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박사에 관한 프로필. - 위키백과사전
영국 맨체스터에서 신약성서학(박사학위제목 《바울복음의 기원》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아세아 연합신학대학원, 총신대학교 대학원에서 가르치다가, 현재는 미국 풀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의 신약성서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바울신학 분야에서 다수의 논문을 국제학계에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바울 신학의 권위자다.
2011.11.7일
명동 청어람에서 김세윤 박사는 한국교회를 이렇게 지적하였다.
“한국교회 목사들은 개독, 먹사라고 비난을 받아도 싸다. 중세 가톨릭교회와 같다. 구원론이 구원파와 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교회의 부패의 원인은 잘못된 구원관이라고 했다.
특히 구원관에 있어서 이신칭의를 핵심으로 들었다.
그저 믿기만(이해되기만)하면 의롭게 된다는 가짜복음이 부패의 원인이 된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교개혁의 근거가 되었던 바울의 칭의론이 한국교회가 부패하는 원인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교인들에게 믿으면 무조건 구원받는다고 강조했고,
이는 행위 없는 믿음을 갖게 했다.
기독교인들은 사기를 치거나, 탈세해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기독교인들은 개독이니 먹사라는 소리를 들어도 싸다.....
한국교회의 구원론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은 ‘사영리’다.
사영리를 보면 예수와 인격적인 만남이나 스스로 믿겠다는 의지가 없이 그리스도라고 말만 하면 그 순간 구원받는다고 하고 있다.
‘사영리는 구원을 왜곡하고 있다.
이런 구원론을 가진 한국교회는 사실상 구원파와 다를 바가 없다....
누구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나 정작 목사 자신도 성경을 오해하여 잘못 알고 그것이 정통 교리인양 열변을 토하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우스운 모양새가 되었다...
행위 없이 믿음으로 구원받거나, 한 번 받은 구원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면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가 없다.
바울이 말하는 '칭의'는 종말까지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나라의 법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다.
그것은 산상수훈(마5~7장)을 행하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칭의의 원래 의미는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며,
이것이 한국교회를 개혁하는 길이다....
산상수훈에 등장하는 '팔복'은 하나님나라 백성의 품성이고 '세상의 소금과 빛'은
그 정체성이다.
참으로 통렬한 지적이다.
구원관의 잘못이 부패와 방종을 불러왔다.
구원관이 뿌리라면 부패와 방종은 열매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말은 옳다.
그러나...
이것만큼 잘못 사용되는 말도 없다.
여기서 “믿음”을 “알고 받아들임”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알고 받아들임”으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알고 받아들임”에서 출발하여,
자아가 죽어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전 품성적 변화를 이루어가서,
마침내 열매를 맺는 결과까지를 포함하는 전 구원적인(Total Salvation) 단어다.
오해는...
구원상실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는 구원을 완성한 것이 아니다.
시작했고 완성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김세윤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구원의 첫 열매를 받았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우리는 그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는 자로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구원 받을 것이라고 미래 시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라고 말할 때에는 “시작된 구원”을 말한다.
그러나 그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표현함이 옳다.
전 구원적인(Total Salvation) 과정에서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행함이다.
성경은...
이렇게 행함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롬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딛1: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명백하게,
행함이 없으면 결코 구원받지 못한다.
행함은...
구원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반드시 맺혀져야 하는 완성으로서의 열매다.
행함은 구원의 완성에 대한 보장이며 증명이다.
그렇다며...
행함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원전은 다음과 같다.
οὕτως καὶ ἡ πίστις, ἐὰν μὴ ἔχῃ ἔργα, νεκρά ἐστιν καθ’ ἑαυτήν
(So - also - the - faith - if - not - it have - works - dead- is - by - itself)
(NIV) In the same way, faith by itself, if it is not accompanied by action, is dead.
(KJV) Even so faith, if it hath not works, is dead, being alone.
NIV, KJV 둘 다 행함을 action, works 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action, works를 나타내는 단어가 있다.
ποὶησις (포이에시스)다.
여기서 행함으로 사용된 단어는 ἔργα(엘가)다.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manifestations, practical proof
즉, 내면에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manifestations)이며
실제적인 증거(practical proof)다.
ποὶησις (포이에시스 / action, works)는 내면과 관계없는 단어다.
그냥 드러난 행동들이다.
그가 위장한 채 좋은 일을 하든, 억지로 하든, 흉내를 내든 관계없다.
그저 행한 행동 그 자체다.
그러나...
ἔργα( 엘가 / manifestations, practical proof)는,
반드시 변화된 내면에서 밖으로 나오는 행동이다.
우리는,
속과 겉이 다른 행동을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 부른다.
가면을 쓴 채 위장해서 선한 행동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령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신다.
다윗의 고백처럼...
(새번역성경 시139:1-10) 주님, 주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께서는, 내가 그 혀로 무슨 말을 할지를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주께서 앞뒤를 둘러싸 막아 주시고, 내게 주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내가 주의 영을 피해서 어디로 가며, 주의 얼굴을 피해서 어디로 도망 치겠습니까?
내가 하늘로 올라가더라도 주께서는 거기에 계시고, 스올에다 자리를 펴더라도 주님은 거기에도 계십니다.
내가 저 동녘 너머로 날아가거나, 바다 끝 서쪽으로 가서 거기에 머무를지라도, 거기에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주의 오른손이 나를 힘 있게 붙들어 주십니다.
바로 야고보께서 말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내면의 변화를 이루어 외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는,
ἔργα( 엘가 / manifestations, practical proof)가 없다면...
그 믿음은, 자기를 구원하지 못하는 믿음이며(약2:14),
그 자체가 죽은 것이며(약2:17), 헛 것이며(약2:20),
그런 사람 역시,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다(딛1:16)
약2:22절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온전하게 되었다” 라는 단어는 ἐτελειώθη (에테레이오세 / reaching the end)다.
위의 말씀을 원문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도 알다시피 믿음은 그의 행위(ἔργα)와 함께 증명되고 그 행위 (ἔργα)로부터 믿음은 마지막에 이르게 됩니다.
즉, 시작된 구원은 행위(ἔργα) 로 입증되며,
입증된 믿음이어야만 마지막으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내용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