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도 아랑곳 않고
늦게 온 장마가 몇 차례 비를 뿌리다 물러간 신축년 한여름이다. 올해는 우리 지역보다 서울과 수도권 한낮 기온이 더 높고 연일 폭염경보에 열대야가 지속된단다. 코로나로 가뜩이나 힘든데 더위까지 덮치니 서민들은 여름이 어서 지나가 선선한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그렇지만 계절은 절기 따라 순환하기에 입추가 오려면 열흘이 더 남았고 처서는 그보다 보름 뒤에 기다리고 있다.
내가 사는 생활권도 폭염경보나 열대야이긴 해도 몸에 단련되고 익숙해선지 그럭저럭 버틴다. 여름이면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느닷없이 소나기라도 한 줄기 내려주었다만 올해는 짧았던 장마 이후 비까지 귀하다. 벼농사는 뙤약볕이 좋기는 하나 노지 밭작물은 수분 부족 현상을 겪을 수준이다. 축사에서 기르는 소나 돼지들은 더위를 버티려면 관리에 신경 쓸 테다. 양계장도 그렇다.
방학을 맞아 아침나절은 근교 산행을 나서고 있다. 지정된 등산로를 벗어나 우거진 참나무 숲으로 들어 영지버섯을 따고 계곡에 발을 담갔다. 인적 없는 물웅덩이에선 알탕을 하고 왔다. 용제봉 산기슭을 찾았고 양곡 산성산도 들렸다. 용추계곡도 가고 의림사 계곡을 찾아 몸을 담그기도 했다. 대청 화산계곡도 명경지수였다. 그제는 양미재 산기슭으로 올라 구고사 절간까지 둘러왔다.
칠월 다섯째 목요일이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이른 시각에 잠을 깨 날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아침 식후 월영동에서 출발해 대방동으로 오가는 101 첫차 시내버스를 탔다. 출발지에서 마산을 관통해 우리 집 앞까지 오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창원대학 앞에서 도청을 둘러 법원을 지나 대방동 뒷길 성당 근처에서 내렸다. 다시 용제봉 산기슭으로 가려고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갔다.
근래 봄날에 용제봉으로 산행 코스를 나서지 못했다. 이십여 년 전 용제봉 기슭으로 들면 머위나 두릅은 물론 취나물을 뜯었던 기억이 난다. 성주동 일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산행객이 많아지니 내 텃밭과 같았던 생태계는 바뀌어졌다. 건너편 불모산터널 일대도 마찬가지다. 이후 나는 북면 양미재 언저리나 진북 서북산이나 진전 여항산까지 진출해 일용할 산나물을 마련한다.
여름이면 용제봉이나 불모산을 가끔 찾음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참나무 숲속을 누비는 삼림욕을 즐기다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그거나 땀을 씻고 나가는 재미 때문이다. 올 여름에만도 세 차례나 다녀갔다. 언제 틈을 내서 불모산 기슭으로도 한 번 가볼 참이다. 용제봉과 불모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품이 넓어 숲으로 들면 한 마리 개미처럼 종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용제봉 등산로 들머리는 새벽 산행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이 보였다. 농바위와 평바위를 지나 상점령 갈림길에서 용제봉으로 향해 올랐다. 자손들이 성묘를 다녀갔을 무덤은 아직 철이 아니라 벌초를 하지 않아 풀이 무성했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성묘객이 다녀가는 묵은 길을 따라 해발고도를 높여 산중턱으로 올라갔다. 내가 겨냥하는 영지버섯은 좀체 보이질 않았다.
달성 서 씨 무덤을 지나서도 숲을 누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영지버섯은 찾지 못해도 삼림욕만으로 만족하고 하산해야 하나 싶었을 때였다. 삭은 참나무 그루터기에 자색을 갓을 펼친 영지버섯을 만나 반가웠다. 산신령님이 헛걸음이 되지 않도록 영지버섯을 점지해주셔 감사할 따름이었다. 가파른 비탈을 내려서면서 숲이 우거진 산자락에서 영지버섯을 몇 개 더 찾아 배낭에 채웠다.
석간수 흐르는 계곡에서 배낭을 벗고 등산화 끈을 풀었다. 팔뚝과 얼굴의 땀을 씻고 발을 담갔더니 여기가 선계인가 싶었다. 몇몇 지기들에게 석간수 흐르는 너럭바위와 숲속에서 찾아낸 영지버섯 사진을 날려 보냈다. 방학을 맞아 폭염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연일 산야를 누비면서 사회 적응 연수 중이라고 했다. 숲을 빠져나와 등산로로 나갔더니 아침나절 산행을 나선 이들이 보였다. 21.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