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울란우데
바이칼호수를 방문하기위해 들린 울란우데는 인구40만의 도시로 몽골의 일족인 부랴트족이 주로 거주하는 부랴트 공화국의 주도이다. 17세기에 코사크부대가 우데강 하류에 건설한 요새에서 유래하였고 도시명은 몽골어로 붉은 빛의 우데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혁명시 반혁명군이, 그리고 일본군이 시베리아침략을 하면서 점령했고 1920년에 독립했지만 다시 연방에 병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베리아횡단 열차의 중요분기점으로 이곳에서 블라디보스톡과 몽골로 가는 노선이 나뉜다.
한국어는 주어-목적어-동사순의 알타이어로 구분되는데, 터키어, 몽골어, 한국어, 그리고 일본어가 여기에 속한다. 문명사를 살펴보면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는데 10만년동안 지속되던 제 4차빙하기가 끝난 1만년전에 농작이 가능한 환경이 됨에 따라 티그리스강 유역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최초로 시작되고 이후 나일강, 겐지스강, 황하 등의 유역에서 정착지가 생기기 시작한다. 우리에게는 다행으로 간빙기는 5만년정도 지속된다고 하니 앞으로 4만년간은 현재의 상황이 유지될 전망이다.
한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가장 바뀌기 힘든 어족상의 줄기를 따라갈 때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인류는 최초 수렵과 채집을 통해 생존해왔으며 기후의 변화로 이동하는 동물을 따라 동진하였고 신석기시대에 이르러 그중 일부는 티그리스강에 정착하여 최초의 농경문화를 시작하였는데 대부분은 지구의 기온의 상승에 따른 사냥하던 동물의 이동을 따라 터키를 거처 북상하여 몽골로 이동하고 이어 한국과 일본으로까지 이동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어는 잘 모르지만 만약 언어의 특성이 유사하다면 그중의 일부가 북미를 거쳐 흘러가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약 2만년전의 빙하기에는 유럽지역 빙하의 두께가 2,700미터에 달하고 해수위가 900미터나 낮았다고 하니 지금의 러시아와 알래스카도 기온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전에는 육지로 연결되어있어서 구석기인들이 이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반도로 돌아와서, 이들이 초기에 형성한 문화는 신석기로 빗살무늬 토기로 특징지워진 고조선에 해당되며 이후 황하 유역에서 발생한 선진 청동기 문명을 가지고 기자조선이 지배하게 된다. 결국 철기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시킨 부여가 이를 계승하며 부여로 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의 역사가 이어지므로 바이칼도 비교적 우리와 문화적, 혈통적으로 가까운 형제가 살고 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한민족의 기원지로 알려진 바이칼호수는 3000만년전에 형성된 시베리아 남쪽에 있는 담수량기준 세계 최고 최대의 호수로 타타르어로 풍요로움을 뜻한다. 면적은 남한의 1/3에 불과하지만, 깊이가 1,285미터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며 아시아에서 가장 면적이 큰 호수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슈페리어 호보다 두배 그리고 이를 포함한 5대호를 모두 더한 것보다 많은 23,600입방 킬로미터의 담수를 보유하고 있어 지구상 민물의 20%를 차지하며 이 곳에만 사는 동물이 무려 1,200종에 이른다. 이르쿠츠주와 부랴트공화국사이에 자리를 잡고있고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이다. 이 곳의 명물은 연어의 일종인 오물로 회나 훈제로 많이 먹는다.
이 곳에 처음 도착하여 숙소까지 오면서 생각한 것은 “내가 이태원, 아니 동두천에 온 것은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한국사람과 비슷한 부랴트족이 많이 다니고 간간이 금발의 푸른 눈의 이방인들도 다니므로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지 않는다면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내가 탄 열차는 바이칼호수를 낮에 지났는데 이르쿠츠역 다음인 슬류디안카역부터 미소바이아역까지 약 3시간동안 열차 진행방향의 왼쪽으로 계속 펼처진 호수를 질릴정도로 많이 봤다. 역에서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면 시작되는 슬류디안카역이 제일 적합하고 다음은 미소바이아역이며 나머지 5개역은 내륙방향이라 불가능하다.
