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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13회 설화 이야기 (제6 선혜동자와 구리천녀 ~ 제11 극락으로 가는 배편 )
* 본 회에서는 우리가 사찰벽화에서 자주 접하는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벽화를 통하여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분량이 많은 관계로 2회에 나누어 게재토록 하겠습니다. 본 회에서는 제 6. 선혜동자와 구리천녀 ~ 제11. 극락으로 가는 배편이 게재됩니다.
6. 선혜동자와 구리천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기도 전 아득히 먼 과거의 일입니다. 당시는 연등불이라는 과거 부처님께서 계실 때입니다.
어느 날 마을에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든 사람들은 앞 다투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을에 선혜라는 동자가 있었는데, 선혜동자 역시 부처님에게 꽃 공양을 올리기 위해 마을 이곳저곳을 꽃을 구하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의 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져가 버린 뒤라 더 이상 꽃을 파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 꽃바구니에 연꽃 일곱 송이를 가진 구리천녀라는 여인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선혜동자는 구리천녀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뒤, 지금 자기가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드리겠으니 그 꽃을 나에게 팔아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자는 은화 500냥이나 되는 거액을 내미는 것입니다. 구리천녀는 동자의 행동이 의아해 여줘보았습니다.
"지금 저더러 연꽃 일곱 송이와 동자님의 그 돈을 모두 바꾸자는 말씀이세요? 아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까지 내면서 이 꽃을 사려하나요?"
"우리 마을에 연등부처님께서 오신다고 합니다. 저는 수행자의 몸으로 부처님을 직접 뵙고, 부처님으로 부터 내세에 성불할 수기授記를 꼭 받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빛나는 눈동자로 말하는 그의 말에 구리천녀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자를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꽃은 당신에게 그냥 드리겠습니다. 단 저에게도 조건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저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오늘 동자님의 늠름한 모습을 보니 그동안 제가 찾던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와 결혼을 해 주세요."
난데없는 구리천녀의 요구를 듣고 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나는 이미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와 결혼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대신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꼭 그대와 결혼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내었을 때 저의 수행을 위해 기꺼이 헤어질 수 있다는 약조를 해 준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이미 선혜동자에게 반하여 낭군으로 마음을 정해 버린 구리천녀는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며, 다섯 송이는 선혜동자의 원을 위해 그리고 두 송이는 자기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부처님께 꽃을 바쳐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선혜동자와 구리천녀는 연등불을 찾아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갖가지 공양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선혜동자도 갖고 있던 꽃을 올리며 마음 깊이 원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부디 다음 세상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해 달라는 등 개인의 복을 빌었던 반면, 선혜동자는 부처님 앞에서 성불을 발원하였습니다. 장차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선혜동자의 깊은 마음을 이미 부처님께서도 알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을 위해 머리를 늘어뜨리는 선혜동자 그는 훗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환생한다 (좌) / 대한불교 천태종 경산 장엄사 (우)
그리고 모든 공양물이 바쳐지자 부처님께서 정사로 돌아가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시려는데, 마침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는 탓에 길바닥이 진흙길이었던 것입니다. 선혜동자는 재빨리 묶었던 머리를 풀어 헤치며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부처님, 여래께서 지저분한 흙탕물을 밟고 가실 수는 없습니다. 부디 제 머리카락을 밟으시옵소서."
연등부처님은 다시 자리에 앉아 선혜동자를 칭찬하시더니, 오랫동안 쌓아 온 공덕으로 장차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선혜동자는 싯다르타 태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선혜와 결혼하고자 소원했던 구리천녀는 야소다라 공주로 태어나 둘은 정말 혼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생에서 약속한대로 싯다르타가 출가할 때 둘은 부부의 연을 끊어 버렸고, 싯다르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지리산 천은사 극락보전 (좌) /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내부 (우) 우리나라의 사찰 건물 중 대웅전 다음으로 많은 것이 극락보전極樂寶殿이다. 이곳에는 서방 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불의 좌우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한다.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이라고도 부르며, 극락이 서방에 있다고 해서 보통 서쪽에 자리잡아 정면이 동쪽을 향하게 배치한다
7. 섬에 버려진 형제
아미타부처님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계십니다. 두 보살님이 아미타부처님의 좌우에 계신 것은 전생에 형제였기 때문입니다.
