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현 리그 랭킹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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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으로 UEFA에서 리그 랭킹을 매기는 시스템을 1960년대에 도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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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 랭킹 넘버 원의 흐름입니다.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는 확연히 넘버원이였고, 그 이후부터 90년대 초까지는 세리에A와 양대리그로 불리었죠.
그렇다면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시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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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가 유럽리그중에서도 정점일 시기인 70년대 말에 서독으로와
리그 진출 첫해라고 봐도 되는 79-80 시즌에 '타지 적응기간이 뭐에요 먹는건가요?' 포스로 31경기 출전 12골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UEFA컵 우승에 일조합니다.
여기서 잠깐..
챔피언스리그 (당시 유로피언컵) UEFA컵 우승인데, 별거 아니지 않냐-라고 하시는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구요)
하지만 당시 UEFA컵은 요즘과 달랐고, 유로피언컵과 거의 동등하다는 이견이있었던데는 (엄연히 유로피언컵보다 권위가 적었던것은 사실입니다.)
탑 리그들에게 챔피언스리그 티켓이 3~4장 나가는 요즘과는 달리
탑리그던, 유럽의 낮은 수준의 리그던,
무조건 챔피언에게 딱 한장식만 나가는 형식의 챔피언스리그 (당시 유로피언컵)입니다.
물론 그외에도 현재의 FA컵, 델코파컵 등등의 컵우승국들만 나가는 컵 위너스컵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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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 78~79시즌의 분데스리가입니다.
리그 우승팀uefa랭킹의 상위 나라 리그던 하위나라 리그던 딱 한팀씩만 나가는 유로피안컵과 달리
강리그에서 1위를 제외한 상위권팀들을 다 모아논 컵이 uefa컵이였습니다.
분명 챔피언들의 리그라는 명분은 없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 떨어진 팀들을 모아논 UEFA컵 이라는 지금과의 인식과는 많이 틀렸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85-86 시즌...
Bundesliga MVP: 1985-86 (Official은 아니지만)
세계 최고의 리그(막 세리에A와 양대리그를 형성할 시절)에서
베스트 11도 아닌, 단 한명만 수상하는 MVP를 수상합니다.
후에 축구 전문키 '키커'에서 실시한
역대 최고의 분데스리가 공격수는 누구냐- 라는 설문에
The magazine "Kicker" polled the best attackers in the Bundesliga of the past 40 years.
Cha ranked 9th.
1. Gerd M?ler(FC Bayern. 60,3%)
2. Uwe Seeler(Hamburg SV. 15,9%)
3. Klaus Fischer (Schalke 04. 5,1%)
4. Ulf Kirsten (Leverkusen. 4,9%)
5. St?hane Chapuisat(Dortmund. 3,3%)
6. Giovane Elber (FC Bayern. 2,7%)
7. Horst Hrubesch (Hamburg SV. 1,8%)
8. Klaus Allofs (K?n. 1,7%)
9. Bum-Kun Cha (Leverkusen.1,6%)
10. Karl Heinz Riedle (Dortmund.1,4%)
11. Dieter M?ler(K?n. 1,3%)
9위에 랭크 되었구요. (물론 게르트 뮐러가 압도적이긴 합니다 ㄷㄷㄷ)
그리고 87-88 시즌..
UEFA컵 결승전에서 에스파뇰과 3:0으로 1차전에서 지고
홈에서 2:0 상황에서 극적으로 헤딩 동점골을 만들고 승부차기에서 승리한것은 정말 전설이라고 밖에 표현 못하겠네요..
시험이 끝나서 위키질 하다가 궁금해져서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발락이 2002년 한국에 오면서 차범근을 존경하고 만나고 싶었다고 한게
발락이 99~02까지 레버쿠젠에서 뛰었고,
그가 만 9살~11살일때
차범근이 레버쿠젠에서 분데스리가 MVP와 UEFA컵을 우승했었으니..
