸네요. 제가 정광홉니다. 그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까?”
나는 촌로와 청연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믿기기 않는다는 듯이 내 얼굴과 쓰러져 잠든 그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하이고, 선생님. 내 아들 놈 좀 살려 주세요.”
어머니인 듯한 촌로가 내게로 다가와 엎어지듯 쓰러지며 울었다.
“예, 예. 알았습니다. 그러니 일어나시고 편히 앉으세요. 아드님이십니까?”
“예, 저희 셋째 아들놈입니다.”
“언제부터 저렇게 되었습니까?”
“이놈 스무 살 때지요.”
“지금은 몇 살인데요?”
“서른도 넘었습니다. 십 년을 넘게 정신병원과 집을 오가며 살았는디 좀처럼 낫질 안 허네요……. 그런데 어떻게 재우셨습니까? 밤새 며칠이고 잠을 안 자서 온 집안이 시끄러운디…….”
“좀 더 잘겁니다. 어쩌면 오늘 못 돌아가실지도 모르겠구요…….”
“하이고, 이 놈만 고친다면 몇 달인들 못 있겠습니까?”
“아드님이 무슨 충격을 받았나요? 아까 누나를 살려야 한다고 하던데…….”
내가 묻자, 두 촌로가 먼저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살려야 한다는 그의 누나가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두 촌로에게는 딸이었을 그녀의 죽음은 두 촌로에게도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가슴 한 쪽이 저릿해져왔다.
“말로 하자면 긴디…….”
하면서 두 촌로는 말을 이었다.
1980년 봄, 광주였다. 잠시 다니러 왔던 두 형제가 발목이 잡힌 것은 5월 18일이었다. 살육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젊은이는 무조건 잡아 두들겨 패고 트럭으로 실어간다는 소리를 듣고 부모님이 만류하고 나선 것이다.
“안 되야. 지금 상황이 나가면 안 되게 됐응께, 잠자코 숨어 있거라.”
“저희 걱정은 마시고 아버지 어머니도 나가지 마세요. 가게문도 닫구요…….”
“아무리 지눔들이 사람 잡는 백정이라도 죄 없는 늙은이를 워쩔껴? 괜찮응게……. 하지만도 대핵교에 댕기는 젊은이들은 모르는 갑드라. 집 안에 콕 박혀서 숨어 있거라…….”
촌로의 두 아들을 안방 다락 속으로 밀어 넣었다. 밖은 점점 요란한 살육의 소리들로 아수라장이었다. 다락 속으로 밀려 들어간 두 아들들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어찌하여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뻔히 알고 있던 두 아들들은 바깥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내가 아버지 안 계실 때 바깥 사정을 보고 올 테니 너는 가만히 있다가 아버지 들어오시면 말씀 잘 드려…….”
“아니야, 형. 내가 나가 볼게. 나야 이제 일학년이니까 만약에 잡혀도 재수생이라고 하면 돼. 친구들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내가 나가 볼 테니 형이 집에 있어…….”
“근디, 야가 왜 안온다여……. 참말로 걱정시러버 죽겄는디…….”
두 형제가 바깥 동정을 살필 궁리를 하는 동안 안방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걱정이 한참이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누나가 귀가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참, 누나가 어디에 있는데요?”
“이렇게 될 줄 모르고 학교로 출근했는디……. 올 사정이 못돼야 같은 핵교 선생 집에 있다고 연락이 왔어야. 짬 봐서 온다고 했는디…….”
“그 선생네가 어딘데요?”
“핵교 근처 어디라든디…….”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생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앞에서 부모와 형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이 그저 두 사람의 무사 안전을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바로 박진규 씨였다.
동네에서 방앗간과 슈퍼를 운영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삼남매는 알아주는 수재들이었다. 누나는 대학을 4년 내내 장학금으로 졸업할 정도였으며. 두 형제도 고등학교까지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고 서울의 일류 대학으로 진학한 수재들이었다. 두 형제에게는 누나에게 빚진 마음을 조금씩 가지고 있었는데, 형은 세 살 터울의 자신 때문에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할 실력이 되었던 누나가 광주에 눌러앉은 것이고, 동생은 그 누나가 교사 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대 준 일이었다.
크게 어려울 것 없는 형편이었지만, 아버지께서 간염으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면서 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기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나 누나는 자신이 그동안 모아둔 통장을 동생에게 내밀어 서울로 진학하도록 해 준 것이었다. 그러니 두 형제는 누나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런 누나의 행방이 묘연하니 아무리 위험해도 나서지 않을 동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집을 나간 동생을 찾은 것은 살육의 10일이 지난 뒤, 어느 개인 병원 입원실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그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입을 다문 이상 아무도 그가 집을 나선 뒤 있었던 일들을 들을 수도 알 수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그의 정신 분열과 관계가 있을 법한 누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가족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의 누나는 아무런 말 없이 한 구의 시체로 가족들 품에 돌아왔다.
