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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이거 전문 보고싶다고 해서 올리긴 하는데요..너무 글이 길죠..?
그래두 전 단번에 다 읽었거든요..ㅋㅋ 덕분에 눈 빠지는줄 알았지만...@.@
이글이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는다면 지울께요..~(소심 ㅜ.ㅜ)
[달려라! 천방지축 ]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
‘딸기소년’ 박지성(22)이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일기로 적어 소개하는 ‘달려라! 천방지축’이 새로 연재됩니다. 친형처럼 따르는 이영표와 PSV에인트호벤의 사령탑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히딩크 감독 밑에서 네덜란드리그의 ‘첫경험’을 즐기고 있는 박지성의 좌충우돌 네덜란드 생활기, ‘달려라! 천방지축’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네덜란드 취업비자를 받고 이곳에 온 지 어느덧 20일이 지났다. 그동안 RKC 발베이크 원정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지난 16일엔 (이)영표형과 설레는 맘으로 홈 데뷔전을 가졌다. 홈에서 갖는 시즌 첫 경기라서 그런지 경기 전 나와 영표형의 몸 푸는 장면이 경기장 내 대형 스크린에 자주 비쳐졌고 지난 월드컵에서의 활약상을 담은 경기 비디오가 방영되는 등 높은 관심과 기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후반전에 교체돼 들어간 내 플레이는 한국 언론의 평가와는 달리 기대 이하였다. 무릎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예전 전성기(?) 때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는데도 한국 신문에선 ‘격려 차원에서’인지 칭찬을 늘어놔 약간 민망하기도 했다.
한국의 팬들은 히딩크 감독과의 생활에 대해 궁금해할 것이다. 사실 나라만 바뀌었지 이곳에서 프로팀 감독을 맡고 있다 해서 한국에서 대표팀 감독을 했을 때와 큰 차이는 없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한국에 있을 때는 히딩크 감독이 외국 사람이었는데 여기선 내가 외국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또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있을 때 ‘할아버지’같았는데 여기 오니까 감독 이미지가 더 강하다. 무릎 부상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 외엔 나나 영표형에게 특별히 배려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PSV의 홈구장인 필립스 스타디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한 곳에 위치해 있다. 30여평 정도의 복층식 아파트이다보니 혼자 살기엔 다소 크다는 생각이 든다. 가구와 전자제품 등은 모두 내가 직접 구입했다. 한동안 훈련이 끝나면 물건 사러 다니는 게 낙이었을 정도로 집안 살림 장만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물건을 사러다니면서도 결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전히 결혼은 나한테 멀고 먼 이야기일 뿐이다.
지난 일요일에 영표형과 함께 교회를 간 적이 있다. 알다시피 난 불교 신자다. 영표형의 강권에 못이겨 교회 근처까진 갔어도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영표형이 특유의 ‘말발’로 날 설득시켰지만 박씨 고집도 만만치 않다는 걸 처음 느꼈을 것이다. 결국 영표형이 예배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팬들은 내가 영표형의 전도에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부모님이 오셔서 그야말로 ‘해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어머니가 직접 해주시는 음식맛은 기가 막히다. 며칠 후에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가시지만 다행히 어머니가 날 위해 아버지와의 생이별을 감수하기로 결정하신 터라 난 ‘효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어야 한다.
처음으로 쓰는 연재라 횡설수설한 면이 많았던 것 같다. 앞으로는 좀 더 재미있고 알찬 내용으로 <일요신문> 독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겠다.
2003. 2.19. 에인트호벤에서.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2
처음부터 좀 우울한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아요. 소식 들어서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한동안 잠잠했던 오른쪽 무릎 통증이 다시 재발돼 훈련도 제대로 못하고 있답니다. 답답한 건 병원의 정밀 진단 결과로는 아무 이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몸은 아픈데 원인이 발견되지 않고 있으니 갑갑할 노릇이죠.
성격상 걱정을 달고 사는 것보단 그런 걱정을 잊으려고 다른 데 몰두하는 편입니다. 요즘엔 게임기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삼국지’는 하도 많이 해서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영표형네 집에서 인터넷으로 한국의 신문을 검색해 보니까 제가 네덜란드어를 곧잘 한다고 나왔던데 기본적인 몇 단어 외에는 말할 줄 몰라요. 두 달 만에 네덜란드어를 할 줄 안다는 건 거짓말 아닌가요. 일주일에 두 차례씩 언어 수업을 받긴 하지만 일어 다음으로 어려운 게 네덜란드어인 것 같아요. 영어는 배우지 않아서 어려운지 안 어려운지 말할 수는 없고요.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나나 영표형은 이쪽 선수들의 얼굴이 비슷비슷해 보이거든요. 흑인 외엔 거의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은 거죠. 그런데 그들은 나와 영표형이 비슷해 보이나봐요. 어떨 때는 나한테 “영표”라고 부르고 영표형한테 “지성”하고 부르죠. ‘왕눈이’의 영표형과 ‘가물치눈’을 소유한 날 헷갈려한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아요.
선수들과 친해지려고 요즘엔 이름을 외우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난 외국 선수들의 이름을 외우면서 새삼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에 친근감과 존경심을 갖게 되었어요. 우리나라는 이름이 길어야 네 글자잖아요. 그런데 이쪽 애들의 성과 이름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어떤 선수는 이름만, 또 어떤 선수는 성만 외워서 불러줘요. 그 긴 이름을 다 외운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죠.
참, <일요신문>에 항의 하나 하려고요. 지난번 첫 번째 일기 전문에 ‘딸기소년’ 박지성이라고 표현했던데 왜 나에게 ‘딸기소년’이라고 수식어를 달았는지 이해가 안돼요. 얼굴에 난 여드름 때문인가요? 자국은 남았지만 예전보단 아주 좋아졌어요. 그리고 딸기는 맛있는 과일이잖아요. 여드름은 맛도 없을 것 같은데…. 가급적이면 ‘딸기소년’이란 말을 빼주셨으면 해요.
에인트호벤에선 어웨이 경기 때는 츄리닝(트레이닝복)을, 홈경기 때는 양복을 입고 다녀요. 처음엔 좀 납득이 안됐어요. 일본에선 반대로 의상(?)을 갖춰 입었거든요. 아마도 홈 팬들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겠죠. 그런 점에선 에인트호벤의 마케팅 방식에서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빨리 부상에서 회복돼야 저의 진가를 이곳 사람들한테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언젠가는 나아지겠죠. 서두르지 않으려고 해요. 이제 겨우 두 달 지났는 걸요.
2월26일 에인트호벤에서.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3
<일요신문> 독자들과 만나는 일주일은 참으로 빠른데 무릎 부상으로 보낸 지난 일주일은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습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 아프기만 하네요. 거듭되는 정밀진단에도 의사가 똑같이 ‘이상 없는데요’라고 말할 땐 정말 톡 때려주고만 싶어요. 난 분명히 아픈데 이상이 없다니 그게 정말 ‘이상’한 거 아닌가 싶어서요.
