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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달력?
가을이 깊어 간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시간은 얼마나 빠른지 참 염치없이 흐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1월에 건 두툼한 달력은 이제 밑바닥이 보일만큼 달랑거린다. 나이가 들수록 속도계가 빨라진다더니 여지없이 실감 중이다. 처음에는 다만 심리적 시간인가 싶더니 물리적 시간이고, 우주의 시간이었다. 다만 흔들리는 세월 속에서 시차에 적응하는 것이 상책인가 싶다. 정말 그런가?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달력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면 으레 이듬해 달력을 여러 종류 구입하여 선물처럼 나누었다. 스스로 달력을 여러 건 만든 적도 있다. 1990년대 초에 작업했던 ‘내 마음의 고향교회’(고난함께)는 당시 건축 붐으로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교회의 옛 모습을 담아냈다. 이미 여러 해가 지났어도 몇몇 달력은 차마 버리지 못한다. 간직한 것은 달력이지만, 흘러간 시간조차 문화처럼 여겨져서이다.
달력을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이 큰 것은 그 만큼 시간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해마다 연말대목을 겨냥하여 이 즈음에 밀려드는 한국교회 카렌다 회사들의 광고목록을 보면 따분한 생각이 든다. 변함없는 상품의 수준은 기획력이나 디자인 솜씨의 부족 보다 최저가와 할인율을 선호하는 단골구매자들의 싸구려 안목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달력 하나가 책값 수준은 되어야 달력도 문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계 달력보급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려온 진흥카렌다가 지난 여름 회사이전을 준비하면서 창고에 쌓아둔 달력용 성화작품을 대 방출 한 적이 있다. 동네마다 문을 연 등산복 세일처럼 흔히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니었다. 오랜 연륜만큼 엄청난 양의 자체제작 달력용 성화작품을 마주하면서 근래의 것들과는 전혀 다른 핸드메이드의 질감을 느낄 만 하였다.
결코 값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두 작품쯤 소장할 기회였다. 고심 끝에 구입한 ‘아기예수 피난’은 서양에서도 이름난 화가들의 단골 메뉴인데, 아마추어의 안목에도 눈에 띄는 수작이었다. 마침 현장에 있던 전속작가 이요한은 30년쯤 묵은 자기 그림을 회상하면서 작품의 의도를 말해 주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한 시즌용 달력그림일망정 꽤나 고심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아기 예수가 부모와 함께 이집트로 피난하던 모습은 얼마나 삭막했을까? 자연스레 끝없는 모래밭과 바위 언덕의 광야 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가 상상해낸 피난길은 온통 키 낮은 관목과 노란 풀로 뒤덮인 끝 모를 오아시스였다. 게다가 눈에 익은 삼나무도 여러 그루였는데, 듣자니 사이프러스를 좋아했던 반 고흐에 대한 오마주라고 하였다. 아기 예수의 피난길을 차마 험로로 그리지 못한 것은 작가 나름의 연민처럼 느껴졌다.
달력의 시간은 오래 전에 흘러갔지만, 작가가 품은 따듯한 상상력은 비교적 긴 시간 정지된 셈이다. 달력용 그림으로서는 아주 드믄 예외처럼 느껴졌다. 지금 교회용 달력들은 마치 오늘의 교회현상에서 보듯 문 닫은 동네 기독교백화점들처럼 만년 그 타령이기 때문이다.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을 반영한 달력과 달리, 지난 역사에서 정치의 달력이나 사회 혹은 문화의 달력은 세련된 프랜차이즈 개업처럼 종종 그 시대정신만큼의 격을 높여 왔다. 달력 속에 촘촘히 기록된 기념일들을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우리 역사의 달력에는 반복되는 절기와 함께 개혁과 진보의 날들을 연표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해마다 바뀌어 온 달력은 종종 지체하거나 심지어 거꾸로 가기도 한다. 과거의 시간에 발목 잡힌 채, 미래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세월에 대한 미련이나,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의 문제가 아니다. 거꾸로 가려는 달력을 보면서 앞서 가는 시대를 역으로 되돌리려는 반작용을 느낀다. 마치 골목이발소의 그림처럼 역사의 흐름을 액자 속에 가두려는 시도와 같다.
최근 한두 달 새, 장관 인준을 둘러싼 여야의 다툼과 그 와중에 도를 넘나든 검찰의 전지적 참견을 보면서 거꾸로 가는 달력에 대한 심한 멀미증세를 느꼈다. 얼마간 개혁의 시간에 비교적 충실했던 검찰의 달력을 돌아보면 시차적응이 안 된다. 그들에게 역사의 진보를 가로막아도 될 특권의 시간표가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염려를 품고 어제 저녁 서초동으로 나가보았다. 놀랍게도 상상 밖의 엄청난 인파를 보면서 누구도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도, 이 나라가 거꾸로 가지도 않겠구나, 안심하였다. 사람들의 얼굴마다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강한 오마주를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그냥저냥 한 달력일망정 이를 탓하지 말고, 나름의 새 달력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