10. 몽골
10.1 개요
한국의 15배의 면적을 가지고 있으나 인구는 300만명이 되지않는 아시아에서 6번째로 넓은 나라다. 국토의 대부분은 황무지나 스텝으로 농지의 비율은 적다. 북쪽과 서쪽은 산악지대이고 남쪽에는 고비사막이 있다. 몽골은 용감한 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대부터 흉노, 돌궐 등 여려 유목 민족들이 나타났으며 13세기 칭기즈 칸에의해 동서양을 아우르는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최초의 마케도니아제국과 그 2배가 넘고 2000년간 지속한 로마제국을 합친 면적의 두배가 넘는 역사상 최대의 대제국이 건설되었다.
그의 손자 쿠빌라이는 원나라를 송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하며 몽골제국의 대칸을 겸임하였고 마르코 폴로나 로마 교황청의 신부가 이태리에서 항주까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동서교역로를 확보하였으며 동유럽에서 고려까지 광활한 제국을 건설하였다.
14세기에 명나라에 의해 몽골고원으로 이주하여 북원으로 명맥을 유지하였고 명나라를 멸망시킨 같은 기마민족인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의 건륭제에 의해 18세기에 정복되었다. 1911년 중국의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12월혁명을 일으켜 자치를 인정받았으나 1920년 철폐되었고 1921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2차혁명을 일으켜 독립하였다.
10.2
울랑바타르(러시아어로 울란바토르)
몽골어로 붉은 영웅을 뜻하는 인구100만명의 몽골 최대의 도시이자 수도인 울랑바타르는 유목민족의 특성에 따라 이동식 불교사원으로 17세기에 최초 건설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고 28회의 이동을 거쳐 18세기에 현재의 위치에 영구적으로 정착하게되었다. 1911년까지는 큰 천막을 뜻하는 이키 후레 혹은 다 후레로 불리웠고 독립후 수도가 되면서 1923년까지 수도 천막을 의미하는 니슬렐 후레라고 불렸다.
대표적인 관광포인트는 도시의 기초가 되었던 불교사원이다. 그중 간단 사원은 19세기에 건축된 티벳식 불교사원으로 티벳어로 완전한 즐거움의 대궁전을 뜻한다. 사원에는 26미터의 관세음보살상이 있는데 1904년 13대 달라이라마가 거주했었으며 현재에도 이 사원은 150명이상이 수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14대 달라이라마를 초청하여 강연을 가진결과 중국정부가 이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양국간의 항공노선을 폐쇄하기도 했다.
몽골은 평균고도가 1,500미터로 울란우데보다 남쪽임에도 불구하고 기온이 낮다. 그리고 일교차가 큰데 나는 유목민이 사용하는 이동식 천막인 게르에서 숙박하여서 목도리와 장갑까지 착용하고 취침에 들었으나 나무스토브를 때고나니 비교적 훈훈해져서 장갑은 벋고 잘 수 있었다.
개인적인 울랑바타르에 대한 소감은 소박한 사람도 많지만 뻔뻔하게 새치기를 하거나 소매치기 등 재산상의 범죄가 비교적 많은 것 같다. 그들이 800년전 징기스칸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보다 분발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고 한국어가 일본어보다 광범위하게 소통되지만 우리나라에 대한 감정은 극과 극이어서 다소 주의가 필요하다.
10.3
테를지 국립공원
몽골에 와서 원주민이 생활하는 게르도 방문해 보고 초원도 거닐어 보고, 그리고 그 유명한 말도 타보기위해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테를지 국립공원을 즉흥적으로 방문하기로 결정하고 자료를 조사했다. 버스는 12시와 16시에 간단사원근처 나란틀호텔 건너편에서 출발하며 3시와 19시에 도착하며 편도비용은 2,200투그르(약2천원)이므로 당일치기로 약 4천원의 비용이면 초원방문이 가능하다.