지난 5일 홈경기장에서 열린 암스텔컵 8강전은 벤치도 아닌 관중석에서 지켜봤습니다. 뛸 수가 없으니까 히딩크 감독이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더라고요. 네덜란드 사람들의 열광적인 응원의 함성 속에 묻혀 경기를 지켜보는 제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라운드로 뛰어내려가서 영표형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
솔직히 영표형이 부러워요. 열심히 뛰는 것도 부럽지만 부상 없이 자기 실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가끔은 ‘영표형이 절대적으로 믿는 신이 축복을 내려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다행히 역시 홈에서 열린 9일 NEC 네이메겐전에서 후반에 교체투입돼 결승골을 간접 어시스트하는 걸로 그동안의 ‘갈증’을 약간은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잖아요. 조급해하지 말아야겠죠?
참, 한국에 제 군 입대와 관련된 기사가 나갔다면서요? 정말 소식 빨라요. 6월쯤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고 합니다. 물론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덕분에 4주간의 군사훈련이 고작이지만 이쪽에선 운동선수가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잘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사실 저도 상상이 안가요. 군복을 입고 총을 멘 채 잔뜩 긴장해 있을 제 모습이….
오는 29일이면 한국에서 콜롬비아와의 첫 평가전이 벌어지죠. 이곳에서 하루 빨리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잠시 대표팀에 갔다 오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고요.
일본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은 경쟁이 더 치열한 것 같아요. 유럽 선수들이라 그런지 상당히 거칠어요. 연습경기인데도 서로의 몸을 보호해주는 배려가 없어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으로 달려드니까 좀 겁도 나더라고요. 부상 안 당하는 게 행운일 정도예요. 그만큼 자리다툼이 치열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겠죠.
요즘은 제 ‘애마’(벤츠C180)를 몰며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탐색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돌아가신 뒤 혼자 남아서 아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어머니와 함께 에인트호벤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다니며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다음주에는 (김)남일형, (송)종국형네 집에 다녀온 이야기 해드릴게요.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3월10일 에인트호벤에서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4
지난호에서 약속한 것처럼 (송)종국이형, (이)영표형, (김)남일이형네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가장 사람 사는 집 같은 종국이형네 집은 로테르담 시내에 있는 아담한 아파트로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있죠. 집엔 없는 게 없을 정도인데 수준급의 기타 솜씨를 자랑하는 종국이형과 종환이형(송종국 친형) 덕분에 기타 연주대가 가장 눈에 띕니다.
헬스클럽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운동기구들은 종국이형의 체력을 다지는 원동력이 되고, 드넓은 베란다는 경치 감상에 그만이죠.
반면에 영표형네 집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구가 비치돼 있는 집에 들어가서 그런지 산 물건이 하나도 없어요. 영표형 집에서 부러운 건 인터넷 전용선입니다. 마치 여자친구네 집을 방문하는 것 마냥 설레임을 갖고 영표형네 집에 가는 것도 바로 이 인터넷 때문이죠. 그렇다면 영표형이 우리집에 자주 오는 이유는 뭘까요? 밥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손맛에 반한 영표형이 ‘후배 격려 차원’이라는 핑계로 저녁마? 2000 ?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남일이형네 집은 남자들만 살고 있어요. 남일이형 친구가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남자들만 사는 집치곤 굉장히 깔끔하답니다. 형이 청소를 잘해서인지 아니면 집이 원래 깨끗해서인지는 몰라도 남일이형네 집에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향기가 풍겨 나오는 것 같아요.
참, 지난번에 그 집에 갔다가 팬들로부터 선물받았다는 반찬을 가득 들고 왔어요. 깍두기, 간장게장, 참치 등이었는데 참으로 대단한 것 같아요. 남일이형을 향한 팬들의 정성과 사랑에 감탄사만 연발했습니다.
남일이형이랑 주로 무슨 얘길 하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은 별다른 궁금증 갖지 마세요.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아요. 몸 상태나 공통적인 관심사항(?)에 대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에요.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전 형들과 함께 지내는 네덜란드 생활이 참으로 소중하고 재미있어요. 일본에선 (안)효연이형 외에는 저 혼자였잖아요. 개인적으로 부상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형들의 보이지 않는 응원과 격려와 관심에 무척 큰 힘을 얻고 있답니다.
무릎은 많이 호전됐어요. 그래도 네덜란드 축구에 적응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네요.
참 반가운 소식을 전할게요. 조만간 제 휴대폰이 나오고 인터넷이 설치된다고 해요. 처음엔 이런 문명과의 단절에 자유를 느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하기만 하더라고요.
특히 이 일기를 연재하면서 담당 기자가 매주 ‘올빼미족’이 돼 전화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통역하는 형을 통해 전화를 받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거든요. 다음 주부턴 전화로 불러주는 일기가 아닌 직접 써서 메일로 보내는 일기가 게재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 에인트호벤에서
정리 이영미 기자 bom@ilyo.co.kr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5. 요즘 난 ‘휘발유 없이 가는 차’
29일 콜롬비아전을 앞두고 약간의 혼선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표팀 명단을 발표한 첫날엔 내 이름이 들어가 있다가 다음날엔 명단에서 제외되는 해프닝이 있었거든요. 부상과 체력 저하라는 이유로 인해 히딩크 감독이 쿠엘류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특별히 부탁하셨다고 하더군요. 축구협회와 쿠엘류 감독의 배려에 먼저 감사를 전합니다.
사실 대표팀에 선발되는 건 ‘가문의 영광’이요,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죠. 하지만 지금 내 몸 상태가 말이 아니거든요. 팀 닥터가 ‘휘발유 없이 굴러가는 자동차’라고 표현할 만큼 체력이 바닥난 상태입니다.
나라고 한국 가서 보고 싶었던 선후배들도 만나고 월드컵 대표팀에 감격적인 승리를 안겨준 부산월드컵 경기장을 밟고 싶은 마음이 없겠어요. 아쉬움을 뒤로하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송)종국이 형이 있는 페예노르트로 건너가 종국이 형의 개인 재활 치료사로부터 물리치료를 받을 예정이에요. 우리 팀이 일주일간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틈을 이용한 거죠.
사실 요즘 같아선 에인트호벤 경기가 한국에 중계되는 게 부담스러워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기 때문이죠. 가끔 일본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나요. 대학을 다니다 일본에 진출할 때만 해도 난 거의 무명이었어요. 매스컴에선 나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더욱이 가자마자 팀이 2부리그로 떨어지는 바람에 더 더욱 기자들 입장에선 ‘별 볼 일 없는 선수’였죠.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어요. 한국 신문 특파원들도 있고 나를 비롯해 네덜란드에서 활약중인 다른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 데다 경기까지 중계되잖아요. 잘나가는 상황이라면 휘파람을 불 일이죠. 하지만 지금은 좀 힘들어요. 영표 형이 잘 뛰고 있으니 망정이지 만약 영표 형까지 부상으로 주저앉았다면 이곳 서포터스의 성화가 대단했을 거예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나라에서 온 선수들에 대한 기대감? 관심? 비슷한 것들이요.
