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노리는 건 ‘한국 흔들기’
반일감정은 여전히 뜨겁다. 정치권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점은 한. 일 양국정치인들이 장래보다는 우선 발등의 불을 끄고자 똑 같은 현상을 보이고 있는 상황 같다.
엊그제까지도 여당의 지위에 있었던 야당은 정부의 대일외교가 잘못됐다고 정부를 탓하고 있고, 야당이던 여당도 독도 주변에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야 한다고 원칙적인 발언만 해대고 있다. 만약에 이 기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반애국적 매국적인 생각이라고 낙인 찍히기가 십상이다. 일본 외무성이 매년 하여온 대로 외교백서를 발간하며 독도를 자기들의 영토라고 한데서 연유하였고 한국 내에서 정치문제로 점화되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문제에 이어, 금강산 관광객의 피살사건, 그리고 이번의 독도문제는 마지막 몇개월의 임기를 남겨놓고 있는 현 이명박 정부에게 계속적인 악재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금번 독도문제는 속 좁은 일본 사람들의 내심을 여실히 드러내어놓고 말았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분쟁 해결의 길은 잘 보이질 않는다.
나는 우리 국민의 위대성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의심을 해본 적이 없다. 과거 80년대 초, 요르단에서 근무할 때 천생이 벙어리이고 귀머거리인 당나귀 ‘호마르’ 를 토목공사에 이용한 우리 젊은 기술자들의 뛰어난 현지 적응능력과 일 처리능력, 그리고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 장롱에서 패물을 꺼내 나라 살리기에 앞장선 아주머니와 할머니 등 우리 일반국민들의 용기 있는 애국심, 그리고 붉은 악마의 열정과 애국적 선행 등을 수없이 보아왔다. 참으로 이 문제들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자랑과 칭찬에 인색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독도문제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이 우리의 격렬한 반응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들은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정부도 주일대사를 소환해 놓고 있었다. 그런데 국민의 열화는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는 일본의 의도대로 뜨거워만 가고 있다. 감정적 정치적으로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성적이고 외교적인 방법으로 점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국민보고 조용히만 있으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떠들 땐 떠들어야만 협상하는 사람들도 이를 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국민의 소리가 들릴 만큼 이미 요란해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맨 처음 시작이 일본의 장난이 아닌가? 옆 나라의 계산된 장난에 일희일비할 이유는 없는 게 아닌가! 우리가 그렇게 감정적 반응을 앞세운 국민이란 말인가?
“권 대사. 동북아지역에서 오신 대사로서 솔직히 한·중·일 3국의 현재와 미래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은퇴 후에도 상당한 국민적 추앙을 받고 있는 독일의 정치인 B박사의 요청이었다. 나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북한에 지원을 계속하면서도 획일사회로서 우리의 이해만을 갈구하는 중국, 그리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걸리면 한치의 양보도 없는 일본의 특징 등을 설명하였다.
“권대사. 인슐라 캐릭터(insular character)라는 것을 아시나요? 섬사람들은 어디나 비슷합니다. 주변 사람들이란 없다고 생각하지요. 대륙에서처럼 옆 나라와 오순도순 살아야 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계획대로 추진하고요.”
나는 무릎을 쳤다. 그렇겠구나.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과거 안보리 상임위 로비 때에도 마찬가지였구나. 상임위를 포함, 아무리 옆에서 안 된다고 하여도 계속 계획대로 차근차근히 움직이는 일본사람들이었구나. 그런 속에 옆 사람에게는 한 치의 불친절한 오차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한 모습이었구나.
“부러지는 말을 못하는 일본 사람들이 하는 ‘하이 하이’라는 말은 실제로는 ‘아마도 아마도 (maybe. maybe)’라는 뜻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인 중국사람들이 웃을 때 항상 ‘호호(good good)’하고 웃는 것과 같지요.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불 같이 급한 것이 문제이지요.”
그러고서 우리는 대화를 마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우리들은 정치적으로 일본의 페이스 대로 끌려가고 있다. 나는 이것을 지난 40여 년간 지켜봐 왔다. 외교란 상대가 있어 얄미우리만큼 앞뒤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앞뒤를 재야한다.
<권영민 전 주 독일대사, 세계일보 시론 2008.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