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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름다운 60대 원문보기 글쓴이: 사랑방하나
한국 가요 반세기 동안의 구구절절한 라이벌 계보
남인수 VS 현인
1953, 4년경 남인수와 현인은 각각 ‘이별의 부산 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처럼 한국전쟁의 상황을 호명해 인기를 누렸다. 전자가 ‘한많은 피난살이 설움’을 접고 환도하며 부산을 떠나는 상황을 보여주었다면, 후자는 ‘피눈물을 흘리’는 1.4후퇴시 피난의 애환을 그렸다. 이 두 곡은 모두 박시춘이 작곡했다.
정 시스터즈 VS 이 시스터즈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보컬 그룹 혹은 중창단 한쪽에는 ‘언니들(시스터즈)’이 있다. 가문과 씨족을 강조했던 양상이 그룹 이름에서 엿보인다. 정 시스터즈가 5인조로 출발한 때가 대략 1956년경이라고 전해지는데, 후일 2인조로 바뀌었다. 역시 3인조였던 이 시스터즈도 대표적인 ‘자매들’. 대표곡으로는 각각 ‘슬픈 영화(Sad Movie)’와 ‘워싱톤 광장(Wahington Square)’등.
블루 벨스 VS 봉봉 사중창단
(vs 쟈니 브라더스)
여성 보컬 중창단과 마찬가지로, 정장 수트의 차분함과 다층의 화음을 실어나르는 남성 보컬 중창단도 자주 방송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남성 4중창단의 최초격은 ‘즐거운 잔칫날’을 부른 블루 벨스. 이어 등장한 봉봉 사중창단은 ‘좋아요 좋아요’, ‘사랑을 하면 예뻐져요’, ‘꽃집 아가씨’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외에 ‘빨간 마후라’의 쟈니 브라더스도 이 대열에 끼었다.)
한명숙 VS 현미
한명숙과 현미라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저음역의 허스키 보이스 여성 보컬이 새로운 가요 무대를 열어젖혔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 각각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1961), ‘밤안개’(1962)라는 팝 스타일의 노래로 1960년대의 새 지평을 열었다. 빠른 템포의 힐빌리(컨트리 앤 웨스턴의 이전 명칭)풍 연주가 삽입된 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당시까지는 최다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패티김 VS 이미자
트롯 엘레지의 여왕은 이미자. 팝 스타일 가요의 여왕은 단연 패티 김. 이것은 오래도록 깨지지 않는 불문율이었다. 1963년경 발표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일설에 의하면 한국 최초로 100만장 음반판매시대를 열었고 ‘이미자 조’ ‘동백 조’를 탄생시켰다. 한때 부부의 연도 맺었던 작곡가 길옥윤과 짝을 이루어 노래를 발표했던 패티김은 고급스러운 스탠더드 팝을 부르는 여성 가수의 원본을 이루었다.
애드 훠 VS 키 보이스
한국 ‘그룹 사운드’계에서 ‘누가 최초인가’. 정답은 논란거리. ‘미8군 무대’에서 락 앤 키(Lock and Key)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한 키 보이스(Key Boys)와, 미8군 무대를 나와 ‘일반무대’에서 결성된 애드 훠(Add 4)가 열전의 주인공. 이들은 둘 다 대략 1964년경 첫 음반을 발표했다.‘비 속의 여인’과 ‘내속을 태우는구려’ 등, 외부 작곡가가 아닌 창작곡을 발표했던 애드 훠가 ‘진정한 최초’임은 부정할 수 없을 듯.
히 식스 VS 후기 키 보이스
전기 키 보이스 이후 새로운 멤버들로 만들어진 뉴 키 보이스 대 히 화이브(He 5) , 히 식스(He 6)의 열전도 ‘그룹 사운드’계의 흥미로운 대결. 이들의 경합은 1969년 제1회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키 보이스가 최고상을 수상하며 키 보이스 우세. 그러나 히 화이브가 히 식스로 개편된 뒤 1970년과 71년 열린 그룹사운드경연대회의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판도는 역전된 인상.
