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결의 맛있는 대화
덤벼봐! 세상아
명품 손톱깎이로
치고오르는 무서운 신예 (주)코웰산업
인터뷰어 김종결은 여의도 직장인에게는 배우보다는 주신정 식당주인으로 더 유명하다. 10년 동안
한 가게에서 연매출 30억 원을 벌어들이는 프로장사꾼. 독특한 경영으로 심형래에 이어 연계인 신지식인 2호로 꼽혔고 국민회의 경제대책위
운영위원이었으며 저축을 많이 해 대통령상도 받았다. 장사를 넘어 경영의 묘를 부리는 그는 진정한 경영인이다. 그런 그가 우리 시대 최고의
중소기업 경영인과 만난다. 이번 호부터 『기업나라』에서는 중소기업 거장을 한 명씩 초대해 김종결 사장과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술잔을 기울이며 때로는 웃고 울며 가슴속에 담아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CEO들의 모습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길 바란다. - 편집자 주 -
국산 손톱깎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약 70%로 세계 최고다. 중국에서는 현지 업체가 만든 손톱깎이보다 5~10배 정도 비싼 가격에 팔린다. 손톱깎이로 벌어들이는 연간 수출액은
1억 달러(1,200억 원) 정도. 아래위 두 부분으로 나뉜 몸통은 수백만 번 반복해서 사용해도 탄성을 잃지 않도록 유연해야 하고 머리
쪽 날이 있는 부분은 쉬 물러지지 않으면서 항상 아래위 이빨이 정확히 맞물리도록 정교하면서도 높은 경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속
주물과 단조, 열처리 등 고기능 절삭도구를 만들 때 쓰는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손톱깎이의 완성도가 한 나라의 공업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면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셈이다. 쓰리세븐, 벨금속공업, 코웰산업을 흔히 손톱깎이의 빅 3라고 부른다. 앞의 두 기업이 전통적인
손톱깎이 주자라면 코웰산업은 독특한 아이템으로 명품을 표방하고 세계를 놀라게 한 무서운 신예다. 코웰산업의 박경한 대표는 일명 맥가이버칼이라는
다용도 칼과 손톱깎이 등을 선보여 유럽과 미국 시장 판도를 바꿨다. 손톱깎이에 생명을 불어넣은 그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10배 이상 비싼 명품 손톱깎이
첫 질문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내 생각 같아서는 그깟 맥가이버칼이 돈이 될까
싶어요. 그거 웬만하면 모두 갖고 있잖아요? 또 손톱깎이에 뭐 그리 기술이 필요한가요? 라이터 이런 것들이 많이 붙어 있나 보죠? 많이
붙어서라기보다 아이디어죠. 또 다양한 제품을 아주 작은 공간 안에 집어넣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다용도 칼 분야에서 1백 년 이상의 전통이
있는 스위스 업체도 구조적인 어려움 때문에 손톱깎이를 집어넣지 못할 정도였어요. 저희가 처음 손톱깎이를 접어 넣는 독특한 제품설계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죠.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손톱깎이 만드는 데 60여 가지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요. 흔한 생활용품이지만 스위스제 손톱깎이는 10만 원을 호가하죠. 우리 회사는 다기능 칼, 라이터, 손톱깎이를 모두 취급해요.
1999년부터 손톱깎이에 접이용 칼, 가위, 오프너 등을 장착해 ‘맥가이버칼’처럼 만든 ‘다용도 손톱깎이’를 개발했는데 이때 주목을 받았어요.
특히 스위스와 독일에서 찬사를 받았어요. 미국, 일본, 유럽 등 4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어요. 수출 비중이 60%를 넘어요. 단순한 제품에
살을 붙여 명품으로 만들었죠. 시중에서 파는 손톱깎이보다 10배 이상 비싸게 팔려요. 명품으로 승부한 거네요. 어떻게 생각하면 대중적인
것하고 명품하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데 품질이 아주 좋은가 봐요. 좁은 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집어넣는 기술도 힘들지만 재질도 좀
달라요. 보통 철판으로 만드는데 우리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요. 단조로 찍어내고 이를 다시 열처리하는데 이게 간단한 기술이 아니에요. 품질만큼은
고집을 부려요. 매출액 중 15%를 꼬박 연구개발에 투자하죠. 어지간한 대기업보다도 훨씬 높은 비율이에요. 원가를 낮추려고 전체 생산라인을
자동화했는데 제가 자동화 장비까지 직접 만들었어요. 세계 40여 개국에 특허출원도 했어요. 회사명이 코웰인 것은 ‘한국에서 제품을 가장
잘 만드는 기업(Korea well maker)’이라는 뜻이자 의지예요. 그동안 일본산 손톱깎이에 밀려 푸대접을 받던 설움을 많이 없앴죠.
