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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동안 이른바 ‘와동불패’(최근에 깨졌지만) 라는 말이 여자농구계에 유행했었습니다. 홈 경기장에서는 좀체 지지 않는 신한은행의 무서움을 잘 표현해주는 말인데요. 이에 이어 올 시즌에는 ‘호반불패’라는 말이 생겨 호반체육관에 오는 상대팀에게는 부담을, 우리은행을 응원하는 팬 분들한테는 무한한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앞두고 ‘이틀 전 '와동불패'가 깨졌듯, 왠지 오늘은 '호반불패'도 깨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인즉 첫째, 우리은행은 불과 이틀 전 와동체육관에서 신한은행과 한 점차 혈투를 벌여 주전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컸다고 생각했고, 둘째, 연패만큼 연승에도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는 전제 하에서, ‘홈 10연승’을 달성하는 데 있어 우리은행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으리라 생각했으며. 셋째, KB는 청주에서 12월 23일 우리은행을 이긴 ‘빛나는’ 전력이 있기에 재대결에서 다시 한 번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많은 준비를 하고 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생각했던 대로 경기 초반 우리은행 선수들의 몸은 물 먹은 솜 마냥 무거워 보였습니다.
우리은행에는 ‘예측해도 막기 어려운’ 공격패턴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박혜진 선수의 와이드오픈 3점슛이고, 둘째는 스크린 타고 돌아 나오는 임영희 선수의 미트 후 논스톱 슛입니다. 우리은행은 다른 선수들의 득점이 정체될 때 혹은 상대에게의 카운터가 필요할 때 이 패턴으로 재미를 많이 봤습니다. 아주 많이.
우리은행의 공격이 풀리려면 박혜진 선수가 초반부터 ‘터져’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와동체육관 혈전의 피로가 안 풀린 듯 박혜진 선수 슛은 림을 벗어나더군요. 이 시점에서 이제 우리은행이 믿고 맡길 선수는 외곽에서 임영희 선수였죠.
임영희 선수 올해 나이가 한국나이로 35살입니다. 변연하 – 박선영 – 신정자 선수와 동기죠. 하지만, 체력은 1990년대생 선수 못지않은 선수입니다. 변연하 선수 못지않은 ‘훈련 에이스’입니다.
이야기가 조금 새는 감이 있지만, 여기서 한 팀의 ‘리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리더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팀 전체에 활력을 주고, 팀원들에게 손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팀이 모범적으로 잘 돌아가고, 이상윤 전 감독님 말씀대로 리더 언니도 하니 우리도 해 보자는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되어 팀 전체 경기력도 향상될 수 있습니다.
우리은행이나 KB가 상위권을 달리는 이유 중 하나가, 팀내에 누구보다도 훈련에, 농구에 열정적이고 모범적인 ‘리더 언니’ 임영희 – 변연하 선수가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임영희 선수는 최근 팬 분들에게 보여주는 화려한 플레이(클러치 샷이나 개인기)에서는 확실히 박혜진 선수에 뒤지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팀이 위기에 처할 때, 특히 원-투 펀치에서 박혜진 선수가 터지지 않을 때 손수 나서서 보여주는, 상대에게 정말 무시무시하게 다가오는 클러치 능력은 ‘조용하고 얌전한 성격이지만 과연 강팀의 리더구나.’라는 것을 확신하게 합니다.
특히 호반체육관에서 임영희 선수의 클러치 샷은 확률에서 다른 선수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KB에서는 임영희 선수에 대한 수비도 준비했을 테지만, 임영희 선수 ‘패턴’에 두 번 당해서 3점슛 2방을 맞고 말았습니다. 이 두 방이 아니었다면 우리은행 초반부터 어려운 경기를 했을 것입니다.
동기인 임영희 선수에게 질세라, KB의 리더 변연하 선수도 40분 내내 에이스로서 활약을 펼쳤습니다. 두 선수를 보니 이 말이 생각났습니다. ‘용호상박’.