내가 머무르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이 방문계획을 이야기하니 일본 아가씨와 한국 총각이 참여를 희망하여 총4명이 같이 여행을 하게 되었고 1시간의 초원산책, 1시간의 게르방문, 그리고 1시간의 승마까지 하고 밤늦게 귀가했다.
처음 타본 말은 내게는 경이였다. 우선 따뜻한 동물에 올라탄 것이 처음이었고, 눈높이가 1미터정도 올라간 상태로 본 경치가 달랐으며, 말달릴 때 사용하게 되는 다리근육의 땡김이 새로웠다. 단지 5불을 투자하여 이러한 경험을 얻을 수있다는 것이 믿겨지지않는다.
말을 타려는 분들을 위해 몽골말 타는 법을 설명하자면, 말고삐는 루프형태로 되어있는데 왼쪽으로 가려면 왼쪽 끈을 당기면되고 정지하려면 양쪽 끈을 동시에 당기면되며 달리려면 ‘추’하는 소리와 함께 양발로 말을 차면된다.
울랑바타르에 가면 꼭 하루 시간을 내서 경험해보기를 권한다. 초보는 가이드를 시간당 5불로 고용할 수 있는데 나는 일본 아가씨와 같이 1명을 고용해서 1인당 총 비용은 약 7.5불이 들었고 나의 동료는 제주에서 말을 타본 경험이 있어 혼자 가이드를 고용하여 약 10불의 비용을 사용하여 1시간의 즐거운 경험을 했다.
배낭여행자를 위한 팁을 추가하자면 버스는 국립공원을 가로질러 테릴지마을까지 갔다가 역방향으로 돌아오는데 대부분은 UB호텔에서 내린다.(그 옆에 5성급인 테릴지호텔도 있지만 가보지는 않았다) 1박2일로 방문하면서 몽골의 밤하늘을 보고 싶다면 UB호텔의 방가격은 7만투그릭, 게르는 35,000투그릭이며 테릴지 게스트하우스는 도미토리 게르 6불(약 9,000투그릭)와 2인용 게르 1동을 20불을 제공하며 연락이 필요한 분은 한국어가 가능한 사랑과(9969-6091, 9911-6960, saranggerel@yahoo.com )에게 전화나 메일을 보내보기를…
10.4
자민우드
도로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이 읍은베이징과 울랑바타르 사이의 옜 교역로에 위치한 인구 만명의 작은 국경도시로 중국 에렌 읍과 이 읍을 연결하는 경로를 통한 출입국자가 년간 거의 백만명에 이를 정도로 국경무역이 성행한다.
울랑바타르에서 자민우드까지의 길은 고비사막의 먼지로 인해 아프라카에 다시 온 것같은 생각이 든다. 고비는 몽골어로 거친 땅이라는 뜻이며 아시아 최대의 사막으로 몽골과 중국에 걸쳐 남북 800키로 동서 1600키로에 걸처있어 한국의 약 12배의 면적에 달한다. 이 곳의 황사는 편서풍을 타고 중국이나 한국은 물론 멀리 하와이까지 날라간다고 한다.
몽골 울랑바타르와 중국 북경을 연결하는 국제기차는 너무 가격이 높아서 대안으로 국경도시까지는 국내기차로, 국경도시간 6키로는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는데 비용을 절반이하로 줄일 수 있다.(국경까지 1박2일의 침대기차가 17,300투그릭으로 매우 저렴한데 6키로의 버스는 8,000투그릭이나 한다. 하지만 지프를 이용하면 16,000투그릭으로 버스의 2배로 더욱 비싸다)
11. 중국
11.1 개요
인구14억명으로 세계 최대인 중국의 면적은 캐나다보다 약간 작아서 한국의 약 100배에 달한다.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은 독립국가연합, 남쪽 인도, 그리고 북쪽으로는 몽골과 접하고 있다. 중국어를 사용하고 한족이 인구의 92%에 달하며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하, 은, 주로 부터 시작하여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기원전 3세기 진나라에 이르러 중앙집권적인 국가가 형성되었고 서양에 알려진 영어이름 차이나는 진에서 기인한다. 이후 한, 수, 당, 송, 원, 명나라를 거쳐 만주족이 지배하는 청나라가 정권을 잡았고 장개석 국민정부와 내전을 거쳐 현재의 중국이 되었다.
