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카페 '삶의 이야기' 방 36719번에 '아버지 - 가슴이 메입니다'라는 글이 떴다.
회원 '동행'님의 이야기가 너무 알쩐하고, 가슴이 멍멍해서 내가 빠르게 아래처럼 댓글 달았다.
그의 부친은 이북출신.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이 젊은 청년을 강제로 붙잡아 인민군 부대에 입영시키려고 집으로 들이닥쳤다.
18살 먹은 앳된 젊은이는 낌새를 채고, 어머니, 아버지 등의 가족과 헤어져서 도망친다. '곧 돌아오겠습니다'며 남쪽을 향해서 걸었고, 숱한 배고픔과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야 했다.
남한에서 군생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한에서 결혼했고...
이북의 고향 부모님을 꿈속에나 그리다가 끝내는 70대 후반에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이북 출신의 아버지, 고향에 되돌아가지 못하는 아버지를 지켜봐야 하는 자식의 마음은 무척이나 아팠을 게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외톨이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글속에 남아 있기에 다른 회원의 댓글처럼 나도 댓글 연거푸 달았다.
나한테는 하나의 글감이 되어 많이 이야기를 풀어낼 것 같다.
1)
엄지 척!
먼저 합니다.
제가 눈물이 나는군요.
그럼 동행 님한테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를 한번도 뵈온 적도 없고, 부친 쪽의 친인척도 전혀 없을 터...
이런 글 더 많이 써서 아버지의 흔적을 더 남겼으면요.
훗날 동행 님의 자손들한테 또하나의 전설을 남겼으면 합니다.
가족사인 족보도 없을 것 같기에...
아버지... 정말로 폭폭한 세상에서 사시다가 돌아가셨군요.
가슴이 아픕니다.
북한과의 교류가 더욱 넓혀졌으면 합니다.
통일 이전이라도 남한북한 간의 여행, 교류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올해에는 남북한 간 문이 더 넓게 열렸으면 하고 기원합니다.
아버지 대신에 님이 북한 땅을 밟을 수 있기를요...
2)
북한에서는 인민군을 뽑으려고 청년/학생을 강제로 끌고 갔겠지요.
남한도 사정은 마찬가지... 눈에 띄이면 자동차에 학생을 강제로 태워서 전방으로...
충남 보령지방 산골마을의 한국전쟁 관련 책을 봅니다.
아주 작은 마을인데도 한국전쟁시 인민군에 납치된 청년(19 ~25살)이 7명, 전사한 병사/경찰관이 6명...
산말랭이 작은 산골마을이 이지경인데 이를 전국에 확산하면...
엄청난 사람들이 피아간 가해자, 피해자가 되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정치적 통일은 차후이고, 먼저 서로 방문왕래라도 하면서 핏줄을 확인했으면요.
3)
1953년 6. 18 ~~19.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 3만 5천 명을 임의로 탈출.
전국 마을에 분산 보호. 제 시골마을에도 1명 배치. 압록강 수풍이 고향. 말 타고서 학교 다닐 정도로 부자였는데..
강제로 붙잡혀서 참전.. 포로.. 남쪽을 택하고... 날건달/노름꾼이 되어...
남의 농사를 지으면서 가난하게 살다가 끝내는 이북으로 가지 못하고 죽었지요.
그 바탕은 선한 분.. 그 분을 보면 늘 가슴이 아팠지요.
예전 직장에 다닐 때에도 어떤 장교는 처가에서 차례(처가 제사)를 지내대요.
남한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이북 출신이기에, 음력설과 추석 때에는 무척이나 쓸쓸해 하시대요.
한국전쟁(k0REA WAR), 6·25사변(용어는 숱하게 많다)의 아픔은 상상을 초월할 게다. 이산가족 1,000만 명.
피아간 가해자, 피해자가 되어서 이리저리 마구 휩쓸려야 했고,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아군이 되고, 적군이 되고... 숱한 사상자와 이재민이 생겼다.
서해안 산골마을인 내 고향마을은 정말로 작다. 그런데도 마을에 관한 책을 보면 전장에서 끌려가서 죽고, 이북으로 납치되고, 군두리(대천해수욕장)에서 저들이 도망치면서 양민을 대량 학살했는지...
부자집은 인민군 편에 서서 부역질을 했고, 가난한 머슴들은 인민군에 편에 섰고, 남한에서도 젊은이를 보면 강제로 납치해서 국군으로 만들었고, 나이 든 장년은 강제로 차출해서 국군 노무대로 끌고 갔고... 죽고 다치고, 도망치고... 피아를 따지기가 어렵다.
