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淸明, 寒食 날 떠난 강화도 1박2일 추억 만들기
(인천광역시 강화군과 강화군 삼산면)
다음 불 로그:- kims1102@
-여행전야(旅行前夜)
우연찮게 어느 회원이 1박2일로 강화도여행 한번 해보자는 그냥 지나가듯
한 얘기가 발단이 되어 산행이사가 주연(主演)이 되어 계획을 세우고,
회원모집을 하고, 실행으로 옮기는데 고생이 많았다.
처음에는 회원 수가 적어 인원을 확보하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나중에는 인원이 넘쳐 오해 없이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다한다.
인간사(人間事) 딱 정해진 것이 없는지라,
참여인원 46명중 2명이 갑작스런 개인사정으로 당일에 불참하니 44명으로
우리는 강화도-석모도 1박2일 산행 겸 여행의 출발신호를 울렸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절기상 청명이요, 한식날이며,
온 국민이 전국적으로 나무를 심는 식목기념일이기도 하다.
-제1일차
날씨는 대체로 흐렸지만 가끔은 해도 나왔다.
절기상 청명(淸明)은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때로는 한식과 같은 날이 된다.
동시에 오늘날의 식목일과도 대개 겹치게 된다.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청명을 기하여서 봄 일을 시작하므로
이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농사력(農事曆)으로 청명 무렵에 논, 밭둑의 손질을 하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 작업이 된다.
다음 절기인 곡우 무렵에는 못자리판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많이 짓는
경우에는 일꾼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청명, 곡우 무렵이면 서둘러 일꾼을 구하기도 하였다한다.
경기 강화도는 거리가 멀어서 산행버스 출발시간을 한 시간 앞당겼다.
아침 무렵에 한 시간이란 사람을 엄청 바쁘게 만든다.
버스를 두 번 타야하는 나로서는 버스를 포기하고 택시를 타야 할 판이다.
1박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함께 동행 해줄 복용 약들도 챙겨야한다.
집 앞에서 택시를 탔는데 광주역에 도착하니 8,300원의 택시요금이 나왔다.
요금 인상 전에는 6천여원이 나왔었는데 많이 오른 셈이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택시를 타고 와서 내린다.
일양약품판촉직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회원들을 상대로 일양에서 개발했다는 신약(新藥)소개를 하기위해서다.
광주역 광장을 출발한 산행버스가 말 바위시장, 홈플러스를 지나면서
44명의 회원들이 승차완료를 했다.
오늘은 부부동반으로 참석한 회원들이 많아서 보기가 좋았다.
곧이어 일양약품직원이 신약소개를 하였으며 휴식을 위해 고인돌휴게소에
산행버스가 잠시 정차 했을 때 일양약품직원이 하차했다,
우리는 아침을 거른 회원들을 위해 끓여온 맛있는 깨죽으로 배를 채웠다.
또한 오늘은 한식(寒食)날이기도 하다.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예로부터 설날,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일컫는다.
한식날엔 나라에서는 종묘(宗廟)와 각 능원(陵園)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주과(酒果)를 마련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만일 무덤이 헐었으면 잔디를 다시 입히고 묘 둘레에 나무도 심는다.
농가에서는 이날 농작물의 씨를 뿌린다.
한식의 기원은 중국 진(晉)나라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러나 고대(古代)에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 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이에 앞서 일정 기간 구화(舊火)를 일 체 금한 예속(禮俗)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강화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지났다.
석모도로 들어 갈 배 시간 때문에 외포里해안도로 한적한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번 여행을 관장하는 산행버스 최 사장의 부인이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를 마친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깔끔하고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배 시간 때문에 식사는 최단시간으로 끝내고 외포里부두로 이동했다.
외포里에서 배를 타고 10분가량 바다를 건너니 석모島에 닿았다.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배는 철선으로 산행버스도 함께 실고 떠났다.
뱃머리에 수많은 갈매기 때가 몰려와 “까악, 까악” 울어대며 과자를 달랜다.
이유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새우깡과자 때문이었다.
손에 들고 있으면 그대로 날개 짓을 하며 달려들어 과자를 주둥이로 채간다.