그나마 요즘 날 ‘행복’하게 하는 일은 어머니 덕분에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인데 어머니가 오늘 한 달 예정으로 한국으로 들어 가시거든요. 앞으로 ‘행복 유지’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가끔은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을 때가 있어요. 외로울 땐 벗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에요. 한국에서 가져온 게임기는 하도 해서 질렸어요. 최근엔 독서가 취미 생활이 됐다니까요. 읽은 책 중에서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 기억에 나요. 표지도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라고 서술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에요. 어려운 상황들을 겪고 있지만 욕심을 내기보단 만족하면서 이 다음을 준비해야겠죠?
3월24일 에인트호벤에서 |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6
지금 이 일기를 쓰고 있는 곳은 로테르담에 있는 (김)남일이형네 집이에요. 제가 살고 있는 에인트호벤에서 차로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남일이형은 지금 한국에서 콜롬비아전을 앞두고 열심히 뛰고 있을 겁니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왜 있냐고요? (송)종국이형의 개인 닥터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가 근처에 있는 남일이형 집에 묵게 된 거죠. 4일 동안 여러 가지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좋아지곤 있지만 완벽하진 않아요. 다들 아시죠? 제가 무릎 부상 때문에 가고 싶었던 한국에도 못가고 팀의 스페인 전지훈련에도 합류하지 못한 채 홀로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건대, 올 시즌은 크게 기대하지 않기로 했어요. 뛰고 싶어 욕심을 부리다보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죠. 곧 수술도 해야 할 것 같아요. 팀 탁터에 의하면 치과에서 치아를 뽑는 것처럼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수술’이라는 단어가 묘한 긴장감을 안겨 주네요.
여러분! 드디어, 마침내, 저희 집에 인터넷이 설치되었습니다. 인터넷이 깔린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국내 신문을 검색하는 거였어요. <일요신문>도 봤어요. 담당 기자가 제 일기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혹시 ‘박지성 일기’를 기자 맘대로 고쳐놓은 건 아닌지 눈 크게 뜨고 확인 작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이 여섯 번째 나가는 일기인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더군요. 바로 무릎 부상이죠. 정말 절 힘들게 하는 ‘얄미운 놈’입니다.
인터넷만 설치되면 이메일로 친구들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려고 했지만 막상 자판을 두들기려다보니 좀 귀찮더라고요. 만약 친구들 중에서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상으로 시름에 빠져있는 외로운 축구선수한테 격려의 메일을 ‘팍팍’ 좀 보내달라고 말하고 싶네요.
가끔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듣는 말이 있어요. 예상보다 목소리가 밝다는 이야기죠. 유쾌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도 하고요. 힘들 때마다 제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너는 왜 축구를 하느냐?’고. 전 축구를 할 때 가장 행복하거든요. 어떤 스트레스가 쌓여도 축구를 하다보면 저절로 풀려요.
월드컵 끝나고 잠시 들떠 있을 때가 있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월드컵 출전 선수들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당시의 제 모습을 떠올려보면 ‘웃겨요’. 분위기에 휩쓸려 제 중심을 잃고 조금씩 흔들렸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이 힘들 때도 있지만 지나온 시간을 하나둘씩 되새김질할 수 있어 좋아요.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긴 한데 너무 생각이 많은 것도 때론 흠이 될 때가 있더라고요. 다음주엔 신나고 즐거운 소식만 전해드리길 바라면서….
3월28일 로테르담에서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7
한국 신문에 보도가 돼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얼마 전 수술을 받았어요. 오른쪽 무릎의 관절경 수술을 받은 거죠. 그동안 초음파를 통해선 나타나지 않던 통증의 원인을 찾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앓던 이’가 빠진 만큼 속이 후련합니다.
수술 받을 당시가 생각나요. 표현은 안했지만 좀 긴장이 되더라고요. 마취가 덜 풀린 상태에서 눈을 떴는데 보이는 사람이 통역하는 (정)우진이형이었어요. 굉장히 고마웠어요. 아무도 없었으면 좀 쓸쓸했을 거예요.
다른 사람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했겠죠. 난 독해서 그런지 별로 그런 마음이 안 생기던데요. 아마도 다음주엔 부모님이 ‘환자’인 날 돌봐주시기 위해 이곳에 다시 오실 것 같아요.
수술 후엔 목발을 짚고 다니고 있어요. 걷기가 불편하다보니까 뛰는 건 고사하고 제대로 걷는 사람들조차 부럽더라고요.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나 봐요. 지금은 제대로 걸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으니까요.
요즘엔 병원 근처의 재활센터에서 훈련중이에요. 4월 말까지 4주간 재활훈련 일정이 잡혀 있거든요. 아마도 5월쯤이면 다시 운동장에서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담당 의사도, 히딩크 감독도 경기 출전에 대한 부담을 떨치고 하루 빨리 온전한 몸상태를 만들라는 부탁을 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최근 일본 J리그에서 활약중인 (고)종수형과 몇 차례 전화통화를 했어요. 종수형이 이전에 제가 몸담고 있던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고 있어 아마도 나한테 궁금한 게 많았던 모양이에요. 여기서 한 가지 밝히고 싶은 게 있어요. 언론에서 보는 종수형과 내가 아는 종수형과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죠. 그렇게 말썽꾸러기도, 운동을 게을리하지도, 다른 데 더 많은 신경을 쓰는 철없는 선수도 아니거든요.
같은 축구선수가 봤을 때 골에 대한 감각은 천부적이고 ‘천재’라는 소리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멋진 플레이어에요. 상당히 2000 의리가 있어 후배들 또한 끔찍이 챙기는 스타일이고요. 남일이형도 좋아하는 선배 중 한 사람인데 그러고보면 내가 의리있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사실 남자가 의리 빼면 시체 아닌가?
수술 이후 여기저기서 격려를 많이 해주시네요. 상당히 위축되어 있을 거라고 짐작하시겠지만 박지성이 결코 기죽지 않았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실 희망이 더 보이거든요. 이젠 무릎이 아프지 않을 거라는, 무릎 통증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요.
힘들 때는 다른 거 생각 안해요. 지금 내가 네덜란드의 명문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최면을 걸죠. 아파보니까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4월3일 에인트호벤에서 |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8
그라운드를 본 지가 꽤 된 것 같네요. 수술 받은 후 집과 병원 재활센터만 오가느라 훈련장 근처엔 가질 않았거든요. 물론 애써 외면했던 부분도 있어요. 뛰지도 못하는데 선수들 훈련하는 모습을 보면 속이 좀 상할 것 같아서죠.
