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작된 만화가로서 이두호의 2막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보여주게 된다. ‘만화를 그리자’라고 마음을 먹자, 곧바로 ‘어떤 만화를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고, 그에 대한 답은 명확했다. ‘바지저고리 만화’(조선시대 역사와 민중들에 대한 만화를 그려 붙여진 이름)로 방향을 정한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결심은 처음에는 고생을 요구했다. 하지만, 1년여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점차 주변에서도 그의 만화를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만화를 싣는 잡지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로 어느 잡지에 누가 무슨 작품을 하고 있는지 편집자나 독자 모두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작품이 어떤 작품일지 대체로 윤곽이 그려지게 된 것이죠.” 일반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작가와 편집부가 어떤 작품을 하자고 논의를 거치기 마련인데, 이두호의 경우 청탁이 들어올 때 마감날짜와 분량만 이야기하면 되었다. 이미 ‘이두호 만화’에 대한 기대치가 자리 잡혀 있었고, 그에 따라 작품의 진행은 순전히 그의 몫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만화는 만화가에게 있어서 그 자체로 명함’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한 가지 장르에 대한 고집은 작가에게 있어서 강점도 되는 반면 한계도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우려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해요. 그러나 나의 경우 만화를 그리겠다고, 만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이미 시대물 즉 ‘조선시대’만을 그리겠다고 다짐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을 한계로 여기지는 않아요. 처음부터 ‘무슨 만화를 할 것인가’가 중요했으며, 지금도 만화가는 ‘어떤 만화를 그렸느냐’에 따라 판단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역사’ 소재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광범위하다고 생각했으며, 표현하기에 벅차다고 느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문제의 중심은 더욱 진지해졌고 자연스럽게 ‘조선시대’로 한정지은 것이다. 그와 같은 뚝심은 작품활동 내내 빛났다. 지금까지 발표된 ‘바지저고리 만화’의 작품 수는 대략 30여 편. 하나의 작품을 시작하면 그 작품에 대해 적어도 평균 1년 이상 매진했다는 얘기다. “연재를 해본 경험에 비추어 월간지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 주간지는 열 달 정도가 작품 하기에 알맞은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헌데, 실제 연재를 하다 보면 대체로 그 기간을 훨씬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내 경우 3년 연재한 작품들이 꽤 많은 것 같네요.” 이러한 사실은 이두호 만화의 꾸준한 인기를 반증하는 셈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잡지연재의 경우 작품이 재미가 없으면 서둘러 종료하거나 내용을 바꾸거나 심지어 중단되기까지도 한다. 그 때문에 만화는 그 시기에 유행하는 소재를 다루는 경향이 많은데, ‘바지저고리 만화’는 유행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스스로는 ‘무식하게 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러한 뚝심이 있었기에 이두호만의 고유한 만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