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유학길에서 해골에 괸 물을 먹고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한국불교사상의 새로운 장을 열고 불교 대중화에 힘쓴 신라시대 고승 원효스님의 사상은 13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부대중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많은 불교학자들이 원효스님의 사상을 연구하고 문화관광부가 지난 2006년 석굴암과 팔만대장경 등 불교문화재와 함께 스님을 ‘100대 민족문화상징’으로 선정하는 등 스님에 대한 존경은 불교계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畵記 없어 실제모습 불분명
광주.서울등 10여점 대표적
그렇다면 이러한 원효스님의 모습을 묘사한 진영은 몇 점이나 있을까. 원효스님의 진영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기록에 나타나 있다. <대각국사문집>권 18권에 따르면 고려 대각국사 생존 당시 경주 분황사에 스님의 진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문인 이규보도 <동국이상국집>을 통해 부안 소래사 원효방에 봉안된 스님의 진영을 소개했다. 그러나 스님의 진영은 화기(畵記)가 없어 그 내역은 알 수 없고 본래 어느 절에 봉안돼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사진> 서울 호림박물관에 봉안돼 있었던 원효대사의 진영. 현재 스님의 진영은 광주 원효사 소장 진영, 서울 원효암 진영, 일본 고산사 소장 진영, 상주 원적암 진영, 양산 척판암 진영, 울진 불영사 진영, 경주 분황사 진영,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진영 등 10여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진영의 모습이 실제 인물과 닮았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대상 인물을 앞에 두고 그린 원본도 아니고 이를 옮겨 그렸다고 볼 수 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전해 오는 스님의 행적이나 성격을 염두에 두고 상상에 의해 그려진 유형화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 그려진 원효사 진영은 일본 고산사 진영과 거의 비슷하다. 다만 얼굴 부분이 좀 더 부드럽고, 눈매와 눈썹이 훨씬 둥그런 것이 인상적이다. 일본 고산사에 소장돼 있는 원효스님의 진영은 12세기 경 작품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진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이 작품은 가지런한 신발, 단정한 손 매무새 등이 돋보인다.
1938년에 제작돼 양산 척판암에 모셔진 진영은 불자를 잡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찰이 척판암이라 불리게 된 동기는 ‘척반이구중(擲盤而求衆, 밥상을 던져 무리를 구하다)’ 설화와 관련이 있다. 이에 따르면 어느 날 삼매(三昧)에 들었던 원효스님이 갑자기 소반(盤, 밥상)을 던졌다. 그 소반은 당나라로 날아갔다. 당나라 운제사에서 밥 짓는 공양주 보살이 커다란 소반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무서워 수행승들을 불러냈다. 하나 둘 뛰쳐나오기 시작한 수행승이 1000명에 이르자 동쪽에서 날아온 소반이 운제사 마당으로 떨어졌다. 날아온 소반에 ‘해동원효’라고 적힌 것을 확인하는 순간 운제사가 와르르 무너졌다. 운제사 수행승 1000명이 매몰될 위기에 처한 것을 신라 땅에서 알고 원효스님이 소반을 던져 구해낸 것이다.
머리 뒤에 일원상을 뚜렷이 한 분황사 진영이 원만하고 고귀한 품격을 느끼게 한다면, 불영사 진영은 다소 수수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준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원효 진영은 서울대 이종상 교수가 그린 것으로 학덕이 수승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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