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315장 ( 구 512장 ) / 마태복음 27 : 11 - 26
● 다함께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 찬송가 315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마태복음 27장 11절 – 26절 말씀입니다.
11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나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15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19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는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신문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인가?"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한 말대로요."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슨 죄를 범했는지 도무지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약한 병자들을 고쳐 주었고, 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려 주었으며 여러 가지 기적을 나타내신 분을 죄인 취급해서 빌라도 법정에 끌고 온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고발하며 떠들어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고 있는데, 들리지 않소?" 빌라도의 이 말속에는 "당신이 저들의 말을 반박하고 변명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권한으로 당신을 풀어 줄 수 있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대답도 않으시고, 침묵하셨습니다. 빌라도는 도무지 예수님의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의 말은 거짓이다. 나는 죄가 없다." 이렇게 말 한마디만 해도 풀려날 수 있을 텐데, 왜 저토록 침묵만 하는 것인지, 빌라도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갈림길에서 침묵하셨을까요?
첫째로, 예수님의 침묵은 사랑의 침묵이었습니다. 죄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범하며 살아갈 때, 엄하게 호통만 치시는 분이 아니라, 때로는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침묵하시며, 우리 곁에 다가오셔서 우리를 꼬옥 안아 주십니다. 비록 죄 중에 살더라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순간순간 들려오는 하나님의 침묵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님이 침묵하신 이유는, 죄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침묵을 깨트리시고 "나는 죄가 없다." 고 자기변호에 급급하였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형벌을 모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구원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죽기까지 침묵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고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양같이 어리석고 무능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능히 피할 수 있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피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 묵묵히 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 속에서 침묵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기까지 침묵하신 그리스도의 침묵 뒤에는, 부활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침묵 뒤에 따라오는 부활의 영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그 가사 첫머리에 보면, "빛이 없어도, 환하게 다가오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음성이 없어도, 똑똑히 들려주시는 주 예수 나의 당신이여" - 빛이 없어도, 비록 우리가 어두운 고난의 터널을 통과할 때도, 예수님은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주님의 직접적인 음성이 들리지는 않지만, 우리의 심령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들을 수 있는 심령의 귀가 열려져 있습니다.
소리의 속도는 1초에 340m를 갑니다. 그 소리의 파장으로 전달되는 주님의 음성이 비록 우리 귀가에는 들리지 않지만, 매 순간 순간마다 침묵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1초에 30만km나 가는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우리의 심령 속을 파고듭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침묵을 가슴깊이 느껴 보십시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어보십시오. 그리하면 우리도 침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서 끝까지 침묵하신 그 이유는 죄인까지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침묵은 사랑의 침묵입니다. '누구 때문이라'고 변명할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다면, 그리고 이웃과 형제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의 침묵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침묵 할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침묵을, 생활속에서 묵묵히 실천하는 성도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침묵은 화평을 위한 침묵이었습니다. 다툼이 일어나는 가장 커다란 원인은 서로 잘잘못을 따지는데 있습니다. 서로 간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 반드시 다툼이 일어납니다. 아무리 한 사람이 떠들어 대도, 다른 사람이 침묵하고 있으면, 싸움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아무리 물어 보아도, 예수님은 한 마디의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음만 먹으면 하늘의 천군천사도 부를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화평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막혀진 죄의 담벽을 허물기 위하여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말보다도 강한 것은, 침묵입니다. 천마디의 말보다 단 한 번의 침묵이 중요합니다. 침묵보다 더 강한 웅변은 없습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침묵은 내일에 대한 확신과 믿음에 대한 침묵입니다. 예수님은 반대자들의 모함과 술수 앞에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묵하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비난도 무릎 쓰고 끝까지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침묵은 또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적 고통과 수치를 주는 빌라도를 본 것이 아니라, 빌라도 위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 보았기에 침묵하신 것입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는 최후의 승리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위탁하시고 침묵으로 일관하셨듯이, 우리들의 삶도 그저 묵묵히 주님께 내 앞길을 맡기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녀들을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일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묵묵히 순종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 사람들의 비난 앞에서 침묵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칭찬 앞에서 침묵하셨습니다. 약자 앞에서도 침묵하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도 침묵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사람들의 비난 앞에서 침묵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칭찬 앞에서도 침묵해야 합니다. 약자 앞에서도 침묵해야 합니다. 내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 앞에서도 침묵해야 합니다. 그래야 작은 예수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야 내 이름에서 향기가 납니다. 비난과 칭찬과 십자가 앞에서도 침묵할 줄 아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삶, 예수의 향기가 나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