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 마 로 가 는 길 ]
~콘스탄티누스황제. 이야기~
한 때 그런 시대가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영광을 한마디로 응축한 문장이다.
달리 표현하면 영토의 야욕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으로 닦은 ‘피의 길’이기도 했다.
로마제국은 잘 닦인 도로를 통해 군대를 전쟁터나 분쟁지로 신속하게 파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분출하는 내분과 갈등을 다스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확장을 지속하여 자리를 만들어 권력을 나누는 암투와 분쟁의 세월을 이어갔다.
로마군은 제국을 상징한 휘장과 문장을 그린 군기(旗), 그 자체로 위엄이었다. 특히 로마 시민의 환호와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금마차를 타고 로마로 입성하는 개선장군의 행렬은 로마의 상징처럼 장쾌했다.
로마의 이야기 중에는
장군이나 지휘관의 무용담 같은 하드한 것도 있지만, 피바람 속에 깔리는
인간적인 고뇌, 우정, 사랑과 같은 소프트한 스토리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야기는 한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로마제국의 고위급 지휘관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선술집이 딸린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부관이 주인에게 귀한 분이시니 마을에서 가장 예쁜 여자를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당시에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사람 보는 눈이 있었던 주인은 지휘관의 기골을 보고 생각이 동했다. 자신의 외동딸을 생각한 것이다. 딸을 불러 시중을 잘 들라고 당부했다.
다음날, 지휘관이 떠나면서 여주인에게 기념으로 자신의 망토를 선물로 주었다. 하룻밤 인연으로 딸은 임신을 했고 열달이 지나 아들을 낳았다.
그로부터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이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자라고 있었다.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여관에는 심심찮게 군인들이 들려 요기를 하거나 잠을 자고 갔다.
하루는 로마군 장교가 이곳에 들러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밖에서 요란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장교가 식사를 멈추고 뛰어 나가보니 자신의 말을 여관집 아들 녀석이 약을 올리며 깔깔대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뻗힌 장교가 소리를 지르며 칼을 빼들었다.
금방 아이를 내려칠 것 같은 기세였다.
이를 보고 달려나온 아이 엄마가 이것을 드릴테니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손에는 오래 전 하룻밤을 지내고 가면서 선물로 준 지휘관의 망토가 들려 있었다.
“제게는 이 아이만큼 귀한 것이 없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그런데 어이된 일인가.
살기가 등등했던 장교의 낯빛이 그녀가 내민 망토에 갑자기 놀라움으로 바뀐 것이다.
아이 엄마가 내민 망토가
자신이 속한 군단의 사령관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곧바로 사령관에게 전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부름을 받은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꿈에도 생각지 못한 로마로 가게 되었다. 사회적 약자였던 선술집 딸 모자는 일약 로마군령을 지휘하는 사령관 아내가 되고, 사령관의 총애를 받는 아들 신분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꿈 같은 세월은 길지 않았다. 사령관은
서방(서로마)의 부황제(副帝)로 임명이 되어 영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운명은 이들 가족을 갈라놓았다.
새 임지를 받아 로마를 떠날 때는 아들을 볼모로 맡겨야 하고, 황제의 딸과 결혼해 보내는 관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신을 막는 일종의 안전 장치인 셈이었다. 한순간
아내는 버려지고, 아들은 볼모로 집히는 신세가 되었다. 모자의 삶은 행불행의 롤러코스터를 또 한 번 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자는 지혜로웠다.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재회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당시 로마제국은 권력의 암투가 계속되었다.
급기야 동·서방의 두 황제가 동시 퇴진하는 상황을 맞으면서 아버지가 서방의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기회를 엿보던 아들은 새로 등극한 동방 황제에게 아버지 곁으로 가게 해줄 것을 청하였고, 황제는 이를 승인해주었다.
이 때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한 것이 될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탈출에 성공한 아들 모자는 영국으로 아버지를 찾아가 다시 행복을 되찾게 되었다. 영특했던 아들은
아버지를 도와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하면서 공을 쌓았다. 아버지와 함께한 지 1년여가 되었을 때, 돌연 황제인 아버지가 병사하면서 서방은 대혼란에 빠졌다. 왕위를 놓고 내란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1년여 동안 아버지 밑에서 전투에 참가하면서 장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들은 황제 휘하의 군대가 그를 지지하면서 서로마의 새 황제로 추대되었다.
“콘스탄티누스를 아우구스투스 (로마 최초의 황제)로!”
정변은 계속일어났고
마침내 하나의 로마를 향한 동방과 서방의 전쟁이 벌어졌다. 동·서로마 가 일전을 벌여 승리한 황제가 전 로마의 패권을 쥐는
역사적 순간을 맞게 된 것이다.
이기면 모든 것을 독식하고 지면 다 죽는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서방 황제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역사는 이를 환시(幻視)라고 적고 있지만, 황제의 명징한 눈은 하늘에 떠오른 문장 ‘XP’(희랍어로 ‘키로’)를 놓치지 않았다. 동시에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이 표시를 새기고 승리하라.”
황제는 눈에 보인 문장대로 전군에 깃발을 만들게 하고 이를 들고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로마의 1인 통치자, 새 황제가 탄생하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역사의 주인공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였다.
망토를 선물했던 아버지는 콘스탄티우스, 어머니는 선술집 딸인 헬레나였다.
신분의 격차가 큰 이들이
여관에서 만나고, 하룻밤을 보내고, 선물로 주고 간 망토를 간직했다가 남편과 아버지를 만나는 과정이 너무도 운명적이고 드라마틱했다.
공자의 논어에
‘오도일이관지(吾道一以貫之)’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일생을 살고 돌아 볼 때, ‘걸어온 길이 하나로 꿰어져 있다’라고 정리돼야 한다는 뜻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본책 13권에
콘스탄티누스의 업적을 이렇게 적고 있다.
“...콘스탄티누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교리 해석을 둘러싸고 거듭되는 논쟁과
그 결과 분열로 다른 수많은 고대 종교와 마찬가지로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라고.
( 소설가 이 관 순의 손편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