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작가의 종이에 향으로 구멍뚫기-박영택
여러분이 보시기에 이미지가 좀 낯설죠? 뭘까요?양쪽으로 좌우대칭으로 펼쳐져있는 이미지는 동굴의 내벽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하고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구름 같기도 하고 딱히 알 수 없는 추상적인 화면 같습니다.뭐가 연상되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말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이미지입니다.가운데 선은 사실 일치된 화면인데 두개가 붙은 것인데 약간 떨어뜨려놔서 그렇습니다.원래는 한 화면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잘한 점들이 있죠?그리고 약간 부드러운 중성적인 톤에 색채가 깔려있고 흰점들이 찍혀져 있는 것 같습니다.박지현이라는 작가가 만든 그림입니다.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사실 이 작업은 종이에 구멍을 뚫어서 이미지를 만든 겁니다.굉장히 집요한 작업입니다.얇은 종이에 섬세하게 구멍을 다 뚫어서 그 뚫린 구멍들이 밑에 바쳐있는 색깔에 의해서 어떤 이미지를 연상시켜주고 있습니다.구멍을 어떻게 뚫어야 이렇게 정교하게 뚫을 수 있을까요?이 작가는 구멍을 연필심, 뽀족한 침, 바늘로 뚫은 것이 아니라 향을 태워서 향불로 지져서 뜨거운 향을 쿡쿡 눌러서 종이를 태워서 순간적으로 점을 만들어서 구멍을 뚫은 겁니다.그을린 자취 없이 순식간에 뜨거운 향불이 종이의 단면을 투과해서 구멍을 뚫었습니다.향내가 은은히 풍겨나면서 뚫린 구멍들의 어떤 자취가 큰 이미지를 안기고 있는 매혹적인 작품입니다.
사실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는 데 역설적으로 뚫린 구멍들이 모여서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 아이러니가 생깁니다.구멍이 그림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또한 종이는 화면인데 종이위에 대개 물감과 붓질을 칠하거나 연필을 가지고 드로잉을 하거나 색깔을 얹혀서 그림을 만든다면 이 작가는 종이를 구멍을 뚫습니다.종이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은 종이자체를 무화시켜 버리는 것이죠.종이를 의미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 종이를 부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구멍이 계속 뚫리면 종이는 나중에 사라지겠죠.사실 사라지기 직전까지 구멍은 촘촘히 뚫어놓지만.결국은 종이의 단면들을 없애는 건데 종이의 단면을 없애버리는 행위가 역설적으로 그림을 만들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또 하나 이 작가가 97년도인가 그때 미국 뉴욕에 유학을 갔습니다.가서 이 작가가 어떤 사건을 겪었느냐면 바로 911테러를 겪습니다.뉴욕에 유학 가있는 동안 일어난 어마어마한 911테러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행렬, 그들에게 바치는 꽃다발, 그들에게 바치는 향 내음이 뉴욕시를 진동시켰다고 합니다.그래서 이 작가는 새삼스럽게 향을 주목했고 향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태워서 구멍을 내서 무언가를 사라지게 하는 것 또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소진시켜서 남아있는 향으로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감흥을 전달해주는 이 도구가 누군가를 추모하고 추억하면서 하나씩 구멍을 뚫어서 이미지를 안긴다는 것입니다.그것은 아마 911테러 희생자들 또는 그 누군가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존재들을 떠올리면서 향불로 종이에 단면들을 뚫어서 구멍을 남기고 있습니다.그런데 뚫린 구멍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 구멍들이 모여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어떤 구름 같기도 하고 불꽃같기도 하고 꽃다발 같기도 하고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의 기운 같은 것들이 막 퍼져나오고 번져나가는 그런 장면을 안기고 있습니다.
사라져버리는 향, 사실 향이라고 하는 것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강한 향기를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향, 결국 구멍으로 남는 자취그런데 그 구멍과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속성인 냄새가 어떤 이미지를 남기는데 그 이미지가 결국 생명체를 연상시킨다는 것입니다.박지현은 우리에게 향이라고 하는 특별한, 독특한 재료를 가지고 종이에 단면에 투과시켜서 무수한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을 통해서 어떤 이미지를 안겨주는 아주 흥미로운 회화, 회화이면서도 조각적인 그런 작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