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담은 앵두...
앵두가 빨갛게 익어 가는 계절입니다
서너 되나 넘게 열매를 수확하던
미대동 우리 밭뚝에 있는, 적어도 30년은 넘게 자란 앵두나무는 누군가가
분제용으로 탐이 났던지 지난 겨울에 땅을 파고 뿌리 통만 잘라 갔습니다
해마다 앵두즙을 담그던 생각이 나서
올해는 시장에서 잘 익은 앵두를 한 됫박 샀습니다
곁에 있는 뽕나무 오디도 같이 조금 샀구요
옛 문헌을 보면 뽕나무 열매로 담근 술을 상심주(桑心酒)라 해서 강장재로 쓴다고
했기에 처음으로 오디술도 담가 볼 생각입니다
젊고 싱싱한 아름다운 여인네의 탐스럽고 고운 입술을 가리켜서
왜 '앵두 같은 입술'이라 했는지
어렵게 생각지 아니 해도 누구나 앵두를 보기만 하면
저절로 알게 되고 고개가 끄덕여 질 것입니다
어릴 적 내가 자라던 고향은 망종(芒種)인
이맘 때 쯤이면 산비탈에 줄딸기도 빨갛게 익어 가는데
그걸 한 움큼 따서 입안에 넣으면
새콤함과 달콤함의 조화는
백화점의 어느 과일 어떤 쥬스로도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오후청(五侯淸)의 그 맛이였습니다
앵두가 익으면
오디도 따라 익을 때이고
덤불딸기도 연달아 한창 익을 시기입니다.
오디...! 뽕나무에 달리는 까만 열매-
요즘에서야 몸에 좋으니 어쩌니 하면서
도시 사람들 극성에 남아 나지도 않겠지마는
그래도 우리가 자랄 적에는
목돈 만지기 어려웠던 시골인지라
한 달 동안 뽕잎으로 누애치기를 하면
당시로서는 그나마 급한것 한숨 돌릴 수 있는
재법 큰 몫돈을 만질 수 있었든 양잠도 이젠 다 옛날 이야기가 돼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의 학비가 되고 교통비가 되고 옷과 신발이며 일용품을 샀던
귀한 재원이요 효자였던 뽕나무가 이젠 괄시를 받다 못해 폐기되고 있답니다
"살결 희고 키큰 처녀 울뽕 밭에 뽕잎따네
울뽕 줄뽕 내 따 줌세 살림살이 나캉하자..!"
장가 못 간 노총각의 애환을 담아 모내기 노래 가사로도 등장하는
이 뽕나무는 언제부터인가
천덕꾸러기가 되어
잘려지고 뽑혀져 지금에는 버려진 폐농 산비탈 밭뚝에나
자라고 있을 늙은 뽕나무에서 딸 수 밖에 없는 오디랍니다
줄줄이 열어대는 덤불딸기 밭으로 소문난 앞산골은
서울에 있는 어느 회사에 팔려 허리통이 잘려 무슨 용도로 쓰여지게 되고
앵두며 자두며 산수유가 넓은 밭뚝을 꽉 메운 동리에서 제일 큰 뽕밭은
어느 도시의 무슨 사장에게 팔려서 호화분묘지가 됐고
놀이터로 일년 내내 어린이들의 모임장소였던 마을 앞 김노인네 연못은
잡석으로 매꾸어져 주유소가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이제 사라져 가는 것은 추억 담긴 산야나 환경만이 아닙니다
논과 밭, 뽕나무 호두나무, 앵두나무만도 아닙니다
어린 시절 우리들의 가슴에 화려한 꿈을 그리던
수채화의 물감이 없어 지고 있습니다
오디를 따 먹다 보면 온통 입이며 손이며 옷에까지 황칠을 해대던
뽕나무 열매 그 오디가 없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찔레꽃이 유난히도 곱게 피는 고향이기에
찔레나무 새순 잘라 그 줄기 겁질 벗겨 씹어 먹던 히멀쓰레한 그 맛
재졸재졸 어린 시절의 간드러지던 음률을 포게 가슴 깊이 묻어 두고
세상살이 힘들고 지칠때 몰래 꺼내 불어보는
버들피리 보리피리도 다 없어졌습니다
천진하게 떠들며 티없이 곱고 맑던 꼬마 녀석들의
웃음들도 남아 있을 리가 없겠지요
가진 것 없어도 영혼을 풍요롭게 해 주던 옛 추억이 자라던
흔적들이 없어 져 가는 것이 가슴을 너무 아리게합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유행가 속에서는
동네 처녀가 왜 바람이 났는지
통 모를 일입니다 만
대수롭지도 않았던 노랫가락 속의
앵두나무가 심겨져 있던 동네 우물은
간이 상수도에 밀려 없어진지가 오래이고
고향 동네에는 바람이 나고 안 나고는 다음으로 치고
눈을 딲고 봐도 처녀는 한사람도 살고있지 않습니다
흘러 가 버린 과거
아득한 옛날의 추억 어릴적의 소꼽친구들
고향이 있었기에 추억이 있고
그리움이 있기에 눈을 감으면 내 영혼이 안식할 수 있던 환경
어릴적의 온갖 추억의 언덕이 모조리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내 생애에 몇 번이나 더 앵두를 절여 담글지 모르지만
앵두가 읶어가는 계절이기에
추억만 먹고 있기가 서글퍼서
나이가 들어 간다는것도 적잖이 서러워서
해마다 이 맘 때면
무슨 의식을 치르듯
유리병에 차곡차곡 앵두를 채웁니다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가는데 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샛빨간 앵두 속에 비쳐지는 고향이 하도 그리워서
덤불줄딸기와 오디와 앵두를 모아
오뉴월이면 산바람이 녹음을 안고 이글거리던 보현산 아랫 동리의
달콤한 추억의 향(香)을 섞어
내 가슴 병(甁) 에도
앵두를 채웁니다 그리고
고향 맛이 물씬 나는 오디도 채우고 딸기도 채웁니다.
첫댓글 어릴적 먹던 생각에, 소양강 선착장에서 오봉산 가려고 기다리던 시간에 눈에 띄어 종이컵으로 사서 입에 넣어 보았더니 어릴적 먹던 맛이 아이더군요. 아마도 오디맛이 변한게 아니라 내입이 세월따라 많이도 변해버린걸 알게되었습니다.....
세월 따라 연세따라 입맛도 변하는 게 사실입니다.
울엄마집 마당에 얼마전 까지 탐스런 앵두가 가득했는데 어제보니 하나도 남아있는 것이 없더라구요^^추억을 그리게 하는 글입니다.
'앵두'...있으리란 기대에서 찿았으나 하나도 없어진 그 서운 함은 좀 오래 갑니다 내년엔 꼭 따실 수 있다는 희망이야 말로 사람을 진취적으로 만드는 한 부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