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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끼] 35 - 우정은 상한가
1 피자 가게
(어디론가 전화하고 있는 성연의 모습.
갑자기 표정이 환해진다.
점장에게 무언가 얘기하고 있는 모습. 점장, 대견하다는 듯 어깨를 두드 려주며 고개를 끄덕하자 성연, 인사하고 급하게 앞치마를 벗어던지며 나 간다. )
2 거리
(신이 나서 거리를 뛰어가는 성연의 모습.)
3 스튜디오 앞
(스튜디오 앞까지 뛰어온 성연, 숨이 턱까지 차서 헉헉대다 잠시 숨을 고 르고는 조심스레 문을 연다.)
4 스튜디오 안
(문에 매달아놓은 종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는 성연.)
민 어서 오세요.
(하고 보면 성연이다.)
민 어? 성연아, 무슨 일이야?
성연 민아, 나 됐어. 전화해봤는데 합격했대.
민 정말?
성연 (울음이 날 것 같다) 응.
민 잘됐다, 정말. 거봐, 내 뭐라 그랬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꼭 될거라 고 그랬잖아.
성연 고마워, 니 덕분이야.
민 나도 고마워. 이렇게 제일 먼저 알려주려고 뛰어와줘서.
(서로 마주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데, 안쪽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이실 장. 30대 중반 정도?)
이실장 앗 여자 친구?
민 네. (성연에게) 언제 한번 말했지? 이 스튜디오 주인인 이실장님.
성연 안녕하세요?
이실장 네, 민이 녀석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성연 저두요.
이실장 근데 무슨 일? 사진 찍으러 온 것 같지는 않구.
민 광고회사 합격했대요. 그거 알려주러요.
이실장 그래요? 정말 축하할 일이네? 축하해요.
성연 감사합니다.
이실장 가만, 지금 암실에 작업하는 사람 있나?
민 암실은 왜요?
이실장 이 기쁜 순간에 그렇게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을거야? 지금부터 10분 동안 암실 사용권 넘겨줄테니까 가서 뽀뽀를 하던지 맘대로 하라구.
(어머, 얼굴 붉어지는 성연.)
5 인터넷 까페
(모두 모여있는 아이들.)
달래 (놀라서) 정말? 너도?
유재 응.
달래 넌 어딘데?
유재 영 애드.
대주 정말? 어우, 씨. 뭐야, 성연이에 너까지 취직 되버리면 난 어떡하라구.
유재 어떡하긴 뭘 어떡해. 너도 빨리 취업하면 되지.
대주 그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그러지.
유재 민이 넌 그 아르바이트 하는 스튜디오에 그냥 눌러앉을 생각이니?
민 아니, 아직 결정 못했어.
유재 달래 넌?
달래 나야 어렵고 험난하지만 이미 콘티맨의 길로 들어섰잖아.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조만간에 김교수님 소개로 한 건 맡을 것도 같아.
성연 정말? 잘됐다.
달래 너희들도 회사에서 대충 자리 잡으면 나한테 꼭 일 맡겨야 돼? 특히 신 유재, 너 배신 때리면 알지?
유재 알았다, 알았어.
달래 출근은 언제부터야?
성연 2주후부터.
유재 난 다음주부터 연수 2주 받고 그 후에.
성연 그동안 난 며칠만이라도 집에 좀 다녀오려구.
달래 전환 드렸어?
성연 어.
달래 좋아하셨겠다. 무지무지.
성연 응.
달래 그동안 강민 심심해서 어떡하냐.
민 심심할 틈이 어딨냐. 요즘 맨날 밤샘 촬영인데.
(아이들, 저마다 신나서 얘기하는 동안, 점점 풀이 죽어가는 대주.)
달래 그래도 졸업때가 가까워지니가 다들 어떻게든 자리를 잡긴 잡는구나.
있잖아, 사실은 나 졸업전까지 아무 일도 못하면 졸업식도 참석 안하려고 그랬다.
유재 왜?
달래 생각해 봐. 엄마, 아빠 얼굴 보기도 그렇고, 후배들 얼굴 보기도 창피해 서. 얼마나 능력없으면 백수로 졸업할까 그럴거 아냐.
(그 말이 가슴에 콕 와 박히는 대주. 고개 푹 꺽인다.)
6 인터넷 까페 앞
(혼자 걸어나오는 대주. 열등감에 잔뜩 휩싸인채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는 대주.)
7 하숙집 앞
(힘없이 하숙집 앞으로 돌아오는 대주.
그때, 하숙집 대문이 열리며 시장 가던 아줌마가 나온다.)
아줌마 어? 대주 학생? 아니, 이젠 학생이 아니지. 쪼매 있으면 어엿한 회사원 이 될터인데 이젠 뭐라고 블러야 한댜. 대주 총각? 그건 쪼매 그렇다, 그 지? 그럼 황군? 미스터 황? 어떤 게 좋겠어?
대주 네? 아, 아무렇게나 편한대로 부르세요.
아줌마 그, 그럼 황군. 사실은 내 그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좀 있었는디.....
대주 뭔데요? 말씀 하세요.
아줌마 사실은 이달부터 하숙비를 좀 올려받았으면 해서. 내 그동안은 취직도 안됐는데 하숙비 올려달란 소리하면 매정하다 할 것 같아서 아무 소리 안 하고 있었 는데, 내 사정도 어렵게 돼나서 말이야.
대주 어, 얼마나 올려드려야 하는데요?
아줌마 일단 5만원만 올려받지 뭐.
대주 5만원이요?
아줌마 그래도 우리 남는 거 하나 없어.
대주 그래두.....알겠습니다. 아버지한테 의논드려 볼께요.