프로도 없었던 한국에서 그것도 군대까지 다녀온 선수가
세계최고 리그에서 MVP까지 수상 했다는게 기적을 넘어서 미스테리한 수준인거 같네요.
독일 선수들이나 감독들이 방한을 하거나 인터뷰를 하면 항상 차붐을 언급하는게 이해가 갑니다.
첫댓글 감독으로서는 잘모르겠지만 선수로서의 차범근은 우리나라 역대최고입니다.
아시안인이 유럽에서 공격수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걸 보여준 유일한 선수죠.
어쨌든 중요한 것은 차범근이 분데스리가서 98골을 넣은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유럽통산 98골입니다.
분데스리가 98골 맞습니다. 유럽통산 합치면 108골이고요.
중요한건가요? ;;; 어떤면에서 중요하지요/ 분데스리가 골이 한 20골밖에 안되나요?;;
중요하고 안중요하고를 떠나서, 분데스리가 리그 308경기 출전 98골, 유럽 통산(UEFA컵, 국내컵(FA컵개념) 포함 357경기 출전 114골인데 (분데스리가 308경기98골, UEFA대회(유럽) 37경기 10골, 컵12경기 출전 6골(레버쿠젠 시절은 포함되지 않아있습니다.) 거기에, 80년대~90년대 초의 세리에와 분데스리가에서는 경기당 골수가 지금보다 현저히 낮은 가운데 세운 기록입니다. (분데스리가 경기당 1.7~1.8골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빅3리그와 당시 분데스리가&세리에 득점왕의 골 수 비교 까지 원하시면 나중에 해드리죠.)
뭐가 그리 중요한진 모르겠지만 윗분들 말씀을 보니 사실도 아니네요
LacrossE 님 안 보이네요ㅋㄷ 말하려면 제대로 알고 말하시지..ㅉㅉ
가끔 언급되는 박지성VS차범근 비교는... 물론 박지성도 훌륭하고 국위선양하고 좋은 선수지만 두 선수의 위상이나 위치는 급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차범근 감독 98월드컵 때 경질된 이후로 솔직히 축구에 대한 관심은 거의 접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선수이자 감독을 그렇게 팽하다니...... 우리나라는 영웅대접을 할 줄 모르는 나라입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는 너무 결과위주로 사람을 판단하는게 있습니다. 물론 지금 수원 삼성의 부진은 결과도 그렇고, 팀 운영도 그렇고 할 말 없기는 하지만요ㅡ.ㅡ
98월드컵도 그렇지만 02월드컵 때 더 심했습니다. 한국이 낳은 유일한 세계 탑 수준의 스타를 자국에서 월드컵을 열면서도 사용(?)할 생각을 안하다니... (조추첨이나 개막식 등의 행사 때 말이죠.)
쌩뚱맞게 송혜교가 조추첨식에 나왔죠ㅋ
이건 진짜 이해안가지만, 솔직히 차두리 뛴 것도 이해 안가긴 매한가지 입니다.
차두리는 다른 케이스 아닌가요? 윗분 말씀은 차붐에 대한 병맛행정 이야기고 차두리야 단지 가족일뿐 선택도 히딩크가
한거니까요 어짜피 선발용도 아니고 유럽팀전용 피지칼조커였죠
저는 차두리가 무슨 빽으로 들어갔다 하시는 분들 참 이해가 안되더군요....축구가 11명 전부가 기술만 좋다고 되는것도 아니고 히딩크가 구상한 멤버가 차두리가 적합했기때문에 차두리가 들어간거죠...솔직히 독일 진출같은것은 아버지의 힘이 컸는지도 모르겠으나 엄연히 차두리도 02년 월드컵 4강 멤버의 일원이고 벤치만 달군것도 아니고 16강 이탈리아전 후반전 조커로 나름 공격에서 제역활 해준선수입니다
이 문제랑 차두리 문제를 같이 엮는 것도 이해 안가긴 매한가지 입니다.
차두리는 당시 고려대에서 유명했던 축구스타였습니다... 그리고 히딩크가 혈연지연학연에 얽매일 감독도 아니구요...