내 생각에 그는 누나의 죽음을 목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는 자신이 누나를 구할 수 없었던 것 때문에 자책감에 저 지경이 된 듯싶었다. 멀쩡히 인사를 하고 출근한 딸의 주검을 보아야 했던 부모도 부모였겠지만 그 죽음을 목격했다면 그의 충격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분노가 가슴 밑에서 끓어올랐다.
진규씨는 한 시간이 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아는 모텔에 연락을 해서 큰 방 하나를 얻었다.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어서 한 방에 가족들이 모두 함께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청년 중의 한 명이 진규씨를 업고 모텔로 향했다. 나는 우선 학회의 볼일을 보고 난 뒤에 가기로 했다. 그날 오후 내내 나는 알 수 없는 분노와 알 수 없는 미안함으로 우울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일을 마치고 모텔에 들어서닌 진규씨는 아직도 잠이 들어 있었다. 부모님은 내심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걱정 마세요. 제가 깰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 저녁 식사라도 하고 들어오시죠.”
망설이는 가족들을 내보내고 나는 잠든 진규씨에게 계속해서 광력을 펼쳤다. 부디 악몽에서 벗어나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빌면서…….
“누구세요?”
광력을 펼치고 있던 사이 진규씨가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었다.
“나는 정광호라고 합니다. 초광력 학회 회장이지요 .”
“초광력이요?”
부스스 진규씨는 몸을 일으키더니 멀뚱멀뚱 나를 건너다보았다. 지금 자신이 왜 낯선 방에서 낯선 사내와 마주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눈빛은 많이 안정돼 있었다.
“초광력은 우주의 빛으로 현대의학에서 포기한 사람도 때로는 좋아질 수 있고 마음에 병든 사람도 고칠 수 있지요.”
“그런데 제가 왜……?”
“참, 부모님께서 곧 들어오실 겁니다. 식사하러 나가셨거든요…….”
“부모님이요?”
그는 아직 선잠에서 깬 어린아이처럼 상황설명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가족들이 들어왔다.
“아니, 진규야. 내다 에미다…….”
진규씨는 어머니 아버지도 그저 멀건히 바라볼 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야가 왜 이런다요?”
“오래 아팠던 만큼 쉽게 나을 병은 아닙니다. 제 생각에 오늘 밤에는 별 일 없을 테니 내일 아침 일찍 사무실로 데리고 오십시오.”
그러나 나는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새벽녘 진규씨가 머물고 있는 모텔로 찾아갔다. 한 시각이라도 그를 공포와 아수라장의 기억 속에서 구해 주고 싶은 마음에 밤새 뒤척인 뒤였다.
진규씨는 아주 얌전히 잠들어 있었다. 가족들은 그런 진규씨가 못미더워 밤잠을 설쳤는지 모두들 잠이 깨어 있었다.
“이렇게 계속 잠만 자면 어찌까 걱정하고 있었는디요.”
“괜찮습니다. 그 기억 속에서 빠져 나오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나는 잠든 진규씨를 향해 다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초광력을 펼쳤다. 방안은 침묵으로 종요했고 진규씨는 잠들어 있는데 뭔가 강한 바람이 진규씨의 몸에서 나와 나를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우주의 빛을 불렀다. 나를 통과한 바람은 은은한 향기를 만들며 방안을 맴돌다 사라졌다.
“또 오셨군요…….”
진규씨가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잘 잤어요? 기분은 어떻습니까?”
부스스 일어난 앉은 진규씨는 아무 말 없이 방안을 둘러보았다. 뭔가를 찾는 듯한 눈길 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방안을 둘러보던 진규씨는 처연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선생님께서 누나를 보내셨죠?”
나는 아무 말 없이 진규씨의 눈을 응시했다. 편안해진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금세 눈물이 고였다.
“누나가 저를 미워하지 않을까요?”
“아니요. 누나는 아주 좋은 곳으로 갔으니까 고마워 할 겁니다. 이제 진규씨가 예전처럼 살기를 진실로 바랄 거예요.”
“나는 누나를 돕지 못했는데요……. 눈앞에서 누나를 돕지 못했는데요……. 그들이 나를 개 패듯 패는 것을 말리려다 누나가……. 대신……. 그래도 나는 누나를 도울 수 없었는데요……. 나는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어요……. 누나가 죽어가는 것을 그냥 바라만 보았을 뿐이에요. 나는 누나를 도울 수 없었어요……. 흐흑…….”
