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수요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1506-1552) 기념일
이사25,6-10ㄱ 마태15,29-37
축제인생을 삽시다
“천상 꿈의 실현;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제 한평생 모든 날에,
은총과 자애만이 따르리니, 오래, 주님 집에 사오리다.”(시편23,6)
바로 오늘 여기가 주님 은총과 자애가 충만한 주님의 집입니다. 오늘 12월3일 새벽에 읽은, 어제로 5박6일 튀르기에와 레바논 방문(11.27-12.2)을 끝내고 귀국하기에 앞서 마지막 베이루트에서 레오 14세 교황의 고별 강론 말씀 후반부가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사적인 영역이 전혀 없는 완전히 공개된 공인으로서의 교황입니다.
“무기들이 치명적인 반면, 대화, 묵상과 대화는 건설적이다. 우리 모두 하나의 목표로가 아닌 하나의 길로서 평화를 선택하도록 하자. 레바논은 나라 그이상이다; 그것은 메시지다!(It is a message!). 이 평화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일하고, 함께 희망하기를 배우도록 하자.”
고해인생을 사느냐 축제인생을 사느냐는 역시 선택의 문제입니다. 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축제인생을 선택하여 살도록 배우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천상 꿈을 실현하며 품위 있게 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 신자들의 숭고한 의무이자 책임이며 성인들이 그 모범입니다.
오늘 12월3일은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비상계엄으로 발발한 내란은 아직 청산되지 않았지만 1년 동안의 놀랍고 눈부신 변화 상황은 그대로 기적의 연속이었습니다. 저절로 하늘이 도왔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시민들의 적극적 호응이 함께 함으로, “하느님의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 가사대로 실현됨을 깨닫는 지난 1년이었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국민에 위대하고 역동적인 대한민국인지 오늘도,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성령님 만세, 대한민국-한반도 만세, 가톨릭교회 만세, 성모님 만세, 요셉수도원 만세”등 만세칠창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입니다. 지상에서 천상 꿈을 펼치려 복음 선포에 전념하며 불꽃같이 살았던 정말 신화적, 전설적 예수회 출신의 성인입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천국으로 보내거나 지옥으로 보내기에 믿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분께서 저의 주님이시기에 그분을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아니라 믿고 사랑하는 주님만이 유일한 관심사임을 고백하는 성인이요 저 역시 동감합니다.
1534년 8월15일 하비에르는 이냐시오와 그의 첫 동반자들과 함께 서원함으로 예수회의 공동 창설자가 됩니다. 이후 11년간 인도와 가까운 나라들에서 놀라운 선교활동을 펼치면서 바오로 사도처럼 모든 이의 벗이 되어 자신을 내어주는 사도로서 살았습니다.
성인은 1549년 일본 가고시마를 시작으로 히라도, 야마구치, 교토에 이르기까지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했고 사후 50년이 지났을 무렵 일본의 신자수는 40만명이 넘었습니다. 그는 전도하고 설교할 때 사제복 대신 일본 승려들이 입는 납의와 가사를 입었는데, 예수회 선교사인 마태오 리치가 명에서 사제복 대신 유학자의 도포를 입고 유교 교리에 맞추어 기독교 교리를 가르친 것처럼, 그대로 복음의 토착화의 선구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1551년,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위해 출발했지만 진입하지 못하고, 광둥항 앞의 상촨다오 섬(上川島)에서 열병으로 사망하니 성인의 나이는 향년 46세였습니다. 참으로 불꽃처럼 치열하고 가열찬 삶을 살았던 선교사 하비에르 성인입니다. 일본 및 인도의 사도로, 동양의 사도로 불려지는 외국 선교의 수호성인인 하비에르의 감동적인 서간 일부를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바치는 많은 사도적인 활동을 중요시하고 높이 평가하시기 보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겸손되이 오로지 당신의 사랑과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하신다는 것을 늘 상기하십시오.”
이래서 하느님 사랑의 관상에 깊이 뿌리내린 활동의 선교사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이사야의 놀라운 하느님 비전을 내 비전으로 삼는 것입니다. 천상 잔치의 꿈을 앞당겨 현실화하여, 고해의 현실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지금 여기서 축제인생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날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잔치를 베푸시리라. 그분께서는 이 산위에서, 모든 겨레들에게 씌워진 너울과, 모든 민족들에게 덮인 덮개를 없애시리라.”
오늘이 그날입니다.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너울이요, 절망과 압제, 폭력의 덮개를 말끔히 거둬내신다는 하느님의 약속입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을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정녕 주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눈물을 닦아주는 종교,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가 위대한 진짜 종교요 정치임을 깨닫습니다. 눈물을 닦아 주는 하느님의 예는 묵시록에서, 미사경문에서 반복됩니다. 우리가 늘 마음 깊이 생생히 지녀야 할 천상 꿈이자 비전이자 희망입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묵시21,4)
이어 제가 미사경문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에게 무궁한 위로와 희망을 선사하는 참 아름다운 대목입니다.
“성자께서 죽은 이들의 육신을 다시 일으키실 때에,
저희의 비천한 몸도 성자의 빛나는 몸을 닮게 하소서.
또한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
모두 주님의 나라에 너그러이 받아들이시며,
저희도 거기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저희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그때에,
하느님을 바로 뵈오며,
주님을 닮고,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리이다.”<미사경문 감사송 3양식>
바로 오늘 이사야의 빛나는 천상의 비전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통해서 그대로 실현됩니다. 세상 광야 한복판에서 많은 이들을 고쳐 주시고, 천상잔치를 앞당겨 베풀어 주십니다.
말목하는 이들이 말을 하고, 불구자들이 온전해지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눈먼 이들이 보게 되자. 군중이 이를 보고 놀라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이어지는 미사를 상징하는 사천명을 먹이신 잔치의 기적을 통해 모두를 살리시고 부족을 채워주십니다.
‘그리고 빵 일곱 개와 물고기들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
그대로 <나눔과 섬김>으로 요약되는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천상 잔치의 예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눈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위임받는 제자들이 빵을 나누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지극정성의 하느님 아버지 사랑과 민초들의 사랑에 감동한 제자들은 물론 군중들! 은밀히 가지고 있던 먹을 것을 다 내놓아 나눴기에 이런 배불리 먹고 남는 기적입니다. 없어서 굶주리는 것이 아니라 독점으로 나누지 않아 굶주리는 세상 현실입니다. 새삼 대부분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과 부정, 전쟁. 질병, 가난은 하느님 탓이 아니라 우리의 나누지 않은 죄탓임을 깨닫습니다.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는 대동사회의 꿈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천상잔치의 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와 더불어 나눔과 섬김의 삶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을 우리 고백으로 바치며 강론을 마칩니다.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주님의 손이 여기 머무르신다.”(이사25,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