11.2
에렌하오터(몽골어로 에렌호트)
몽골에서 중국으로 이동중 차편이 없어서 하루 숙박하게 된 내몽골 자치주내의 고비사막에 있는 인구8만명의 국경도시이다. 물자가 부족한 몽골에서 상품을 사기위해 입국하는 몽골 상인들을 위한 점포 527개의 대규모 시장이 형성되어있고 러시아 1,520미리 광궤를 사용하는 몽골기차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세계 60%국가에서 사용되는 1,435미리 표준궤 중국기차로 바뀌는 곳이다. 인근에서 발견된 공룡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
버스터미널, 기차역, 숙소등 어디에도 영어를 구하사는 사람이 없어 조금 고생하기는 했지만, 필담을 통해 내일 차편을 구하고 짐을 푼후 시내를 한바퀴 돌아보니 다른 도시와 다르지 않게 금방 익숙해진다. 특히 이곳은 몽골문자, 키릴문자, 그리고 한자로 쓰여진 간판이 많아 눈길을 끈다.(한글도 2곳에서 보았다).
중국은 이번이 4번째 방문인데 1992년에 처음 방문한 그 때이후 정말 많은 발전이 있었다. 나의 중국이미지는 크고 사람도 많다는 것이었는데 이 곳은 거리나 공원, 건물들이 크기는 하지만 사람은 별로 없어 중국에서는 특이한 곳으로 기억될 듯하다.(중국에서는 페이스북 접속이 되질 않아 카페에만 여행기를 올렸다.)
11.3
지닝(한국어로 제남)
센양베이로 가는 열차로 갈아탄 곳이다. 여기서 부터는 진짜 중국처럼 길도 건물도 크지만 사람도 많아 다시 속세에 돌아온 느낌이다. 다만 10년전과는 달리 곳곳에 공중화장실도 있고 청소도 부지런하게 하고 있어 많이 개선된 느낌이다.
11.4
센양(한국어로 선양)
인구800만인 중국 랴오닝성의 성도로 예전에는 펑톈(봉천)으로 불리웠고 만주족은 묵던으로 부르며 유럽에서도 Mukden으로 많이 알고있다. 구석기시대부터 7,200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고구려와 발해의 중심도시였다. 현재에도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여 조선족 중학교가 4곳, 고등학교가 3곳 운영되고 있다.
10세기 발해는 기마민족인 요나라에 의해 멸망하였으며 보다 본격적인 역사는 17세기 만주족의 누르하치가 점령하고 후금의 수도로 천도하면서 시작되었고 반세기후 후금이 청나라로 이름을 고친후 1644년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다시 이동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다.
1905년 러일전쟁의 야전지로 일본군은 3월에 점령하였고 서울에서의 협궤선이 12월에 개통되었다. 이후 삼국간섭에 의해 반환하여서 1924년에는 대한민국의 독립군이 이 곳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많은 독립지사가 망명하여 활동하였지만 1931년 만주사변에 의해 일본군에 다시 강점되어 마지막 황제인 부의를 앞세운 만주국으로 일제패망시까지 위성국으로 존재했다.