요즘엔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도 걷는 게 자연스러워졌어요. 재활훈련이 힘들기는 하지만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괴로울 정도는 아닙니다. 의사가 아프면 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죠. 즉 무리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어느덧 수술한 지 10일이 지났네요. 생각보단 상태가 빠르게 호전되는 것 같아요. 아마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훈련장에서 조심스럽게 공을 차고 있을지도 몰라요.
최근 한국의 신문들을 보면 (김)남일이형의 거취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개인적으론 남일이형이 계속 이곳에 남아 있기를 바라지만 현재로선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네요. 물론 다른 방법이 없을 경우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지만 남일이형은 별로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거든요. 워낙 그 형이 ‘포커페이스’라 어떤 때는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을 정도예요.
며칠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TV 중계를 본 적이 있어요. 마냥 입이 벌어지더군요. 같은 축구선수가 봐도 예술이라고 느낄 만큼 단단한 조직력과 개인기의 절묘한 조화는 거의 환상적인 수준이었어요.
몇몇 선수들은 월드컵 때 직접 상대했던 선수들이라 감회가 더욱 새로웠죠. 이름만 들어도 기가 죽는 선수들인데 막상 각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맞붙을 때는 그들이 그렇게 ‘커’ 보이지가 않더라고요. 축구로 밥 먹고 사는 건 다 똑같잖아요. 물론 몸값의 엄청난 차이는 있겠지만요.
참, <일요신문>이 창간 11주년을 맞이한다면서요? 담당 기자가 소식을 전해줬어요. <일요신문> 하면 굉장히 깊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일간지에서 가볍게 지나치는 내용을 심층적으로 접근해서 호기심, 궁금증 등을 해소해 주기도 하고요. 가끔 <일요신문>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선수들에 관한 소식들을 접하고 안부전화를 할 때도 있어요.
가만, <일요신문> 창간을 기념해 뭔가 특별한 선물을 보내고 싶은데…. 가장 좋은 선물은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멋진 골을 선사하는 것이겠죠. 이건 어때요? <일요신문> 사행시를 지어보는 거요. 시작해 볼까요?
일:일주일에 한번 나오는 신문입니다.
요:요일마다 나오는 신문과는 차이가 있죠.
신:신문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문: 문, <일요신문>의 그 ‘문’은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9
0-1로 아깝게 패했던 한·일전 소식에 대해 들었어요. 정말 아쉽더라구요. 축구팬들의 실망은 더했겠지만 직접 경기를 치른 선수들도 만만치 않은 허탈감에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3년 전 일본에서 벌어진 한·일전에 처음 출전했던 당시 저도 엄청난 부담감과 긴장감으로 어떻게 경기를 치렀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로 우왕좌왕했었거든요. 한·일전이 갖는 역사적인 무게감 때문이었죠.
3년 전의 일본전 출전은 태어나서 태극마크를 두 번째 달았을 때의 일이었어요. 첫 번째는 꿋꿋이 벤치만 지키다 끝났고 두 번째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김상식 선배가 퇴장당하는 바람에 다른 선수가 빠지고 내가 김상식 선배 자리에 투입이 됐던 거죠. 10명으로 11명을 상대하다보니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마음은 펄펄 나는데 몸이 마음대로 안따라주는 것.
일본선수들은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편이에요. 내가 일본에서 생활할 때는 이런 특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약한 모습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죠. 일부러 터프한 척, 강한 척, 센 척 등 있는 ‘척’은 다했던 기억이 나요. 일본축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거죠.
요즘 우리나라 축구계에선 쿠엘류 감독의 포백 시스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고 들었어요. 사실 포백은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전술(물론 히딩크 감독 부임 초기에 포백을 구사했지만 나중에 스리백으로 돌아섰죠)이라 당연히 적응하기 힘든 건 사실일 겁니다. 무엇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연습시간으로는 감독이 추구하는 전술을 소화해내기가 거의 불가능해요.
그러나 좀 더 시간을 갖고 하나둘씩 만들어 간다면 포백이 우리한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축구 스타일은 아니라고 봐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고 앞으로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좀 더 여유를 갖고 지켜볼 수 있는 태도가 쿠엘류 감독한테는 큰 힘이 될 거라고 봐요.
사실 뛰지도 못하는 내가 이곳에 앉아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러나 누구보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고 태극마크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나 축구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쿠엘류 감독이 한·일전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부족한 연습시간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난 선수들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고. 무릎 수술 후 여전히 재활훈련중인 난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나도 감독님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의 축구팬들도. 뛸 수 있는 그날까지 날 잊지 말고 꼭 기다려 주세요. 네?”
[달려라!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0
지난 22일 무릎 수술 후 처음으로 그라운드를 밟아 봤어요. 솔직히 그라운드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모처럼 접한 그라운드는 정말 색다른 감흥을 던져 주더군요.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은 ‘이제 공을 찰 수 있는 거냐?’며 관심있게 물어왔고 히딩크 감독도 ‘몸이 좋아졌냐’며 안부를 물었는데 글쎄, 내 상태가 이래서인지 그들의 관심이 마냥 고맙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입단 후 제대로 뛰지도 못한 선수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부분은 더할 나위 없이 감동을 주지만 한국에서처럼 ‘정’을 느낄 수 없는 문화로 인해 여전히 난 고군분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영표형의 이적 소식을 전해 들으며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만약 내가 임대로 왔다가 지금의 상황에 처했더라면 앞이 안보일 정도의 암흑시대가 됐을 거라는…. 이적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임대용 재활 선수의 입장은 상상만으로도 참담한 기분이 들 정도니까요. 늦었지만 영표형의 이적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어요. 엄격한 기준과 잣대가 적용되는 무대에서 영표형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러워요. 내가 못한 부분을 120% 발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참, 내일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CF를 찍는 날이에요. 한국에도 보도된 것 같은데 모 보험회사에서 히딩크 감독과 날 주인공으로 CF를 만들기로 했고 내일 아침 6시부터 촬영에 들어가요. 컨셉트는 재활중인 나를 히딩크 감독이 따뜻한 격려와 용기를 전하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내용이에요.
원래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내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엄청 부담스럽네요. 벌써부터 긴장되는 걸 보면 창피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어요. 모델료가 궁금하시다고요? 모델로는 나서지만 돈은 한푼도 못받는답니다.
구단에서 챙기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유는 입단 계약할 때 초상권과 관련해서 첫 광고만큼은 구단에서 관여한다는 내용이 있었나봐요. 우리 에이전트와 구단과의 약속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혹시 알아요? 그 광고가 잘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광고 모델을 해달라고 섭외해 올지.
재활훈련중인 선수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일이겠죠. 말은 이렇게 해도 만약 본격적으로 공을 차게 된다면 아무리 좋은 CF라도 당분간은 어려울 거예요.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죠.