아줌마 그럼 난 이번달부터 그렇게 올려받는 걸로 알고 있을게. 춥네. 나 시장 다녀올라니까 얼른 들어가.
대주 네.
(아줌마, 시장 바구니 들고 걸어가면 대주,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8 하숙집 / 마당
(마당에 들어선 대주, 적당한 마루턱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대주 여보세요?.....엄마? 아버지 계세요?....(하다가 안돼겠는지)...아녜요, 엄마. 나중에 다시 걸께, 바꾸지 마세요....네, 끊어요.
(후, 한숨 쉬는 대주의 얼굴에서 F.O.)
9 인터넷 까페
(택수 혼자 신문을 읽으며 앉아있다.
안으로 들어서는 대주.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자)
대주 애들 한 명도 안왔어요, 아저씨?
택수 안왔는데?
대주 우찬이는요?
택수 우찬인 요즘 새로운 IP 사업인가 뭔가 구상한다고 바쁘고.
대주 그래요?
10 도로
(차를 세워둔 곳으로 전화를 걸며 걸어오는 대주.)
대주 어....달래냐? 영화 보여줄께, 나와라...(실망)...김교수님 만나러 가야한다 구?....알았어.....
<점프>
대주 신유재? 어디냐?.....뭐, 영어학원? 수업중? 알았어.....
(전화 끊고 다른 데 또 누르려다 그만두는 대주. 거의 차 앞까지 다다랐 는데, 순간, 경악하며 차로 달려든다.
보면 앞 유리창에 떠억 붙어있는 주차위반 스티커.
머리를 쥐어뜯으며 어쩔줄 몰라하는 대주.)
11 도로
(신호등 앞에 서있는 대주 차.
앞유리창엔 스티커를 떼어낸 종이 잔해가 남아있다.
워셔액을 팍팍 뿌리고 윈도우를 작동시키는 대주. 그러나, 쉽게 없어지지 않는 스티커 자국.
대주, 가뜩이나 심사가 불편한 상태에서 신호 바뀌자 주위도 잘 살피지 않고 그대로 출발한다. 그러나, 그 순간 옆쪽에서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브레이크를 밟지만 이미 늦었다. 쾅 충돌!
대주, 너무 놀라 운전대에 머리를 들이박고 고개를 들지 못한다.
오토바이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
바들바들 떨며 어쩔줄 모르는 대주, 누군가가 운전석 옆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겨우 고개를 들어보면 헬맷 쓴 오토바이맨이다.
창문, 스르르 내리며)
오토맨 (소리 지르며) 도대체 눈을 어따 두고 운전하는 거야, 응!
대주 죄, 죄송합니다.
오토맨 말로만 죄송하다면 다야? 저기 누워있는 오토바이랑 짐은 어떡할건데?
12 은행 앞
(현금 인출기에서 현금 30만원을 꺼내 오토바이맨에게 건네주고 있는 대 주.
오토바이맨, 현금을 일일이 세보고는 주머니에 넣으며)
오토 오늘 운 좋은줄 알아. 앞으론 잘 좀 보고 다녀, 알았어?
대주 네.
(오토바이 끌고 걸어가는 오토바이맨. 되는 일 하나도 없네, 명세표 구겨 입으로 잘게 물어뜯는 대주.)
13 대형서점
(괜히 서가에 서서 이 책 저 책 뽑아보는 대주. 보면 대부분이 처세술에 관련된 책들.
대주, 책들을 쭉 훑으며 지나가다 옆에 서서 책을 읽고있던 사람과 부딪 친다.)
대주 (형식적으로)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가려다 그 사람이 낯이 익어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한다.
그 시선을 느낀 태영, 언뜻 돌아보다 시선이 마주친다. 그러나 황망히 시 선을 피하며 얼른 책을 제자리에 꽂아놓고 그 자리를 떠나는 태영.)
대주 혹시....태영 선배? 태영 선배 아네요?
(할 수 없다는 듯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겸연쩍게 씨익 웃는 태영. 행 색이 한눈에 봐도 좀 초라하다.)
태영 어.....황대주! 오랜만이다. 어디 가서 차나 한잔 할까?
14 은행 안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들고 오는 태영.
고객 대기석에 앉아있는 대주는 좀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와 대주 에게 커피를 건네주는 태영.)
태영 마셔.
대주 네.
태영 이 근처에선 이 은행 커피가 제일 맛있어.
(그때 바로 앞을 눈치 주며 지나가는 청원경찰. 대주, 앉아있기가 껄그러 운데, 태영은 태연하다.)
태영 신경쓰지 마. 잔액은 별로 없어도 나도 이 은행 통장 갖고 있는 어엿한 고객이니까.
(대주, 이 사람이 원래 이랬나 물끄러미 쳐다보면)
태영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니?
대주 아뇨, 옛날이랑 많이 달라지신 것 같아서요.
태영 백수 생활 오래하다 보면 다 그렇게 돼.
대주 왜 아직도 취직 안하셨는데요?
태영 안한게 아니라 못한 거지.
대주 왜요? 성적도 좋으셨잖아요.
태영 좋으면 뭘하냐. 아예 시험봐볼 기회도 없었는데.
대주 시험볼 기회도 없었다뇨?
태영 내가 학교를 좀 늦게 들어갔잖냐. 그런데다 어학연수도 1년 다녀오구. 그런데, 돌아와서 입사 시험을 보려니까 IMF에 딱 걸린거야. 아무데도 사람을 안뽑더라. 그래도 언젠가는 뽑겠지. 2년을 기다렸지. 기다린 보 람이 있었던지 올해부터 다시 공고가 나오더라. 그동안 갈고 닦은 내 실력을 드디어 발휘할때다 입사원서를 내러 갔지. 그랬더니 받을 수가 없다는 거야.