정원 VS 쟈니 리 (vs 트위스트 김)
1960년대를 지나며 그룹사운드들은 가수들의 반주를 해주기도 했는데 이때 잘 어울린 가수들이 ‘껄렁한’ 연예인들이었다. 일명 ‘양아치 클럽’이라고 불린 이들인데 반항적이고 거친 이미지는 ‘학사가수’(최희준 같은)들과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정원은 ‘허무한 마음’을, 쟈니 리는 ‘뜨거운 안녕’을 1960년대 중후반에 히트시키며 명실공히 일명 ‘양아치 클럽’의 경쟁자이자 대표자로 자리했다.
이춘희 VS 이금희
‘정열의 꽃’, ‘플라멩코 아가씨’ 등 곡명이 드러내는 것처럼 스페니시 무드의 노래를 잘 불렀던 이춘희, ‘다이애나’, ‘싱 싱 싱’ 등 경쾌한 폴 앵카 노래를 잘 불렀던 이금희. 물론 이금희가 ‘미스 다이너마이트’라는 별명처럼 다소 파워풀하다고 평가되며 1966년경 ‘키다리 미스터 김’이 크게 인기를 얻었다.
문주란 VS 정훈희
아주 상이한 음색을 가진 문주란과 정훈희의 경합 시기는 대략 1967년에서 72년경. 정훈희가 맑고 청아한 팝적 보컬을 구사한다면 문주란은 저음의 허스키 보컬의 트롯에 ‘가까운’ 노래를 많이 불렀다. ‘꽃봉투’, ‘꿈속의 나오미’, ‘스잔나’, ‘청춘무곡’, ‘호반에서 만난 사람’, ‘하얀 사랑의 집’ 등을 둘 다 발표하면서 경합을 벌였다.
남진 VS 나훈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단 한 쌍의 라이벌을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없이 꼽아야 할 라이벌. 둘의 권좌 쟁탈전은 음악 외적인 요소도 라이벌 경쟁에 도식화되었다. 호남 vs 영남이라는 지역감정 구도가 바로 그것. 어쨌든 나훈아가 애절한 트롯으로 승부했다면,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남진은 춤을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박인수 VS 장현
‘신중현 사운드’의 대표적인 남성 가수로 활약한 이들은 박인수와 장현. 먼저 소울 가수로 유명한 박인수는 ‘봄비’를 신중현의 그룹 퀘션스에서 객원가수로 노래하면서 유명해졌다. 그의 ‘봄비’ 버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박인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은 장현. 1972, 3년경 장현은 ‘마른 잎’, ‘나는 너를’, ‘미련’ 등으로 인기를 얻으며 남성 소울 가수 계보를 이어갔다.
양병집 VS 서유석
1970년대 한국 모던 포크 대부들이었던 양병집과 서유석은 포크 음악을 ‘번안’하거나 ‘개사’할 때 풍자의 모드를 적용했던 일종의 라이벌이자 동지였다. 특히 밥 딜런이나 피터 폴 앤 메리의 노래가 선택되었다. 서유석이 익살적인 세태풍자를 했고, 양병집은 보다 사회비판적 시각을 가졌다고, 둘을 구분하는 관점도 있다. 물론 그들의 관심은 가령 구전민요 ‘타박네’를 공유하는 모습에서도 여실하다.
뜨와 에 므와 VS 라나 에 로스포
1970년대 포크의 대표주자인 두 팀의 공통점 하나. 당시 유행처럼 팀명을 외국어로 작명했다. 불어 vs 이태리어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두 번째 공통점은 혼성 듀엣이라는 점. 물론 혼성 포크 듀오의 원조는 1968년경 결성된 뜨와 에 므와이다. 세 번째 공통점은 순수하고 서정성을 강조하는 초창기 한국의 포크를 주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점. 그런 점에서 공조자이자 경쟁자였다.