작년 12월 23일에 청주에서 우리은행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때, 변연하 선수의 득점은 17득점. 이번 경기에서도 17득점을 했습니다. 올 시즌 변연하 선수의 우리은행 경기와 17이라는 숫자 사이에 인연이 질기군요.
사실, 올 시즌의 변연하 선수의 득점이나, 슛 성공률을 보면 ‘어 변코비가...’라는 일종의 의구심을 들게 합니다. 3점슛 성공률 26.2%, 평균득점 10.2점은 많은 팬들이 생각하는 그 변연하 선수의 본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변연하 선수도 사람인 이상, 세월이라는 얄궂은 녀석의 시샘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국가대표팀 에서의 ‘무리’로 몸 컨디션도 정상이 아닙니다. 솔직히, 이번 게임에서의 40분 풀타임 출장도 원칙대로라면 완전 무리였죠.
이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누군가가 ‘대한민국에서 ’농구‘를 가장 잘하는 여자선수는?’이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변연하 선수라고 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변연하 선수의 코트 위에서의 존재는 득점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경기를 보는 시야, 아무나 할 수 없는 하프 코트에서의 정확한 롱 패스, 상대 수비수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노련한 파울 유도 플레이. 상대 패스길을 미리 차단하는 예리한 눈 등등. 이 모든 것을 볼 때 이 선수는 아직 여자농구계의 ‘변코비’입니다.
다만, 이번 경기에서 다소 아쉬웠던 것은 경기 막판 시소 게임 상황에서의 ‘한 방’이었습니다. 경기 종료 직전, 작전 타임 후 공격에서 김채원 선수에게 주지 않고 끌다가 차분히 3점을 쏘아 성공시켰더라면...이라는 짙은 아쉬움이 지금도 남습니다.
경기 전 흥미롭게 생각했던 매치업 중 하나가 커리 대 노엘 선수의 대결이었습니다.
노엘 선수는 지난 삼성생명전에서 보았듯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입니다. 그리고 수비 리바운드에 능합니다. 지금까지 긴 출전시간을 갖지 못했지만, 평균 리바운드는 5.6개로 많습니다. 슛 능력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수비를 중시하는 우리은행에 ‘딱’ 맞는 용병 선수는 노엘 선수입니다.
하지만, 노엘 선수는 커리 선수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샤데 선수같이 ‘통통’ 튀어다니는 선수에게는 강하나, 커리나 스트릭렌 선수같은 웨이트를 갖춘 가드 테크니션 스타일에는 실점을 많이 합니다. 우리은행에서 다음에 KB 나 신한은행을 상대할 때 이를 잘 고려해서 노엘 선수를 기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커리 선수는 슛 능력, 수비, 리바운드에 모두 능한 만능선수입니다.(리바운드에서 평균 7.9개로 팀내 1위)
다만 이 선수에게 아쉬운 점은 투맨 게임에서 픽-앤-팝의 비중이 픽-앤-롤에 비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드 포지션에 있는 선수라 팝 플레이가 몸에 익었겠지만, 한국에서는 때로 가드를 넘어선, 포워드–센터 포지션까지 소화해내야 하는 마당에 팝 플레이만 고집하다는 것은 상대를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롤 플레이의 비중을 높여야 합니다. 롤을 해서 공을 받아 레이업을 올라가며 쉬운 득점을 노리고, 상대 선수가 밀집된 경우 킥 아웃을 하거나 바로 올라가서 파울을 노려야 합니다. 이제 시즌 중후반입니다. 커리 – 변연하 선수가 많이 쓰는 픽-앤-팝 플레이에 대한 대비책은 모든 구단에서 다 가지고 있습니다. 투맨 플레이 스타일에 변화를 줄 필요가 큽니다.
KB 농구의 단점 중 하나가, 도망갈 때 확실히 도망가지 못하여 경기 후반 잡혀 어려운 경기를 하는 횟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상대 팀이나, 상대 팬 입장에서는 정말 재미있지만, KB 입장에선 시쳇말로 ‘환장할’ 노릇입니다.