이곳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17세기에 지어진 선양 고궁으로 누르하치와 홍타이지, 청나라의 순치제가 즉위한 후금시대의 황궁이자 청나라시대의 별궁으로 2004년 베이징 고궁과 같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건축양식은 한족, 만주족, 몽고족의 양식이 융합되어있고 규모는 베이징의 1/12수준이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나는 동료의 조카가 살고있는 수지아툰구에서 1박을 하였는데 이 곳은 심양시의 남부에 있는 구로서 재중교포가 많이 살고 있다. 나도 한글로 된 치과 등 몇 곳의 간판을 보았다. 이 지역 방1개짜리의 아파트의 월세는 약 1,000위안(20만원)이고 공공요금과 식비로 약 600위안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니 중국의 물가도 많이 상승한 것 같다.
원래 계획은 중국어학원과 중의대에 대해 3일간 알아보려 했는데 동료만 믿고 내가 사전조사를
하지않았고 조카들도 알고있는 정보가 별로 없어서 그냥 하루만 묶고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11.5
단둥(한국어로 단동)
중국 랴오닝성의 인구 250만이 거주하는 도시로 북한 신의주시와는 모스크바-평양간 국제열차가 통과하는 압록강철교로 연결되어있는 접경이다. 1965년까지는 안동으로 불렸다. 원래 센양과 같이 고구려의 주요 성이었으나 당나라에 정복되었다가 발해에 의해 수복되는 등 이후 역사를 같이 한다.
인천으로의 국제페리가 출발하는 곳이기도 하며 압록강변에 류경식당 등 북한 음식점이 많다. 신의주와는 압록강을 경계로 나뉘어있으므로 강건너 북한 사람의 생활상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했지만, 중국쪽은 60위안을 내고 유람선을 타거나 한복을 빌려입고 사진을 찍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지만 북한쪽은 아무 움직임이 없어 대조적이다.
북한은 한국보다 20% 넓은 12만평방미터지만 인구는 반도 되지않는 2300만명이고 1인당 소득은 더욱 적어 6%이하인 1,900불으로 국민총생산은 2.8%에 불과하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고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지만 2차대전후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면서 비극이 시작되어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52만명의 한국인, 70만명의 북한인과 4만명의 미군, 그리고 14만명의 중국군이 사망했고 124만명이 실종되어 총 264명이 죽거나 사라졌으며 아직도 정전상태에 있다.
현재 북한군은 110만명이고 한국군은 67만명으로 각각 세계 4위와 6위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군의 장비는 경제난으로 노후화되있고 장비를 움직일 자원이 부족하나 체력은 오랜 훈련으로 뛰어나다. 한국인이 방문할 수 없는 유일한 나라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도착한 첫 날은 압록강 철교를 기준으로 하류쪽으로 그리도 다음 날은 상류쪽으로 강변공원을 산책했는데 가슴이 답답하다. 혼자 잘 살려고 그 많은 인민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지금의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걱정이다.
아울러 몽골 접경도시에서는 여관이 15-30위안이고 동료가 그중 좋은 25위안짜리 방을 구해서 여기서는 이번 여행중 가장 싼 15위안(3불) 방에서 묶어보려 했으나 5곳의 여관에서 모두 외국인은 받지않아서 결국 단동역옆에 있는 20층 역전호텔에 30불짜리 방에 묶게 되어 마지막 밤의 호화스러운 분위기를 즐기게되었다.
단동에서 출발한다는 페리는 사실은 인근 동항시에 있는 항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현지 버스(7.5위안)를 타려 하였으나 택시운전사는 버스가 없다고 하고 버스운전사도 탑승을 거부해서 해운회사에서 알려준 전세버스를 20위안을 내고 탈 수밖에 없었다.
중국배낭여행은 이번이 처음인데 출장이나 패키지여행때는 내가 직접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없어서 불편함을 몰랐으나 이번에 경험을 하니 호텔이든 버스든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거의 통하지 않아 지금까지 다녀본 46개국중 가장 해외여행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단동페리는 6인실(3등실이 매진되어 2등실을 활용했다)의 설비가 어제 잔 호텔만큼은 아니지만 이동중의 숙소로는 최고였고 하선도 한국일반승객을 우선해서 그런대로 여행의 마무리는 즐겁게 한듯하다. 서울에 도착하여 중국편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12. 정리
지난 2년간 방문했던 아프리카와 남미는 자연과 동물이 중심이 되었는데 반해 이번 여행은 문명과 역사위주였다. 덕분에 슬라브족, 몽골족과 폴란드족이 중심이 된 동유럽역사와 4세기 비잔티움 양식부터 시작하여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그리고 18세기 로코코에 이르는 다양한 서양건축양식을 직접보고 배울수 있었다.