김추자 VS 김정미
누가 뭐라 해도 김추자는 1970년대를 풍미한 한국의 대표 여성 싱어. 김추자와 함께 신중현 사단의 여성 보컬이었던 김정미가 김추자의 아성에 도전했다. 1971년 김추자 리사이틀에서, 불미한 사건으로 붕대를 감은 김추자 대신 핀치히터로 등장한다. 그러나 ‘제2의 김추자’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그늘이었다. 최근 들어 김정미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이키델릭 여제로 재평가되었다.
송대관 VS 태진아
송대관과 태진아, 둘의 인연은 생각보다 깊다. 1970년대 중반 데뷔해 활동했지만 거듭된 실패 혹은 스캔들로 각자 미국으로 향했다. 1990년대 초반 귀국해서 거의 동시에 신곡을 발표, 재기에 성공했다. 그들이 선택한 노래는 1970년대 부른 노래와 다소 다르게(혹은 비슷하게) 트롯. 이후 트롯계의 노장으로 자리잡은 맞수이면서도 우정을 과시, ‘우정의 콘서트’를 열거나 너스레를 떠는 광고를 찍기도.
혜은이 VS 이은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의 한국 가요계를 장악한 여성 가수는 혜은이와 이은하. 길옥윤과 짝을 맞춘 혜은이가 차분한 목소리의 뮤즈였다면, 이은하는 시원한 목소리의 여걸이었다. 특히 이들도 당시의 트렌드 디스코와 마주했다. 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는 디스코 춤이 유행이었는데 이은하는 ‘밤차’에서 상하좌우 네번을 찔렀다. 심지어 혜은이마저 ‘제3한강교’에서 찔러줘야 했다.
산울림 VS 송골매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반 대중음악계의 신풍은 일명 ‘캠퍼스 그룹 사운드’라는 대학생 아마추어 그룹에서 흘러나왔다. 대표자는 단연 산울림과 송골매. 1977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산울림 멤버인 김창훈이 샌드페블스에게 써 준 ‘나 어떡해’가 대상을 탔다는 것도 인기에 한몫했다. 반면 송골매는 TBC(동양방송)가 해변가요제에서 만난 블랙테트라와 활주로의 화학작용의 결과물이었다.
조용필 VS 이용
1980년대 천하평정은 단연 조용필. 그의 사전에 라이벌이라는 말은 없었다. 오로지 그의 독주만이 있을 뿐. 그러나‘국풍 81’에서 ‘바람이려오’로 혜성같이 등장해 1982년 ‘잊혀진 계절’을 통해 MBC 10대 가수상 가수왕을 거머쥔 이용의 등장했다. 이처럼 잠시 조용필 대 이용이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는 듯 했지만, 이용이 개인적인 문제로 도미하면서 조용필 독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조용필 VS 전영록
1970년대 애절한 발라드에서 빠른 음악으로 전향한 전영록도 조용필 시대에 도전했다. 전영록은 영화배우로서도 확고한 위치를 점하면서 아이돌 스타로서 등록했다. 특히 1985년 MBC 가수왕은 조용필이 차지했지만, KBS 가수왕은 전영록이 차지하기도 하는 등 잠시나마 조용필의 아성에 균열을 내는 듯도 했다. 물론 1986년 가수왕은 양 방송사 모두 조용필이 차지했지만.
김완선 VS 박남정
댄스 키드 라이벌. 그들이 들고 나온 음악은 댄스. 약간만 템포가 빠르거나 몸을 살짝 흔들기만 해도 댄스음악으로 인식되었던 전과는 달리 고난도의 브레이크 댄스를 통해 ‘본격적인’ 댄스 키드들의 시대를 도래시킨 것이다. 박남정이 트롯 고고 작곡가 안치행의 후광을 받았다면(그래서 ‘뽕끼’와 접선한다면), 김완선은 산울림의 김창훈이나 이장희 같은 그룹 사운드나 포크 로커의 손길이 닿았다는 점도 차이.