강화도 외포里에서 석모島까지 따라오면서 화려한 군무(群舞)를 펼치고 있다.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야단법석이지만 나는 슬픈 갈매기의 절규를 듣는 것 같았다.
“저것들이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물에 익숙해져 물고기를 낚는 본성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오후 2시가 다 되어서야 석모도(席毛島)에 도착했다.
석모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에 딸린 작은 섬으로 강화도 외포港에서
서쪽으로 1.5㎞ 해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말엽까지는 석모도, 송가도, 어류정島 사이에 조수(潮水)가 드나들어 선박이
왕래하였는데 주로 예성강과 한강을 드나드는 화물을 수급하였다고 한다.
남동쪽 끝의 해명山(327m)과 중앙의 상봉山(316m)으로 인해
중부와 남부는 산지를 이루고, 북부와 서부간척지는 평지를 이루고 있다.
섬에서 유일한 “민 머루해수욕장”은 썰물 때면 개펄이 드러나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된다고 한다.
오늘산행코스는:-
전득이 고개 -해명山 정상 -방개고개 -새 가리고개 -낙가山 못 미쳐 -마애불
-보문사로 내려오는 약 7km(3시간 30분소요)코스였다.
산행버스가 우리일행을 내려주고 하산지점인 보문사주차장으로 떠났다.
해명山산행은 석모도 전득이 고개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해명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島에 있는 높이 327m의 산이다.
석모도 한가운데 있는 산으로 강화의 6대산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석모도의 주봉(主峰)이다.
산과 바다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으며 산세가 험하지 않아 산행이 수월했다.
굵은 밧줄이 쇠기둥에 길게 연결된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위험하지는 않았다.
석모島 중심으로 산이 동서로 나뉘어 있는데
동쪽의 삼산면은 넓은 갯벌 전체가 논이고, 서쪽은 염전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짙은 운무로 바다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낙엽수림이 빽빽하고
곳곳에 암릉이 있어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길 수 있었다.
산 능선 길 좌우로 마른 억새풀이 남아있고 정상에 서니 마니산과
매음里의 염전과 주문도가 보이고, 낙가산과 상봉山도 보였다.
서해바다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운무에 희미하게 조망된다.
능선에는 회백색의 넓적바위인 천인대가 펼쳐져 있었다.
이 산의 낙조는 특히 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오늘은 볼 수가 없었다.
낙가山 못 미쳐 눈썹바위 쪽으로 하산했다.
이 산의 볼거리 중의 하나인 눈썹바위는 “마애 십일 면 관음보살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이 산 만을 산행 목표로 삼기엔 산행시간이 너무 짧아 아쉽다고 생각해서
낙가山 보문사를 둘러본 다음 상봉山에 오르는 것도 좋다고 했지만 오후 2시에
산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낙가산과 상봉山 산행은 계획하지는 않았다.
섬 중앙부의 낙가山기슭에 자리 잡은 해수관음성지 보문사에 들렸다.
635년(선덕여왕: 4년)에 회정(懷正)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649년(진덕여왕; 3년)에 어부들이 불상과 나한, 천진석상 22구(軀)를 바다에서
건져내어 천연석굴 안에 봉안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설치하고 천연동굴 내에 반월형 좌대를 마련하고
탱주(撑柱)를 설치하였는데,
탱주 사이에 21개의 감실(龕室)이 있어 거기에 석불을 안치하였는데
이 석실은 지방유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또 1928년에는 절 뒤편 절벽에 높이 32척 너비 12척의 관음상을 새겼다.
이 마애석불좌상(磨崖石佛坐像)은 지방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 안에 안치된 거대한 석재와불, 보문사 향나무(기념물: 제17호),
보문사 맷돌(민속자료: 제1호)이 있었다.
수륙용왕대제행사를 하고 있었다.
산행을 마친 우리는 강화도로 복귀하여 “마니산 월드 모텔”에 투숙했다.
저녁식사는 꽃게탕으로 먹었으며 4인1실로 방을 배정받았다.
흥에 겨운 회원들은 노래방에 가기도하고, 슈퍼에서 맥주 한 잔을 하기도 하고,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회원들도 있었다.
-제2일차
창밖을 내다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강화도(江華島)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하는 섬이다.
경기만의 한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으로
강화군의 주도이다.