옛날 인도의 어느 작은 나라에 한 부유한 장자가 살았는데, 그에게는 조리와 속리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행복했던 일상은 두 형제의 엄마가 병에 걸려 쓰러지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병을 고치려고 사방으로 약을 구해도 병에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조리야! 속리야! 엄마는 아무래도 병이 나을 것 같지 않구나. 만약 엄마가 죽더라도 너희들은 형제끼리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착하게 살아야 한다."
결국 조리와 속리의 엄마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 길러지며 아버지가 일을 하는 이곳 저곳을 함께 다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아이들이 자신을 따라 떠돌이처럼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두 형제의 장래들 위해서라도 재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새엄마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새엄마는 두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고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하며 키워줬습니다. 그러다 마을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마을에 먹을 것이 남아있지 않게 되자, 아버지는 이웃나라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올 때가 한참이 지나도 어버지는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혼자 남게 된 부인은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만일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저 아이들은 장차 어떻게 키우지? 이 많은 재산을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하나?"
그러면서, 이런 고약한 생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부인은 아이들을 없애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부인은 어느 뱃사공을 매수하여 두 아이들을 저 멀리 외딴 섬에 갖다 버리고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새엄마는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조리와 속리에게 예쁜 섬이 있으니 함께 구경 가자면서 매수된 뱃사공과 같이 먼 섬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섬에 도착하여 맛있는 음식도 먹고, 바닷가에서 한참을 신나게 놀고 있을 떄 새엄마는 몰래 섬을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조리와 속리는 외딴 무인도에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형제는 무인도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돌아가신 친엄마를 그리워하며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속리야, 나도 지금까지 새어머니를 원망했지만, 이제 새엄마는 우리를 데리려 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 어찌할 도리가 없어. 차라리 모든 것을 용서하고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우리처럼 슬픔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 주는 보살로 태어나도록 빌자구나."
동생도 형의 깊은 속내를 알아차리고 둘은 두 손을 맞잡은 채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굶어 죽더라고, 죽더라도, 내생에는 보살이 되어 우리와 같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리라, 구원하리라!"
그 순간 하늘에서 아미타부처님께서 조리와 속리를 향해 두 손을 내미셨습니다. 두 형제는 아미타부처님의 손에 인도되면서 큰 깨달음을 얻고 극락에 도착했습니다.
"장하구나. 조리, 속리야! 너희들은 이미 깨달음을 얻었으니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여 참된 보살이 되어야 한다."
둘은 아미타부처님의 격려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수행한 끝에 조리는 곧 관세음보살이 되고, 속리는 대세지보살이 되었습니다. 보살이 된 조리와 속리는 세상의 중생들이 고통 받을 때 나타나 중생을 제도해 주셨습니다. 두 보살님의 명호를 열심히 부르고, 선업을 널리 쌓으면 우리도 조리와 속리 형제를 따라 극락으로 왕생하게 됩니다.
8. 손순의 효심
옛날 신라에 손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비록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며 늙으신 홀어머니를 잘 봉양했습니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어렵다 보니 어머니 한 분께 밥을 지어드릴 뿐 다른 식구들은 죽으로 때우곤 했습니다. 때문에 어린 아들은 밥 때만 되면 할머니 밥상 앞에 버티고 있다가 몰래 할머니의 밥을 빼앗아 먹곤 했습니다.
"부인,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가 없소. 저 애가 늘 어머니의 밥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님이 얼마나 배고프겠소? 차라리 저 애를 몰래 묻어 버리고 어머님을 배고프지 않게 잘 모십시다."
아내는 울음을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깊은 밤, 모두 잠이 들자 손순은 아이를 업고 아내와 함께 마을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땅을 팠습니다. 그런데 땅을 파다가 뭔가 단단한 것이 손에 잡히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계속 파보았더니 뜻밖에도 너무나 훌륭한 돌종이 하나 나오는 것입니다.