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명품으로 한번 찍히면 일사천리로 나가잖아요? 대단한 유명상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거죠. 그런데 사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저렴한 가격으로 박리다매를 할 수도 있는데 굳이 명품 쪽을 택한 이유가 뭐예요? 사업에 성공하려면 좋은 제품을
중국보다 싸게 만들어 팔든지 이쑤시개 하나라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비싸게 팔든지 두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해요. 이제 중소기업인들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 있는 제품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어차피 중국보다 싸게 못 만드니까 품질 쪽으로 가야죠. 아이디어나
기술력이나 뭔가 한 가지는 튀어야 해요. 무섭게 올라오는 중국, 일류밖에 살길이 없었다
요새 중국제품이 많이 들어왔는데
이거 골치 아플 것 같아요. 까놓고 말해서 중국제품이 좋더라고요. 이러다가 우리 나라 망하면 어쩌나 걱정이 될 때가 많아요. 뉴욕보다 중국
상해가 더 휘황찬란하잖아요. 중국에 대해 할말이 많죠. 세계 몇십 개국에 특허를 내놨는데 그게 좀 된다 싶으니까 유사품이 여기저기
나왔어요. 똑같이는 못만들고 항상 핵심적인 게 빠져 있죠. 그러나 정말 무섭게 올라오고 있어요. 6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요새
웬만한 건 많이 넘어갔잖아요. 예를 들어 5, 6년 전만 해도 세계 고급라이터 시장은 우리 나라 기업이 다 휩쓸었는데 요새 완전히 가고 있어요.
중국에 라이터 공장만 1천 개가 넘어요. 가격이 10분의 1밖에 안 하면서 디자인도 좋아요. 그 사실을 인정하고 가야 해요. 일류로 가는
길밖에 없다 이 말이죠? 제 경우에도 이 음식점이 히트하니까 비슷한 가게가 7, 8개 생겼어요. 그때 생각하길 게으르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한 적이 있어요. 그 후 다른 가게는 다 망했어요. 그건 그렇고 고부가가치다 기술력이다 모두 중요하지만 홍보도 무척
중요하잖아요. 세계를 상대로 팔다 보면 광고비도 많이 들 테고. 광고비라는 게 까놓고 말하면 바다에 돌 던지기 아닌가요? 3년 동안 우리
것을 알리기 위해 무작정 해외로 나갔어요. 이제는 게임의 법칙을 알게 됐죠. 국내 광고, 해외 광고 모두 해요. 하루아침에 결론이 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역량만큼 하죠. 대신 선택과 집중을 잘해서 같을 돈을 써도 효과를 최대한 높이는 쪽을 택하죠. 전시회도 꾸준히
참석하고 수출비중이 높아서 바이어 관리도 중요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이 아이템을 시작한 거예요? 제일제당에 다니기도 했고
중동에 나가 돈을 벌기도 했어요. 외국인 회사에 몇 년 다니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금속 분야에 종사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도움이 됐어요.
처음 창업했을 때는 문구시장에 뛰어들었죠. 너도나도 달라붙어서 경쟁자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남들 안 하는 쪽을 하고 싶어 고민하다가
수많은 국제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외국기업이 아직 진출하지 않고 물류비용도 적은 정밀금속 분야에 승부를 걸었죠. 이거다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처음에는 손톱깎이보다 칼을 생산했어요. 사업 초기에는 맥가이버칼을 만들어 국내시장을 평정했는데 해외에서 고가품은 스위스와 독일에,
저가품은 중국에 밀려 제값을 받지 못했죠. 처음부터 비용이 많이 들고 따라잡기 힘든 분야는 과감히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칼보다
손톱깎이를 응용한 제품으로 가게 된 거예요.