진규씨는 그 자리에 엎어져 한없이 울었다. 방안은 어느새 눈물바다가 되었다 나 역시 진규씨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간혹 만나게 된다. 그 상황이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왔을 때 대개의 양심은 그 사람을 나약하게 만들어 죄의식으로 정신을 놓도록 만들기도 한다. 진규씨는 동생을 구하려다 비명에 간 누나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누나에게 아무 도움도 될 수 없었던 그 절대절명의 시간을 핑계할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구라서 그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같은 시각 같은 땅 위에 살면서 그가 그렇게 멍들어 가도록 지켜 보기만 한 나도 있는 것을…….
진규씨는 일주일 동안 머물며 나에게 초광력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간 뒤에도 나는 진규씨에게 전화를 걸어 초광력을 보냈다. 누구보다 그가 부디 예전의 삶을 되찾아 잃었던 십오 년여의 삶을 다시 찾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다.
진규씨의 믿음과 나의 간절함이 닿았는지 진규씨는 하루가 다르게 회복돼 갔다. 40킬로그램 대의 몸무게도 차츰 늘어났고,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건강한 정신도 되찾았다.
이제 나는 진규씨를 위해 다른 기원을 보내야 했다. 그가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공부, 그 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이 땅의 건강한 아들로 돌아올 그날까지 어려움과 역경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십사는 기도를……. 그것만이 내가 그 시각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지 못했던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길이기에…….
출처 :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2000.07.07. 초판 P. 41~57
첫댓글 감사합니다.마음이 많이 아픈 사연입니다.
마음 아픈 역사입니다.
그 아픔이 빛으로 치유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5.18의 아픈 역사를 아픔으로 안고 살게된 진규씨네를 빛으로 정화해주시고 빛으로의 싦을 살게해주신 우주마음님 학회장님
공경과 감사로 숙연해집니다.감사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학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지나간아픈마음이야기.감사합니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의 원천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네요...모든 아픔이 빛으로 치유되시길 ....감사합니다.
우리 민족에 새겨진 깊고 깊은 또 하나의 상흔, 광주민주화운동,,, 그날의 양심을 느낀 가해자도 그리고 피해자도 깊고 깊은 트라우마가 생겼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글을 통해 국가가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일이 다시는 생겨서 안된다고 경종을 울리는 것 같은 글,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을 만나 정신적 상흔이 치유된 진규씨 처럼 그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빛의 치유가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5.18 아픈기억 속에서
진규씨를 빛으로 저화시켜
새삶을 살게해주신 우주마음님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
역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더 나쁜 건 그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모두에게 힘든시간 이셨군요.
학회장님께 감사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시절의 마음 아픈 사연~*
감사합니다.
가슴아픈 기억 을 이제는 빛으로 정화되었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글이었습니다. 한강님이 광주의 딸이란게 실감이납니다.
박진규님을 엄청난 고통속에서 다시 삶의 빛을 주신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의 마음 전합니다.*
가슴 아픈 과거의 역사
광주 민주화 5.18
치유과정의 글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픈 마음, 아픈 영혼을 맑고 밝게 정화해주시는 근원의 빛,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초광력의 빛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아픈 역사적사건....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5.18의 가슴 아픈 사연의 글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진규씨 이야기가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진규씨의 마음이 빛으로 치유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진규님의 아프고 고통스런 마음을 맑고 밝게 정화시켜주신
학회장님께 깊은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빛안에 박진규님께서 언제나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작가의
광주민주화 운동의 사건을 계기로 쓰여진
"소년이 온다." 는 바로 박진규님의 사례로서
빛명상인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의
저서 빛역사의 사례였네요.
참 잘 보았습니다.
"소년이 온다" 작품을 통해 전세계에
빛명상 초광력은 "초종교 초자연 초과학적"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근원의 빛마음과
학회장님께 진심 감사와 공경을 올립니다.
~ 감. 사. 드. 립. 니. 다. ~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귀한 글 감사합니다.
박진규님 아픈 마음을 정화시켜주시고 사회생활할수있도록 해주신 학회장님 감사와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감사 합니다.
이런 아픔을 가진 분도 있으시네요. 학회장님께서 보여주신 빛역사에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 아픈 이야기~ 십 여년이나 지났지만 아팠던 기억을 정화해 주시고
정상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빛으로 치유해주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공경의 마음 가득 올립니다~
노벨 문학상 을 받은 요즘 더더욱 급 부상하시는 한강작가의 광주민주화 운동의 사건을 계기로 쓰신 :소년이온다.:작품을 통해 빛명상 초광력을 전세계: 초종교 초자연 초과학적:임을 알리게 해주신 우주빛마음 학회장님 천혜의 초광력 빛안의 무궁한 공경과 감사마음드립니다...감사마음드립니다...
ㅠ 눈 앞에서 죽어간 누이를 죄책감에 놓지못하고....마음이 아프네요.
다행히 빛을 받아 정화되어 앞으로 낭가는 삶을 살게되어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 날의 일로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마음의 짐에서 벗어나 길 기원해봅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 이야기에 가슴 뭉클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