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1~AD 1세기에 아프가니스탄(남동부)·파키스탄·인도(서부)를 지배한 스키타이민족. 샤카족(
aka)·인도스키타이족이라고도 한다. 그 역사는 은화·동화 등의 명문(銘文)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지만, 확실하지 않아 이론(異論)이 많다. 이들은
서(西)투르키스탄에 살고 있었지만 BC 130년경 대월지(大月氏)의 압박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시스탄)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시스탄은 아르사케스왕조(파르티아)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보노네스 밑으로 독립하여, 곧 인더스강 서해안에 이르는 왕국을 세웠다. 그 뒤 파키스탄은 마우에스가 인도·그리크왕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왕국을 세웠지만, 곧 다른 계통인 아제스 1세·2세, 아지리제스 일족이 지배하였다. <참고: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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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스키타이는 크게 4가지의 주거형태로 나뉘고, 그 중 근본이 되는 <왕족스키타이>의 근거지는 드네프르강과 돈강사이 즉, 크림반도 윗쪽에 존재하던 세력을 그 중심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문헌에서는 인도의 북서부지역에 존재한 스키타이들의 기록에 집중합니다. 이것이 유물을 바탕으로한 연구인지? 아니면, 사서를 바탕으로한 연구인지는 모르지만, 이 '인도스키타이족'은 BC에 이동을 한 이동스키타이족에 해당하는 모양입니다.
또, 하나의 접근은 1)번과 2)번 원래는 동일한 종족을 이야기 할 수 있지만, 2)번이 세월의 흐름과 지배층의 이동에 의해 역사가 이동되었을 수 있다는 가정입니다. 현재, 많은 유물적 연구들로보면, BC 수천년전의 청동기 유적(한국으로 치면 고조선시대)들이 특히 불가리아 해안지방을 중심으로 출토되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러한, 유물적 접근으로 판단된 스키타이족의 주 거주 위치는 '카르파티아산맥'과 동유럽의 '드네프르강', '돈강', 및 '볼가강 지역'이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저도 영문 위키를 번역하면서 위와 같은 견해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서양사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보고 견해를 바꾸었습니다. 유물은 또한 만들어서 조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포멘코가 말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이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 유물의 연대 측정을 그렇게 믿지 못합니다. 또한 신강성에는 18세기 19세기에 수많은 약탈이 있었습니다. 신강성과 중국의 유물을 자신들이 원하는 지역에 묻어놓고 발굴작업 쇼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와 그리스의 조각상 역시 동방의 나라에서 훔쳐와서 약간 손을 대어 고대 유물인 것처럼 해놓았다고 합니다. 위 내용은 참고정도이고,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유적과 유물은 이동하여 다시 묻은 후 발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반대의 접근을 해보면, 다른 곳에서 발견된 유물이 신강성과 China대륙, 한반도에 묻히게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되기도 하죠....
더욱이, 고조선과 한나라의 갈등, 고구려,백제와 신라의 갈등, 중앙아시아 고려의 성립, China대륙의 조선의 성립과 함께, 그 인과관계를 살펴본다면, 유물의 발견들은 더욱 해당내용을 근거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한반도 경주에 스키타이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진짜든 가짜이든 참고할 수 있습니다.
연구과제를 제시해보겠습니다: 마니교, 배화교(조로아스터교) 와 단군조선의 관계를 연구해보셨으면 합니다. 상당히 관련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강화도에 마니산이 있고, 이곳에서 단군 천제를 지냅니다. 신강성의 역사를 한반도에 옮겼으므로, 한반도에서 역추적하는 방법입니다. 이미 여기 회원들은 거의 한반도에서 역추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발흐는 조로아스터(배화교 교주)의 출생지이고, 이슬람 시아파 창설자의 출생지입니다. 발흐가 종교의 중심지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영문 위키에서 나온 것입니다.
