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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110년(2025) 4월 6일 정례법회에서
무타원 김덕전교감님의 '네가지 공부길'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법회사진과 함께 정리합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도 봄이 왔나요?
세상은 봄이 왔는데 아직도 내 마음이 얼어 붙으면 아직 봄을 맞을 자세가 안 되어 있는거에요.
내 마음도 봄이 왔어요.
세상에 봄이 오면 내 마음도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활짝 열어야 되겠죠.
우리들 마음속에 봄이 다 왔으리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다들 웃어 보세요.
나이가 먹으면 눈도 쳐지고 입꼬리도 쳐져요. 그 다음에 볼턱이 쳐져요.
그러나 내가 마음을 행복하게 하면 입꼬리도 올라가고 눈꼬리도 올라가요.
피부가 처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요.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피부 변화예요.
마음이 처지는 것을 자꾸 올리면 기운이 올라가요.
기운이 올라가면 그 연세에 대해서 내 얼굴은 그대로 있지만 기운이 나와요.
이 좋은 계절에, 꽃 보고 화내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너 왜 폈냐? 이렇게 화내는 사람 있어요? 없죠.
그 사람은 어디로 가야 돼요?
꽃 보고는 다 웃어요.
이 계절에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는 것은 누구냐? 나죠.
이 짧은 계절에 내가 마음껏 자연이 주신 선물을 한껏 내가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이 얼마나 예쁜지 알아요.
동백이 겨울을 이기고 동백꽃이 하나가 폈어요.
딱 하나가 폈는데 동백이 핀날이 우리 교도님들이 쉬는 날이었어요.
일요일 날 얼마나 제 마음이 아깝던지, 좀 일찍 피든지 좀 늦게 피든지 너무너무 아까워 하면서 저만 봤어요.
그런데 교도님들이 오시는 일요일 날 그게 똑 떨어져 버렸네요.
너무 아까워서 제가 살짝 걸쳐놨어요. 교도님들 다 속았죠?
다행히 일요일까지 계속 있더라고요.
매화도 피었고, 목련도 너무 예쁘죠. 그리고 벚꽃이 지금 피려고 해요.
또 화단에 개나리가 폈어요. 조금 있으면 철쭉도 피는데 우리 화단에 있을 것은 다 있어요.
현산님이 꽃장미도 심어놓고 환경미화를 했어요.
교당에 오시면 뭐가 달라졌지, 우리 교당에 뭐가 났지하면서 보는게
이것이 주인의 마음이니까 우리 교당에 오시면 한 번씩 다 두루두루 살펴보셔요.
기다리고 있어요.
교당의 모든 나무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어요.
교당을 잘 살피는 우리 교도님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선진님께서 가끔 "너 까닭있게 사냐"하고 물어봤대요.
까닭 있게 사냐라는 것이 뭐죠?
총부에 계시면서 교무들이 가면 너 까닭 있게 사냐고 물어봤대요.
까닭있게 사느냐라고 할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어떻게 사는 것이 까닭있게 사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한테 까닭있게 사냐고 물어보면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까요?
그냥 살아, 그냥 내친대로 살아요 할려나요.
까닭있게 산다는 것은 내 마음을 잘 챙기고자 하는 거잖아요.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사는 것은 까닭있게 사는 게 아니에요.
내 마음이 오늘 할 일을 내가 계획하면서
그 일에 정성을 들이고 일심으로 잘 처리하고 사는게 까닭있게 하는 것인데
그럼 우리 공부인에게는 까닭있게 사는 것이 뭘까요?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를 하는 것.
내가 오늘도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를 했는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까닭있게 사는 것.
우리 공부인 들이 까닭있게 살아야 되는데
마음을 잘 챙겨서 살아야 되는 것이 까닭있게 사는 것이죠.
까닭있게 사는 것을 네가지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청법 수도로 경전을 많이 봉독하는 것
대종사님, 정산종사님, 대산상사님 그리고 많은 지혜의 서적, 다른 성현의 서적을 많이 읽고 듣는 것.
경전을 봉독하는 데는 정독 문독이 있는데 정독은 고요하게 읽는 거에요.
마음을 온전히 하면서 경전봉독하는 것이고
문독은 의심을 가짐, 읽다가 이게 뭐지 하고 의문 사항을 찾아가면서
내가 의심나는 게 있으면 경전을 보며 해답을 얻는 것이 문독.
경전을 많이 듣고 많이 읽는 것이 청법 수도.
경전을 많이 봉독하는데 두 가지가 있는데 정독 문독.
