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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포스트잇] [37] 뇌과학과 인간
출처 조선일보 :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4/10/15/TAZE5G22X5BWXNFI6GAGHMWHKU/
뇌과학 전성시대다. ‘대중화된 뇌과학’ 콘텐츠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홍수를 이룬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훌륭한 것에도 맹점(盲點)은 있는 법. 뇌과학의 성황(盛況) 속에서 전파자와 수용자 공히 주의할 점이 있다면 성찰을 마다할 까닭이 없다.
타이레놀을 먹으면 (뇌에 의해) 몸만 진통되는 게 아니라 실연의 아픔(마음)도 진정되는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에 ‘인간이 고작 이런 존재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는 고백은 인간의 주체성 부정(deny)의 순한 맛 입문이다. 일단, 뇌과학은 극단적이다 못해 ‘완전한(complete)’ 유물론이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의 결합인 자기 자신(one’s own self)이 아니라, 뇌라는 물건이 조종하는 기계적 고깃덩어리일 뿐이라는 팩트는 사람을 은근슬쩍 살벌한 허무주의로 이끈다.
예컨대 뇌과학에 정통한 신경과 전문의를 하나 알고 있는데, 진리를 터득한 자가 아니라 의미를 잃은 사람처럼 보이니 안타깝다. 뇌과학으로의 일방적인 심취의 결과가 전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위험성도 있다는 얘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신을 그렇게 파악한 사람은 모든 생명체들 역시 그런 식으로 바라보게 돼 있다. 물론 뇌과학의 대중적 전파자 대부분은 뇌의 작동 원리를 잘 공부해서 자기 뇌를 스스로 이용해 자신을 좋은 방향으로 컨트롤하라는 취지를 내세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균형 감각’을 상실하게 되는 경우와 경향이 부지불식 간에 있을 수 있다는 경고는 눈에 띄지 않는다.
뇌과학은 이제 과학을 넘어선 사조(思潮)가 돼버렸고, 철학적으로는 유물론을 기반한 ‘구조주의’의 최신판이자 끝판왕이다.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알튀세르는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감금 상태에서 삶을 마감했다. ‘나’라는 것은 허상이고 기실 뇌를 움직이는 작용과 반작용만 있을지라도, 인간이 유전자를 운반하는 껍데기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그 과학적 팩트를 유익하게 사용할 뿐 그것의 노예가 되지 않는 관점을 사수해야 한다.
내가 내 뇌의 주인이지, 뇌가 나라는 ‘없음’의 주인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실은 4차원의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으되 3차원적인 감각으로 살아가야 광인(狂人)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4차원은 과학과 지식이지, 삶의 규칙이 돼서는 안 된다. 사실만큼 중요한 게 ‘태도’다. 헛똑똑 미치광이가 많아질수록 사회는 번드르르한 정신 병동이 되어간다. 사람과 쥐는 유전적으로 88% 비슷하다. 닭은 65%. 초파리는 45%. 회충은 38%. 포도는 24%. 빵의 효모는 18% 흡사하다.
그렇다고 인간이 저들과 마찬가지인가? 요즘 미국에서는 사람이 개 고양이와도 결혼하는 걸 합법화하자는 운동이 있다지만, 아무리 과학이 인간의 모든 것들이 뇌에 있다고 말해도, 우리는 마음과 영혼이 가슴에 있다고 믿으며 사랑하고 이별해야 한다. 그렇게 살다가 사라져야 한다.
이응준 시인·소설가
빛명상
마음의 고향 초광력超光力
간밤에 제법 서늘한 산 기운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가 활짝 열어 젖뜨리니, 탁 트인 하늘과 푸른 숲이 가득 밀려들어 왔다. 상큼한 기운이 온몸 가득히 스며들었다. 아직도 잠에서 덜 깬 숲을 바라보며 ‘참 좋구나’ 하고 생각한다.
역시 자연 속에 인간의 기쁨이 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아끼고 예뻐해 주고, 빈 비닐봉지 하나 정성 들여 줍고 버리지 않을 때, 자연도 우리에게, 과학이나 현대 문명이 주지 못하는 신선하고 상쾌한 기운을 보내 주는 것이다. 턱을 괴고 자연의 조화를 생각하고, 전설의 이야기 같은 초광력의 사연들을 음미해 본다.