수술할 당시가 ‘신생아’였다면 지금은 ‘유치원생’ 정도라고나 할까?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고 아프지 않는 그날을 손꼽으며 인사를 대신하겠습니다.
4월23일 에인트호벤에서
[달려라!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1
며칠 전 (유)상철이형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경기 중 한 선수와의 폭행 사건으로 인해 프로축구계가 아주 시끄러웠다면서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가슴이 아팠어요. 축구를 직업으로, 그라운드를 생활전선 삼아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수들 사이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빚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 거죠.
사실 축구를 하다보면 여러 형태의 태클을 가하거나 당하기도 해요. 경기의 흐름을 끊기 위해 하는 파울이 있는가 하면 상대 선수한테 해를 입히기 위해 잔인한 태클을 걸 때도 있죠. 상 2000 대 선수가 가하는 태클이 어떤 유형인지는 직접 경기를 뛰다보면 쉽게 느낄 수가 있어요.
물론 자신의 플레이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감정이 상할 때도 있겠죠. 하지만 상대 선수가 위협을 느낄 만큼 ‘잔인한’ 태클은 정말 해서는 안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악랄하게 밀착 마크를 해오는 상대 선수를 대할 땐 감정이 폭발한 나머지 이성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축구는 혼자서 하는 게임이 아니고 폭력을 휘두르다보면 게임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꾹꾹 참고 참았던 거죠. 그런 면에선 일본 선수들이 덜 거친 편이에요.
‘동업자 정신’이란 말이 달리 있는 거 아니잖아요. 특히 부상중인 선수이거나 부상당했다가 힘들게 재활훈련 끝에 그라운드에 선 선수를 상대로 거친 태클을 일삼는다면 선수 생활을 끝장내기 위한 행동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을 거예요.
(김)남일이형의 계약 문제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 친한 형인데 참으로 안타까워요. 네덜란드에 와서 정말 열심히 뛰고 열심히 훈련했거든요. 누구 탓을 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이 코너를 통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선수를 위해 존재한다는 에이전트나 매니저 분들에게요.
선수와 에이전트는 신뢰 없인 맺어지기 힘들어요. 그렇다면 선수에게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고 봐요. 결과만이 아니라 진행 과정도요. 현재 상황이 어떻고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등등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선수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참, 지난주에 생애 최초로 한 CF 촬영 후일담을 들려드리기로 약속했잖아요. 딱 한마디만 할게요. ‘연예인들, 돈 벌기 참 힘들겠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아침 6시부터 12시간 동안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찍는데 고생 ‘억수로’ 했답니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네요.
5월2일 에인트호벤에서
[달려라!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2
오늘은 5월8일 어버이날입니다. 부모님께 무슨 선물을 했냐구요? 솔직히 말해서 준비를 못했습니다. 무심한 아들이죠. 자식이라곤 달랑 한 명밖에 없는데.
사실 전 선물이나 편지 등 사람을 감동시킬 만한 ‘요소’들과는 거리가 멀어요.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죠. 괜히 쑥스러워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은 꼭 선물을 한다고 해서 전달되는 건 아니라고 봐요(마치 변명같네요). 자식이라면, 특히 나처럼 축구를 하는 아들이라면 부모님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없인 이 자리에까지 오르기가 힘들죠.
곰곰이 돌이켜보면 편하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날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해준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소홀하게 대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로 인해 가슴 아파했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저 또한 괜스레 죄송해지네요.
어렸을 때 학교에서 카네이션을 만들어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린 적이 있었어요. 물론 미술 시간에 수업의 일부분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강제적인’ 행동이 잠시나마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입학하고서부턴 카네이션 만들기도 그만뒀으니까요. 단순하게 속 썩이지 않고 성실하게 생활하는 게 효도라고 믿고 있지만 아마도 부모님 입장에선 무뚝뚝하기 그지없고 다정다감한 표현에 인색하며, 애교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마른 장작’ 같은 아들을 지켜보며 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네요.
참, 몸은 아주 좋아졌어요. 공을 차도 무릎에 통증이 없고 아주 가뿐해요. 요즘엔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하고 볼 연습도 하고 이전과 비슷한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있어요. 경기에 출전하는 것만 빼놓고는.
요즘 국내에서는 동아시아대회를 앞두고 저의 대표팀 복귀 문제를 놓고 설왕설래한다면서요? 사실 대표팀에 들어가고 말고는 전적으로 협회의 의지이지 선수 개인의 의견은 전혀 반영이 안돼요.
개인적으론 먼저 군 문제부터 빨리 해결하고 싶어요. 동아시아대회는 물론 올림픽 본선 진출도 중요하고 나아가서는 월드컵 예선을 어떻게 하면 잘 치르느냐 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잇따른 국제대회 스케줄을 감안하면 지금(5월 시즌이 끝난 후)이 적기인 것 같아요.
잠시 앞날을 고민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봐요. 4주간 군사교육을 받는 것도 시작 전부터 심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데 2년 넘게 군 생활하는 ‘형님’들 생각하면 정말 존경스럽다는 사실이죠. 대한민국 군인 ‘형님’들 파이팅!
5월8일 에인트호벤에서
[달라려!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3
안녕하세요(일부러 씩씩한 목소리로)!! 박지성, 새로운 마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이번엔 ‘떳떳하게’ 자랑할 일이 있어요. 지난 11일, 이미 보도를 통해 알고 계시겠지만 저한테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릎 수술 후 처음 경기에 출전한 거 있죠. 물론 후반에 교체 투입됐지만 통증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닐 수 있어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날짜를 정확히 헤아려 보진 않았는데 거의 두 달 만의 ‘소원 성취’였을 거예요. 수술 후 목발에 의지한 채 걷기조차 힘들었을 때는 ‘과연 내가 축구화를 다시 신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낳게 했거든요.
얼마 전 반가운 소식을 들었어요. 이천수 선수가 에인트호벤에 입단할 예정이라고요. 1명보다는 2명이, 2명보다는 3명의 한국 선수들이 네덜란드의 한 팀에서 뛸 수 있다는 건 정말 고무적인 일이에요.
천수가 이곳에 오면 에인트호벤이 상당히 시끄러워지겠죠? 천수는 에인트호벤이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에 데려다놔도 결코 기죽지 않고 할 말 하고 다닐 사람이거든요. 하지만 한 팀에 한국 선수들이 많이 소속될 경우 우려되는 부분도 있어요. 만약 팀 성적이 안 좋은 상황에선 가장 많은 책임감과 부담감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죠.
지난호 일기에도 언급했지만 여전히 제 군입대 문제가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월드컵을 통해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건 ‘맞습니다, 맞고요∼’. 그래서 6월에 있을 월드컵 기념 행사나 A매치대회에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옳다고 봅니다. 하지만 전 이렇게 생각해요. 꼭 6월에 있는 행사에 참여해야만 월드컵으로 인해 받게 된 혜택에 보은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더 중요한 대회가 많이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마음의 짐을 벗고 남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하는 거죠.