경전에 길이 있다고 그러죠.
경전은 인생의 길을 알려주는 방향로를 제시하는 것이 경전이죠.
대종사님은 어땠을까?
내가 지금 이러한 상황이 됐는데 내가 이럴 때
난 천도품을 읽어봐야 되겠다, 인과품을 읽어봐야 되겠다. 내가 수행품을 읽어봐야 되겠다.
내가 원리편을 읽어봐야 되겠다, 이렇게 하면서 내가 그 것을 알아내는 거예요.
경전은 내 인생을 걸어가는데 내 길을 제시하는, 방향로를 제시하는 것이 경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경전을 봉독한 다음에는 반드시 요약을 해야 돼요.
그냥 읽고 듣는 게 아니라, 내가 경전을 정독을 했다면
대종사님께서 이 법문에서 정말로 참된 의의를,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셨을까
그냥 읽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대종사님의 뜻을 찾아가는 거예요.
경전을 읽으면서 내 스스로 내가 요약을 해보는 거예요.
대의(大意)를 찾아보는 거에요.
경전을 읽으면서 하나하나 구절구절을 읽으면서 요약을 해보고 대의를 찾아보는 거예요.
그래야 경전을 읽으면 안 잊어버려요.
그냥 경전만 읽으면 안되요.
경전을 정독을 하면서 정독이 끝난 다음에는
여기에 대의가 뭐지 대종사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고 법문을 하셨지?
나름대로 대의를 찾아봐야 돼요.
그리고 그것을 실천해 본다는 것까지 나가야 되요.
대의를 찾고 나면 그 안에서 혜안이 열려요. 지혜가 열려요.
아~ 그렇구나. 대종사님께서는 이 법문에서 이 대의를 말씀하셨구나
우리한테 이걸 말씀해 주시는구나 하고 내가 찾으면
거기서 이제 혜안이 열려 법등이 켜지는 거에요.
교전 속에 법등을 켤 수 있는데 법등이 그냥 이런 형광등같이 켜지나요?
법등은 내 자명등이에요. 내 안에 있는 나의 자명등을 키우는 거예요.
그게 혜안이에요.
법문을 많이 읽으면 사리연구 과목인 혜안이 밝아져요.
사리연구는 지혜력이 나타나는데 경전을 많이 읽으면 내가 지혜가 밝아져요.
그러면 나의 법등이 켜지는데
법등이 뭐냐, 혜안이 열리는 게 뭐냐
아~ 그렇구나 이 법문에서 이 말씀을 하셨구나하면서 내 자명등이 확 켜지는 거예요.
그러니 그냥 읽으면 절대 자명등이 켜지지 않아요.
그래서 청법 수도는 법문을 잘 읽음으로, 읽고 나서 내가 그 법문에서 대의를 찾아서
아~~ 그렇구나 하면 이제 법등 자명등이 확 켜지고
내 자명등이 켜지면 실생활에 실천이 되겠죠.
그래서 교전 연마를 많이 하는 것이다.
사경하면서 오늘은 더 많이 해야 된다고 타자만 많이 하는 것은 청법 수도가 아닙니다.
좀 늦어도 사경을 하면서 대종사님의 법문을 내 자명등으로 켜야지
오늘 숙제하듯이 하면 절대로 자명등이 켜지지 않는다.
사경도 처음에는 손으로 썼는데 지금은 다 컴퓨터로 하죠.
근데 타자만 따다닥하고 오늘 내가 몇 장을 했지, 이러면서 하면
이것은 절대 청법 수도가 아니다. 아셨죠?
사경을 늦게 하더라도 조금 하더라도 내가 사경을 하면서
대종사님의 법문을 내 마음속에 새기며, 자명등을 켜는 것도 사경이에요.
자판만 두드리고 글씨만 쓰는 것이 절대 사경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유념 수도로 청법 수도를 실천하는 것이 유념 수도이다.
내가 교전을 잘 읽고 나면 그 다음에 뭐 해야 돼요?
그냥 읽고 끝나요. 실천을 해야죠.
대종사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해라고 법문에 놔주셨으면
이런 걸 읽으면서 내가 잘 유념해야 합니다.
유념해서 실생활에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까닭있게 사는 법, 두 번째입니다.
그래서 상시응용 주의사항, 교당내왕시 주의사항을 보면 전부 주의할 것인데
잘 마음에 유념해서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까닭있게 사는 거예요.
까닭없게 살면, 마음이 밖으로 나가면 실수가 많죠.
