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남도는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산마다 철쭉이 만발하고 산 기슭 곳곳에서는 먹거리 볼거리 풍성한 축제가 연이어서, 혹은 겹치기로 열린다. 어디로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을까 하는 즐거운 고민으로 방황하게 되는 곳이 5월의 남도다. 그러나 잘 알려진 꽃산, 잘 알려진 축제는 너무 번잡하다. 다소간 덜 붐비는 숨은 철쭉 산, 덜 알려진 축제로 장흥 삼비산과 키조개축제(5월4~8일)를 엮어보았다. 기왕 먼 남도까지 발걸음을 했으니 키조개축제와 같은 때에 ‘다함께 차차차(茶茶茶)’란 슬로건으로 열리는 보성 다향제(5월5~5월8일)도 기웃거려 보자.
장흥 키조개축제&보성 다향제 철쭉 구경하고, 해수사우나 하고, 키조개에 소주 한 잔 보성 다향제와 시기 같아 '일석이조 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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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로 키조개를 닦고 있는 수문리 아낙. |
키조개는 생김이 우리네 옛 살림도구의 하나로 알곡과 겨, 껍질을 분리해내는 데 쓰던 키를 닮았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은 큼직한 조개다. 어른 손바닥만큼이나 커서, 대개의 조개류는 폐각근(閉殼筋), 곧 조개껍질을 여닫는 근육이 고작해야 손톱만한 데 비해 키조개는 500원짜리 동전보다도 훨씬 더 크며 맛도 뛰어나 오래 전부터 식용으로 사랑받아왔다. 장흥군의 키조개축제는 이 키조개 요리를 중심으로 닷새간 펼쳐내는 먹거리 축제다.
장흥군 남쪽의 득량만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대량으로 키조개가 양식되고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다른 지역에서는 키조개 축제를 할래야 할 수도 없다. 서해에서도 나지만 양이 미미하다. 한편 장흥 키조개가 본격 생산되는 시기인 5월 초순 무렵이면 장흥의 철쭉 명산 제암산과 삼비산도 절정인 때다. 장흥은 ‘키조개와 철쭉의 만남! 정남진 장흥에서!’’란 구호로 키조개축제를 알렸고, 그 결과 재작년의 제1회 때부터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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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에 쓸 키조개를 캐내어오는 주민들. |
제1회 때부터 축제장소는 수문리 마을 앞의 넓은 방파제 위다. 50개의 포장을 붙여 쳐놓고 수문리 부녀회에서 공동으로 각종 키조개와 바지락 요리를 조리해 낸다. 포장 옆의 가설 무대에서는 매일 가수나 관현악단, 기예단 등을 초청해 연주회와 공연 등을 연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맛난 키조개 요리도 먹고 진기한 공연도 보고 하는 재미에 연일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등산복 차림인 사람이 70%가 넘는 것으로 보아 철쭉 구경하고 들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고 키조개축제 준비위원장 장유환씨(53·바다하우스 대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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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조개축제장 수문리 방파제에서 열린 관현악 연주회. |
철쭉 구경은 우정 제암산까지 갈 필요가 없다. 축제장 바로 뒤의, 과거 일림산으로 알려졌던 삼비산 능선은 5월 초·중순이면 몽땅 철쭉으로 뒤덮이다시피 하는 철쭉밭이다. 바다가 지척이어서 붉은 철쭉이 푸른 바다빛과 어울린 진경도 펼쳐지기에 ‘제암산보다 철쭉 풍광이 낫다’는 이들도 있다.
한편, 이곳 수문리에는 작년 6월 해수사우나 시설을 갖춘 옥섬워터파크(061-862-2100)가 개장, 운영중이다. 이로써 철쭉 명산+해수 사우나+맛난 해산물 요리의 삼박자가 모두 갖추어졌으니 올해 제3회 키조개축제부터는 정말 한 번 와볼 만한 것 아니냐고 장흥군청 김한석씨는 반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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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조개 축제장 바로 옆, 삼비산 하산로 끄트머리에 선 옥섬워터파크. 약초 해수사우나탕, 24시간 찜질방 등도 갖춘 업소다. |
수문리 키조개 행사장은 저녁때 손님이 외려 더 많으며, 밤 늦게까지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든다. 훈훈한 훈풍이 부는 밤바다의 낭만이 있어 외려 낮보다 더 낫다는 사람들도 많다.
