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
김남희
화분을 든 노인이 어린이집 문을 두드린다. 화단에 목화를 심어보지 않겠냐며 막 봉오리가 맺힌 목화 화분을 들고 섰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다. 화분을 주러 오셨는데 빌리러 온 사람처럼 수줍게 말을 건다. 아이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왔다며 자신이 직접 키웠노라 했다. 뜻밖의 꽃을 받고 나니 고맙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였다. 연신 고개를 조아리니 목화 키우는 방법이라며 세 페이지 분량의 자료까지 주고 가신다.
실물 목화는 처음 본다. 견학을 가거나 책을 통해 그림 목화를 본 적은 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목화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꽈리모양으로 봉우리를 부풀린 목화를 보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여 어린이집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솜을 만들고 옷을 만드는 목화라고 하니 아이들이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목화 탐구에 나섰다. 잎은 초봄의 어린 순처럼 보드라운 연녹색이다. 잎의 크기는 아이들 손바닥만 하다. 키가 자란다면 잎이 내 손바닥만큼 커질까 궁금하다. 단단한 봉오리가 맺혀있기도 하고 양털처럼 하얀 솜을 틔운 봉우리도 있어 손을 뻗어 느낌이 어떤지 만져본다. 진짜 솜과 같은 느낌이다. 이불 한쪽 찢어진 귀퉁이에서 느꼈던 그 솜의 느낌과 비슷하다. 솜 안에 뭔가 딱딱한 것이 만져지는 데 아마도 씨가 맺혀있는 모양이다. 좀 더 익으면 씨를 모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목화화분을 좀 더 큰 어린이집 화단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옮기고 흙을 두둑이 높여 물을 주었다. 뿌리가 단단한 심처럼 흙 속에 내리기를 기원하며 이름표까지 달았다. 목화의 이름은 목화꽃이다. 때마침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이 목화는 처음 본다며 아이처럼 들여다본다. 목화 앞에서 사진도 찍으며 어디서 났냐며 묻기까지 한다. 꽃집에서도 구하기 힘든 목화다 보니 신기해 물어보는 모양이다. 어린이집 화단은 이내 아파트에 소문이 퍼졌다. 지나가는 초등학생들도 가던 길을 멈춘다. 지나가는 어머니들은 아이의 걸음을 멈춰 세워 목화에 대한 설명으로 분주하다. 나는 사무실 창밖으로 연신 목화를 지켜보며 목화에 대한 자료를 읽기 시작한다.
목화꽃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꽃말이 생기게 된 배경은 중국의 ‘모노화 이야기’가 그 시작이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모노화가 가난과 굶주림이 지속되자 배고픈 딸을 위해 자기의 허벅지 살을 떼어 딸에게 먹인다. 그로 인해 모노화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딸 소조차는 고아가 되어 혼자 남겨지게 된다. 이듬해 모노화의 무덤에서 꽃이 피게 되는데, 눈처럼 하얀 꽃(솜)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노화가 딸을 위해 따뜻한 솜(꽃)을 보내준 것이라 여기며 '모노화'라 불렸다. 점차 ‘모노화’는 ‘목화’라 불려 지게 되었고 지금의 '목화'가 된 배경이다. 목화의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시집갈 때 어머니는 목화솜 이불을 해 주셨다. 그때는 솜이불이 무거워 탐탁지 않았었는데 목화의 사연을 알고 나니 이불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긴 세월 속 고려장처럼 버려졌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고래가 새끼를 입에 물고 바다 위를 헤엄치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다. 죽은 새끼를 안고 헤엄치는 고래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는데 새끼에게 호흡을 시키기 위해 물 밖으로 들어 올리는 장면이라고 했다. 숨진 새끼를 어미 고래가 인정할 수 없어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리라. 고래 역시 모노화처럼 제 몸을 던져 자식을 구하려고 한 것이다. 어머니의 꽃은 목화처럼 따스하고 부드럽고 순수한 것이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서 목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목화에 관련된 동화책을 찾아 문익점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모노화 이야기와 고래 이야기까지 덧붙인다. 아이들은 문익점의 붓 대롱에 숨겨온 것이 씨앗이라고 하며 목화씨를 보여주자 호기심을 보인다. 아이는 씨앗에게 인사를 하며 “씨앗이 숨 쉬어요.”라고 한다. 어떤 아이들은 “눈도 있고 코도 있어요.”라며 서로의 대화를 이어간다. 아이들 세상에는 볼 수 없는 것도 보이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아이들이 참 좋다. 어른이 볼 수 없는 세상을 아이들은 만들 수 있다. 숨 쉬는 목화씨처럼 미래도 숨 쉬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목화 인생도 아이들은 알 것만 같다. 불현듯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떠 오른다. 나는 고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목화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