땅강아지 한 마리가 거미줄에 걸렸다가 왕거미에게 물리고는 몸부림쳐 구사일생으로 거미줄 올가미를 벗어난다. 그러고는 겨우 정신을 차려 괴물나무(한여름에 까만 열매가 열리는 토종 풀)에까지 기어가더니 괴물 열매를 아작아작 씹고 그 잎을 갈아 (왕거미에게 물린 자리가 배 부분이었던지) 배에 바르고는, 조금 전 고통 같은 것은 언제였느냐는 듯이 팽팽 날아다닌다.
조그마한 미물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약초가 되는 풀을 스스로 찾아가는데,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는 인간이 우주 절대의 힘이 있는 것을 평소에 깨닫지 못하고 삶의 위기에 와서야 육체를 구하겠다고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최고 위치의 지도층에 있다는 분이나 어느 종교의 성직자도 막상 파산을 당하거나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면, 평소 미신이니 사이비니 하며 손가락질하던 무속 행위나 민간요법도 마다않고 달려드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죽음이 무엇이기에…..
자동차를 5년에서 10년 정도 타면, 부품들이 낡아 자주 고장을 일으키다가 결국 서 버린다. 우린 그 차를 폐차라 하여 폐기한다. 우리의 육체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인간 육체의 수명이 적어도 1백 년은 되어야 할 텐데, 요즈음은 언제 어떤 불행이 올지 모른다.
가스 폭발 사고, 백화점 붕괴, 다리 붕괴, 교통사고 등등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고들이 일어나며, 죽음은 시시때때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도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만 있다면 아무도 죽음을 무서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죽음이란 육체에서 생명이 떠난 상태, 다시 말해서 심장의 호흡이 멎었을 때를 말한다. 조금 전까지 있었던 그 호흡은 어디로 갔을까? 전구가 나간 것과 같을까? 그 전구의 전기는 그러면 어디로 갔단 말이며, 그 호흡이던 생명은 무엇이던가? 그 전기는 무엇이던가?
아무리 훌륭한 육체라도 호흡이 없으면 시체라 불리며, 우리 곁에서 없어지게 된다. 아무리 밝은 전구라도 니크롬선이 나가면 버려진다. 육체 안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호흡, 생명, 마음, 생각, 혼이 떠났을 때, 우리는 ‘돌아가셨다’라고 품위 있게 표현한다.
‘죽었다’와 ‘돌아가셨다’라는 두 표현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표현이다. 돌아가셨다고 할 때는 무엇이 어디로 돌아갔단 말인가? 어떤 이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흔히 좋은 곳에 가라고 하며, 명복을 빈다. 죽은 사람인데, 누가 좋은 곳을 찾아가고, 누가 명복을 받는단 말인가? 육체는 죽었지만 죽지 않은 또 다른 것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종교와 과학이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마음은 어떤 완성을 위해 잠깐 육체를 빌려 입은 것이라 생각한다. 육체를 통하여 세상에 살면서 완성이란 목표에 도달하여 죽음에 이른다고 생각한다. 종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해탈, 깨침 또는 영육의 분리를 하게 되어, 영혼이 삶의 심판을 거쳐 영원한 행복의 세계 혹은 지옥에 가거나 악령이 되거나 윤회가 되어 축생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것도 아니면 저승이나 영의 세계로 들어가 새로운 공부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되어 한 생명이 만들어질 때, 2차원의 동물 세계에서는 여기서 그쳐 본능에 따라 산다. 그러나 사람은 그 순간 우주의 마음에서 나온, 우주의 마음과 닮은 인자가 하나 더 결합 되어 생각이나 이성, 마음이 별도로 형성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난자와 정자가 결합된 육체에 우주로부터 받은 마음이 공존하고 있으며, 육체가 주인이 되느냐 마음이 주인이 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갈라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는 마음과 육체가 공존하고 있다.
