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장례를 마치고
미국에 사시던 아버님께서 소천하셔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급히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기도해 주셔서 아버님의 장례식을 잘 치르고 귀국하여 지금 자가 격리 중에 있습니다.
이번 아버님의 장례를 통하여 주님께서 제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을 잊지 말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말로만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의 장례를 통하여 새삼 깨달은 것이 제가 물려받은 영적 유산이 크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순교하셨고, 아버님 역시 살아있는 순교의 삶을 사셨습니다.
어린 시절, 나라 잃었던 일제 시대에 목사의 아들로 살았고, 625 전쟁 포로였다가 석방되었으며, 장사를 꽤 크게 하시다가 폐결핵으로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때, 성령의 역사로 치유와 회심을 체험하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 헌신하셔서 한국과 미국에서 기도원을 세워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섬기면서 오직 하나님께 순종의 삶을 사시다가 미국 땅에서의 97세 삶을 마치셨습니다.
주의 종의 삶이 쉽지 않으셨지만 끝까지 승리하심으로 아들인 제게 말할 수 없는 은혜의 통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고령에 혼자되신 어머님을 주위에 계신 친척 분들께 맡겨드리고 저만 돌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이제는 제 차례니 ‘준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의 장례를 통하여 주님께서 저의 죽음도 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더욱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아버님의 유해는 고향인 평안북도 영변도 아니고 대한민국도 아니고 미국 땅에 모셨습니다. 아버님에게 이 세상은 그 어디도 본향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임을 깨달았습니다. 한국 조차 더 이상 낯익은 고향이 아닙니다.
은퇴한 이후의 제 삶은 외국에서 사는 것 보다 더 낯선 환경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아버지 장례는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몇가지 어려운 일들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 때 주님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을 보라 하셨습니다. 제 삶은 어쩔 수 없이 나그네인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러자 얼마가지 않아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이 내려 놓아졌습니다.
나그네의 삶은 단순합니다. 짐도 가볍습니다. 복잡할 것도 다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기만 하고 얼마든지 참을 수 있고 사랑만 할 수 있습니다.
나그네 심정을 잃어 버렸기에 삶도 사역도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예수 동행운동애 대하여 근본적으로 재 검토하게 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과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척 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의 친밀한 동행은 단지 매일 일기를 쓰는 것만 아닙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며 오직 순종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소원이 하나 생겼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그네 삶을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입니다.
아버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주님께서 제게 주신 뚜렷한 갈망이기도 합니다.
혹 주위에 예수님과 동행하는 나그네의 삶을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계십니까?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