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크섬은 괌과 하와이 중간에서 있는 환초로 태평양상에서 증대되는 일본의 위협에 대응하고자1939년부터 비행장과 해군기지 건설이 개시되었다.
개전 당시 웨이크섬에는 윈필드 스코트 커닝햄 해군 중령의 기지사령관직을 수행중이었고
75명의 육군과 해군요원들이 행정/기술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수비대는 약500명으로 제임스 데블 소령이 지휘하는 해병대 제1수비대대와 폴 퍼트넘 소령이 지휘하는 해병대 제221전투기 중대(F-4F 와일드 캣 전투기 12기)가 소속되어있었다.
포전력은 2문의 5인치포와 12문의 3인치포가 장비되어 있었다.
-웨이크 섬 전투 상보-
*제1차 전투*
웨이크에 대한 최초의 일본군 항공공격은 12월 8일 정오 직전에 시작되었다.
이미 개전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수비대는 예비탄약을 불출하고 항공초계와 전 육상근무자 전투배치가완료된 상황이었다.
일본기는 웨이크의 활주로에 기총소사와 폭격을 가해 지상에 있던 전투기 7대를 파괴하고 1대를 사용불능으로 만들고 만다. 그러나 남은 4대의 전투기가 요격에 나서 일본기 6기를 격추한다.
12월11일 0시25분 일본해군 상륙부대가 상륙을 시도하였으나 악천후로 작전을 연기한다.
05시 23분 상륙부대의 기함 중순양함 유바리와 구축함 전대가 해안으로 진입 함포사격시작
해병대의 포대는 일본함대를 사정거리에 잡아놓았으나 지휘관인 데블 소령의 명령에 의하여 사격하지 않았다. 일본함대는 6500m 앞바다에서 포격을 시작하였으나 미군의 포대는 잠잠했고, 이를 포격으로 인해 미군의 포대가 파괴되었다고 판단한일본함대는 더욱 접근하게 된다.
4000m 앞바다에서 일본해군 육전대가 2척의 수송선에서 상륙정으로 분승 해안으로 상륙을 시도하자 포대는 사격을 시작과 동시에 전투기 4대가 일제히 출격해 일본함대를 공격.
일본 상륙부대의 기함인 경순양함 유바리는 해안포 3발 피격 전열에서 이탈.
구축함 2척 해안포와 공습으로 피격 격침되고 2척피탄.
수송선1척 피탄되어 착함되어있던 0식 수상정찰기1기 화재로 손실됨.
일본해군은 퇴각후 야간 상륙을 준비하였으나 기상 악화로 오전10시 완전철수.
미군의 피해는 대공포화에 의해 전투기 1기격추됨.
*제2차 전투*
일본해군 지휘부는 제국 해군의 명예를 걸고 공략에 성공하라는 특명하달!
하와이 작전을 마치고 귀항중인 항모전대와 순양함 전대를 추가 파견
일본해군은 12월23일을 기해 제2차 작전을 개시하기로 결심함.
12월19일 매일 송수신되는 진주만과 하와이간의 무선통신에서 해병대의 감투정신을
보여주는 무선이 발신됨.
진주만: 뭐가 필요한가?
웨이크: 일본놈들을 더 보내주시오!
원래 이무선은 통신병이 농담으로 보낸것이었지만 언론에 미국정신의 상징으로 대거 특필됨
12월21일과 22일 항모에서 출격한 일본해군기들에 의해 웨이크섬은 초토화되고
요격중이던 3기의 전투기가 모두 장렬하게 산화한다.
23일 02시 항모전대와 순양함 전대의 지원을 받으며 일본해군 육전대 상륙개시
미군 해안포대 즉시 대응사격 개시.02시56분 초계정 2척 격침
그러나 일본해군 육전대는 함포지원을 받으며 상륙성공,미군은 병력과 화력의 열세로
방어진지를 차례로 점령당함.
05시 웨이크 사령관 커닝햄 중령 최후의 무선 발신
" 적 상륙, 전세는 급격히 악화됨!"
07시 30분 커닝햄 중령은 모든 무기를 파괴하고 일본군에게 항복하라고 명령
여기 소개하는 잭 설리반은 당시 분전한 웨이크 수비대 소속 제1수비대대 소속 해병대원이다.
개전초기인 만큼 영국식 철모와 열대용 카키복을 착용하고 있고 스프링필드 소총을 가지고있다.
브라우닝 기관총은 수냉식 버전인 m1917a1으로 대대의 화기중대에 4정이 배치된다.
중기관총분대는 3명의 병이 사격조를 이루며 하사관이 분대장을 맡는다.
1개 중기관총 분대는 250발 탄약상자 27박스와 3.3리터 냉각수통4개를 운반해야 하기떼문에
3/4톤 트럭이 한대씩 배정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