가끔은 아무 것도 모르고 공만 찼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즐거운 마음으로 축구를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정말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거든요.
요즘엔 이런 생각을 해봐요. 사람한테는 매 순간마다 ‘숙제’가 주어진다는 그런 생각을. 무릎 수술을 받을 당시엔 재활에 성공하기만을 바랐는데 지금은 운동장에서 뛰게 되니까 이런저런 문제들이 불거져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하네요. 언제쯤 ‘인생의 숙제’ 없이 마음 편히 살 수 있을까요. 어린 나이에 하는 말치곤 너무 건방진 거죠? 제가?
5월15일 에인트호벤에서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4
지난주는 (송)종국이형 때문에 쇼크를 먹은 한 주였습니다. 전혀 예상조차 못했던 결혼 발표를 한 거죠. 종국이형 결혼 소식을 듣고 저한테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전 정말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거든요. 언뜻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짠’하고 결혼 발표를 할 줄 정말 몰랐어요.
솔직히 축하하는 마음보다 ‘배신감’이 더 컸습니다. 종국이형한테 전화를 걸어서는 “언론을 통해 결혼 소식을 알았기 때문에 축의금을 내지 않겠다”고 했더니 종국이형, 특유의 ‘가식적인’ 목소리로 “미안해. 어쩔 수가 없었다. 이해해 달라”며 축의금을 챙기려고 머리 숙이는 걸 마다하지 않더군요. 아직도 생각중입니다. 축의금을 낼 지 안낼 지에 대해선.
(이)영표형에 이어 종국이형까지 결혼하는 바람에 졸지에 저만 ‘왕따’가 되는 느낌입니다. 네덜란드에서 활약중인 3명의 한국선수들 중 2명이 유부남이 되는 상황은 좀 묘한 기분을 들게 하거든요. 81년 닭띠인 저로서는 아직도 결혼은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까마득한 이야기이니까요.
담당 기자분이 저한테 여자친구가 있는지를 집요하게 묻더군요. 여자친구요? 물론 많죠. 아,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냐고요? 이건 정말 비밀인데….
대학 때 첫사랑이 있었어요. 동갑내기였죠. 그 스토리는 솔직히 밝히기 싫어요. 비밀이니까.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내요. 좋은 감정이 있긴 하지만 글쎄요, 그런 만남이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지는 모르는 거죠. 이 얘기는 우리 부모님도 모르는 내용인데, 이 일기 나간 후에 뭐라고 하실지 걱정이네요. 첫사랑이었지만 지금은 좋은 친구 사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거예요.
영표형, 종국이형 진심으로 결혼 축하해요. 영표형은 결혼을 통해 훨씬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정말 부러워요. 그리고 앞으론 영표 형네 집에서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게 될 것 같아 엄청 기대가 큽니다(그동안 이영표는 음식 솜씨 좋은 박지성 의 어머니가 차려준 맛난 저녁 식사를 먹기 위해 수시로 박지성네 집을 들락거렸다고 한다).
종국이형은 배신감 때문에 축하할 마음이 생기진 않지만 어린 나이에 장가갈 수 있는 능력이 부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어여쁜 형수님과 토끼 같은 자식 낳고 오래오래 행복한 결혼 생활하시? 2000 ? 바랍니다. 두분 형님들, 모두 축하드립니다!!
5월23일 에인트호벤에서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5
세월이 참 빠르네요. 월드컵 1주년이 됐다고 해서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 걸 보면 정말 기분이 묘해지는 것 같아요. 상상(유럽 진출)이 현실로 이뤄지면서 잠시 꿈 같은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는 것처럼 부상과 재활 등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월드컵 이후 1년을 맞이한 셈이에요.
월드컵 경기 중 가장 기억나는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개인적으론 포르투갈전에서 첫 골을 넣었을 때가, 그리고 대표팀 선수로선 폴란드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국민들의 엄청난 응원 열기도 경기 못잖게 재미있었고 선수들을 흥분하게 했어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봐요. 또다시 그때 그 순간의 감격과 감동을 맛볼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월드컵 하니까 코치님들이 생각나네요. 동네아저씨 같은 박항서 코치, 엄하면서도 남자다운 기질을 느낄 수 있었던 정해성 코치, 그리고 외모완 달리 꼼꼼함의 극치를 달린 김현태 코치, 정말 보고 싶고 안부 인사 전하고 싶어요.
내일(5월29일)은 에인트호벤에서 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날이에요. 이 또한 감회가 새롭네요. 네덜란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교차했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말이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릎 수술을 받았던 기억도 잊지 못할 거예요. 재기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어요. 심각한 상태도 아니었고 날 응원해주는 많은 한국팬들이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요.
29일 경기를 마치면 30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됩니다. 6월9일 설만 무성했던 군사훈련을 받으러 입소하게 되는 거죠. 한국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렐 정도예요. 사실 그동안 말을 안했지 이곳에서 생활하며 마음 고생 또한 많았답니다. 강하고 센 척, 표정의 변화 없이 지냈어도 속으론 숱한 갈등과 고민과 걱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어요.
군 입소를 하게 되면서 <일요신문> 독자 여러분들과도 잠시 이별을 해야할 것 같네요. 군대에서 좀 더 사내답고 씩씩하고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해 퇴소 후 다시 소식 전할 게요. 더욱 발전한 모습으로 여러분에게 인사드릴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꼭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충성!
5월28일 에인트호벤에서
[달려라!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6
안녕하세요. 돌아온 ‘예비역’ 박지성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곳은 영국 런던이에요. 전지훈련차 오늘(7월30일 현지시각) 이곳에 도착해서 연습경기를 ‘관전’하고 숙소 호텔 방으로 돌아와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리고 있어요.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이유는 수술한 무릎 부위에 물이 차는 등 통증이 재발됐기 때문이에요. 팀 닥터 얘기로는 피로 누적에 의한 것일 뿐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피스컵대회 동안 멀쩡했던 무릎이 네덜란드에 오자마자 ‘가동’이 중단됐다는 게 좀 신경이 쓰이네요.
요즘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진출한 이천수에 대한 뉴스가 끊이지 않는 것 같아요. 천수라면 정말 유럽에서 잘 해낼 거라고 믿어요. 어떤 상황, 어떤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은 스페인에서도 잘 통할 테니까요. 전 예전에 네덜란드에 진출하자마자 부상을 당해 심리적인 위축감이 상당히 컸어요. 무릎 부상이 완쾌되면서 가장 기뻤던 일이 자신감 회복이었으니까요.
천수랑 저랑 81년생으로 동갑이긴 하지만 대표팀에서 만나면 천수는 저한테 깍듯하게 “형”이라고 불러요. 천수는 00학번이고 전 99학번이거든요. 동갑인데 무슨 ‘형’이냐고요? 학번이 다른데요, 당연히 제가 선배 대접을 받아야죠.