과학이 육체를 아주 미세한 DNA까지 분해했다고 하지만, 마음과 생명(종교에서의 ‘영혼’과 같은 말)의 근원은 찾을 수 없다.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최첨단 의료 장비로도 마음을 볼 수 없으니 처방을 할 수 없다. 처방이 안 되니 죽을 수밖에.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힘도, 돈도, 빽도, 통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의 권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힘 초광력超光力은 육체를 다루는 것이 아니어서 과학이나 의학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또한 길흉화복을 주는 신앙도 아니므로 종교와도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초광력超光力을 우리의 육체 안 어딘가에 있는 마음을 다루는 21세기의 신학문이라 하면 조금 근접했다고나 할까?
즉 초광력超光力은 우리의 마음을 맑게 정화하여 올바른 삶을 지향하고 행복한 가정, 기쁨이 넘치는 건강한 사회, 온 인류가 공존 공영하는 평화로운 21세기를 추구한다. 더 나아가서 마음과 육신이 분리될 때 즉, 죽음이 임박했을 때, 한 점 두려움 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원래의 온 곳,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게끔 깨쳐 준다.
그 과정에서 초광력超光力은 삶의 애환을 풀어 주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이끌어 주며, 지금까지 어떤 분도 이 세상에서 감히 행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적들을 나타낸다. 21세기 우주 과학 시대를 앞둔 지금 세상에서 전설 같은 체험들을 겪게 하고, 때로는 ‘빛VIIT’까지 느끼고 볼 수 있게 해준다. 아마도 그것은 우주의 절대적인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 주기 위한 것일 것이다. 이 힘은 바로 사랑, 자비, 선을 화합시키는 우주의 인정, 마음의 고향인 것이다.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 07. 10. 1판 1쇄 P 40-43 중
초광력超光力에 관한 논문
본 논문은 경북대학교 산업대학원(산악회 7기)의 논문집에 발표된 것으로, 일반인들과 회원들의 체험 및 설문서를 통하여 조사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광력超光力은 인생의 길
정재윤
(우주초광력超光力학회 연구위원)
Ⅰ. 우주 만물의 본질
우주 만물의 본질은 기, 곧 에너지이다. 물질을 이루고 있는 가장 작은 기본 단위는 소립자로서, 이 소립자들을 에너지로 바꾸어 표시하기도 한다. 빛도 미시적으로 보면 광양자(光陽子) 알갱이로 구성되어 있으며, 파동으로 전파되기도 한다.
모든 소립자(물질)들은 입자성과 파동성의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소립자가 파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만물이 쉬지 않고 항상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모든 생물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는 것이나, 사람의 생사도 모두 기(氣)가 변화하는 현상이다. 만물은 기로서 태어나고, 기로서 성장하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다.
이 우주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빛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원형이정(元亨利貞) 천도(天道)의 순환이법과, 삼라만상의 영고성쇠(榮枯盛衰), 인생의 생로병사 등 끝없는 변화가 항상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변화들은 어떤 법칙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ㅣ러한 현상들은 우주 대자연의 섭리에 따른 것으로, 이 우주에는 만유를 창조하고 주관하는 절대자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Ⅱ. 초광력超光力의 개념
우주 만물을 주관하는 이 절대자는 전지전능,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성광으로 이루어진 존재로서, 이 절대자 자체는 ‘빛VIIT’이다. 우리의 초광력超光力은 이 절대자로부터 온다.
이 빛VIIT은 무시무종(無始無終)하여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본래부터 스스로 있었으며, 생기(生氣) · 명기(明氣)의 밝고 생(生)하는 기로서 우주의 총명인데, 태양에서 오는 빛과는 구별된다. 태양의 빛은 생물의 유형체를 성장시키는 에너지는 제공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형성하는 빛VIIT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절대자로부터 받는다. 절대자가 빛VIIT 자체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받은 사람의 정신 역시 빛VIIT이다. 그러므로 이 절대자의 존재를 믿음으로써, 그 빛VIIT은 우리의 마음속에 연결되어 전해진다. 이것이 우리가 받는 초광력超光力이다.