돌로 되었음에도 생김새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이게 소리는 나는지 궁금하여 나무에 걸어놓고 쳐보았더니, 고요한 밤하늘에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소리가 울렸습니다.
내심 아이를 버리는 것이 마음 아팠던 부인이 손순에게 아이를 데려가자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신기한 보물을 얻은 것도 이 아이의 복인 듯하니, 아이를 잘 데려가도록 해요."
둘은 아이와 돌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부터 종을 대들보에 매달아 두고 아침 저녁으로 한 번 씩 쳤는데,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울려 퍼질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궁에 있던 흥덕왕이 범상치 않은 종소리를 듣고는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궁궐 밖 서쪽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들려오는데,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가 비할 데 없이 맑고 청아하구나. 예사 종이 아닌 듯하니, 얼른 가서 알아보도록 하라."
왕의 명을 받은 신하들은 소리를 따라 손순의 집에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허름한 짐 대들보에 걸려 있는 돌종을 보고는 의아하게 여겨 한번 쳐 보았습니다. 역시 궁궐에서 들리던 천상의 소리 그대로였습니다.
사람들은 손순에게 그 종을 구하게 된 경위를 전해 듣고 왕에게 돌아가 그대로 말씀을 올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왕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옛날에 한나라에 곽거郭巨라는 효자가 있었는데, 늙은 모친이 음식을 손자에게 나누어지기를 좋아하자 어머니의 몫이 줄어든다며, 땅을 파고 아이를 묻어버리려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땅에서 돌솥이 나와 그 뚜껑을 열어보니 한 솥 가득 황금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자식을 묻으려 할 정도의 효심에 감복하여 하늘이 금솥으로 치하했는데, 지금 손순이 자식을 묻으려 하니 땅에서 돌종을 솟아나게 했구나."
한나라에 곽거가 있다면, 신라에는 손순이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두 효자의 마음에 감복했던 것입니다. 흥덕왕도 손순에게 집 한 채를 하사하고 매년 쌀을 내려주었다고 합니다.
자식을 버리려 했던 것은 물론 잘못이지만, 그만큼 효심이 뛰어났다는 반증입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해 선택을 하라는 것 만큼 잔인한 일은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자식을 버리는 부모 또한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손순이 하늘을 감복시킬 만큼 효심으로 부모님을 잘 봉양했다는 것입니다.
9. 불서를 전해 준 여인
중국 당나라 때 협부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성질이 포악하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살생, 방화, 강도 등 온갖 악행도 스스럼없이 저질렀습니다.
이것을 본 한 스님이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50일 동안 일념으로 관음기도를 올렸습니다. 이에 감복하여 어느 날 관세음보살이 아리따운 미녀의 모습으로 나투어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협부의 청년들은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에 사로잡혀 앞 다투어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미녀가 말했습니다.
"소녀의 몸은 하나이고, 저를 아내로 맞고자 하는 분들은 이렇게 많으니 참 곤혹스럽습니다. 따라서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으니, 여러분 가운데 제 약속을 가장 잘 지키는 분과 혼인을 하겠습니다."
그 미녀는 청년들에게 『관음경觀音經』을 한 권 씩 나눠 주었습니다.
"이것은 관음경이라고 합니다. 이 경전을 하룻밤 사이에 다 외우는 사람과 결혼하겠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경전을 외워서 온 이는 모두 스무 명에 달했습니다. 여인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말대로 관음경을 외우신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찌 제 한 몸으로 스무 명의 남편을 섬기겠습니까?"
그러면서 이번에는 『금강경金剛經』을 한 권 씩 나눠주며, 또 외워서 와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 날 다섯 명의 청년이 그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섯 명과 결혼할 수 없다면서, 일곱 권으로 구성된 『법화경法華經』을 나눠 주는 것입니다.
"법화경은 7권 7만자로 이뤄진 경전이지만, 만약 3일 안에 법화경을 모두 외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 분의 아내가 되겠습니다"
약속한 3일이 지났습니다. 그러자 청년들 가운데 마랑馬郞이라는 사람만이 『법화경』을 모두 외워서 나타났습니다. 여인은 약속대로 마랑과 혼인하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마랑은 들뜬 마음에 결혼식을 서둘렀습니다. 드디어 결혼하기로 한 날이 되었습니다.