여기서 왜 차두리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이건 차치하고, 저도 답글쓰신 분처럼 02월드컵 때 대체 왜 차범근을 쓰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병맛 행정도 이런 병맛이 없죠...
멋지다....
군생활은 왜 5개월만 했나요. 전부터 계속 궁금했던게.. 그시대면 아마 3년에 가까운 군생활이였을텐데.. 박정희가 특례 해줬던 건가요?
공군 3년 복무했습니다. 76년에 신탁은행 입단후에, 공군에서 육군과 같은 복무기간으로 해준다그래서 육군이 아닌 공군으로가 76~78년까지 공군 축구팀인 성무팀에 있었고, 후에 다름슈타트에 이적했는데, 국가에서 인기스타인 차범근선수를 빼앗기기 싫어서인지 독일에가신지 몇개월만에 다시귀국해서 공군과 육군 차이 복무 기간 마져 마치라고 명을 내렸고 (병역 원칙을 절대 훼손 할 수 없었다고 했죠.) 결국 돌아와서 79년 5월까지 5개월을 복무하고 잔여 군복무를 모두 마쳤습니다. 때문에 특례는 커녕 79년 1월에 어떻게 보면 억울할수도 있었던 귀환이였죠. (물론 결정은 본인이 하는거지만, 76년 '공군'에 입대 할때와 말이 다르니)
군생활은 왜 5개월만 했나- 라는 식이 아니라 군생활은 5개월만 했었나- 라고 확실하게 모르시면 단정하기 전에 물어보셔야 하는게 아닌가 싶네요 .
확실하게 모르면서 단정짓는 분들이 제법 보이네요.
차범근 선수가 한참 활약할 당시 저희 아버지께서 독일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 저희 가족이 당시 독일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어렸기에 기억은 안 나고,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정말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전쟁폐허국가에서 벗어난지 오래 안된 가난한 개발도상국 나라라는 이미지일 뿐이었는데, 그 선진국 독일사람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차붐 차붐 하면서 외쳤다고 말씀하시더군요...경기 다음날 정육점에 소세지 사러 가면, 어제 차붐 덕분에 이겼다고, 정육점 주인이 소세지 덤으로 주고, 동네 아이들이 저희 부모님 보고, 차붐 차붐 외쳤다고 하시더군요...
1993년인가 독일 뮌헨대학에 방문으로 있던 적이 있었는데 교수가 차붐이야기를 하더군요. 뮌헨의 스타였다고.
물론 '급'의 차이야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리체프-신의손 선수 추억하듯이 독일 사람들도 그러나 보네요. 정말 자랑스럽네요.
우리가 이곳에 있기때문에 차붐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잘 모르는거같아요..
공감합니다....제 중고등선배이자 제친구형인분을 최근에 만났는데 그분은 신학을 전공하십니다...독일로 유학을 갔다왔는데 맨첨에 묶은 곳이 프랑크푸르트-도르트문트인데 프랑크푸르트에서 괜히 차범근 안다고 했다가 망신당했답니다....자기자신보다 독일 현지인들이 차범근에 대해서 너무 잘알고 자신은 잘몰라서요
제 경험으로 봤을때 일단 30대 후반 이후의 독일 아저씨 중에 차붐을 모르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사회적인 인지도로 따지면 최소 홍명보 선수 이상은 될거에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2006년 월드컵 때 김성주였는지 누구였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MBC에서 차붐이랑 같이 해설하는 캐스터가 그랬었죠. 차범근 얼굴만 보여주면 복잡한 통과절차 필요 없었다고...
독일에서 2년동안 지내고 온 저로써는 박지성과 차범근을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기록 볼것도 없이 40년간 역대 공격수 랭킹 9위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거의 전설적인 선수인 클린스만도 없을뿐더러 최근의 선수 자체가 없죠. 저도 박지성선수의 노력과 인품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는 팬이지만 선수로서의 업적은 비교불가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이 차범근을 깎아 내리는걸 보면 뭐라고 할 말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