지난번 한국에서 (황)선홍이 형이 제 인터뷰 스타일에 대해 쓴소리를 했더라고요. 한마디로 인터뷰 내용이 별로 재미없다는 거죠. 인정합니다. 공식 기자회견장에선 저도 모르게 경직되곤 하거든요. 그런데 대답이 재미없다는 부분에선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기자들이 질문하는 내용이 뻔한 대답을 하게끔 만들거든요.
예를 들면 이렇죠. “경기 소감은?” “열심히 뛰었습니다” “다음 경기에 대한 각오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뭐, 이렇거든요. 그런 자리에서 말을 재치 있고 재미나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편한 자리도 아니고. 하지만 노력은 할 거예요. 말솜씨가 없다는 건 득보다는 실이 많잖아요.
비록 4주간의 짧은 군사훈련이었지만 마치고 나니 후련하네요. 이젠 휴가 기간 동안 군대에 갈 일도 없고 완전히 쉴 수 있잖아요.
전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 ‘감옥’은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탈출할 수도 있고 주저앉을 수도 있는 곳이에요. 자유와 기회가 있는 네덜란드의 ‘감옥’에서 박지성이 펼칠 힘찬 활약을 기대해 주세요.
런던에서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델란드 일기17
지난주엔 런던에서 인사를 드렸는데 지금 이곳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의 ‘마이 하우스’입니다. 부모님이 한국에서 추석을 보내고 들어오신다고 하셔서 당분간 혼자 지내고 있는데 여러 가지로 불편할 거란 예상을 깨고 살림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해요.
집안일 중 가장 하기 싫은 게 청소예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먼지 쌓이고 지저분해지는 건 마찬가진데 굳이 자주 청소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머니가 전화로 청소 좀 자주 하라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청소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친해질 수가 없는 ‘뭔가’가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요리입니다. 이래 봬도 자취 경력이 ‘박사급’이라 음식 맛을 내는 건 자신 있어요. 된장찌개는 먹어본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질 정도로 일품입니다. 자화자찬이 절대 아니에요. 쌀뜨물에다 된장을 풀어서 끓인 후 우거지를 넣고 마지막에 마늘, 다시다 등을 첨가하면 ‘국물 맛이 끝내줘요’이거든요. 갑자기 박지성 일기가 요리 강습서가 되고 말았네요.
지난 3일(현지시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튼햄 핫스퍼와의 친선경기에서 제가 첫골을 넣은 거 아시죠?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수술한 오른쪽 무릎에 물이 차서 영국 전지훈련 동안 게임을 못뛰다 출전한 거라 굉장히 기뻤어요. 물이 빠졌냐고요? ‘배수’가 잘 안돼서 그런지 아직도 좀 남아 있어요. 의사 말로는 그냥 놔두면 저절로 빠진대요. 참 신기하죠.
어떤 팬이 이런 걸 물어보시더라고요. 히딩크 감독이 휴가 기간에 선수들한테 훈련 프로그램을 나눠주잖아요. 저 또한 재활 프로그램을 받아서 훈련한 적도 있었고요. 그런데 프로그램대로 다 소화해내는지가 질문 사항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숙제’를 잘하는지, 아님 ‘땡땡이’를 치는지, 그리고 감독님은 ‘숙제 검사’를 어떻게 하는지, 뭐 이런 게 궁금하셨던 것 같아요.
솔직히 고백하건대 1백% 프로그램대로 훈련하진 못해요. 감독님도 잘 모르거든요. 물론 플레이하는 걸 보면 대충 짐작은 하실 수 있을 거예요. 프로 선수들은 못 뛰고 부상당하면 자기만 손해니까 선수들에 맡겨두는 거죠.
요즘 한국에선 (김)남일이형이 ‘본업’을 버리고 골게터로 나서며 연신 골을 넣고 있다는 소식이 화제를 모으고 있나봐요. 남일이형은 ‘진공 청소기’라는 별명을 싫어하지만 별명대로 그라운드는 물론 팬들의 뜨거운 응원까지 빨아들이는 무서운 흡인력을 발휘한다면 그동안의 아픔을 치유할 ‘명약’이 될 겁니다.
저 또한 네덜란드 리그를 제대로 ‘청소’할 수 있도록 정말 죽기 살기로 뛸 거예요. 무릎에 또 물이 차면 어떻게 하냐고요? 뭘 어떻게 해요. 물 빼고 뛰어야지.
에인트호벤에서
[달려라!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8
오늘은 여러분께 솔직하게 고백할 일이 있어요. 사실 네덜란드에서 생활하며 동료 선수들 말고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이 있거든요. 여자입니다. 정말 이러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어요. 팬들의 이해를 바라며 그 여자 분의 정체에 대해 속 시원히 밝히겠습니다.
이름은 세실리아.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30대 중반 정도? 너무 연상이라고요? 뭐, 어때요. 그 정도의 나이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자신이 있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둘이나 있다고 말하면 좀 상황이 심각해지죠?
하지만 그것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요. 영어 공부하는 데 ‘선생님’이 유부녀든, 아이가 둘 있는 아줌마든 무슨 상관 있겠어요. 하하. 놀라셨죠? 제가 연상의 여자와 열애중인 줄 알고.
지난 4월부터 (이)영표형과 저의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무지 애쓰고 있는 분이 세실리아 선생님인데 가끔은 선생님으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고 집으로 ‘데이트’하러 갈 때도 있어요.
내일 모레(현지시간 15일)면 로다 JC와의 개막전으로 03~04시즌 대장정에 돌입하게 되네요. 네덜란드 리그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에요. 지난 11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2003요한크루이프슈퍼컵대회(이름이 길고도 어렵죠?) FC 위트레흐트와의 경기에서 네덜란드 리그 생활 중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사실 한국에 보도된 칭찬 일색의 내용과 실제로 제가 뛴 경기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어요.
솔직히 잘 뛴 경기는 아니었거든요. 당시 몸 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았고 네덜란드 땅이 나와 안맞는 건지 글쎄요, 썩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개막전을 치러봐야 알겠지만 요즘 팀내 주전 경쟁이 상당히 치열해요. 냉정하게 말해 경쟁 선수의 아픔이나 부상이 내 기쁨이요, 기회일 정도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힘은 들지만 이런 팀 분위기가 제게는 도전이자 빠른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믿어요.
동료 선수들한테는 박지성이란 존재를 어느 정도 보여줬다고 생각? 2000 萬?. 하지만 아직까지 에인트호벤의 팬들한테는 뭔가를 보여주지 못했어요. 이번 시즌에는 꼭 그 ‘숙제’를 해낼 겁니다. 부상당한 선수의 재기를 넘어선 그 무엇을 꼭 보여주고 인정받을 거예요.