화려한 신부의 모습이 마랑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쓰러지는 것입니다. 쓰러진 신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결혼식은 내팽개치고 마랑은 아내가 될 여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여인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마랑은 그녀의 장례를 잘 치러주었습니다. 결국 그날 쓰려던 혼례품은 모두 장례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랑의 슬픔은 너무나 컸습니다. 매일 그녀의 무덤에 가서 비통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침 일전에 협부사람들을 위해 관음기도를 올렸던 그 스님이 지나가다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슬피우는 마랑에게 물었습니다.
"누구의 묘이기에 그리 슬퍼하시오. 부모님이라면 필시 당신은 효자였겠구려. 어찌겠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인연에 부질없이 매달리지 마시오."
"아닙니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의 무덤입니다. 협부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없었는데, 결혼식 날 그만 장례를 치르고 말았습니다."
"혹시 한 달 전 나타나 경전을 나눠주던 그 여인을 말하는게요?"
마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님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만약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면 무덤을 다시 파내어 관을 열어보시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게요."
마랑은 속으로 미친 중놈이라고 욕을 했지만, 내심 그녀가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님의 말처럼 묘를 파헤쳐 관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여인의 시신은 온데간데 없는 것입니다. 대신 황금덩어리만 덩그러니 쌓여 있는 것입니다. 마랑이 깜짝 놀라 어리둥절 하는데, 순간 황금덩어리가 관세음보살로 변하는 것입니다.
스님이 마랑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이 여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관세음보살님인데, 이 협부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내 관음기도를 올려 부탁을 드렸던 것이오. 여러분도 이제 아름다운 육체의 몸이라도 실로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보았을 것이요. 부디 이제라도 관세음보살께 귀의해서 모든 죄를 소멸받고, 복을 받도록 하시오."
이 말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크게 뉘우졌습니다. 이후 마랑은 출가하여 협부에 머물면서 평생을 그들을 교화하며 지냈습니다.
「법화영험전」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우리는 관세음보살께서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 여러 가지 몸으로 나타나신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수 많은 분들이 어쩌면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이지 않을까요
10. 큰 불을 피하려다 나무넝쿨에 매달린 사람
인생은 무명장야無明長夜와 같습니다. 깊은 어둠속에 쌓인 긴 밤처럼, 중생은 무명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지는 아래에 적은 안수정등岸樹井藤의 비유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써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한 나그네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나운 코끼리 한 마리가 들판에 난 큰 불을 피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그네는 코끼리를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도망치던 나그네는 다행히 우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한 줄기의 넝쿨이 우물 속으로 뻗어 있는 것입니다. 일단 코끼리를 피해야 하겠기에 그 나그네는 급히 나무덩쿨을 잡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나그네는 주변을 둘러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물 안 벽에는 독사 네 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또 발아래로는 무서운 독룡이 먹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입을 쩍 ~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나그네가 매달린 나무넝쿨은 언제부터인가 검은 쥐와 흰 쥐 한 마리가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는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놀란 나그네는 밖으로 나가려고 넝쿨을 잡고 올라가는데, 들에 난 큰 불이 벌써 이곳까지 번져 자욱한 연기 때문에 나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이 벌어지고만 것입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매달린 넝쿨이 묶인 나무에 벌집이 하나 있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 씩 똑 똑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꿀을 맛보니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새 나그네는 두려움을 모두 잊어버리고, 이제는 달콤한 맛에 취하여 자신의 위태로움은 잊은 채 다시 꿀물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유경譬喩經』에 등장하는 이 비유는 우리의 인생을 빗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저 나그네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나그네는 우리의 인생살이입니다. 끝없는 들판은 무명의 긴 밤을, 코끼리는 무상함을, 우물은 생사를, 넝쿨은 수명을, 두 마리 쥐는 낮과 밤을, 네 마리 독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흙, 물, 불, 바람의 사대를 각각 상징합니다. 벌은 삿된 생각이며, 꿀은 재물, 애욕, 음식, 명예, 수면의 다섯 욕망의 즐거움을, 큰 불은 늙고 병듦을, 독룡은 죽음을 각각 비유하고 있습니다.
