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감동으로 가슴이 저릿할 때가 있다.
달포 전에 만났던 한 친구로 인해 나는 새해 벽두부터 그런 경험을 했다.
H는 효심이 지극한 사내였다.
대기업에서 중역을 지냈고 2년 전에 퇴직했다.
일생 동안 최선을 다했던 그에게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친구의 모친은 폐암으로 투병 중이셨다.
H는 은퇴 후 어머니의 간호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진력을 다했다.
그러나 고령에다 병세가 깊어 점점 치유가 어려워 졌다.
백약이 무효했다.
끝내 담당 의사의 판단과 가족들의 동의 하에 치료를 포기하고 '호스피스 병원'으로 들어가셨다.
그곳에서 몰핀을 맞아가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가족들과 함께 차분하게 모자이크하셨다.
하지만 그 시간조차도 그리 길지 않았다.
'호스피스 병원'에서 채 일 주도 넘기지 못한 채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다.
장례를 치렀다.
장례 후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마무리 되었다.
장남이었던 H의 배려와 리더십 그리고 깔끔한 일처리가 돋보였다.
삼우제까지 마무리하고 친인척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런 다음 친구는 떡, 과일, 음료를 잔뜩 준비하여 '호스피스 병원'을 찾아갔다.
채 일 주도 아닌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머니의 마지막 시간들을 편안하게 해주셨던 그곳 관계자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였다.
정작 놀란 건, 그곳에 계신 분들이었다.
대부분 환자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면 그것으로 끝이었지 유가족이 감사를 전하러 다시 온 경우는 거의 없었노라고 했다.
그것도 매우 짧은 기간에 잠간 계신 분이었는데.
마음을 담아 감사인사를 드리고 나왔는데 그 후에 '호스피스 병원' 측 관계자들로부터 문자 몇 건을 받았다고 했다.
모두가 감동을 얘기하고 있었다.
대부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는 고백과 함께 세상이 참 따뜻하고 고맙다면서 많은 환자분들께 더 성심을 쏟겠다는 다짐과 약속도 있었다고 했다.
물건을 사거나 밥을 먹고 그에 맞는 돈을 지불하면 그만인 세상이다.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 댓가를 지불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 어찌 수학적, 기계적, 계약적인 관계와 거래만 존재하겠는가.
누군가의 조건 없는 친절과 배려 그리고 진한 감동으로 우리 사는 세상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음을 본다.
H는 늘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런 인격 때문에 대기업에서 중역을 지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운동도 해본 사람이 잘 한다.
배려, 헌신, 감사표현도 봄에 밴 사람이 하지 아무나 하는 건 아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그랬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절감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런 공감과 감동이 부모로부터 자식에게까지 대를 이어 계승되고, 일가 친척에 전파되며 종국엔 뿌리 깊은 가문으로 승화되는 것임을 믿는다.
한 사람, 한 가족, 한 집안의 품격과 전통이 어찌 하루아침에 형성되겠는가.
세상엔 돈으로 되지 않은 일이 너무 많다.
특히 사람을 양육할 때 더욱 그렇다.
'삼인행이면 필유아사'라 했다.
이런 친구가 있어 나도 많이 배운다.
참으로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상이다.
하지만 이런 감동으로 인해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살만 하며 우리의 가슴도 늘 뭉클해 지는 것 같다.
H에게 깊은 사랑과 감사를 전한다.
"고맙다, 친구야. 편안한 밤 보내시길"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