위 주제와 거리가 있는 답글을 달았는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즉시 이 곳에 적었습니다. 바로 스키타이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떠오른 것입니다. 의욕이 있으신 분은 마니교와 배화교 자료를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로아스터: 고대 페르시아 종교가·사상가. 조로아스터교의 개조이며 페르시아어로는 자라투스트라(Zarathushtra)라고 한다. 그 자신이 만든 찬가 <가사(g?th?)>의 언어·형식·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BC 1200년 무렵 사람으로 추측된다. 동북 이란에서 남러시아에 걸쳐 유목·반정주 생활을 하던 인도이란어족의 한 부족의 제사(祭司)계급에서 태어났다...
30세에 아후라 마즈다에게 계시를 받아, 윤리성을 존귀하게 여기는 동시에 매우 낙관적인 신종교(뒤에 조로아스터교로 불렸다)를 열었다. 고향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전도를 위해 40세에 집을 나가 2년 뒤 동북이란의 발흐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위슈타스파왕을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여 포교의 발판을 삼았다. ..
첫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딸을 왕의 재상 자마스파에게 시집보내고 자신도 자마스파의 조카딸을 세번째 아내로 맞아 기반을 굳혔다. 77세까지 신앙 발전에 힘을 썼지만 부족의 대립 속에서 암살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얼핏 기억하기로 조로아스터의 출생년도가 설이 많은데 너무 격차가 큽니다. 기원전1200년으로 잡으면 그야말로 단군 고조선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니체는 자루투스트라의 이름으로 자신의 설을 진행했습니다. 분명 서양철학자는 동방의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봅니다.
윗 내용을 따지면, 그 동방의 위치가 스키타이족이 있었던 남러시아 부근이 된다는 사실에 도달합니다... 지금의 한반도 동방이 아니라는 것이죠...
즉, 조로아스터라는 사람의 원 거주지는 동북이란과 남러시아 부근이라는 것입니다... 이사람이 발흐에 정착을 해서 자신의 교인 즉, 조로아스터 교를 만든 것이구요... 이사람은 원래 제사장의 집안이라고 하네요... 고대부터 내려오는 제사의 의식, 종교적인 경험과 지식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위치는 스키타이족의 유적이 발견되는 남러시아가 됩니다.. 또, 하나의 발견이 됩니다... 이제는 신강성 이론이 좀 수정되어야 할 단계가 온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정착인이 아니라, 유목민인데, 발흐에 성을 쌓고 정착을 한 것이 아닌지? 그리하여, 나중에 암살을?... 이건 추정입니다..^^...
결과적으로, 불교의 원형인 조로아스터교도... 조로아스터라는 사람이 만든 교이고, 이사람의 집안이 원래부터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의 집안으로 유목민의 후예라는 것이죠.. 그 유목민들이 섬기는 종교가 이 불교의 근원인 조로아스터교의 근원이 되지 않을까요?.... 결국 종교는 형식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사람이 '부처'의 모델아닌가요?... 제사장집안이면, 당시는 정치와 종교의 중심으로, 왕을 말하는 것인데요... 제정일치 사회잖아요... 이 곳이 고조선이면, 이 사람은 단군의 아들이 될 수 도 있습니다.. 고타마싯타르타도 왕자이지요. 아마., 그 신분을 버리고 도를 닦았습니다. 남러시아 북동지역이면, 코카서스산맥 부근이고, Khazaria즉, 가야가 있던 지역입니다.. 부처가 탄생한 곳은 '부다가야'로 가야지역입니다.... 조로아스터교의 기원이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부근입니다.. 여러 가지 요소가 일치해가고 있습니다...
약간 벋어난 이야기지만, 아제르바이잔은 국가의 영토모습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새의 모양 ('불새'?)을 하고 있습니다. 그 head가 바쿠라는 군사요새 도시라는 군요..^^..
조로아스터도 조선의 인물이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문화의 발전양상은 중심지에서 주변지로 퍼지는 거고, 기록을 보면 가장 번성한 국가는 단제조선이었죠.
그렇습니다. 고조선이 될 것입니다... 일종의 가설과 추측입니다... 문헌으로 나오는 기록대로 그대로 따라가다보니 나오는 결론이죠... 그래도, 좀더 많은 연구들이 있어야 할 것인데... 많은 분들이 해당지역으로 focus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니... 안타까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