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은 가을이라 만물이 겨울 준비를 할 계절이었다.
10月 12日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행날을 하루 앞둔 오후였다.
우리들은 선생님의 주의말씀을 듣고 집으로 왔다.
모든 일이 손에 걸리지 않았다.
그저 다음날 준비에 바뻤다 다음날의 시간은 5시 였다.
그래서 나는 지각이라도 할까 두려워서 집안식구에게 신신 당부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13日 아침 먼동이 트기도 전에 나는 역으로 향하였다 벌써 동무들은 많이 와 있었다. 내가 동무들에게 아침인사를 할때 모두들 그무엇인지 모르는 기쁨에 차있는 얼굴을 보았다.
얼마후 우리는 신라의 古都 경주로 향하였다
차안에서 동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우리도 모르게 차는 벌써 경주에 닿았다. 우리는 먼저 우리가 숙박할 여관에 짐을 마끼고 제일먼저 뻐스로서 포석정에 갔다.
다음에 옆에있는 첨성대는 동양最古의 천문대로서 당시에 조상들의 지혜를 보이는 것이었다.
반월성을 넘을때 반월성 넘어 사자수 보니"라는 노래를 부르며 月城을 넘어 안압지에 다달았다 옛날 왕과 대왕과 대신들이 놀았다는 집에는 옛날의 기풍을 찿아 볼 구석이 없고 진기한 동물을 길렀다는 이못에는 몇군데의 오리 똥만이 보일 뿐이었다
우리들은 다시 이차돈의 목이 날아 왔다는 백율사로 갔다
이절에 잠깐 쉬어 서산에 넘는 해와 함께 피로한 다리를 끌며 숙소로 왔다 지친 몸을 지친것도 모르고 동무들은 그대로 놀았다
다음날 우리는 김유신 묘가있는 송화산을 바라보며 발길을 옮겼다
장군의 묘는 산꼭대기에 있었다 묘의 둘레는 12신이 새겨져 있고 장군의 모습을 한 석상이 있었다.
여기서 내려다 보니 경주시가 한눈에 들었다
언듯 생각하기에 장군의 묘를 여기에 모시게 된것은 경주를 지켜 달라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우리는 곧 또 이슬에 젖은 바지를 먼지에 굴으고 목마름을 참아가며 무열왕능으로 향하였다 왕능은 길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김인문의 묘가 있었다 이는 무열왕의 아들로서 부왕을 도와 통일에 공이 큰 분이시다 우리는 이 무덤을 구경하고 다시 여관에와 점심밥을 받아가지고 불국사로 갔다 불국사 역에 내려 우리는 또 다시 걷기 시작하였다
불국사 우리는 그 平地에서 준비해온 점심을 먹고 짝지에 몸을 의지하고 나무잎을 훌터 씹으며 절을 향하여 다시 올라왔다
이절은 35대 경덕왕이 김대성을 시켜 지은 절이라 한다 이는 또 석굴암도 건립하였다
그가 이러한 일을 한것은 생전에 자기 어머니를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먼저 돌다리를 올라섰다 바로 눈앞에 우뚝한 집이 대웅전 左右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고 그옆에는 국보불상을 모신집이 있고 뜰에는 옛 추억에 잠겨 있는듯한 돌사자가 있고 앞에는 석등이 있었다.