주현미 VS 문희옥
약사 가수 주현미 대 고교생 가수 문희옥. 이들의 ‘직함’이 곧 인기의 명함이었다. 사실 1980년대 트롯은 주류에서 밀려난 변방의 영토에 머물렀지만, 이따금 히트 가수가 탄생해 트롯 부흥회를 열었는데 이들도 그러한 구원의 전도사로 등장했다.
김승진 VS 박혜성
아이돌 스타로서의 라이벌. 1986년 김승진은 ‘스잔’으로, 박혜성은 ‘경아’로 맞대결을 펼치면서 라이벌 스타덤에 올랐다. 고교생 가수라는 이름으로, 동시에 등장한 라이벌이다.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스잔파’와 ‘경아파’의 격돌이 심심찮았다는 후문.
이문세 VS 변진섭
고급 발라드의 황태자 라이벌. 이문세는 발라드가 확고한 주류의 음악이 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작곡가 이영훈과 함께 작업한 그의 음악은, 그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와 함께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변진섭은 여기에 도전했다. 정확히 말해 이영훈과 결별한 이문세가 노쇠한 기미를 보일 때 하광훈의 곡을 받은 변진섭이 정상의 자리에 오른 셈.
신성우 VS 이덕진
긴 머리 미남의 대명사 ‘테리우스’형 라이벌. 지금은 연기자로 업종변경했지만 1990년대 초반 신성우는 긴 머리 휘날리며 터프한 목소리로 ‘내일을 향해’를 부른 로커형 가수였다. 그리고 같은 시기 이덕진은 ‘내가 아는 한가지’를 부르면서 신성우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롱 헤어 로커 이미지의 대중화 원류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들의 라이벌 기간이 짧긴 했지만(더구나 이덕진의 활동 기간이 너무 짧았지만.)
강수지 VS 하수빈
순정만화에 등장할 법한 청순가련형 소녀 이미지의 대결. 커다란 눈, 가느다란 몸매, 긴 생머리가 바로 그것. 하수빈 팬과 강수지 팬 사이에 루머 싸움을 벌였다고도 전해진다. 강수지는 윤상 같은 작곡가의 애잔 모드의 발라드 공력에 힘입어 꽤 오래 인기를 구가한 반면 하수빈은 ‘더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 마’ ‘노노노’가 히트, 2집까지만 발표해 ‘원히트 원더’의 짧은 활동을 마감했다.
시나위 VS 백두산 VS 부활 (쮡 임재범 VS 유현상 VS 이승철 VS 김종서)
1980년대 한국 헤비 메탈 음악의 지존급 라이벌. 리드 싱어들은 메탈 밴드 활동 이후 솔로 가수로 ‘전향’해 느슨하게나마 솔로 가수 라이벌 구도도 형성했다. 부활 출신의 이승철, 시나위와 부활 등을 거친 김종서, 시나위 출신의 임재범은 ‘한국형 록 발라드’를 주안점으로 한 솔로 가수로 진입했는데, 이로써 메탈 밴드 출신 솔로 가수의 향방을 전형화했다.
김건모 VS 신승훈
1990년대 내내 최고 가수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이제는 (일제시대의 유물로 들리는 이상한 통칭을 사용하면) ‘국민가수’로 통하는 두 거물. 밀리언셀링 음반 판매 시대를 관통했던 인물들이다. 김건모가 레게, 하우스, 랩 등 다채로운 노래를 불렀다면, 신승훈은 (빠른 노래들의 예외도 있지만) 발라드로 일관했다.