남한정부는 1950년 12월 국민방위군 설치법 제정하여 국민방위군을 모집(17- 40살).
군 지원부대로 활용코저 했으나 심각한 비리 발생. 추운 겨울철 국민방위군한테 지급한 식량, 물자를 착복하여 숱한 방위군이 추위와 굶주림 사망이 일어났고, 비리사건이 들통났다.
김윤근 준장 등 대령 몇 명이 총살당하고, 방위군은 1951년 4월에 해체.
김창룡 특무대장을 검색하면 자세한 설명이...
서해안 내 아버지도 방위군에 끌려가 혹독하게 고생했다고 한다.
전쟁 중에 사리 착복한 군인들이라니...
나는 2000년대 후반에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잠깐 근무한 적이 있다.
군번없는 학도 호국대 전몰탑을 보면 왜그리 가슴이 답답하던지...
학교 가다가...수업이 끝난 뒤 귀가하다가 붙잡혀서 군입대... 사흘간의 군사훈련... 총도 쏘지도 못하고(탄창을 바꿔 낄 줄도 몰라서...)...
이런 이야기들은 숱하게 많을 게다.
내 시골마을에는 북한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수용소에서 이북이 아닌 남한을 선택한 이북 출신인 이 씨가 있었다.
압록강 수풍 지역의 대지주 아들이었다가 인민군이 되어 참전,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갇혔으나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으로... 그는 이북이 아닌 남한을 선택하였다. 이북에 가봤자 지주계급으로 곤욕을 치룰 터...
이북에서 잘 살던 이야기를 하던 노름꾼, 날건달로 살다가 끝내는 고향에 되돌아 가지 못한 사람이었다. 오래 전돌아가셨다.
내 종조모(작은할아버지의 아내)도 이북 사람이다.
이북을 방문하지 못한 채 끝내 돌아가셨다.
충남 보령시 독산해수욕장 부근에는 이북 출신의 노인네가 외지에서 이사 와서 산다.
버닷가 근처에서 땅과 주택을 사고는 이곳을 고향으로 삼겠다고 했다.
자기가 죽은 뒤 자식들이 계속 이어서 살면 그게 고향이 시작된다고 했다.
북쪽 고향으로 갈 수 있는 희망을 접었을까? 북쪽의 근거지를 잊어버렸을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다.
나는 오래 전 판문점을 방문했다.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을 보았고, 남북한 정전위 사무실에도 방문했다.
한국전쟁 발발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1950. 1. 12. 미국무장관 애치슨은 '애치슨 라인'을 발표했다.
'태평양에서 미국의 지역방위선을 알류샨 열도 - 일본 - 오키나와 - 필리핀을 연결하는 이른바 '애치슨 라인'으로 한다. 그 결과로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인도차이나 반도가 미군사력에서 제외된다'고...
그럼, 북한 김일성(아주 젊었음)은 무엇을 도모했을까? 그는 쏘련에 가서 스타린을 연거푸 만나고 설득하고...
못난 민족의 아픔이 시작되는 계기가...
고향에 가 보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을 아버지로 두었던 위 회원.
아버지가 꿈꾸던 고향 이북으로 영혼이 가셨을 게다.
2019년에는 남북한 위정자들이 협상을 잘해서 이산가족의 상봉, 가족들의 상호방문, 경제협력관계가 더욱 진전되었으면 싶다. 더불어 이북에 고향을 둔 분들과 그분들의 의 자손들이 한발자국이라도 가까이 다가서는 그런 화해의 장이 되었으면 싶다.
피아간 잘잘못은 어쩌면 잊었으면 싶다. 해결이 안 되면 그저 잠깐이라도 잊혀야 한다고, 그후 차근차근히 ...
한국전쟁에 관하여 마을 곳곳마다, 개인마다 정확한 자료와 기록은 어렵겠다.
보호를 해 주어야 하기에...
내가 가진 시골 역사기록도 상당한 부분이 감춰졌다. 인민군 편에 서서 부역질을 했고, 저들이 쫒겨간 뒤에 부역질한 사람을 붙잡아서 징역살리고, 패서 죽인 기록들은 없다.
어쩌면 그냥 모든 것을 덮어둬야 하는 상채기 아픔이었을 게다.
구태여 더 알려고 하지 말아야...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안타깝습니다.
저는 서해안에 가면 친인척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조상묘도 10여 대가 되고... 고향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님의 아버지께서는 고향은... 그 뒤로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채...