내 마음이 정돈되고 계획대로 차근차근 유념을 해서 하면
실수가 적어지잖아요.
세 번째는 자성 수도예요.
법문을 봉독하다 보면, 대소유무 이치와 인과의 이치와 음양상승의 이치를 알 수가 있지요.
그래서 법문속의 이치를 발견해서 의문을 가지는 거예요.
그래서 의심거리를 가지다 보면 그것이 뭔 공부가 되냐면 성리 공부예요.
자성 수도는 성리 공부를 해야 되는 거예요.
대우주의 이치를 내가 연마하는 거, 그게 까닭있게 사는 거죠.
그냥 물 흐르듯이,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해가 떴구나.
오늘도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저녁에 또 해가 졌구나. 또 자야 되겠구나.
이렇게 그냥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진리를 연마하는 거예요.
이것이 자성 수도이다.
자성 수도를 하고 나면 성리 공부를 하고, 의두 요목과 성리 다 아시죠?
의두 요목과 성리 연마를 잘 하시고 나면
덕성 수도, 덕성, 최고의 꽃, 덕으로 피어나는 거예요.
지혜보다 덕이 더 높은 거예요.
그래서 제일 마지막에 까닭있게 잘 살아가는 마지막 단계는 덕성 수도이다.
마지막에 덕으로 화하는 것이 제일 까닭있게 사는 것.
그 마음을 잘 지키면 양성이죠.
양성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면 우리는 그걸 솔성이라 합니다.
자성 수도의 마지막은 덕.
까닭있게 잘 사는 사람은 이기주의적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리이타로 사는 사람이 까닭있게 사는 사람.
청법 수도는 나 자신.
유념 수도도 나 자신.
자성 수도는 자리이타
우리가 까닭있게 사는 것은 자리이타로 나도 이롭고 너도 이로운 것.
나는 손해 보고 너만 이로운 게 아니에요.
내가 공부를 잘해서 나도 이롭고 더불어 화해서 자리이타가 되는 거예요.
그게 까닭있게 잘 사는 거.
최후의 까닭 있게 사는 사람은 덕으로 나온다.
덕성 수도를 한 사람이 머물고 간 자리는 항상 따뜻합니다.
찬바람이 없어요, 온화합니다.
덕성 수도를 한 사람의 말은 온화하고 남의 말을 비판하지 아니하고 이해하고
자비로운 말이 나오고 온화한 말이 나오고 살려주는 말이 나와요.
어떤 말이든지 그 사람을 죽이는 말이 안 나와요.
그래서 까닭있게 사는 사람은 말부터 조심한다.
덕성 수도에서 없애야 할 것이 하나 있어요.
덕성 수도에는 반드시 없애야 할 것이 상이에요.
내가 했다는 상이 있으면 그 덕성 수도에 마지막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니다.
덕성 수도를 했다 하더라도 상 때문에 꽃을 못피워요
나라는 것이 끝가지 있어요.
내가 까닭있게 잘 살았느냐는
공부인에게는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하고 사는 것.
그러면 어떻게 내가 하루를 살아 가야하나
청법 수도, 유념 수도, 자성 수도, 덕성 수도
덕성 수도에서 공부해야 될 것은 나의 놓는 것,
그래야 덕성 수도의 꽃이 핀다.
교도님들 날마다 다 까닭있게 사시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걸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는 다르겠죠.
다들 공부심으로 사실 것 같은데
정말 내가 이걸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는 다르다고 봐요.
청법 수도, 그냥 글로만 읽지 말고
대종사님의 법문과 정산종사님의 법문, 대산종사님의 법문이
나한테 무엇을 전해주려고 했을까를 찾아내서 유념을 하는 거에요.
그 다음 단계는 실천을 해야죠.
나의 자명등, 내 안에 법등을 밝힙니다.
밝아지고 나서 뭘 해야 되겠어요?
자리 이타를 해야 되겠죠. 그래서 세상을 덕있게 사는 것.
사심이 나오면,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없애야 되겠죠.
키우지 마시고 까닭있게 잘 사셔서 내가 내 공부길을 잘 잡아서
교도님들이 어디를 가든지 그분이 그 자리에 있으면 항상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그분이 그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이 다 인정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머물고 간 그 자리에 저 사람 참 그랬어. 참 저 사람 참 좋아
이런 말을 다 들었으면 저는 참 좋겠습니다.
우리 인천교당 교도님들 그렇게 우리 생활해 갑시다.
저 또한 부모님들이 모인 자리, 어디 가서든지 이것을 유념해서 잘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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