오늘 우리은행 선수들의 집중력은 이번 시즌 들어 최하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 었습니다. 며칠 간 천안연수원에서 정성껏 준비한 수비 형태에 경기 후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 때 KB는 점수 차이를 벌여야 했습니다. 이 시간대에 강아정 선수의 3점포 한 방이 무엇보다 아쉬웠지요.
“형, 아정이 3점포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네요.” 같이 경기를 봤던 청주에서 알게 된 어느 동생의 말입니다. 몇 경기 째 강아정 선수 입장에서 ‘망할 놈의’, 하지만 자신의 가장 큰 특기인 3점포는 도무지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 많은 슛 연습을 하는 선수이고, 원래 슛 재능이 정상급인 선수가 강아정 선수입니다. 폭발력도 하나외환의 ‘뽀미타임’의 주인공 김보미 선수 저리가라할 정도로 엄청납니다. 제가 보기에 문제는 실전에서의 마인드입니다. 3점을 쏠 때 무언가 부담에 잡혀 있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아정아, 무념무상으로 연습하던 대로 올라가라.”고.
KB는 반면에, 4쿼터에 ‘쫒아가는’ 농구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팀입니다. 기록을 보아도 쿼터별 득점에서 4쿼터에 20점으로 가장 높습니다.
이번 경기에서도 KB의, 팬 분들을 4쿼터에 열광하게 하는 ‘쫒아가는’ 농구는 명불허전 그 자체였습니다. 그 중심에 ‘간 큰’ 삼천포 출신 소녀 홍아란 선수가 있었고요.
홍아란 선수는 외모와는 달리 간이 정말 큰 선수입니다. 4쿼터 3점포 추격전에서 으레 홍아란 선수의 ‘벼락슛’은 꼭 팀 득점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말이죠. 앞으로 몇 년 후, 지금의 박혜진 선수 못지않은 클러치 능력을 자랑할 가능성이 큰 선수입니다.
이 선수의 3점 두 방으로 4쿼터 말미에 KB는 59 대 59 동점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은 득점으로 63 대 60을 만듭니다. 여기서 KB에게 이번 4라운드에서 ‘천추의 한’이 될 장면이 나옵니다. 강아정 선수의 이지샷 실패. 점수는 여전히 3점 차. 서동철 감독님이 경기 후 짤막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강아정 선수의 레이업은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결국, 박혜진 선수의 ‘초필살기’인 왼손 레이업으로 우리은행은 1점 차 승리로 무시무시한 ‘호반불패’를 계속 이어가며 17승 3패로 4라운드를 말끔히 전승으로 마무리 지었고, KB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야만 했습니다.
아.. 오늘 경기 전에 2010 드래프트 동기 심성영 선수와 이승아 선수의 맞대결을 기대했었는데, 두 선수 컨디션 문제와 파울트러블 문제로 대결이 성사되지 못했네요. 아쉽습니다.
“승아가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은 듯해. 슬럼프인가?”, 호반체육관에 우리은행 한새 창단 때부터 개근하시는 한 할아버지의 말입니다. 이번 경기에서는 백업 가드인 이은혜 선수가 공백을 잘 메꾸어 주었지만, 리그 정상급의 수비와 허슬 플레이를 자랑하는 이승아 선수가 하루빨리 예전 컨디션으로 복귀해야 우리은행 플레이오프 준비하는 데 고민이 없어질 듯 합니다.
심성영 선수는 15분~20분 출장이 예상되었으나, 컨디션이 안 좋은지, 매치업에서 김채원 선수가 더 유리한지는 몰라도 짧은 시간 경기를 뛰었습니다. 음.. 다음 신한은행 2연전에서 최윤아 – 김규희 선수와의 매치업에서 많이 쓰려는 감독님의 의도인가요 혹시?
좌우지간 제가 아끼는 이 두 선수 앞으로 코트에서 많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뒷북 하나 >
호반체육관에서 평소에는 이겨도 장례식 온 사람들처럼 묵묵한 표정을 짓던 우리은행 선수들, 오늘은 마음 놓고 환호하고 웃을 만한 승리였지요? 앞으로도 이기면 그렇게 웃어요. 보는 팬 분들도 기분이 얼마나 좋아요?