대주 왜요?
태영 나이 제한에 걸렸다나 어쨌다나.
대주 네?
태영 다들 몰라서 그렇지 나 같이 억울한 사람 한둘이 아니야.
대주 전 그런 일이 있으신 줄 정말 몰랐어요.
태영 더 말하면 뭐하냐, 가슴만 아프지. 근데 넌 취직 했냐?
(그 말에 기가 죽어 고개 푹 숙이는 대주.)
태영 가르쳐야할 후배 또 하나 늘었구만.
15 거리
(나란히 걷고있는 태영과 대주.)
태영 이 생활 하려면 무엇보다 정보가 밝아야 해. 지금이 어떤 시대냐, 밀레니 엄, 21세기 아냐. (수첩 열어보며) 어디 보자, 너 영화 보러 안갈래?
대주 영화요?
태영 응, 시사회가 하나 있는데, 좀 추워도 줄만 잘 서있으면 공짜로 들여보내 주거든.
대주 다, 다음에 보죠.
태영 (수첩 보며) 음, 그럼 구민회관에서 하는 신년음악횐 어때?
대주 그것두 공짜예요?
태영 그럼, 임마. (수첩에 까맣게 적혀있는 리스트 보여주며) 여기 적힌 건 다 공짜야.
(대주, 와, 대단하다, 입이 벌어지는데)
태영 근데, 너 출출하지 않냐? 따라와.
16 백화점 식품매장
(한 시식코너 앞에서 만두를 맛있게 먹고있는 태영.
대주, 창피한 표정으로 태영에게서 멀리 떨어져 쫓아다닌다.
이번엔 삼겹살 코너로 가서 삼겹살을 맛있게 집어먹는 태영.)
태영 대주야, 와서 이것 좀 먹어봐. 파삭파삭하니 아주 고소하다.
(대주, 못들은 척 돌아서서 물건 하나를 살것처럼 만지작 만지작 들었다 놨다 하기에 바쁘다.
잠시 후, 태영 다가와 그런 대주 어깨 툭 치며)
태영 야, 목매는데 저쪽 쥬스 시식코너에 쥬스나 한잔 먹으러 가자.
대주 (애원하듯) 선배님-. 창피하니까 제발 그만 가요. 내가 밥 살게요, 밥 살 게, 응?
(그 순간 인상이 차갑게 굳어지는 태영.)
태영 너 내가 그렇게 불쌍해 보이냐?
대주 아, 아뇨, 전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라.....
태영 너 내 생활철칙 제1조가 뭔지 알아? 도움은 받아도 동정은 받지 않는다 야. 알았어?
(화가 나서 성큼성큼 나가버리는 태영. 미안해 어쩔줄 모르며 따라나가 는 대주.)
대주 선배님, 선배님.....
17 백화점 앞
(밖으로 뛰어나오는 대주, 주위를 둘러보며 찾아보지만 태영의 모습은 어 디로 갔는지 온데 간데 없다. 후회하며 머리를 쥐어뜯는 대주.)
18 인터넷 까페 앞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는 대주. 그 바로 뒤쪽에서 다정하게 나타 나는 성연과 민.
성연의 양손엔 쇼핑백이 가득이다. 민, 대주 어깨 툭 치면)
대주 어? 니들 어디 갔다 오냐?
성연 (쇼핑백 들어보이며) 응, 이거 사러. 집에 내려갈 때 그냥 빈 손으로 갈 순 없잖아. 근데, 황대주, 애 이렇게 기운이 없어?
대주 어, 오늘 멀지않은 내 미래의 모습을 봐버렸거든.
(무슨 소린가 몰라 서로 멀뚱히 쳐다보는 민, 성연.)
19 인터넷 까페
(문 열고 들어오는 성연, 민, 대주.
우찬, 컴퓨터 앞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가 애들이 들어오자 후다닥 윈도우 창을 닫더니 광끼들임을 확인하고는 휴우,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대주 너 무슨 나쁜 짓 하고 있었냐?
우찬 나쁜 짓은.....
대주 근데 우리 들어오는데 왜 그렇게 놀라?
우찬 놀라긴 내가 뭘 놀랐다 그래?
대주 얘, 얘 봐라. 놀래놓고 안놀랬다고 시치미를 뚝 떼네. 솔직히 말해 봐. 너, 이상한 그림같은 거 보고 있었던 거 아냐?
우찬 아냐.
대주 아닌게 아닌 것 같은데?
(재빨리 마우스 빼앗아 화면 열어보려 하면, 필사적으로 화면 가리는 우 찬. 그러나 다 가리기에는 역부족. 보면 사이버 주식거래 사이트.)
대주 어? 이게 뭐야? 주식?
민,성연 주식? 너 주식투자하는 거야?
우찬 (혹시 누가 들을까봐) 조용히 해. 큰아버지 아시면 큰일난단 말야.
성연 큰 일 날걸 왜 해?
우찬 새로 시작하려는 IP 사업이 자본금이 좀 들어서. 큰아버지도 어려우신데 큰아버지한테 손 벌릴 수도 없잖아.
대주 그래서 돈은 좀 벌었냐?
우찬 벌긴. 나도 이제 막 시작했는데. 욕심 부리지 않고 사업자금만 벌면 손 뗄거니까 너희들 비밀 꼭 지켜줘야 돼, 알았지?
민,성연 그래, 알았어.
(그러나 그 순간 대주의 머리 속엔 무언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표정이 환 해진다.)
20 대형 서점 앞
(서점 앞으로 달려오고 있는 대주.)
21 서점 안
(주식관련 서적 코너. 주식 열풍을 반영하듯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몰려 책을 읽고 있다.