행사장에서 키조개 무침이나 탕은 30,000원으로서 30,000~40,000원이면 4~5인 가족이 넉넉히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아침에는 5,000원씩 하는 키조개 죽이 제격이다. 그외, 바지락, 낚지 등의 해산물 음식도 낸다. 위원장은 “싼 음식값에 공연단 초청 비용까지 감안하면 매년 적자이고 마을 부녀자들은 파김치가 되지만, 멀리 보면 이게 다 마을이 부자 되는 일이다 싶어 감수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제3회 축제 때부터는 1,000개쯤의 키조개를 뻘 속에 숨겨 놓고 관광객들이 직접 캐내어가는 체험 행사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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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키조개 요리를 들고 있다. |
키조개를 먹어보고 껍질째 사가는 이들도 많다. 1kg에 30,000원 안팎으로, 8~14개 정도 된다. 씨알이 굵은 것이 맛도 더 좋다. 홍어회처럼 묵은 김치에 싸서 먹으면 또한 별미로, 이곳 축제장 인근의 식당에서는 항상 묵은 김치를 더불어 올린다.
장흥은 이미 15년 전부터 양식을 해왔으며 한동안은 거의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다. 8년 전 정부의 정식 허가를 받은 뒤부터는 생산량이 크게 늘며 수출 이외 국내 판매도 가능해졌다. 키조개축제는 이 장흥 키조개의 뛰어난 품질과 더불어 장흥의 철쭉 명산 등 관광지도 널리 알려 관광 수입을 늘려보자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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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득량만 키조개 회. 서해안 것에 비해 매우 연하다. 껍질에 담은 키조개 회. 껍질을 여닫는 폐각근이 굵고 맛있어서 오래 전부터 요리로 인기 높다. |
축제 정식 명칭은 ‘정남진 장흥키조개 큰잔치’다. 정동진은 유명하지만 정남진이란 금시초문이다. 장흥군 문화관광과 김한석씨는 “서울 광화문에서 정동쪽이 정동진이고, 이곳 키조개 축제가 열리는 수문리와 지척인 곳인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가 정남쪽이어서 정남진이라 이름 붙였다”며 “국토지리정보원에 의뢰해서 여기가 정남이 맞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정남의 따스하고 맑은 해역이어선지 장흥 키조개는 맛이 타지 것보다 월등 뛰어나다는 장유환 축제위원장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수문리 도로변의 식당에서 맛본 키조개 무침의 맛은 뛰어났다. 육질은 뜻밖으로 부드러웠고, 키조개를 푹 끓여낸 탕의 국물 맛도 담백하고 뛰어났다. 허약한 이의 보양식으로는 그만이겠다 싶다. 이는 순수한 뻘에서 양식했기 때문이라는 장 위원장의 설명이다.
“서해안 뻘은 모래가 섞인 것이라 거기서 키운 것은 질기고 별로 크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 득량만 것은 부드럽고 담백하지요. 껍질 채로 일본으로 수출되는 것은 여기 장흥 득량만 것뿐입니다.”
키조개 양식은 쉽지 않다. 잠수복을 입고 7~8m 수심의 뻘 속에 종패를 심어야 한다. 대개 5년 정도 키워야 상품 가치가 있다. 키조개 축제가 열리는 수문리 250호 중 100호 정도가 키조개 양식업에 종사하는데 수익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장흥군은 키조개축제 이외 여름에는 갯장어축제, 가을에는 전어 축제, 겨울에는 정남진 굴축제 등을 계절 따라 열고 있다. 김인규 장흥군수는 “축제마다 깨끗한 해수욕장, 기암봉과 억새로 유명한 천관산 등 계절마다 풍광이 절정을 이루는 연계 명소들도 있으니 장흥은 춘하추동 계절마다 한 번씩 오실 만한 곳”이라며 고향을 자랑한다.
교통
서울→장흥 강남고속터미널에서 1일 3회(08:50 우등, 15:40 우등, 16:50 일반) 출발. 5시간 소요.
장흥→서울 공용버스정류장(061-863-9036)에서 1일 3회(09:00, 10:00, 16:00) 출발.
서울→광주 강남고속터미널에서 5~10분 간격(05:30~21:45)으로 운행(4시간 소요).
광주→장흥 1일 약 60회(06:00~20:30) 운행. 1시간30분 소요.
장흥→수문리 군내버스가 1일 7회(06:15, 07:30, 10:30, 13:00, 15:30, 20:05, 21:10) 출발.
자가용 차량으로 갈 경우는 서해안고속도로로 목포까지 가서 4차선으로 확포장된 2번 국도를 타고 장흥까지 간다.
숙박
축제장 인근에 옥섬워터파크가 있으며, 장흥읍내에 시설이 좋은 숙박업소가 여럿 있다. 장흥읍내 장흥관광호텔(061-864-7777)은 4~5인 가족이 머물만한 넓은 방이 30,000원.
