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경 새재를 넘으며 맺지 못한 생각이 저녁 내내 나를 괴롭힌다 험준했던, 내 험준한 사랑 나무들 파헤쳐져 터널이 뚫리고 나도 어둠을 기어나와 한 생애를 사랑으로 보냈구나 사랑은 낄낄거려도 아픔이다
마곡동 허름한 밥집에서 키 작은 필리피노와 앞뒤로 앉아 텔레비전을 바라보면서 밥을 먹다가 지난밤 문경 새재를 넘으며 다시 찾은 험준한 사랑에 목이 멘다
인도에 가서 극장 검표원이라도 하며 살아야겠다던 소설 <광장>의 이명준 같은 푸른 작업복의 작은 필리피노는 강서구 마곡동 섀시집에서 쇠톱질을 한다 이를테면 지금도 그는 험준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름달을 보듯 텔레비전을 올려다보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는 무얼 삼킨다 그게 지난밤 문경 새재를 넘어온 한 청맹과니건 코리안 드림을 안고 날아온 눈 둥그런 필리피노건 아직 험준한 골짜기에서 발을 묻고서
---------- 박철 1960년 서울 출생. 단국대 국문과 졸업. 1987년 창작과비평사의 『창비 1987』에 「김포」외 1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함. 현재『시힘』 동인.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밤거리의 갑과 을』『새의 전부』『너무 멀리 걸어왔다』『영진설비 돈 갖다주기』『험준한 사랑』등이 있음. 『현대문학』에 단편 「조국에 드리는 탑」이 추천되어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