< 뒷북 둘 >
KB가 안타깝게 1점 차 패배를 하자, 원정응원석 쪽 한동안 분노와 멘붕 분위기로 가득 찼었죠. 이해합니다. 저도 2011년 11월 11일 빼빼로데이 때 바로 여기, 호반체육관에서 같은 경험 한 번 더 했는걸요. 그래도 *팔년도 야구장에서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못마땅하다고 코트에 바나나 집어던지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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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금은 변연하선수 보다 임영희선수가 더 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나가는 팀이라고 할지 몰라도 확실히 나요
헐.. 아무리 그래도 남의 홈에 와서 바나나를 집어던지는 몰상식한 행위를 하다니요. ㅡㅡ
제가 그쪽에서 관전을 했는데 (전 항상 원정석에서만 관전함.개인적으로 그쪽에서 보는게 눈이 편안 해서요)승질이 나서 잡아 죽여버릴라 그랬어요.춘천시민으로서 자존심이 무척 상하더라고요.멱살을 잡고 끌고 나오려는데 응원 단장을 비롯주위에서 하도 사과 한다고 해서 끝냈지만 다음부터는 어느 누구던 그런 행위 절대 용납 안하겠습니다.
저도 늘상 호반체육관을 베드민턴 동호회 때문에 이용 하는데 저희가 얼마나 코트를 애지중지하고 관리 하는데 바나나 투척이라니...진짜 춘천 시민한테 똥따구리 몰매 안맞고 간게 다행이라고 여기고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시면 아니될듯 하옵니다.
@돌팔이 저도 직관하면서 국민은행 응원단 쪽에서 코트에 뭘 던진 거 봤습니다. 승부가 나고 거의 동시에 뭘 던졌는데, 그게 바나나였다는 건 이 글 보고 알았습니다. 세상에 체육관에서도 뭘 던지는구나 싶었죠. 그런 건 처음 봤습니다. 다행이 단장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하지 말라고 막 말리는 분위기라 바로 시선을 돌렸는데.. 돌팔이님, 많이 용감하십니다..^^ 거기 응원단 분들 단체로 있었고, 쓰라린 패배로 격앙되어 있었을 때인데..
코트 관리면에서 한 말씀 올리면, 사실 그 바나나 껀은 우발적인 사건이지만, 평소 체육관 이용, 관리의 엄중한 원칙들에 비해 농구 경기 열리는 날은 그 원칙이 너무 헐거워집니다.
@돌팔이 코트 입구에 버젓히 구두 신은 사람은 입장이 안 된다고 쓰여져 있는데, 그게 무색하게 구둣발로 코트 위에 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단적으로 어제 경기 후, 관광객인지, 연수원생인지 외국인들 단체로 경기 관람하고 선수들하고 기념 촬영했죠. 그 중 다수가 구두, 하이힐 신고 있었습니다. 올스타전 끝나고 팬사인회 할 때, 코트 위에 사람들 빼곡하게 다 내려와서 사인 받았죠. 장내 여자 아나운서도 코트 위에 하이힐 구둣발로 매양 올라옵니다. 본부석에 앉는 높으신 어른들, 악수나 시상하러 내려올 때, 항상 구둣발로 코트 위에 들어서죠. 경기 후 감독, 방송스탭, 아나운서도 인터뷰 할 때, 구둣발로 코트 위에서 합니다.
@돌팔이 저도 춘천시민이고, 체육관 관리의 엄중함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농구 경기 열리는 날 보면, 평소 시민들에게 강제하고, 또 자체 규약으로 지켜지는 그런 엄중한 원칙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집니다. 농구 경기가 1년에 하루 이틀 하고 마는 이벤트도 아니고 말이죠. 농구 경기와 관련된 모든 분들이 경기 열리는 날, 코트 위에는 실내화를 신지 않으면 올라설 수 없다는 당연한 상식을 탑재하고, 좀 조심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체육관을 이용하는 시민들에 대한 예의이자, 존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