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 (외 2편)
—七支刀
문효치
세월도 무덤이다
일곱 개의 칼끝에서 빛나던
별들이 떨어진다
찌르고 찌르다가
베어 문 일곱 개의 하늘이 무너져
무덤 속으로 든다
문득, 무덤 위 잔디에 섞여 솟아난
할미꽃의 슬픈 자주색이 내 눈을 후빈다
백제도 가고 왜倭도 가고
칼도 어딘가로 자꾸만 가서
또 한 송이의 자주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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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七支刀 : 백제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칼.
광대
달빛 중에서도
산이나 들에 내리지 않고
빨랫줄에 내린 것은 광대다
줄이 능청거릴 때마다 몸을 휘청거리며
달에서 가지고 온 미친 기운으로 번쩍이며
보는 이의 가슴을 조이게 한다
달빛이라도
어떤 것은 오동잎에 내려 멋을 부리고
어떤 것은 기와지붕에 내려 편안하다
또 어떤 것은 바다에 내려 이내 부서져 버리기도 한다
내가 달빛이라면
나는 어디에 내려 무엇을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사는 일에 아슬아슬한 대목이 많았고
식구들을 가슴 조이게 한 걸로 보면
나는 줄을 타는 광대임에 틀림없다
별보기 2
부딪혀 깨어질 때 더 아름답다
가령, 시골 암자의 범종에 떨어져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종소리를 꺼내어 울리고
종소리와 함께 깨어져
일만 번민을 허공에 날릴 때
혹은, 절 뒷산의 숲
숲 속에 호젓이 웅크린 무덤
무덤의 이마에 부딪혀 깨어지면서
그 몸에서 뿌려지는 피의 빛깔로
붉은 패랭이꽃을 채색할 때
별은 더욱 아름답다
온전할 때보다
깨어질 때
더욱 빛나는 별을 본다
—시집 『七支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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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치 / 1943년 전북 군산 출생. 1966년 〈한국일보〉〈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시집 『무령왕의 나무새』『남내리 엽서』『계백의 칼』『왕인의 수염』『七支刀』등 10여 권. 현재 계간 《미네르바》의 발행인 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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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 (외 2편) / 문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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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15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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