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1. 3. 1. 월요일.
어제까지는 겨울이었으나 오늘부터는 봄이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오늘은 1919년 3월 1일에 있었던 <3·1 운동>의 제102주년이다.
서울 종로구 파고다 탑골공원 안에서 '정재용'씨가 기미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태화관 별관에서도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분들이 모여 만세삼창을 불렀다.
이로써 전국에 걸쳐서 만세운동이 이어졌고, 왜경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만세 불렀다고 해서 7,500명 이상이 처형당했다.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징역살이를 했을까?
참고 자료(몇 해 전의 잠정적인 수치)
기미만세 참가자 202만 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검거/투옥 52,770명
- 얼마나 많은 집이 불타고, 건물이 부서졌을까?
※ 조선조 제26대왕 고종의 장례식을 이틀 앞둔 3월 1일.
이 기미독립만세운동을 기리는 이미지 사진이 <한국 국보문학 카페>에 떴다.
아쉽게도 제목이 어색하여서 내가 아랫처럼 댓글 달았고, 여기에도 퍼서 글감으로 삼는다.
제목이 답답하군요.
'3,1 / 달수'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맞나요?
1) 3,1
2) 3.1
3) 3·1
위 세 개 가운데 3)이 맞겠지요.
1)의 쉼표도 아니고, 2)의 마침표도 아니지요.
3)의 '가운뎃점'을 찍어야 하지요.
어문규정 부록 쉼표 2. 가운뎃점 (2)에는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날을 나타내는 숫자에 쓴다.'로 규정되어 있지요.
3·1 운동 8·15 광복
조선조 후기, 구한말부터 일본은 조선조를 능멸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이씨왕조를 멸망시켰다.
일제 식민시대가 전개되었으니 조선사람,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모두 다 反日하며 일본에 대항했을까? 그랬으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1909년 만주 하루삔에서 이토오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서 죽인 안중근의사의 자손들에 관한 이야기가 오늘 인터넷에 떴다.
안중근의사는 사형당했다.
그의 자손은 2남1녀. 장남은 어렷을 적 여섯 살에 죽었고, 차남은 훗날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신사에 참여해서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유가족은 일제의 보호를 받았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안중근의 유가족조차도 친일파가 되었다는 뜻일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아래는 인터넷 뉴스이다.
'... 차남은 1939년 10월 17일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신사 ‘박문사’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히로쿠니와 함께 참배하고 아버지 죄의 용서를 빌었다. 이후 유족은 일제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했다. 장녀 현생(1902∼1959)씨도 막냇동생의 박문사 사죄를 지원했다고 알려진다. 차남 준생씨가 1952년 부산에서 숨진 뒤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출처: 중앙일보] 무연고 장흥 산골서 67년째 제사…안중근의 서글픈 가족사
하물며 일반사람들은 오죽이나 했을까?
스스로... 자진해서...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구한말, 일제시대의 군인/헌병대, 경찰관, 공직자, 거부거상들, 양반들 ... 시골의 리정(이장) 등을 헤아리면 아마도 친일파는 100만 명도 더 넘을 게다.
1948년 8월 15일 남한 단독만의 정부를 수립한 리승만이가 친일파들을 제대로 조사하여 확실하게 척결했을까?
아니다. 아니다. 그 자손/후손들이 지금도 득세하여서 ....
오늘은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태극기가 전국 곳곳에 내걸렸을까?
그런데 말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우리나라 태극기가 몇 해 전부터는... 그 이미지가 흐려지기 시작했고.... 국경일 등에는 태극기를 내걸아야 하는데도 별로 내걸리지 않는 괴이한 현상까지도 생겼다.
왜?
몇 해 전부터는 내가 사는 서울 송파구 잠실 어떤 아파트단지에서 국경일 등에 내걸리는 태극기의 숫자는 지극히 적었다.
한 동(棟) 50여 개의 개인용 베란다에는 고작 2 ~3개만이 내걸린다고?!
태극기를 들고 시위(데모)하는 세상이다.
미국 성조기도 함께 흔들고...
나는 그들의 시위에서 일본국기와 욱일기를 내걸고, 흔드는지를 늘 살펴보고 있다.
해마다 돌아오는 <삼일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쉽다.
이런 글을 써야 하다니...
아래는 인터넷 뉴스에서 퍼왔다. 참고하기 바란다.
' ... '태극기부대' 시위가 한창이던 4년 전부터 태극기 판매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태극기가 '극우'의 상징으로 각인되면서 사람들이 태극기를 꺼리기 시작했다. 정부 주관 대규모 행사에 쓰일 태극기를 구매하는 경우도 뚝 떨어졌다는 게 판매상들 이야기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직장인 김동원(32)씨는 "예전에는 국경일마다 부모님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했는데, 이제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춰질까 봐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모(41)씨도 "최근 2, 3년은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아달라는 아파트 안내 방송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전했다.'
2021. 3. 1.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