비교적 친숙한 한자, 일본자, 그리고 알파벳이 사용되던 국가만 다니다가 러시아 키릴문자와 몽골문자가 사용되는 곳에 가면서 또 다른 체험도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워낙 많은 언어가 존재하여 오히려 영어가 무난하게 통용되었고 남미에서는 발음은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영어와 뿌리가 같은 스페인어가 일반적이어서 적어도 읽는데는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었다.
여행을 마치고 결산을 해보니 예산 2,719불에 집행 2,550불로 약 6%를 절감하였는데 주요 경비로는 핼리팩스에서 키예프까지의 항공료가 32%인 863불이었고, 키예프에서 인천까지의 버스/철도/페리 교통비가 43%인 1,174불, 숙박비가 8%인 212불이 사용되었으며 비자, 음식, 보험, 투어, 입장료 등의 기타 경비가 나머지를 차지하였다.
시간적으로는 원래 여행의 목적인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에 10일, 중국 횡단에5일, 키예프와 리비우가 있는 우크라이나 5일, 폴란드의 크라카우와 바르샤바에 4일, 울란바토르와 자민우드의 몽골에 3일,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에 각 2일로 총 33일이 소요되었다.
원래 계획한 것은 아닌데 다니고나서 생각해 보니 이번 여행은 결과적으로 몽골제국방문이 되었다. 서쪽으로는 폴란드와 발틱해로 부터 키예프, 모스크바, 바이칼 호수, 울랑바타르, 원나라, 그리고 동쪽끝인 한국까지 몽골제국의 총 본산인 대원제국과 킴차크한국, 일한국, 차카타이한국을 비롯 하여 삼별초가 끝까지 항쟁하기는 했지만 결국은 항복하여 2회의 일본 정벌에 속국으로서 동참한 고려까지 순차적으로 따라가게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에 다녀본 곳중 최고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탑승경험이었고 다음으로 크라쿠프, 모스크바 순이었는데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더 있었다면 생각보다 많이 깨끗하고 발전한 심양 시내를 하루쯤 더 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첫댓글 정말 대단한 여행입니다
부럽습니다
저도 동참했으면~ 하는 꿈이 꾸어집니다 ㅎㅎ
자세한 여행일지!!
놀랍습니다!
또 더 놀라운 것은 여행경비!!!
진짜인지?의심이 될 정도인데요,
멋진 계획에 성실한 실천이였기에 가능했겠습니다
전 가까운 한국에 가도 혼자 몇백만원 쓰게 되덤데요
다음에 저 좀 껴 주세요!!!
멋진여행일기! 잘 읽었습니다
매년 여름에 5주정도로 다니고 있습니다. 내년 여름에 같이 가시면 되겠네요.
와우...젊음의 열정을 여행을 통해 보여 주셧군요...대학 논문처럼 정리된 글에 감탄을..ㅎㅎ.
역사..지리..문화..인종..언어..상세한 정보등등...방대한 여행 스케일..입이 닫혀지지 안네요..ㅋ.
패키지 관광만...고집하는 ...나로선...상상키 어려운 모험입니다...
더 많은곳은 다니면서...여행후기 올려 주기실 기대합니다....
^^* 여행기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이 제게는 안보이는데....
어떻게하면 볼 수 있을까요.^^*
사진을 별도로 올렸습니다. 내용과 같이 보시려면 http://cafe.naver.com/happyinstant/6670
한때 몽골홀릭이 되어 수차례 드나들었는데.. 가고싶어집니다.
여행기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