옥섬워터파크 : 키조개 축제장에서 지척인 용곡 마을에 있다. 동굴 분위기를 낸 널찍한 공간에 어성초탕을 비롯해 각종 약초를 우려내는 약초탕과 사우나 시설을 했으며, 탕에서 푸른 바다가 훤히 내려다뵌다. 밀림 분위기로 꾸민 대형 찜질방 시설도 갖추었다. 찜질방은 24시간 운영(이용료 7,000원)하므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못한 이들도 남도 해안가의 밤 정취에 젖어볼 수 있을 것이다. 바다를 향한 객실도 자랑이다. 침대방과 몽고 파오 형태의 둥근 거실 겸 침실, 싱크대 등을 갖춘 특실은 4인 기준 70,000원, 2인실은 보통실 35,000원. 5층에는 대형 통유리창을 바다쪽으로 내서 일출과 일몰이 모두 아름다운 카페를 꾸몄다. 부속 회집도 있다(전화 061-862-2100).
먹거리
키조개 축제장 주변에
등심의 선연한 붉은 빛과 키조개의 맑은 우유빛. 하나는 땅에서 다른 하나는 바다에서 왔건만 같은 접시에 나란히 놓으니 의외로 조화롭다. 취락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키조개와 꽃등심 로스구이는 고소한 맛과 담박한 맛의 어울림을 혀끝으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키조개는 득량만에서 직접 양식하여 매일매일 채취된 직후의 키조개를 신선한 상태 그대로 상에 올리고 있다. 직접 양식하는 만큼 정량에 더하여 듬뿍 내놓기가 일쑤다. 키조개와 함께 구워 먹는 한우도 반드시 3~4년 생을 까다롭게 엄선하여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어, 신선한 ... |
한 자리에서 40여 년 바지락회를 버무려 온 김동임 할머니의 명성은 수문리 일대에 자자하다. 김할머니가 운영하던 하숙집에서 반찬으로 내놓던 음식이 입소문을 타고 번져 나가 지금의 이 바다하우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바지락 까는 것은 순전히 동네 할머니들의 수작업에 의해서다. 매일매일 채취한 신선한 바지락이 물론 이 음식의 기본이지만 여기에 직접 담은 찹쌀고추장, 참기름, 깨소금, 고춧가루 등이 바지락회의 맛을 좌우한다. 여기에 바다하우스만의 비법 한 가지. 토종 막걸리에 누룩을 넣고 한 달 정도 서늘한 곳에서 발효시키면 천연 식초가 ... |
바다하우스(061-862-1021), 회타운(862-6700) 등의 키조개 요리를 내는 음식점들이 많다.
장흥읍내에서 아침식사는 청국장과 생선조림 등을 전문으로 하는 들뫼바다가 실속이나 맛에서 권할 만하다(061-864-5335). 해장국은 장흥관광호텔 근처의 아그네스식당 콩나물해장국이 일품이다(061-863-0500). 신녹원관은 철 따라 별미를 달리 차려내는 ?장흥 대표한정식집?이다. 단체(4명부터) 1인 12,000원, 보통 15,000원, 특 20,000원. 전화 061-863-6622.
넓은 차밭 구경만으로도 보람 - 보성 다향제
장흥 키조개 축제장에서 철쭉 구경과 더불어 1박2일 정도 보낸 뒤 귀경길에는 보성 다향제에 들러 분위기를 바꾸어 보자. 보성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한국 최고의 차 생산지다. 현재 국내 녹차생산량의 46%를 차지하고 있다. 축제 주행사장인 대한다원의, 길고 가지런하게 정돈된 차나무 두둑이 굵직한 선형으로 수십, 수백 가닥 늘어선 짙푸르고 넓은 차밭을 한 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5월이면 차나무 두둑의 때깔이 특히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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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성 다향제 주 행사장인 대한다원의 차밭 풍경. |
장흥 키조개 축제장인 수문리에서 다향제 주행사장인 대한다원까지는 15km 정도에 불과하다. 수문리에서 해안가 18번 국도를 따라 보성읍을 향해 북서진하노라면 왼쪽으로 대한다원 입구가 뵌다. 축제 때는 엄청난 북새통을 각오하고 가야 한다. 비자나무 숲속 길에서나 차밭에서나 떠밀리듯 걷게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행사장 내에선 햇차 시음회, 다례 시연, 전국 차음식 경연대회, 차음식 만들기, 녹돈(綠豚) 구워먹기, 녹차떡 만들기, 차밭 버스투어(8km) 등의 여러 가지 관련 행사가 열린다. 문의 보성군청 문화관광과 061-850-522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