'주식, 이렇게만 하면 번다' 류의 현혹되기 쉬운 제목의 책들로만 몇 권을 골라드는 대주. 이거다! 하는 표정으로 그중 한 책의 책장을 넘긴다. 시 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겨대는 대주.)
22 공원 (밤)
(그네에 나란히 앉아있는 민과 성연.)
성연 고등학교 졸업할 때 쯤이었어. 집안이 어려워서 대학 진학은 포기하고 있었을 땐데, 학교가 끝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날따라 달빛 하나 없이 사방이 캄캄한 거야. 갑자기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막 뛰기 시작했어. 안그러면 영영 그 어둠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서. 그때, 내 처지가 그랬거든. 앞을 봐도 어둠이고, 뒤를 봐도 막막한 어둠 뿐인.
민 하지만 여기까지 잘 헤쳐왔잖아.
성연 응,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니까. 근데, 사람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나봐.
그토록 바라던 취업도 됐구, 내일이면 부모님이랑 동생들 보러 집에도 내 려갈거구, 지금 내 옆엔 이렇게 민이 니가 앉아있고.....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도 없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 다른 생각이 고개를 내밀어.
민 무슨 생각?
성연 ......
민 성연아.....
성연 나, 사실은 할 수만 있다면 공불 더 하고 싶었거든.
(그런 성연의 손을 잡아주는 민. 그 외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마음 이 아프다. 그 마음 알아챈 성연, 일부러 씩씩하게)
성연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좋아. 민이 니가 늘 이렇게 옆에 있어준다면.
(피식 웃는 민. 따라 웃는 성연.) (F.O)
23 기차역 휴게실
(휴게실에서 음료수 등 먹을 것을 사와 성연의 가방 속에 넣어주는 민.
성연, 빙긋 웃으며)
성연 이런 것두 챙겨주구 이렇게 배웅 나와주는 사람 있으니까 좋다.
민 올라올 때도 전화해. 꼭 마중나올테니까.
성연 정말?
민 그래. (가방 들며) 가자, 늦겠다.
24 기차역 개찰구
(개찰구 앞까지 와서야 가방 건네주는 민.)
성연 그럼 다녀올게.
민 그래, 조심해 갔다 와.
(성연, 손 흔들며 역무원에게 기차표 보이고, 안으로 들어간다.
조금은 허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민.
성연, 다시 한번 뒤 돌아보고 민에게 손 흔든다.
그렇게 몇번씩 서로를 돌아보고 기다리고 손 흔드는 성연과 민.
성연의 모습이 마침내 전혀 보이지 않게 된 후에야 민, 그 자리에서 돌아 선다.)
25 증권회사 건물
(건물 앞으로 어제 산 그 책을 읽으며 걸어오는 대주.)
대주 발로 뛰지 않는 투자는 실패할 우려가 있다. 투자를 결정하기 전 우선 객장에 나와 분위기부터 익히고,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물 앞에 다다르자 우뚝 서서 간판을 올려다보는 대주. 잠시 쳐다보더 니 결심한 듯 안으로 들어간다.)
26 객장 안
(주식현황판 앞에 몰려앉아있는 사람들.
주식열풍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라도 하듯 젊은 사람들부터 나이든 할머 니, 할아버지까지 그 층이 다양하다. 무아지경에 빠진 듯 입을 반쯤 헤벌 린채 현황판만 올려다보고 있다.
현황판에 주가가 오르고 내릴때마다 제각각 교차하는 사람들의 표정.
대주, 그 앞으로 쭈뼛쭈뼛 다가와 빈 자리에 앉는다.
객장 안의 분위기가 신기하기만 한 대주. 앉아서 이곳 저곳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는데, 옆자리에 와서 앉는 한쌍의 젊은 남녀. 기수와 선희.)
선희 지금쯤은 우리도 말을 갈아타야 할텐데.....어디 보자. 일단 오성꺼 내다팔 고 진영전자 어때?
기수 안돼. 오성껀 좀 더 가지고 있어. 이제 오를 때 됐단 말야.
선희 그럼 일양화학.
기수 (현황판 보더니) 음, 괜찮네. 그럼 그걸 팔고 동해정보통신꺼 사.
선희 몇 주?
기수 일단 100주 사고, 50주 정도 미수 쳐.
선희 미수가 뭔데?
기수 (통달한 듯) 일종의 외상 거랜데, 이미 100주 산 투자원금을 증거금으로 잡히고 그 두배까지 주식을 사는 걸 말하는 거야.
(옆에서 몰래 열심히 주워듣고 있는 대주. 아하, 그런거구나 고개를 끄덕 이기도 하고, 책에다 메모하기도 한다.)
기수 대신 주식 결제일이 돌아오긴 전까진 매입주식을 되팔거나 부족한 돈을 채워놔야지.
선희 그건 너무 위험한 거 아냐?
기수 그렇긴 한데, 이 종목은 워낙 확실해서 괜찮을 거야.
선희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할게.
(대주, 선희가 주문을 하러 가자 그제야 얼마나 대단한 남잔가, 옆에 앉은 남자의 얼굴을 슬쩍 훔쳐본다. 그러다 설마? 고개를 갸웃하는 대주.
기수도 고개 돌리다 그런 대주와 시선 마주친다. 어?)
기수 혹시 황대주?
대주 장기수? 너 장기수 맞아?
(이름 때문에 옆에 앉은 사람들이 킥킥대며 웃는다.)
대주 학교 졸업하고 첨이지, 그지?
기수 야, 남들이 오해하겠다. 성은 좀 빼고 불러라. 학교니 장기수니 무슨 흉 악범인줄 알겠다.
