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의 수능이 끝났다.
그동안 마음이 복잡하고 심란해서 미뤄 두었던 일들을 할 차례가 되었다. 오랫동안 아기처럼 누워 병수발을 받고 있는 아버지와, 노년의 시기를 아기가 된 남편의 병수발로 보내고 있는 엄마를 찾아 뵙는 일이었다.
“아빠, 나 왔어. 나 보고 싶었어?”
아버지는 나를 눈 빛으로 알아보시며 고개를 끄덕 끄덕 하셨다.
“아빠, 기찬이가 대학 입학 시험을 봤어.”
아버지는 이제 손자의 이름을 잊으신 것 같다. 아내와 아들, 딸 이외에 아버지 기억속의 세상에 더는 남겨진 사람이 없다.
“아빠, 아빠 손자~ 내 아들~ 기찬이가 대학 입학 시험을 봤어~”
아버지는 아는 듯 모르는 듯
“걔가 벌써 대학을 가?” 하신다.
“아니~ 대학 가는 시험을 봤지~ 시험 본 거랑 대학 들어가는 거랑은 다른 문제지~”
아버지는 용케 이 유머를 알아 들으시고 웃음 소리도 없는 웃음을 허허허 하셨다.
“아빠, 나 옛날에 대학 시험 볼 때 아빠가 데려다 주셨잖아~ 그리고 종일 기다려 줬지~
아빠 고마워”
아버지 얼굴이 아까 보다 더 환해 지시며 웃으신다. 얼마만에 보는 밝은 표정인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을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사람의 인생은 짧다. 아니 짧지 않기도 하다.
사람의 일생은 길다. 아니 길지 않기도 하다.
우리는 기억으로 과거를 살고 불안 섞인 희망으로 미래를 본다. 정말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는 걸 자꾸 잊으면서.
고3 수험생의 엄마가 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힘들겠다 힘들겠다 했다. 공부를 내가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아이의 성적은 시험 제도나 난이도에 상관없는 하향 지향적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힘들 것이 없었다. 하지만 현타는 뒤늦게 왔다.
뒤늦게 공부하기로 마음 먹은 아이가 모의고사 성적을 올리자 하면 된다는 K-학부모의 자부심이 한껏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아침에 점점 일어나는 시간이 늦어지고 빈둥거리는 꼴을 볼 때는 ‘그럼 그렇지’하는 실망감과 불길한 미래가 훤히 보이는 것 같은 번뇌의 나락으로 한없이 떨어지기도 했다.
인생의 마지막 어귀 쯤에 서성이고 있는 듯한 부모님을 보면서 내 일생의 늙어진 나날을 본다. 그때의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 아들이 어느 대학을 입학했는지는 이미 기억을 못할지도 모른다. 단지 '그 날은 다행히도 한파 없는 따뜻한 날이었지.' '그 날 아이는 애를 먹이지 않고 일찍 일어나 죽 한 그릇을 다 비우고 나갔지' 하는 흐릿한 영상을 떠올리며 내 삶의 기쁜 순간을 웃게 될 지 모르겠다.
인생의 중년에 이른 나는 알고 있다. 그 어떤 증명서도 삶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막막하기도 했지만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라도 자신의 삶을 살아낸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사랑을 받기도 하고 애지중지하는 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 순간 순간을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아이와 나의 관계에는 보이지 않는 채점표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불수능 이라는 올 해 수능, 아들은 생각도 없는지 빙긋 빙긋 웃으며 돌아왔다. 아니 넋이 나간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의 속물 근성과 보상 심리와 기대와 오만가지 조각들이 드글드글 했다. 아들은 “엄마 미안해” 라고 말했다. 문득 울컥해져서 나는 “그런 말 말어. 지금은 네 인생에서 그냥 한 때일 뿐이야. 이게 다가 아니야.”라고 말했다. 말을 하니 정말 그런 마음이 들었다.
아니 그냥 아무 말없이 아들을 안아줄 걸…
2021.11.25.
첫댓글 글이 너무 좋네요. 아직 가지 않은 길에 나침반 같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