수출계약 한 건도 못 건졌던 3년의 시행착오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모르고 시작했으니 시행착오가 많았죠. 하지만 시행착오, 실수가 자산이에요. 처음에 아는 게 없으니 되지도 않은 제품을
팔려고 고생했어요. 1994년부터 유명하다는 해외전시회는 무조건 쫓아다녔지만 수출계약 한 건 못하고 경비만 축 낸 적도 많아요. 그러다 디자인과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전시회 한번 가면 수만 개 아이템이 나오는데 디자인이 뛰어나야 팔아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중국이 기술이
좋아졌다 해도 디자인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오랫동안 닦아야 터득하는 감각이니까. 디자인 관련 상을 많이 받았어요. 무형의
것에 많이 투자했다는 건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물론 이게 정상적인 길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못하는 일이잖아요? 대부분 눈앞의 이익에 신경을
쓰다 보니 과감하게 디자인에 투자하는 게 쉽지 않은데. 우리 집 같은 경우에도 손님용 그릇을 사기그릇으로 바꾸면 좋지만 깨질까 봐 아끼려고
못한단 말이에요. 그게 살길이니까요. 해외에 나가보면 품질이나 기술은 대동소이해요. 결국 디자인에서 승부를 내야 해요. 디자인은 사외에
전문가로 구성된 일종의 별똥대를 가동하죠. 재미난 기사를 읽었어요. 꿈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제품화 한 게 히트를 쳤다고 하는데 얼마나
골똘히 생각했으면 꿈에까지 나와요? 그건 기자가 재미있게 쓴 말이고요. 뭔가 하나를 골똘히 생각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타입이에요. 메모도
자주 하죠. 하지만 꿈은 자주 안 꿔요 저는 이거 11년 전에 시작했어요. 그 전에 불이 나 다 들어먹은 경험이 있어요. 만약 그 때
고생하지 않았으면 지금 별 볼일 없었을 거예요. 고생한 얘기 좀 해주세요. 아버지가 갑자기 사업에 실패해서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오고
동생 6남매를 모두 먹여 살렸다고 하던데. 고생은 누구나 하죠. 그 시절 고생 안 한 사람 있나요?
9.11 테러 사건은
아버지 사업 실패 때보다 더 고통
그렇다고 누구나 동생들을 먹여 살리지는 않죠. 돈이라는 게 절실하지 않으면 벌 생각도 못하는데
혹시 돈에 한 맺힌 적 없었나요? 왜 어릴 때 고생하면 때려죽이더라도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나는 한이 맺혀서 시작한
거예요. 아버지 사업이 하루아침에 쫄딱 망했어요. 그러다 보니 공부를 그만두게 됐죠. 근데 그때 공부를 잘했으면 지금 별 볼일 없었을
거예요. 주위에 보면 명예퇴직 당하고 사업하던 거 한방에 날아간 사람들 많아요. 전 어릴 때부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는데 돈을 많이 벌었어요.
사업은 돈보다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성취욕 때문에 시작한 거죠. 어린시절보다 오히려 9. 11 테러 이후에 힘든 시간을 보냈죠. 손톱깎이
안에 칼이 들어가잖아요? 테러 이후 칼이 들어 있다고 미국행 비행기에 못 싣게 하니까 한참 잘나가던 제품이 일순간에 재고가 된 적이 있어요.
2001년 4/4분기 때 완전히 죽 썼어요. 수십억 손해 봤죠. 그 전에는 빚이나 어음도 없이 제 돈만으로도 탄탄하게 굴러갔는데 2년간은 정말
고생했어요. 지금은 여파에서 많이 벗어났나요? 예. 이제 정상궤도를 찾았어요. 그런 일 생기면 스트레스가 많아 쌓일 텐데
어떻게 푸나요? 사업을 하다 보니 긴장을 즐기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걸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못 견뎌요. 더 잘 아시겠지만 일이
즐겁고 일을 즐겨요. 신념과 좌우명 있나요? 기독교 집안이에요. 동생이 목사기도 하고요. 특별한 좌우명은 없어요. 열심히 성실하게
살자 정도. 여성인력을 많이 쓴다고 하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섬세하고 책임감이 강해요. 또 해외에 나가니까 사회에서 일하는
절반은 여자들이에요. 한번은 전시회에 참석했는데 누가 쿡쿡 찌르는 거예요. 저 사람이 여기 웬일이냐고? 청바지에 배당 달랑 메고 한 여성이
서있는데 세계적인 회사 코카콜라의 홍보 총책임자라고 하더군요. 만나기 힘든 사람이래요. 이에 반해 우리는 여성인력이 결혼과 동시에 사장되는 게
안타깝죠. 사업하다 보면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다 때려치우고 문 닫고 싶은 생각들 때 없나요? 중소기업에 사람들이 잘 안 온다고 난리던데
코웰은 어떤가요? 때려치우고 싶은 적은 없고요. 제가 인복이 많아서 사람 때문에 힘든 적은 별로 없었어요.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모두 다녀봤지만 중소기업에서 일을 가장 많이 배웠어요. 대기업은 한 분야만 아는데 중소기업에서는 자재, 구매 등 모두 다루니까요. 기업의
메커니즘을 배웠죠. 특별한 관리가 있나요? 존중해 줘요. 오래된 사람은 10년이 넘었어요. 돈을 특별히 많이 주는 것도 아니에요.
대신 아랫사람을 소중히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죠. 그게 노하우라면 노하우죠. 사람 사는 세상에 별 거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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