나는 다보탑과 석가탑을 자세히 보았다
과연 듣던바와 같이 팥고물인양 콩고물인양 주물러 댄것 같았다
구름다리 또한 묘하였다
다음날 새벽 우리들은 해도 뜨기전 찬이슬을 맞으며 토함산 구비길을 기어 올라 석굴암에 다달았다
해뜨는 구경을 하기 위하여 일찍 올라 왔으나 구름에 가리어 잘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석굴암을 구경 했다
처음 올라서서 굴안을 보니 박혔던 보석은 어디에 두었는지 빠꼼한 이마를 가진 석불이 엄연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대 자비하신 석불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두손을 모으지 않을수 없었다 다음 속의 조각을 구경하고 나오니 해는 어느새 구름을 헤치고 굴속까지 비치고 있었다
나는 돌층계를 내려와 아침햇빛을 받으며 맑은 물에 세수를 하고 다시 동무들과 같이 숙소로 내려오며 석가탑이 비쳤다는 영지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맑은 물만이 그대로 물결을 짓고 있을 따름 이었다 곧 우리는 아침을 먹고 기념 촬영을 하고 나서 11시경 다시 경주로 향하였다
경주에 와 박물관을 보았다 우리는 제일먼저 종각에 갔다
십이만근의 쇠로 된 종- 바로 혜공왕이 부왕을 위하여 만든 종이라 이 종을 볼때 그때 어떻게 이 무거운 종을 만들었으며 그나마 아름다운 무늬를 넣고 또 종주에는 용을 새기었으니 그 기술이야 말로 이루 비길때 없는 것이었다 다음 옛 기구를 구경하고 금관총에 왔다 그러나 금관은 멀리 외국 전람회에 나간 관계로 볼수없어 섭섭한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다 다음에 우리들은 마음대로 시내를 구경했다
이렇게 하여 신라 천년의 서울 경주 고분을 순례하고 어두음과 함께 경주를 떠나 대구로 향하였다
백초형, 김현일? 이북말씬지 서울말씬지 그 친구는 박현일인데... 내가 기억하겠는데... 가만있자 까만수첩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사진이 안보이네 주소를 보니 일리노이같은데 아마 쉬카고에서 멀지 않을테지... 경주수학여행때 여관에서 오호방개야 하고 놀았던 기억이 선명하고 다보탑에 올라가서 폼잡고 사진찍고...
박현일 이도 있었는데 박현일이는 우리반(2-6)이었고 기억을 하고 있지요. 김현일이는 나랑 인연이 없었던지 한반이 아니어서 이름만 기억하고 얼굴은 기억을 못하지만 지금 미국에 살고있나 봅니다. 일리노이주에 주소가 보이데요. 뭐하며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고 김시림이도 쉬카고에 살고 있다던데...
첫댓글 무어라 할 수 없는 감동에 젖어 드는것 같소이다. 그 옛날 추억을 다시한번 되새겨 보며 그 어린시절 경주와 불국사의 길을 머리에 그려 봅니다. 작대기에 기대어 사진찍던 기억들이...김현일이 어디갔노
백초형, 김현일? 이북말씬지 서울말씬지 그 친구는 박현일인데... 내가 기억하겠는데... 가만있자 까만수첩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사진이 안보이네 주소를 보니 일리노이같은데 아마 쉬카고에서 멀지 않을테지... 경주수학여행때 여관에서 오호방개야 하고 놀았던 기억이 선명하고 다보탑에 올라가서 폼잡고 사진찍고...
멋진 수학여행의 후기 글이군요.중삼이 썻다고 보기엔 너무도 잘썻고.. 또한 멋진 추억의 장을 보는것같아. 보는저도 즐겁고..고개가 꺼덕거려 지는 장면이 몇있네요.아주 잘보았기에 여기에 흔적을 남깁니다.^*^~
산천이 네번바뀌고도 더된 글을 어떻게 아직까지 간직하고 계시요?. 워낙에 잘쓴 글이라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오만 어쩐지 눈시울이 시큰하오. 역시 우리카페가 최고야 !!!!!
소산형, 반갑소 우리중학교 졸업에 임박하여 우리학급(3-9)홈룸시간에 졸업기념문집을 만들기로 결의하고 실천에 옮겨 九松이란 學級文集을 만들었지요. 작년에 우연히 사이사랑방을 찿아들어가고 잊고살던 벗들을 다시 만났는데 강계산이 모모형(인천대학교 인문대학장겸 대학원장)이 아직도 이걸 한권 갖고있다고 ?
와운!! 金賢一이라고 있었소 도립병원뒤쪽에서 사진관을 하고 곱상한 얼굴인데.....
박현일 이도 있었는데 박현일이는 우리반(2-6)이었고 기억을 하고 있지요. 김현일이는 나랑 인연이 없었던지 한반이 아니어서 이름만 기억하고 얼굴은 기억을 못하지만 지금 미국에 살고있나 봅니다. 일리노이주에 주소가 보이데요. 뭐하며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고 김시림이도 쉬카고에 살고 있다던데...
김대환 변호사의 기행문을 읽으니 마치 고분에서 발굴한 유적인양 아스라히 기억을 더듬게 하는군요. 많은 부분은 이미 뇌리에서 사라져버렸고. 김현일 행방을 다음칸에 소개하지요.
김현일군은 삼덕로타리에서 부친이 사진관을 했지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군복무까지 마치고 하늘 별따기보다 어려운 국비유학생으로 미국유학을 갔지요. 다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