Ⅲ. 우주와 인간과의 관계
삼재(三才)는 천(天), 지(地), 인(人)으로, 만물을 제재(制裁)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천지의 무궁한 조화로써 만물이 생성 발전하고, 사람도 천지의 끝없는 은덕 가운데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은 천, 지와 함께 삼재의 위치에 놓인다. 왜냐하면 사람은 지혜로운 존재로서, 하늘과 땅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늘을 나는 새와 같은 비행기를 만들고,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이 잠수함과 선박을 만들며, 땅 위를 달리는 기차나 자동차도 만든다. 천지가 준 자원을 이용하여, 생활에 필요한 문명의 이기(利器)를 만들어, 인류문화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이것이 사람이 삼재가 되는 이유이다.
예로부터 하늘은 대천(大天)이요, 사람은 소천(小天)이라 하기도 했으며, 사람이 곧 하늘, 또는 사람은 축소된 하나의 소우주라고도 했다. 이 말은 우리의 선철(先哲)들이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밝힌 진리이다. 사람은 우주의 신령한 기를 받아 태어나고, 그 가운데 살기 때문에, 이 우주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식이 부모의 기운을 받아 태어났으므로 부모를 닮는 것과 같은 것이다.
Ⅳ.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
사람의 마음이 우주의 절대자로부터 왔기 때문에, 사람은 우주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할 명(命)을 받아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 명을 따르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다.
그러면 우주의 뜻은 어떠한가? 그 뜻은 오직 선과 자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주의 뜻을 본받아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가지고, 선과 자비를 행하는 것이 인생의 바른길을 걸어가는 것이요, 순천지도를 행하는 것이다. 이 선과 자비 속에 사람이 행하여야 할 많은 덕목이 포함되어 있다.
첫째, 선과 자비는 남에게 은혜를 베풀며, 미워하지 않으며, 투기하지 않으며, 화내지 않으며,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탐욕하지 않으며, 화락(和樂)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이다.
둘째,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이다. 우리의 몸은 부모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육체의 근본은 부모에게 있으미, 근본을 아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그러므로 효는 도덕의 으뜸이요 인간 윤리의 근본이니, 부모님의 뜻을 잘 받들어 편히 모시는 것이 바른 효이다.
셋째, 형제간에 화목하는 마음이다. 형은 아우를 사랑하고, 아우는 형을 공경하여, 화목한 형제가 되어야 한다. 형제는 한 기운을 받아 태어난 가지들이니, 서로가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형제의 도리이다.
넷째, 밝은 양심을 찾자. 사람이 본래 타고난 천성은 티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이었으니, 이를 양심이라고 한다. 그러나 탐욕과 부정심(不正心)이 이 양심을 가려서 깨끗한 천성의 본래 마음이 더럽혀져 있다. 마치 전구에 먼지가 묻어 있어 밝은 빛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우리는 더럽혀진 이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 본래의 선하고 맑은 마음을 도로 찾아야 한다.
인생의 목적은 자아 완성에 있다. 그런데 사람의 성품에는 선심(善心)과 악심(惡心)이 함께 있으므로, 사람의 마음은 바르지 못한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 좋지 못한 마음을 성청심(省淸心)하여 본래의 착한 나를 찾아야 한다.