대주 그렇지 않아도 내 옆에 앉아있는 주식의 달인이 누군가 궁금했는데, 그게 너였다니 하여튼 무지 반갑다.
이럴게 아니라 우리 다른 데 가서 얘기 좀 하자.
27 레스토랑
(비싼 음식 먹고있는 기수와 선희, 그리고 대주.)
기수 인사해, 여긴 내 여자친구 김선희. 이쪽은 고등학교 동창 황대주.
선희 안녕하세요?
대주 와, 무지 예쁘시네요.
기수 으이그, 얼굴만 안변한줄 알았더니 예쁜 여자 보면 어쩔줄 모르는 것도 여전하네. 근데, 너 거긴 어쩐 일이야? 너도 주식하냐?
대주 아니, 주식을 하고있다기보다도 앞으로 해보면 어떨까 해서.....
기수 뭐야, 그럼 아직도 안하고 있었단 말야?
대주 어, 그동안 그럴 틈이 없었거든. 취직준비도 해야하고, 뭐 이것저것 바빠 서....난 이번이 졸업이잖냐.
기수 뭐 취직? 야, 골치 아프게 그런 건 뭐하러 하냐? 한달 내내 뼈빠지게 일해봐야 겨우 몇 푼 손에 쥔다고. 차라리 주식을 하는 게 훨 낫지.
대주 정말?
기수 그래, 난 요즘 코스닥에 투자해서 재미 좀 봤잖냐. 몇 달새 웬만한 대졸 초임 연봉은 벌어들였을 걸?
(맞다고 고개 끄덕여주는 선희.)
대주 코, 코스닥이 뭔데?
기수 너 정말 이쪽은 전혀 깜깜이구나. 음, 코스닥이 뭐냐하면 장외주식거래시 장을 말하는 건데.....에이, 설명해야 못알아들을 거구 내가 아는 사람이 거 기서 2000만원으로 8개월동안 1억 8천까지 벌었다고만 알아두면 돼.
대주 저, 정말?
기수 그래서 우리도 시작한 거 아냐. 열심히 돈 벌어서 졸업하면 그 돈으로 유학가려고. 그동안 꽤 모았지?
선희 합해서 한 삼천쯤?
대주 (기절할 듯이) 사, 삼천!
기수 너도 해볼 생각있음 언제든지 말해. 내가 잘 아는 증권사 형 소개 시켜 줄테니까.
대주 나한테 그런 큰 돈이 어딨냐?
기수 (웃으며) 누가 처음부터 그렇게 큰 돈 갖고 시작하래? 일, 이백 정도로 재미삼아 시작하는 거지.
선희 우리도 처음엔 등록금 갖고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불려나간 거죠.
(점점 솔깃해지는 대주의 표정.)
기수 주식에도 말야 회전이 있는데, 옛날엔 작은 회전은 3개월, 큰 회전은 3년 이라 그랬거든? 그런데, 요샌 코스닥 시장 때문에 많이 달라졌어. 하루 에도 몇번씩 그런 회전이 일어나거든.
(기수의 얘기에 점점 빠져드는 대주.)
28 거리
(무엇엔가 홀린 듯 거리를 걷고 있는 대주.)
대주 삼천, 삼천!
29 횡단보도 앞
(횡단보도 앞에 서서 신호 바뀌었는데도 갈 생각도 안하고 멍하니 서있는 대주.
뒤늦게 건너가다 신호 바뀌어 출발하려던 차 주인에게 욕이나 얻어먹고)
30 다른 거리
(마침내 고민에 종지부를 찍고 결심하는 대주!
걸어가다 우뚝 멈춰서며 뭔가 결의에 찬 표정을 짓는다.)
31 어느 건물 화장실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대주.
화장실 문을 하나하나 열어 모두 비었나 확인하더니 화장실 문을 잠그고 핸드폰을 꺼내든다. 전화하는 대주.)
대주 (갑자기 불쌍한 목소리로 울먹울먹) 아, 아버지? 저, 대준대요....제가 차 를 들이받았는데, 피해자쪽에서 합의금조로 백만원을 당장 내놓치않으면 유치장에 집어넣겠대요.....아, 아뇨, 아버지가 올라오시면 이미 때는 늦어 요.....그러니까 제 통장으로 얼른 돈 좀 부쳐주세요, 네?.....아부지, 아부지, 안그러면 저 저사람들한테 맞아 죽을지도 몰라요, 조폭처럼 무섭게 생겼 단 말예요.....아부지......네, 네, 얼른요......
(대주, 그래도 양심에 찔려 전화기에 대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인사.)
32 은행 앞
(은행에서 통장을 뒷주머니에 찔러넣으며 나오는 대주.
돈이 입금됐는지 뿌듯한 표정이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건다.)
대주 어, 기수냐? 난데.......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걸어가는 대주. 화이트)
33 인터넷 까페
(잔뜩 화난 얼굴로 들어오는 유재와 달래.)
우찬 어? 너희 오늘 연극 보러 간다고 그러지 않았냐?
유재 말도 마라. 그 여주인공이 남자주인공을 칼로 찔러죽이지 않았다면 나라 도 올라가서 대신 찔러줄 뻔 했다는 거 아냐.
우찬 연기가 그렇게 리얼했어?
유재 리얼은 무슨, 그래야 연극이 끝나니까지.
우찬 뭐야?
달래 아무리 재미없어도 그렇지, 그렇다고 중간에 나가자는 건 뭐냐?
유재 그럼 사서 고문 당하고 있을 필요 뭐있냐.
달래 난 고문 아니었어. 두 번 다시 너랑 연극 보러 가나봐라.
유재 내가 할 말이네.
우찬 야, 난 여기 지키느라 꼼짝도 못했는데, 니들 지금 나 약올리냐?
