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1장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이면서 부활과 생명이 되심을 다 이해하실
줄 알고 한 가지 만 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의 모든 명령 동사는
하나님의 의지가 들어있다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너 공부해’하면
자녀들이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아도 부모 말씀에는 부모의 의지가 들어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자녀라면 그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자녀라면 부모의 유전인자를 받았기 때문에 공부해라 하면
그 공부해라는 말 속에 있는 부모의 의지로 인해 저절로 순종이 됩니다.
이와 같이 부모의 말이 자식들의 의지를 움직입니다. 인간의 말도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의 말을 거역하는 자녀는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말은 절대로 안 듣습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왜 쓸모없느냐 하면 부모님의 의지가
들어있는 말도 안 듣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지를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성에 결정적인 결함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자체가 영과 생명을 함유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의지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모든 명령동사는 하나님의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말씀 속에 장치가 돼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고 해서
내가 있는 힘을 다해서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라는 말씀을 자세히 들으면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는가
그 방법을 찾아 그 말씀을 좇으면 나도 사랑할 수 있겠다는 의지가 나타납니다.
객관적인 말씀을 듣고 체화가 되면 능동적으로 의지가 발동이 되는 신기한
메커니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면 내가 그 말씀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훈으로만
받아서 자기 스스로 그 말씀을 수행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큐티 같은 것도 그런 류의 한 방법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에 하나님 제가 이렇게 살까요 저렇게 살까요 하고 말씀으로
묻고 깨달아 나는 오늘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결단하고 하루 하나씩 자신을
고쳐가는 사람은 므두셀라만큼 969년을 살면 어쩜 성경의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건 인간이 부처가 되기 위해 쭈그리고 앉아 염불을
외는 것은 냄비에 모래를 담아 밥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지금 바깥 세상에 있는 교육이론도 같습니다. 교육이론이란 사람을 가르치고
깨우치고 야단치고 꾸짖고 하면 사람이 바른 행동을 한다는 원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현대교육이론입니다. 미국의 교육을 이끄는 죤 듀이의 교육이론은
'목사답게 살아라 장로답게 살아라 성도답게 살아라'는 식의 교육방법입니다.
그렇게 가르치면 인간이 자기의 이성과 감정과 의지를 통제해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의 교육이론입니다. 근데 그렇게 잘
가르쳐서 미국이 저 모양입니까? 전에는 머리나 복장 상태나 인사를 안
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큰일이었는데 교육학이 만개하고 지식과 정보가
가득한 그 나라에서 걸핏하면 총을 난사해서 수십 명이 사상을 당합니다.
이런 일이 교육이 잘 못 돼서 그럴까요? 그게 바로 지성교육의 한계입니다.
성경은 결코 지성교육이 아닙니다. 따라서 가르치는 제자훈련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절대로 인간을 가르쳐서는 온전하게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하므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을 뿐,
실제로는 그렇게 안 되는 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롬7장) 생명의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의 의지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우리를 변화시켜 움직인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속성을 바꾸셔서 하나님의 형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위대함이요 기독교 교육의 위대함입니다.
성경의 모든 명령동사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들어있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 진리를 아는 제자들은 주의 말씀을 자세히 들으면, 다시 말하여 말씀의
원리를 듣고 주께서 지정한 소속과 위치를 믿음으로 따르면 성경의 사람이 되어갑니다.
아직도 큐티 같은 애들 장난 같은 일을 하고 있으면 당장 쓰레기통에 집어넣으세요.
되는 것 같으나 결국 안 되는구나 하고 넘어지고 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죄성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멍에를 메는 모델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멍에를 매고 주님께 배워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것이 쉽고 가벼움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룰 수 있고 그 말씀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바울 같이 스스로 율법에 흠이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합니다(롬7:24) 그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역사가 구원의
절대적인 요소임을 진술합니다. 만일 큐티나 성경공부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여긴다면 하루빨리 바울과 같이 사망의 몸을 발견하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복창해야 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수업료를 적게 지불해야지요.
첫댓글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