참, 초등학교 때 제 별명이 ‘미키 마우스’란 거 아세요? 잘못 알고 계신 팬들이 많은데 ‘미키 마우스’가 제 외모 때문에 생긴 별명이 아니에요. 초등학교 축구부 선생님께서 생쥐처럼 요리조리 공을 잘 차고 잘 빠진다며 붙여준 별명이었거든요. 그런 거룩한(?) 의미의 닉네임인데 특히 웃는 모습의 제 외모를 빗대 ‘미키 마우스’라고 단정짓는다면 아마도 그 선생님께서 무척 서운해하실 것 같은데요.
이번 기회에 별명을 한번 공모해 볼까요? 박지성이란 축구선수에게 어울릴 만한 폼 나고 멋진 그런 별명 어디 없을까요? 근사한 별명을 지어주신 분께는 제 사인이 들어간 사인볼을 선물하겠습니다. 진짜예요. 여러분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대하며 다음 주에 뵐게요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19
지금은 이곳 시간으로 밤 12시예요. 이제 곧 잠자리에 들 시간이죠. 지금 자면 아침 8시에 일어나서 9시까지 오전 훈련에 나가요. 오전 훈련만 마치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셈인데 빠듯한 생활을 하는 일반 직장인들에 비하면 상당히 ‘널널한’ 상태에서 운동을 하는 거죠.
오전 훈련 마치고 집에 와선 식사하고 오수를 즐깁니다. 그 이후 뭐하냐고요?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게임을 즐기며 보내요. 시간이 많다보니까 외로움도 더 커지고,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상황들이 가끔은 짜증 날 때도 있네요.
지난 번 로다 JC와의 시즌 개막전(16일)에선 상당히 부진한 플레이를 펼쳤어요. 무척 속상했고 저 자신에 대해 화도 났습니다. 아무래도 네덜란드 땅이 절 싫어하나 봐요. 히딩크 감독은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플레이하라”고 주문하지만 어디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나요?
제 판단으론 컨디션 난조보다 정신적인 면이 큰 것 같아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절 너무 꽉 조이게 해요. 물론 오버해서 생각하는 부분도 있겠죠. 만약 제가 한국에서 뛰고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 거예요. 요즘은 외국에서 용병생활을 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하고 겪어내고 참아야 하는 것인지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이겨내야죠. 누가 저 대신 경기를 뛰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러다 몇 게임 뛰면서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보다 활발한 경기내용을 보여줄 수 있겠죠.
스트레스를 받아도 여기선 표출할 수 있는 데가 없어요. 친구도, 여자(?)도 만날 수 없잖아요. 마치 수도승처럼 도 닦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반복되는 일과가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는 절 더 힘들게 합니다.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만나는 ‘여자’라면 (이)영표형 형수님이에요. 예전 영표형이 우리 집에 와서 식량을 축냈듯이 저 또한 영표형의 눈치를 살피며 형네 집에서 자주 식사를 해결합니다.
맛난 음식으로 배를 채우긴 하지만 영표형네 집을 나올 때는 괜히 씁쓸해져요. 부럽기도 하고.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을 엄청나게 달라 보이게 하는 거 있죠?
영표형네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 5년 뒤에 장가가려는 제 계획을 조금은 앞당겨야 할 것 같아요. 사실 5년을 홀로 지내는 건 너무 가혹한 일 아닌가요? 좋은 여자 만나서 밀고 당기는 일 없이 후다닥 가야죠. 장가 말이에요. 지금 그런 여자가 있냐고요? 극비사항이기 때문에 ‘노코멘트’ 하하.
이번주 일기는 신세 한탄만 하다 끝나네요. 좀 더 단단해지고 야물어진 모습으로, 그리고 박지성다운 플레이로 다음주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에인트호벤에서 지성이가
[달려라! 천방지축] 박지성의 네덜란드 일기 20
여러분 저 드디어 첫 골 먹었어요! 지난주 일기에 좀처럼 컨디션이 살아나지 않아 초조한 심경을 글로 표현했는데 마침내 첫 골이 터지면서 네덜란드 축구팬들이나 팀 동료들한테 체면치레를 하게 됐습니다.
지난 24일(한국시간) 에인트호벤 홈경기장인 필립스스타디움에서 열린 빌렘Ⅱ와의 경기는 좀 절박한 심정으로 준비를 했어요. 다른 건 몰라도 오로지 게임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죠. 경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미리 구상도 해보고 아마 어느 때보다도 정성스럽게 경기 준비를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1골 2도움의 맹활약을 펼쳤어요. 물론 팀이 6-1로 대승하는 바람에 골의 의미가 조금은 퇴색된 듯하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수많은 경기 중 이제 겨우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일 뿐 크게 기뻐하거나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겠죠. 그런데 동료들이 따뜻한 축하 인사 한마디 건네지 않네요. 한국 같으면 “잘했다”거나 “좋았다”는 등등의 격려 정도는 해줄 텐데 말이죠.
얼마 전 (설)기현이형이 소속된 팀이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진출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어찌나 부럽던지. 챔피언스리그는 유럽의 정규리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만큼 최상의 클럽대회죠. 거의 월드컵 수준이라고 보면 돼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내년엔 에인트호벤이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예요.
한국에선 제 나이가 어리다고들 하는데(몇 살이냐고요? ‘신문용’ 나이와 실제 나이가 다르다는 거 아시죠?) 여기선 절대 ‘어린애’가 아니랍니다. 저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선수들이 1부리그에서 뛰고 있는가 하면 ‘꽃미남’으로 대표되는 산타 크루즈, 오웬이나 사비올라 등도 동갑내기이거든요.
‘아직 어리니까’ 하는 생각으로 안주하려다간 조기 퇴출당하기 십상인 곳이 바로 유럽인 것 같아요. 비록 ‘꽃미남’과에는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축구 실력으론 위의 동갑내기들을 능가할 정도는 돼야 하겠죠. 그래서인지 전 중퇴로 끝난 대학 졸업장이 아쉽지가 않습니다.
참, 인터넷이 2주 정도 불통되고 있어요. 부주의로 이용요금이 연체된 모양이에요. 그래서 전 요즘 암흑세계에 살고 있답니다. 저한테 메일 보내는 팬 여러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인터넷이 재개통되는 날, 바로 답메일 쏘겠습니다.
8월27일 에인트호벤에서
첫댓글 고종수 교토 있을때 베어백이...
재밋어욧![~](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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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것도 재밋는데요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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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아 3년전이니...갱장히 귀엽구낭![ㅋ](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5.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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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귀여운것...너의 귀여움은 해가갈수록 섹시함과 교태가 보태져..더욱 빛을 발하는 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 영표의 전도에도 넘어가지 않다니;;;;;;;;;;;;; 내가 전도해볼게요 !!!!.....-_-;;;
딸기소년?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