사람에게는 남을 헤치려는 독한 마음, 남의 것을 탐내는 마음, 투기하는 마음, 남을 속이려는 마음, 자만하는 마음 등 많은 나쁜 마음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 가운데 있는 좋지 못한 마음을 잘 모르고, 남의 잘 못을 잘 지적한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여 허물하는 것보다 나의 잘못을 깨달아 고치는 것이 더욱 급하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일을 하고서도 뉘우칠 줄 모르는 것이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그 나쁜 마음을 영구히 가지고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초광력超光力을 받음으로써, 나쁜 마음을 쉽게 고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즉 사람은 자성반성(自性反省)의 수양과 초광력超光力을 통하여, 마음에 묻은 때를 씻어 내어 천성의 깨끗하고 밝은 양심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사람의 원만한 마음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원형(圓形)인, 곧 둥근 마음이다. 모가 없어, 미운 사람 고운사람 구별 없이 다 같이 품어주는 마음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이 처음부터 달걀같이 둥근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나긴 세월 동안 수없이 부딪히는 파도에 깍이고 깍인 결과일 것이다. 사람도 수양을 통하여 닦고 또 닦는 가운데 바닷가의 조약돌처럼 둥근 마음이 되어, 훌륭한 인격과 덕망을 쌓아 참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Ⅴ. 초광력超光力을 받는 길
초광력超光力은 사람의 마음을 밝히고 지혜를 빛나게 하며, 우리 몸에 모든 나쁜 기운을 맑게 해서 깨끗한 육체로 회복하게 할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주인은 마음이고, 육체는 마음의 집이다. 마음의 나쁜 병이 고쳐지면 육체의 병은 초광력超光力의 힘으로 자연히 치유된다. 초광력超光力은 태양의 자외선과 같이 세포를 파괴하는 빛이 아니고, 적외선처럼 생명을 성장시키고 소생시키는 빛VIIT으로, 병든 육체를 태어날 때의 깨끗한 본래 상태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기(氣)이다. 발달된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이 이 초광력超光力으로 쾌유된 사실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초광력超光力을 잘 받는 방법은 초광력超光力의 근원인 우주 절대자의 존재를 조금의 의심도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믿는 것이다. 나의 마음 속에 이 절대자의 존재를 항상 간직하여 잊지 않고 경외함으로써, 우주의 마음이 나에게 임하여 성(城)과 방패가 되어 나를 보호해 주시도록 할 수 있다. 옛말에 “효감동천(孝感動天)이요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 했으니, 지성으로 믿고 공경하면 무슨 일을 이루지 못하리요.
그리고 초광력超光力은 대우주의 빛VIIT이기 때문에, 모든 종파를 초월하여 있는 존재이며 모든 종교의 최종 귀착지이므로, 어떠한 종교든지 다 포용한다. 따라서 어떠한 종교를 신앙하더라도 초광력超光力을 받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초광력超光力을 믿고 따르는 길은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는 길이다. 나의 참모습을 이 대자연 가운데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흘러가는 물을 보자. 물은 항상 낮은 곳에 처(處)하고, 장애물이 있으면 비켜 지나간다. 그러나 물은 바위를 뚫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 주고, 대지에 비를 뿌려 모든 생명을 길러 준다. 우리의 마음 쓰기를 물과 같이한다면 나의 뜻을 이룰 것이다.
인생을 값지게 산다는 것은 저 높은 진리의 최고봉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것이다. 높이 올라갈수록 내려다보이는 시야는 더 넓어진다. 이마의 주름살은 인생의 계급장이다. 이 계급장에 부끄럽지 않게 내가 지금 어느 고지를 오르고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써 나의 일생을 평가할 것이며, 이 길이 우주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이요, 나의 본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다.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07.10. 1판 1쇄 P. 부록 300-304
첫댓글 빛으로 오신 초광력
자연 속에 인간의 기쁨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사람이 걸어가야 할 4가지 길과 인생목적인 자아완성...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연속의 인간의 기쁨이 있다.
초광력은 우리의 육체 안에 있는 마음을 다루는 신학문.
초광력은 삶의 애환을 풀어 주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이끌어 주며,여러가지 이적들을 나타내고.
21세기에 전설 같은 체험들을 겪게 하고.빛VIIT을 느끼고 볼 수 있게 해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
감사마음 담습니다.
선과 자비를 행하는 것 올바른 인생을 걸어가는것임을 가르쳐주는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빛명상과 함께 내면의 관조와 반성을 하며 빛으로 마음과 몸을 맑게 정화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우주마음의 뜻에 따라 경천애인애생을 실천하며 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빛 안에서 빛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감사드립니다~! ^_^ (부산센터 수요 회합날에)
감사합니다.
초광력과 함께 하는 삶이 감사합니다.
초광력을 잘 받는 방법을 다시금 마음에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우주 근원의 에너지 초광력(超光力)...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마음에 새깁니다. 빛의 길을 따라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의 고향 초광력
빛안에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깨우침의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새기면서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뇌과학의 우수성과 맹점을 봅니다.
"마음의 고향 초광력"!!
과학도 종교도 자연도 초월하는 빛VIIT초광력에
감사와 공경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마음에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