이제는 새롭게 남한 땅에 님의 고향을 만들어야겠군요.
최윤환님께서는 참 자상하십
니다. 이런 자상함이 우리 방
을 더 품격 있고 우애가 있는
곳으로 만드는가 봅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행복한 주말이 되시기 바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초안도 안 되는 수준이지요. 더 다듬어야겠습니다.
저 아래 댓글 보기에선 미처 놓쳤던 댓글 전문이군요.
이렇게 찬찬히 보니, 아픈 분단사의 기록들을 확연히 눈에 보게
되는 군요.
세심한 배려,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남한은 남한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고, 북한은 북한대로 할 말이 있다고 하겠지요.
한국전쟁..
어쩌면 미소강대국의 대리전쟁이었을 겁니다.
1940년대 세계2차대전, 2차대전이 끝난 뒤의 국제정세의 변동, 5년 뒤인 한국전쟁의 발발...
북한. 쏘련, 중국, 미국... 한국정치사의 이면이 떠오릅니다.
일본제국주의가 낳은 또다른 피해이지요. 세계전쟁사에서 가장 잔혹했고,.
대량살상으로 이어졌던.. 민족끼리의 싸움이라니..
못난 시대였지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분단에 아픔은 하루이틀이 아니죠
재조명 하시며 짠해 하시는 마음은 알것 같습니다
즐거운 저녁이 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어떤 회원님의 글에서.. 가슴이 아프기에... 댓글 쓰다가.. 글감 하나 얻었네요.
초안도 안 되는 내용.. 보완해야겠습니다.
5년 전에 대한 적십자사에서 우리집을 방문하여 <북한에 보내는 영상편지>를 제작해 줬어요. 친정어머니께서는 이산가족 이셔서 이북 개성에서 함께 산 큰오빠, 조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 안부를 전하는 말씀을 녹음하고요.
CD 완성되어 집으로 도착.
어머니는 작년에 떠나셨어도 영상편지는 내 심금을 울리게 해요.
남한 북한 모두... 전쟁가해자이며, 피해자인 분들이 많겠지요.
힘이 없는 사람들은 이쪽으로 쏠리고, 저쪽으로 쏠리고..
서해안 제 고향.. 그 작은 산골마을인데도 한국전쟁 시에 인민군으로 끌려가 이북으로 넘어간 청년 숫자가 상당하네요.
그 분들은 반대로 이북에서 남한을 그리다가 돌아가셨지요. 자진해서 월북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서로 왕래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풀었으면 합니다. 전쟁 발발된 지도 벌써 69년째...
어쩌면 바로 코앞의 세월이네요.
올해에는 쌍방간 문호가 더욱 개방했으면요...
안타깝네요. 그분들이...
참나 울아부지두 북에서 의용군으로 끌려가 탈출하여 남한의 국익을 위해 살아오시다 돌아가시고 나또한 평양애서 아버지 고향을 가려고 하다 다음기회에 간다는게. 아직도
안타깝꾼요.
몇몇 정치가의 오판으로 야기된 전쟁의 소용돌이는 숱한 국민을 우왕좌왕하게 만들었지요.
혼란혼둔의 상태. 피아를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오로지 살기 위해서 이쪽으로 저쪽으로 편을 갈라야 했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데도 ...
누가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모를 혼둔이었지요. 살아 남아야 했기에...
지존 님의 옛 선영은 이북에 남아 있겠군요. 선영을 되찾을 수 있는지, 이북의 친인척을 만날 수 있는지..
한 가문의 뿌리가... 뿌리의 흔적이... 다시 이어졌으면 기대합니다.
그럴려면 우리의 힘이 더욱 강해야겠지요.
평화는 힘에 의해서 지켜지기에...
우리아버님과 동행님 아버님과 비슷합니다
남북간 가족찿기에 여러번 신청 하셨지만
실패하셨고 근래에 신청할거냐는 연락을
제가 받았지만 못한다고 이야기 했지요
이제는 당첨되도 의미가 없는 지경이 됬네요
남북한 가족상봉 신청자가 엄청나게 많고, 이제는 모두 지나치게 늙어서 상봉장에 나갈 수도 없은 분들이 더욱 늘어나겠지요.
더 많이 상봉 숫자, 상봉 차례를 확대하지 않은 한 노인들한테는 이산가족을 만나지 못하고는 이승을 뜨겠지요.
정치 전략적인 측면을 떠나서 인도적 차원에서 남북한 위정자/공직자들이 마음을 크게 썼으면 합니다.
답답하겠군요. 모두 연노하여 기력이 상실해 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