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국원_Annie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227×182cm_2009
작가의 그림 속에는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사람과 동물, 각종 사물이 그려져 있다. 낙서처럼 자유로운 색채와 필치, 재미있는 이야기 구성이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미술작품을 본다는 부담을 덜어주고 그림 하나하나의 재미에 빠져들게 만든다. 빨간 머리카락에 웃고 있는 여인, 빨간 식탁에 나란히 앉아 아침식사를 하는 토끼와 개구리, 익살스러운 광대의 얼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군가의 팔을 물고 있는 강아지, 색동 배경 속을 날아다니는 거북이, 꽃을 뿜어내고 있는 듯한 사람 등 작가의 그림 하나하나에는 어린아이 같은 재치와 유머가 가득하다. ● 그런데 그의 그림은 눈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처음 접했을 때의 친근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림 속의 익살스럽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들이 겉모습과는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우국원_Mole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16.8×91cm_2009
이것은 곧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이야기들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하고,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상상력을 펼치게 만든다. 이것이 작가의 그림을 낙서 이상의 그 무엇으로 만드는데, 작가와 관람객의 소통은 바로 이 그림에 대한 알 수 없는 궁금증으로부터 시작된다. ● 작가의 그림 모티프는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비근한 일상이다. 일상 속의 작가 자신을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 책 속의 이야기들, 노래의 가사와 운율, 꿈속의 이미지 등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생활이 그의 그림 모티프다. 이 소재들은 누구나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그의 그림을 친근하게 여겨지게 하는데, 작가는 그 모티프들에 대한 순간순간의 느낌과 감정을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을 통하여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평범한 일상을 자신만의 세계로 끌어놓는다.

우국원_Turtle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82×227cm_2009
"(나의 그림은) ... 어린아이처럼 나의 지극히 솔직한 감정들-행복함, 즐거움, 기쁨, 분노, 미움, 질투, 시기, 연약함, 좌절 등-에서 출발한다. 이성을 한 귀퉁이에 접어놓은 채 오직 캔버스와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순간순간의 교감에만 몰두한다." (우국원)

우국원_St.Peter's Bookstore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16×91cm_2009
순간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그 순간에 응축된 자신의 감정 에너지를 표출하는 것이다. 따라서 냉정함과 객관성이라는 보편적인 의식은 그 안에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의 그림에서 사람은 동물이 되기도 하며, 동물은 사물이 되기도 하고, 사물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우리의 상식 너머의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게다가 하나의 이미지를 그리면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을 담아가기 때문에 처음 구상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우국원_Untitled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16×91cm_2009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은 수수께끼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처음 느꼈던 가볍고 친근했던 느낌과는 별개로 그림에 대한 궁금증에 궁금증이 더해져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어쩌면 그것은 무엇이든 답을 내려고 하는 보는 이의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강박관념을 버린다면, 그의 그림에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 역시 “생각의 폭을 최대한 열어두고 아무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그림을 봐주기 바란다.”라고 말한다. 그의 그림에서 어떤 해답을 찾기보다는 작가가 순간순간 느끼는 일상처럼 그의 그림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다면, 그의 그림은 내 일상의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근용
첫댓글 어제 인사동 갔다가 인사아트센터에서 우국원작가님의 작품을 봤습니다. 캔버스에서 너무나 자유로운 작가님만의 여유를 맛보았습니다. 여기에 보여진 컬러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자유로운 뜻모를 글씨들과 드로잉과 얼룩들이 조화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