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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30돌 발자취와 현황 | |
주님 은총으로 '사랑의 기적' 30년 | |
충북 음성 꽃동네와 경기 가평 꽃동네 입구에는 매일 이렇게 버려진 사람들이 있다. 꽃동네가 '얻어 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온 지 올해로 만 30년이 됐다. 꽃동네는 창립자 오웅진 신부가 무극천 다리 밑에서 같은 처지 걸인들을 돌보던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시작한 '우연'의 역사가 아니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일생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도록 사제들을 준비했고, 수도자들을 마련한 하느님의 섭리에서 나온 '필연'과 '예정'의 역사다. 오웅진 신부는 어린시절 한국전쟁을 겪으며 죽음이 목 앞에 까지 닥친 고단한 피난살이 중에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는 유민들을 보면서 이 땅에 굶주림, 가난을 몰아내겠다고 결심한다. 이 소년은 장성하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면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가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주저없이 신학교를 지원했다. 오 신부를 사제로 양성했던 대건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학) 학장이었던 정하권 몬시뇰의 회고담이다. "오 신부는 신학교에 입학한 후 졸업 때까지 6년을 한결같이 개학 때면 내 방에 몰래 찾아와 형편이 어려운 신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방학 동안 공사판에서 번 돈을 몽땅 내 놓았어요. 학기 중에는 교수신부들 구두를 닦고 재활용품을 모아 번 돈으로 한센병 환자들을 도왔고, 방학날 모두가 귀가했는데도 혼자 남아 학교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다음날 떠났지요. 오 신부는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신학생이었습니다." 오 신부는 사제품을 받고 1976년 무극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그 해 9월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난 후 자신이 갖고 있던 현금 1300원을 몽땅 털어 시멘트를 구입했다. 그런 후 본당 신자들과 벽돌을 찍어 인근 용담산 기슭에 다섯 칸짜리 '사랑의 집'을 지어 걸인 18명을 데려왔다. 꽃동네는 이렇게 시작했다. 18명이 기거하던 사랑의 집은 부랑인 시설인 애덕의 집ㆍ평화의 집ㆍ소망의 집ㆍ요한의 집과 심신장애인요양원 희망의 집, 정신요양원 환희의 집, 아동시설 요셉의 집, 입양기관 천사의 집, 노숙자 일시보호시설 아나닙의 집 등으로 커져 4000여명이 살고 있다. 또 의료기관으로 인곡자애병원과 노체 리 안드리 자애병원이, 교육기관으로 정신지체장애아동을 위한 꽃동네 학교와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간호조무학원, 사랑의 연수원이 운영되고 있다. 최귀동 할아버지 한명뿐이던 오 신부의 협력자도 30년만에 수사 76명, 수녀 205명 등 281명으로 늘었다. 꽃동네는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사회복지시설이 아니다. 우리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평화의 못자리'다. 사회 각계각층 사람들이 꽃동네에서 자원 봉사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얻어간다. 심지어 신혼부부가 꽃동네로 신혼여행을 오는가 하면 이혼을 결심하고 꽃동네에 왔다가 다시 화합하는 부부들도 헤아릴 수 없다. 비전향 장기수와 반공포로가 마지막 삶터로 꽃동네를 선택했고, 경제 파탄으로 노숙자가 된 이가 꽃동네에서 재기해 수십명의 종업원을 둔 기업체 사장이 된 이도 있다. '고통없이 영광없고, 죽음없이 부활없다'는 교회의 격언처럼 꽃동네도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시련을 겪었다. 최근 꽃동네가 태극광산 금광 채굴과 관련 오웅진 신부를 비롯한 수도자 2명이 재판을 받고, 수도원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은 것도 그 중 하나다. '오웅진 신부 꽃동네 회비 횡령'이라는 일부 매스컴의 무차별 왜곡 보도로 수많은 신자들과 후원회원, 국민들이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꽃동네 후원회비를 끊고 봉사의 발길을 되돌렸지만 법정에서 '무죄'판결로 오욕을 씻을 수 있었다. 5년여에 걸친 시련기간 동안 오 신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정의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며 정의에 기초하지 않은 법은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 신부는 "꽃동네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욕심보다 이 땅에 가난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어 꽃동네가 더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며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영적 물적으로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풀 때 이 소망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길재 기자teotokos@pbc.co.kr ▨ 간추린 꽃동네 30년사 ▲ 1976.8.20 오웅진 신부 무극본당 주임 부임 ▲ 1976.9.8 오 신부 무극천 다리 밑에서 최귀동 할아버지 만남 ▲ 1976.11.15 무극성당 뒤 용담산 기슭에 사랑의 집 준공 ▲ 1980.9.29 청주교구 사제총회에서 꽃동네 설립 가결 ▲ 1981.4.11 부활대축일을 기해 전국회원 모집 ▲ 1982.5.25 음성 꽃동네 현부지 9807평 매입, 독지가 임야 2만평 기증 ▲ 1983.9.8 부랑인요양원 준공 ▲ 1984.3.21 사회복지시설 인가(시설장 오웅진 신부) ▲ 1985.10.7 정신요양원 준공 ▲ 1986.10.15 결핵요양원 준공 ▲ 1986.12.27 청주교구장 정진석 주교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설립 인준 ▲ 1987.10.15 노인요양원 준공 ▲ 1988.10.7 환희의 집ㆍ인곡자애병원 준공 ▲ 1989.7.17 가평꽃동네 설립 ▲ 1990.5.5 심신장애인요양원 준공 ▲ 1992.9.4 가평꽃동네 부랑인요양원 준공 ▲ 1993.10.7 가평꽃동네 정신병ㆍ노인 요양원 준공 ▲ 1994.5.5 성 빈첸시오 천사의 집 준공 ▲ 1995.10.5 가평꽃동네 심신장애인요양원ㆍ노체리 안드리 자애병원 준공 ▲ 1996.2.2 예수의꽃동네 재속 형제회ㆍ자매회 설립 인준 ▲ 1996.10.10 사랑의 연수원(교육관) 준공 ▲ 1996.12.20 필리핀 마닐라 사랑의 집 수녀 파견 ▲ 1997.7.16 학교법인 꽃동네 현도학원 인가 ▲ 1997.11.4 천사의 집 입양기관 허가 ▲ 1998.7.13 강화 꽃동네 설립 ▲ 1998.10.20 현도사회복지대학교 준공 ▲ 1999.2.23 옥천성모양로원 축복식 ▲ 1999.5.12 미국 꽃동네 개원(로스엔젤레스) ▲ 2001.3.15 꽃동네학교 개교 ▲ 2001.9.8 정신병요양시설ㆍ아동시설 준공 ▲ 2002.10.23 미국 뉴저지, 테메큘라 꽃동네 설립 ▲ 2003.3.4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원 개원 ▲ 2004.8.15 사랑의 연구소 개설 ▲ 2005.10.5 미국 조지아 꽃동네 축복 ▲ 2005.11.7 청주 꽃동네회관 개원 | |
[평화신문 2006.08.25] | |
첫댓글 국가도 못한 일을 사제께서 해오셨는데... 오웅진 신부님의 진실은 밝혀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