김현철 VS 윤상
20대의 젊은 나이에 가수이자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서 1990년대 전반기에 새바람을 몰고온 김현철과 윤상. 이들이 길어냈던 도회적이고 감각적인 세련미에는, 맛깔난 조미료(퓨전 재즈 같은)를 과도하지 않을 만큼 가미하는 감각이 주효했다. 김현철은 장필순, 이소라, 장혜진 등을, 윤상은 강수지, 변진섭, 김민우부터 최근에는 박화요비나 박효신 등을 가다듬었다.
김광석 VS 안치환
김광석이나 안치환은 (시기는 달랐지만) 노래를찾는사람들(약칭 노찾사)에서 대표적인 가수였다. 같은 뿌리의 이력을 가진 두 가수는 이후 라이브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포크’계의 산맥들이 된다. 그러나 안치환이 노찾사 민중가요와 긴밀했던 반면, 김광석은 동물원이나 솔로 활동을 통해 서정적인 내면 세계에 보다 침잠하는 경향을 보였다.
꽃다지 VS 조국과청춘
1990년대 초중반, 민중가요 진영 노래패 대표자들. 꽃다지가 노동계를 대표하는 음악전문집단이라면,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 노래패 조국과청춘은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집단. ‘정파’와의 관련성이 없지 않은데 굳이 말하면 PD 대 NL의 대립구도를 보인다. NL 계열로 전문적인 노래패로는 희망새가 있지만 대학생 주도의 아마추어 노래패가 더 많은 인기를 누렸다.
잼 VS 노이즈 (VS Ref)
1993년 초, 서태지와 아이들이 1집 활동을 접으며 만들어진 잠깐동안의 공백기 무렵, 그 틈을 비집은 잼과 노이즈가 라이벌 관계를 형성, 인기를 끌었다. 각각 ‘난 멈추지 않는다’, ‘너에게 원한 건’을 발표. 서로 적이었을지언정 이 두 팀의 팬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응하기 위해 잼과 노이즈의 합동 콘서트를 제안했다는 후문도 있다. 이들은 하우스 테크노 댄스 가요의 변이형태를 수입, 정착시켰다.
룰라 VS 투투
홍일점 여성 멤버들 간의 경쟁이 인상적인 라이벌. 룰라와 투투는 1994년 선보인 혼성 4인조 그룹. 룰라의 김지현은 섹시함을, 투투의 황혜영은 귀여움을 내세워 차이를 부각시켰다. 손을 이용한 춤으로 시각적 훅(hook)도 제공했다. 라이벌이던 룰라와 투투는 캐롤 음반을 공작하는 우애를 과시하기도. 투투는 두 장의 음반으로 끝났지만 룰라는 장수했다.
이박사 VS 볼빨간
‘신바람 이박사’(본명 이용석)는 ‘드라이브 뮤직’(트롯 메들리)의 대명사. 반면 인디 뽕짝 테크노로 승화된 것은, 볼빨간이 이박사에 대한 오마주와 희화화, 그 어딘가의 지점에서 벌인 ‘지루박 리믹스 쑈’에서였다. 이박사와 볼빨간은 라이벌이라기보다 계승과 발전 쪽에 더 가까운 듯. 사후적 해석이지만 이들 모두 엄숙주의와 고급문화에 대한 반작용의 산물인 셈.
(? 아류 라이벌: 볼빨간 VS 달파란)
HOT VS 젝스키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돌 스타의 명징한 라이벌 구도. 5인조 HOT는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전사의 후예’를 자처한 서태지와 아이들 적자였다. 6인조 젝스키스가 이에 응수해 구성되었다는 전설은 이제 더 이상 거론할 필요도 없을 정도. SM엔터테인먼트와 DSP엔터테인먼트(대성기획) 간의 ‘기획상품’ 대립전 1차전의 산물. 팬클럽 간의 치열한 신경전(심지어 난투극)도 너무나 유명하다.