달래 그랬나? 미안. 근데, 대주는?
우찬 그게 어째, 요새 통 보이지가 않는다?
(말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짠 문을 열고 나타나는 대주.)
대주 하하하, 그동안 잘들 있었냐!
유재 혹시라도 지 흉 볼까봐 얼른도 나타난다.
달래 요즘 통 보이지 않길래 시골로 낙향이라도 했나 했더니 어디서 뭘 하다 나타나냐?
대주 어허! 낙향이라니. 내가 내려가면 금의환향이지.
달래 에구, 또 시작이다, 또 시작.
대주 근데, 여기 니네 뿐이냐? 강민은?
우찬 성연이도 없는데 걔가 여기 혼자 올 일 있냐?
대주 성연인 언제 오는데?
달래 몰라. 내일이나 모레쯤 올라온대나 봐.
대주 하, 거 오래도 있네, 빨리빨리 좀 올라오지. 내가 거하게 한턱 쓸려고 했 더니 결정적인 순간에 없네.
달래 한턱? 대주, 너 무슨 좋은 일 있어?
대주 (거드름) 있지.
유재 설마 너 취직했냐?
달래 어? 정말?
(고개를 젓는 대주.)
우찬 그럼?
대주 우찬이 너 주식은 잘돼가?
우찬 여기서 그 얘긴 왜 꺼내냐?
대주 벌었어, 못벌었어?
우찬 원금에서 조금 까졌어.
대주 쯧쯧쯧..... 너희들 코스닥이라고 들어봤냐?
달래 코스닥? 코스닥이 뭔데?
유재 주식 말하는 거야?
대주 그렇지, 바로 그거야. 이 황대주가 코스닥에 투자해서 돈 좀 벌었다는 거 아니냐. 가자, 오늘 내가 한턱 낼게. 강민도 부르구, 우찬이 너도 택수 아저씨 들어오시는대로 얼른 와라!
(먼저 밖으로 나가는 대주.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는 아이들.)
34 음식점 (밤)
(지글지글 맛있게 익어가는 고기판. 성연만 뺀 아이들 모아놓고
대주, 상추쌈 입에 터지게 넣고도 신이 나서 얘기하기에 바쁘다.)
대주 그러니까 내가 갖고있던 주식이 사흘동안 상한가를 친거야.
민 그럼 얼만데?
대주 상한가가 12%씩이니까 36%. 100만원 투자해서 36만원을 번 셈이지. 사 흘만에.
달래 대단하다.
대주 (어깨에 잔뜩 힘) 뭘, 이제 시작이지 뭐.
유재 그럼, 넌 앞으로도 계속 주식 하겠다는 거야?
대주 당연하지.
유재 아서라. 지금 땄을 때 그만 둬.
우찬 그래, 나도 해보니까 그거 장난 아니더라. 나도 원금만 회복하면 그만둘 거야.
대주 걱정마, 걱정마. 이 황대주가 누구냐! (맥주 한잔 쫙 들이키며) 캬, 시원 하다. 근데 니네들 왜 이렇게 못먹냐? 고기가 맛이 없나? 강민, 맛없 어?
민 (그제야 한점 집어먹으며) 아니, 맛있어.
대주 맛있지, 그치? 더 시켜줄테니까 많이들 먹어. 오늘은 내가 산다니까. 아줌마, 여기 2인분 더 주세요!
(의기양양한 대주. 그런 대주를 보면서 표정이 밝지만은 않은 아이들.)
35 증권사 객장 안
(주가현황판 앞에 앉아있는 대주와 기수. 현황판을 들여다보며 투자종목 을 의논하고 있다.)
대주 현진은 어때?
기수 아냐, 아냐. 케이통신이 괜찮을 것 같애.
대주 케이통신?
기수 응, 지난 번거 판 돈으로 이거 다 사.
대주 이거 한 종목만?
기수 왜?
대주 책에서 보니까 분산투자가 유리하다 그래서......
기수 (웃으며) 야, 야, 그건 몇 천, 몇 억씩 가지고 하는 사람들 얘기지. 걱정 말고 이거 사.
대주 그래? 알았어.
기수 잠깐, 그러지 말고 자본금이 적으니까 아예 미수를 치자. 그러면 원금의 두배까지 살 수 있으니까.
대주 미수를?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기수 그렇게 소극적으로만 해서 언제 돈 버냐? 주식의 매력이 뭔데? 위험이 큰 만큼 수익도 그만큼 크다는 거 아냐. 하지만 뭐 판단은 본인이 내리 는 거니까, 맘대로 해.
(잠시 갈등하는 대주. 이윽고 결심한 듯)
대주 알았어, 니 말대로 해보지 뭐.
기수 그 증권사 형이 추천한 종목이면 틀림없어. 두고봐, 절대 후횐 안할테니 까.
36 기차역 광장
(혼자 여행가방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성연. 흐뭇한 표정이다.)
37 스튜디오 앞
(밖으로 뛰어나오는 민. 주위, 둘러보는데 건너편 공중전화 박스 옆에서 손 흔들고 있는 성연. 뛰어가는 민.)
민 뭐야, 올라올 때 전화하라고 했잖아.
성연 바쁜데 괜히 나올까 봐.
민 그런데, 왜 벌써 올라왔어? 더 있다 올줄 알았는데.
성연 그러려고 했는데, 자꾸 누가 보고싶잖아.
민 (미소) 잘 왔어,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따뜻하게 마주보는 두 사람.)
38 인터넷 까페
(오징어를 먹고있는 아이들. 대주만 보이지 않는다.)
달래 야, 이 오징어 정말 맛있다.
유재 마요네즈에 찍어먹으면 더 맛있을텐데.