강화도는 본래 김포반도와 연결된 육지였으나 오랜 침식작용으로 평탄化 된 뒤
침강운동으로 육지에서 구릉성 도서로 격리되었다.
강화도에는 마니산(469m), 고려산(436m), 낙조峰(343m), 혈구山(466m),
진강山(443m), 별립산(400m) 등 산지가 있으나 험준하지는 않고
곳곳에 저평한 충적지(하천에 의해 운반된 물질이 쌓여서 이루어진 평야)가
발달해 있다.
기후는 해양성기후의 특징을 띠어 같은 위도의 내륙지방보다 따뜻하며 인삼과
화문석은 이 지방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1969년에는 강화도와 육지사이의 염하(鹽河)에 강화대교(694m)가 가설되어
육지와의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으며
1998년에 완공된 새로운 강화대교로 더욱 교통이 편리해 졌다.
문화유적은 고인돌을 비롯하여 마니산의 참성단에서는 매년 10월 3일에
단군 제를 지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삼랑성, 전등사, 보문사 등의 유적이 있다.
모텔 지하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08시부터 강화도관광을 나섰다.
비는 그칠 것 같지가 않고, 큰 비도 아니면서 종일 그만그만하게 내렸다.
강화역사박물관에 들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적 제137호 강화고인돌 공원 내에 위치한
강화역사박물관은
오천년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강화문화유산을 보존, 활용하기위한 조사연구
및 전시교육 공간이었다.
개국시원, 청동기시대, 고려, 조선, 근현대시대까지 옛 선조들이 남긴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부근에는 자연사박물관도 건설 중에 있었다.
강화 제적峰 평화전망대를 들렸다.
검문소에는 해병대가 근무를 서고 있었고 신분증을 제시하고 들어갔다.
전망대 4층에서 해설사의 설명도 들었고,
오리도 못되는 북한 땅을 흐릿한 운무사이로 바라보았다.
길게 늘어선 군사용 철책이 가시처럼 다가와 가슴을 찌르며 분단의 아픔을
말하고 있다.
망배단과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가 세워져있고, 전차 2대가 전시되어있다.
시간을 내서 강화인삼시장에도 들렸다.
강화 인삼은 전한시대부터 약효를 인정받아 왔다.
인삼은 옛날부터 불로장수의 이름난 생약으로 “만병통치약”이라 해서 많이
쓰였다.
유효성분으로 사포닌 배당체, 정유, 비타민A, B, C등을 함유하고 있으며,
오래 묵은 인삼일수록 그 효과가 크다고 하여 소중히 여기고 있다.
효능으로는 정신적, 육체적, 활동력 강화는 물론 빠른 피로회복, 혈압조절,
조혈기능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원들은 저마다 인삼이나 인삼제품들을 구입하였다.
강화 광성보에 들렸다.
강화 광성보(江華 廣城堡)는
강화군 불은面 광성나루(광성진)에 있던 사적 제227호인 성보(城堡)이다.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헐어진 데를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효종: 9년)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그 후 숙종 때(1679년)에 이르러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축조하였다.
광성보는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이다.
그 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초지진, 덕진진, 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 되기를 거부하고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
이 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墩臺)를 1976년에 복원하였으며,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장군의 전적비 등을 보수,
정비하였다.
초지진에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점심으로 먹었다.
개업한지 얼마 안 되는 식당이라 음식도 깨끗하고 맛이 있었으며
특히 주인을 위시한 종업원들의 서비스가 최상이었다.
“꼭 벽에 걸어두겠다”는 주인의 부탁으로 산악회이름의 메모를 남겨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산행버스는 초지대교를 건넜고
김포입구에서 딸집에 들리겠다는 김정래회원을 하차시켜주고 광주로 달렸다.
산행버스기사가 서해대교 쪽이 많이 밀린다는 정보를 알고 경부고속도로 진입,
버스전용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남쪽으로 내려올수록 빗줄기가 거세진다.
비가 오는 것은 하늘의 뜻이고 강화도 1박2일의 여행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회원들은 마냥 즐거운 기분으로 웃고 떠들고 있다.
(2013년 4월 6일)
첫댓글 회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밝은 모습 간직하세요~
사랑해요, 솔바람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