NRG VS 태사자
상위 고수 간의 라이벌이 HOT와 젝스키스의 대결이었다면 중수 간의 라이벌쯤에 NRG와 태사자가 있다고나 할까. 데뷔 초에는 ‘가요계의 신사’라는 별칭을 얻은 태사자가 더 인기를 얻었다는 증언이 많다. 그러나 HOT가 소멸하고 그 뒤 신화가 평정하는 지각변동 뒤에는 4집까지 발표했던 태사자는 사라진 반면, NRG는 음악 방향을 다소 선회했고(1980년대식 디스코로) 한 멤버의 죽음 이후에도 건재를 과시했다.
SES VS 핑클 -> 바다 VS 옥주현
SM엔터테인먼트 대 DSP엔터테인먼트의 2차전은 여성 그룹 버전의 라이벌 경쟁. 두 간판 스타가 SES와 핑클. SES가 음반판매량에 있어 앞섰다면 핑클은 대중적인 인기에서 우위였다는 평가가 많다. 이들 모두 가창력 1인을 세웠는데 이후 각각 솔로 음반을 낸 바다 대 옥주현의 대결 구도도 그대로 이어지는 인상. 최근의 양상은 ‘이효리 vs 옥주현’의 양상으로 비춰지기도.
베이비 복스 VS 디바, 쥬얼리 VS 슈가
남성 아이돌 그룹과 마찬가지로 SES 대 핑클의 고수 사이클 외부에는 중수급 디바들의 도전이 만만찮았다. 가창력 보다 춤과 외모로 승부하는 형세가 강했는데 가령 1990년 후반에는 베이비 복스와 디바가, 2000년대 초반에는 쥬얼리와 슈가가 그런 지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신화 VS 클릭비 -> 신화 VS GOD
SM기획의 HOT 후속타로 기획된 신화. 초창기에는 클릭비와의 경합을 벌이는 것으로 보였지만 곧 등장한 GOD의 등장과 함께 경합상대가 바뀐다. 편한 노래를 주무기로 삼은 GOD에 다소 밀리는 듯도 했지만, GOD의 침체기에 이어 신화의 상승세가 이어진다.
이효리 VS 렉시
2003년 섹시 코드로 이효리는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공식데뷔를 5년간이나 기다려야 했던 렉시는 같은 해 이효리 열풍이 여름철을 지나며 잠시 멈칫거릴 때,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잊지는 않았을 때 데뷔를 선택한다. 물론 ‘10 Minutes’와 ‘애송이’의 지점은 정도차는 있지만 과도하지 않을 만큼의 ‘남성지배’+ ‘섹스어필’유형의 어딘가를 공유한다.
비 VS 세븐
뮤지션 출신이 만든 두 기획사 JYP엔터테인먼트와 YG엔터테인먼트 간의 격전지 선두에는 비와 세븐이 있다. 고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이들 모두 전도유망한 한류스타로, 일본이나 태국 등지의 해외까지 진검승부처로 접수했다. 둘 다 광고의 노른자 이동통신사 광고 모델들이라는 점도 이들의 주가를 잘 알려준다. 특히 비와 세븐은 각각 섹시함과 귀여움이라는, 메트로 섹슈얼리티와 접속했다.
빅 마마 VS 버블 시스터즈
이 두 여성 4인조 그룹은 화려한 ‘외모’나 ‘댄스’가 아닌 ‘실력’을 마케팅화했다. 두 라이벌의 승부는, 외모에 대한 무조건적 안티 작전은 성공할 수 없음을 알려주며 YG패밀리의 빅마마의 승리로 끝맺었다.
DJ DOC VS 드렁큰 타이거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며 원조를 꿈꾸는 힙합 전사 대 ‘한국적인’ 랩과 접목시킨 댄스계 악동의 대비라고 해야 할까. 물론 드렁큰 타이거보다는 DJ DOC가 음악계 선배이지만 개그 댄스 래퍼로부터 힙합퍼로서 보다 다양한 음악을 첨부하며 변신한 게 2000년 5집 무렵이고 보면, 1999년 1집을 발매한 드렁큰 타이거와 힙합인으로서 유비가 가능할 듯.