11. 극락으로 가는 배편
중생들이 뱃놀이라도 하는 것일까요? 벽화에는 보살이 몰고 있는 용선에 여러 중생들이 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배의 이름은 반야용선般若龍船입니다. 배에는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신다는 인로왕보살께서 뱃머리에 서 계십니다.
극락은 어디에 있을까요. 극락이 있다면 어떻게 찾아 갈 수 있을까요. 경전에서 부처님은 극락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서쪽으로 십만 억 부처님의 세계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극락이라 한다. 그 나라에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니 지금도 법을 설하고 계신다. 사리불아, 저 세계는 왜 극락세계라 하는가. 그 나라 중생은 어떤 괴로움도 없고 모든 즐거움만 느끼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한다." ☞ 『아미타경 阿彌陀經』
십만 억 불국토를 지나야 한다니, 가히 중생들이 생각만으로 당도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입니다. 결국 확실한 것은 중생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갈 수가 없습니다. 불보살이 인도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락으로 가는 방법은 오직 인로왕보살이 운전하는 반야용선에 올라타야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반야용선을 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승차권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반야용선이라는 배편을 타기 위해서도 표가 필요합니다.
반야용선을 놓친 사람들 (단양 구인사) (좌) / 반야용선 (우)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세 가지 조건이 나옵니다. 첫째는, 부모님을 지성으로 봉양하며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면서 늘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십선을 힘써 닦아야 합니다. 둘째로, 부처님과 가르침, 그 가르침으로 행하는 수행자 즉 불법승 삼보를 공경하고 그 분들께 귀의하는 계율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스스로 깨닫고자 발심을 하여, 먼저 인과의 법칙을 철저히 믿으며 부지런히 경전을 독송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알려 수행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야용선을 타기 위한 조건입니다. 이런 실천이 따라야 반야용선에 올라 극락으로 인도됩니다.
어렵게 배 앞까지 도착하더라도 몸을 싣지 못하는 중생들도 많습니다. 땅을 치는 후회 속에 눈물을 흘려도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무임승차란 절대 없기 때문입니다.
12. 꽃 속에 피어난 사람들
대한불교 천태종 안동 해동사
반야용선을 타고 도착한 곳, 극락세계는 중생이 어떠한 슬픔과 괴로움도 느끼지 않는 세상입니다. 새소리 물소리마다 부처님의 법음이 아닌 것이 없으니, 저절로 도를 통하게 되는 곳이 극락입니다.
극락 세상에 왕생하는 중생은 모두 연꽃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미 생전의 수행을 통해 본인이 태어날 연꽃이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이 태어나는 방법에는 모두 네 가지 유형이 존재합니다.
'태란습화'라고 하는데, 태생胎生은 부모의 태에 의탁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엄마 뱃 속에서 자라는 우리가 태생에 해당합니다. 둘째, 난생卵生으로 알에서 태어나는 유형입니다. 포유류를 제외한 많은 동물이나 곤충 등이 알에서 태어납니다. 셋째, 습생湿生으로 습지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생물들을 말합니다. 마지막 화생化生은 스스로의 업의 힘에 따라 갑자기 생겨나는 형태입니다. 극락왕생이 바로 화생에 해당합니다.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게되면, 우리는 연꽃 위에 태어납니다. 연꽃이 우리를 품고 있다가 내어 놓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있게 될 연꽃에 저절로 화생하는 것입니다.
그 수준에 총 9단계가 있어서 9품九品이라고 합니다. 중생의 선업에 따라 9품 가운데 어느 한 곳으로 왕생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연꽃의 모양과 크기가 어떠한지는 지금 내가 닦고 있는 선행과 불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스스로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괴로움도 없이 행복을 누리며 다음 생에는 반드시 성불을 할 수 있는 부처님 나라, 그곳이 극락정토의 세상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 제13회|작성자 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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