성연 (아이들 앞에 한꾸러미씩 놓아주며) 먹구 이건 집에 가지고 가서 먹어. 엄마가 싸줄게 이거 밖에 없다구 많이 싸주셨어.
(하나씩 놓아주는데, 하나가 남자) 근데, 어? 대주는? 대주가 안보이네?
달래 대주, 요즘 바뻐.
성연 뭐 하는데? 아하, 취직시험?
달래 아니.
성연 그럼?
아이들 (일제히) 주식.
성연 뭐? 주식?
39 거리
(신이 나서 흔들흔들 걸어오고 있는 대주.
가판대 앞을 지나가다 스포츠 신문을 한 부 뽑아들고 돈을 낸다.
그대로 돌아서려다 아니지, 하는 생각에 스포츠 신문 도로 꽂고 경제신문 으로 바꿔가는 대주.
걸어가며 주식면 확 펼치는데, 갑자기 인상이 굳어지는 대주.
잘못 본 거 아닌가 고개를 흔들고 다시 한번 확인하는 대주. 그러나 이 내 절망적으로 변하는 대주 표정. 갑자기 다리가 팍 꺾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한다.
가까스로 일어나 비틀비틀 걸어가는 대주.)
40 증권사 객장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현황판 앞에 앉아있는 대주.
연신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데 그때마다 흘러나오는 건 가입자가 전화 스 위치를 꺼놓았다는 메시지.
대주, 더 이상 기다리다 못해 벌떡 일어나 창구 앞으로 뛰어간다.)
대주 (직원에게 계좌 카드 내밀며) 케이통신 주식 전부 팔아주세요!
직원 전부요?
대주 네.
직원 (계산해보더니) 어이구, 손해 많이 보시네요.
대주 어, 얼마나요?
직원 수수료랑 세금 제하면 한 30만원 남겠는데요?
대주 120만원중에서 겨우 3, 30만원이요?
직원 주식이란 게 원래 그렇죠. 웃는 날 있으면 우는 날도 있고, 쨍한 날 있으 면 흐린 날도 있고..... 누가 압니까? 다음번엔 그 반대상황이 일어날지?
41 거리
(기운 쭉 빠져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대주.)
대주 미쳤어, 미쳤어, 내가 미쳤어. 기수 그 자식 말만 안들었어도 지금보다 30%는 손해 덜 봤을텐데. 아악,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도로 옆의 가로등에 머리 박으며)
내가 두 번 다시 주식에 손대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야.
(그대로 몇 번 더 박다가 머리 떼는데, 가로등에 붙어있는 한 광고지.
'돈 필요하신 분. 카드대출 환영.'
대주 그 광고에 잠시 못박힌 듯 서있다가 아냐, 고개 젓는다.
유혹을 뿌리치듯 성큼성큼 걸어가는 대주. 그러나 몇 걸음 못가 다시 한 번 뒤돌아 보고, 다시 또 뒤돌아본다.)
42 사채 빌딩
(시내의 허름한 빌딩.)
43 빌딩 계단
(낡고 좁은 계단. 광고지 들고 그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대주.)
44 사무실 앞
(귀를 대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나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문 열고 들어 서는 대주.)
45 사무실 안
(책상 한 개와 소파 한 세트만 놓여있는 휑한 공간.
경리 여직원 한 명과 어깨로 보이는 두 남자가 앉아있다.
대주, 들어서려다 주춤 뒷걸음치려는데)
어깨1 카드 긁으러 왔나?
대주 네? 네에.....
어깨1 이리로 앉아.
(대주, 쭈뼛쭈뼛 가서 앉는다.)
어깨1 카드.
대주 (분위기에 잔뜩 쫄아서) 네? 여기.
어깨1 얼마나?
대주 배, 백만원만.....
(어깨1, 카드 긁어 명세서 내밀며)
어깨1 싸인해.
(싸인하는 대주.)
어깨1 미스리, 여기 백만원 가져와.
미스리 네.
(바로 현찰 백만원을 어깨에게 가져다주는 미스리. 어깨1, 그중 10만원을 세서 빼내고는 나머지를 대주에게 준다.)
어깨1 확인해 봐. 백만원 맞나.
(세어보는 대주.)
대주 백만원이 아니라 구십만원인데요.
어깨1 십만원은 수수료야. 빌려간 백만원에 대한 이자는 한달에 10%씩, 복리로 계산되니까 그렇게 알아, 알겠어?
대주 (억울하지만) 네.
46 몽타주
(증권사 객장 / 메모지, 펜 들고 현황판 앞에서 꼼꼼히 체크하는 대주.
증권사 객장 / 시시각각 살아났다 실망했다를 되풀이하는 대주의 표정.
증권사 객장 / 초췌한 모습의 대주. 절망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앉아 있다.)
47 인터넷 까페
(절망적으로 고개 푹 숙이고 앉아있는 대주.
그런 대주를 둘러싸고 놀라고 기막힌 표정으로 앉아있는 광끼 아이들.)
유재 그렇게 그만두라고 말려도 말 안듣더니만.
달래 야, 지금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야.
성연 달래 말이 맞아. 그래도 그 정도에서 끝난 게 다행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런 실수 안하면 되는 거지 뭐.
민 그래, 비싼 수업료 내고 배웠다고 생각해.
대주 나도 그러고 싶지만 문제는 그 수업료가 아직 남아있단 거야.
우찬 수업료가 아직 남아있다니?
대주 그 돈 카드깡 한 거란 말야.
아이들 뭐야?
(기막혀 뻥한 아이들의 얼굴에서)
<점프>
대주 (울먹울먹) 내가 잠시 뭐에 씌웠었나 봐. 안그렇고야 제정신으로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가 있겠어?