싸이 VS 춘자
통상 사람들은 남자 대 여자 짝짓기(대응시키기)를 좋아한다. 가령 엽기 코드의 유행에 화제가 된 엽기 악동에 싸이가 있다면, '여자 싸이'에는 춘자가 있다. 레게 파마 가발 혹은 스포츠형 머리의 다소 ‘깨는’ 패션에 솔직한 화법 때문이겠지만 춘자의 경우는 (통념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이지만) 세태풍자도 접합했다. 싸이와 춘자는 <몽정기2 O.S.T>에 동반 참여하기도.
자우림 VS 더더
무리수를 두고 말하면,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말랑한 록을 ‘한국형 모던 록’으로 공식화, 대중화한 데에는 더더의 역할이 지대하다. 더더는 박혜경 탈퇴 이후 2001년 한희정을 영입하고 4인조 ‘밴드’로 재탄생시켰다. 하지만 초반기 더더와 비슷한 시기 1997년 1집을 발표한 자우림도 여성 보컬 김윤아의 카리스마를 내세웠다. 이 두 밴드 모두 현재 대표적인 (모던) 록 밴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듯.
크라잉 넛 VS 노 브레인
크라잉 넛과 노 브레인은 1세대 열혈 펑크 키드. 둘 다 한국 펑크의 성지 드럭 공동체에서 출발했지만 노 브레인은 1998년 새로운 자주 레이블‘문화사기단’을 설립해 인디 펑크 제2기를 견인해내며 드럭 대 문사단 혹은 막말로 ‘팔린 펑크 대 순수 펑크’를 구도화했다. 크라잉 넛은 ‘주류 음악계로 침범한 인디의 효시’로서 대중적 인사로 등록한 반면 노 브레인은 열혈 ‘청춘예찬’을 한 ‘조선펑크’를 주창했다.
어어부프로젝트 VS 황신혜밴드
1997년경 홍대 앞 클럽가에 활동했던 이 두 그룹을 묶어주는 수식어는 아방가르드. 물론 그 방향은 대조적이다. 의도적인 저급화(camp)의 가벼운 재미(황신혜밴드)와, 초현실적 부조리의 무거운 불편함(어어부프로젝트)이란 상이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들이 뜻을 모으기도 했는데 컴필레이션 <도시락특공대>가 그것. 하지만 이는 음악이 같아서가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향한다는 연대를 보여주는 제의가 아닐까
델리 스파이스 VS 언니네 이발관
인디에 모태를 둔, 한국 모던 록의 맏형으로 10년차 된 관록의 록 밴드. 그간 멤버 교체도 있었고 부단한 변화의 시대를 통과했는데 은근한 저력으로 이를 돌파한 이들은 서로 간에 대립적이라기보다 공생적인 관계로 비친다. PC 통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결성되어, 인디 신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은 이들은 서정적인 노랫말, 간단하면서도 깔끔한 연주 등을 탑재한 대표적인 모던 록 밴드이다.
주의 | 이 리스트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고로 이에 대한 이의가 무수히 생길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무림의 지존은 많은 경우 하수들의 도전이 없거나, 있다 해도 적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자가 없기 마련이므로 그 경우는 제외되었다.
천년을 빌려준다면 - 박진석
1.당신을 사랑하고
정말정말 사랑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당신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해 주고 싶어.
후렴:만약에 하늘이 하늘이 내게
천년을 빌려 준다면
그 천년을 당신을 위해 사랑을 위해 아낌없이 모두
쓰겠소.
2.당신을 사랑하고
너무너무 사랑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당신위해
원하는 것 다 해주고 싶어.
어느날 하늘이 내게
천년을 빌려 준다면
그 천년을 당신을 위해 사랑을 위해 아낌없이 모두 쓰겠소.
가사 출처 : Daum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