유재 사태가 심각하군, 심각해.
대주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응?
성연 이럴땐 방법은 하나 뿐이야.
대주 (지푸라기 잡듯) 뭔데?
성연 (단호하게) 부모님한테 사실대로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는 거.
대주 그, 그건 더 안돼.
달래 왜?
대주 처음에 주식 시작한 돈 차 사고 냈다 거짓말 하고 타낸거란 말야?
아이들 뭐야?
(기막혀 다시 한번 뻥하고)
<점프>
대주 (풀이 죽어) 나도 알아, 나 같은 놈은 있으나마나한 놈이라는 거.
제대로 하는 거 하나 없으면서 늘 큰소리나 뻥뻥 치고 다니고, 공부도 안 하고 학점은 잘 나오기나 바라고, 두려운 일 앞에선 늘 비겁하고, 신념같 은 건 아예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고.....하지만 나 항상 너희들처럼 되고 싶었어. 아무리 어려워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윤성연, 표현은 잘 안해 도 생각이 깊은 강민, 잘난척은 늘 혼자 도맡아 하지만 곧은 신유재, 덜렁 대도 마음은 무지 따뜻한 달래, 언제나 소년같은 우찬이.....그런 너희들한 테 친구라는 이름으로 남기엔 내가 너무 부끄러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마음이 짠해지는 아이들.)
48 거리
(무거운 마음으로 걸어오는 민, 성연, 유재, 달래.)
달래 대주 어쩌면 좋지?
성연 글쎄, 우리가 조금씩 돈을 모은다해도 얼마나 되겠어?
(하다가 거의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는 아이들.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듯 너두? 너두? 묻는 아이들. 정확히 일치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49 몽타주
(크러쉬 / 김교수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고 있는 민과 성연.
오교수실 / 자영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부탁하는 달래.
인터넷 까페 / 택수에게 도움을 청하는 유재와 우찬.)
50 하숙집 앞
(아이들, 모두 모여 대주 하숙집 앞에서 대주를 부르고 있다.)
아이들 대주, 황대주! 황대주!
(잠시 후, 힘없이 안에서 나오는 대주.)
대주 너희들 왔니?
성연 빨리 옷갈아 입고 나와. 같이 갈데가 있어.
대주 어딜 가는데.
달래 투자설명회.
대주 무슨 투자설명회?
유재 같이 가보면 아니까 얼른 갈아입고 나오기나 해.
(대주를 다시 안으로 들여보내는 유재. 아이들, 서로 쳐다보며 빙긋 웃고)
51 인터넷 까페 앞
(영문 몰라하는 대주를 끌고오는 아이들.)
52 인터넷 까페
(아이들에게 이끌려 안으로 들어서던 대주, 놀란다.
택수 아저씨를 비롯 김남진 교수, 오자영 교수가 앉아있었기 때문.
아직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대주와 빙그레 웃으며 적당히 자리 잡고 앉는 아이들.
유재, 피티 할 때처럼 일어나 앞으로 나가 선다.)
유재 그럼, 지금부터 황대주군에 대한 투자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당황하는 대주.)
유재 성명 황대주. 22세로 한솔예대 광창과 졸업예정. 학점은 평균평점 2.8, 병역은 현재 미필이나 1급 판정을 받아놓은 신체건강한 대한민국 남성입 니다. 현재 주당 본질가치는 오천원이나 시장 등록후 적정주가는 1만원 선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가치보다는 미래의 성장가능성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투자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감동해 눈물을 쓰윽 훔치는 대주. 안 아프게 한 대씩 대주를 쥐어박는 자영, 남진. 택수, 주머니에서 흰봉투 하나 꺼내 탁자 위에 내려 놓으면 남진, 자영도 각자 하나씩 꺼내든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대주. 화이트.)
53 거리
(40씬처럼 똑같이 신이 나서 흔들흔들 걸어오고 있는 대주.
가판대 앞을 지나가다 스포츠 신문을 한 부 뽑아들고 돈을 낸다.
그대로 돌아서려다 아니지, 하는 생각에 스포츠 신문 도로 꽂고 경제신문 으로 바꿔가는 대주.
걸어가며 주식면 확 펼치는데, 갑자기 인상이 굳어지는 대주.
잘못 본 거 아닌가 고개를 흔들고 다시 한번 확인하는 대주. 그러나 이 내 절망적으로 변하는 대주 표정. 갑자기 다리가 팍 꺾이며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한다.
가까스로 일어나 비틀비틀 걸어가는 대주.)
54 인터넷 까페
(사색이 되어 들어오는 대주. 아이들, 대주가 또 무슨 사고를 친 건 아닐 까 긴장해서 지켜보는데, 대주,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걸어와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달래 대주야, 황대주! 이번엔 무슨 일인데?
(말 대신 들고있는 신문을 가리키는 대주. 보면, 주식란이 펼쳐져 있다.)
달래 뭐야, 그렇게 혼나고도 너 또 주식 한거야?
아이들 뭐야?
대주 (그제야 겨우) 그게 아니라 니들하고 두분 교수님, 택수 아저씨하고의 약 속대로 손해본 주식 다 팔아치웠잖아.
달래 그런데?
대주 (울상이 되어) 근데, 그게 폭등하고 있대. 어제도 오르고, 오늘도 오르고, 내일도 오를 전망이래. 아이고, 아까워라, 며칠만 더 가지고 있었어도.....
아이들 뭐야!
(아직도 정신 못차렸어, 맞아야 돼, 맞아야 돼, 대주에게 달려드는 아이들.
아냐, 아냐, 잘못했어, 잘못했어, 도망가는 대주.
그런 아이들의 얼크러짐 속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