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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제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딜레마
발제 1. (국가적 사례) ' 사죄와 손해배상 '
# 독일: 제2차 세계대전 때 자행된 유대인학살에 대한 배상금만 아니라 공개 사죄
1951년 콘라드 아데나워 독일수상 연설요지
- 1. 독일국민의 절대다수가 그 범죄를 증오하고 또한 동참하지 않았다.
- 2. 그러나 그 범죄는 독일국민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다.
2000년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
- 3. 독일인이 한 일을 용서해 달라
# 일본: 제2차 세계대전 때 자행된 '소위 위안부 여성' 만행 사죄를 부인 및 번복
- 2007년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에 대한 미국의회의 사죄촉구 결의안 통과
# 오스트레일리아: 토착민에 대한 백인들의 부당한 역사적 행위 논란.
- 1997년 존 하워드 당시 총리는 공식사죄에 반대
- 2008년 케빈 러드 총리 공식사죄: 원주민 개별보상 보다는 사회.경제적 불이익 극복조치 구상
# 미국의 수치 노예제: 배상보다는 공식사죄
발제 2. '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
원칙 논리 - "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사죄하지? "
원칙논리의 사고방식 - '책임'
그렇다면 '책임' 의 범위는 <개인> 인가 <집단> 인가?
원칙 논리의 근간 - ' 도덕적 개인주의 '
" 우리는 부모나 조부모 또는 같은 동포의 죄에 책임을 질 수는 없다" - 도덕적 개인주의
이러한 [도덕적 개인주의] 발상은 '이기적' 이어서가 아니라,
" 내가 자발적으로 초래한 의무만을 떠맡는다 - 이것임.
'내가 자발적으로 초래한 의무' = 즉. [내 책임]
[내 책임]은 '내가 떠맡은 일에만 한정 = 이것이 [자유주의적 사고]
마이클 샌델의 지적 - " 자유에 대한 이런 생각에는 집단적 책임의식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합의'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을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의' 인가?
마이클 샌델 의 지적: 그렇지 않다 그 선택이 '개인 범위' 로만 한정되지 않는 선택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선택 까지도 -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합의' 이므로 그 합의는 '정의' 다 - 로 둔갑한 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나?
마이클 샌델 의 결론:
만약 <정의>를 생각할 때 <특정한 정체성>을 배제해야 한다면, 오늘날 독일인이 유대인 대학살을 배상할 특별한 책임을 떠 맡거나 현 세대 미국인이 노예제나 인종차별 정책의 부당함을 배상해야 할 특별한 책임을 느낄 이유는 없다. 왜 그럴 까? 일단 독일인.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배제하고, 나를 자유롭고 독립된 자아라고 생각한다면, 그 같은 역사적 부당함을 배상해야 할 책임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있다고 말할 근거가 없다.
인간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자아라는 생각은 여러 세대에 걸친 집단적 책임뿐 만 아니라 훨씬 폭넓은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 도덕적 행위자에 대한 이런 사고방식은 정의를 좀 더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독립적 존재라면 우리권리를 규정하는 정의 원칙을 설정할 때 특정한 도덕적, 종교적 사고에 좌우되지 말아야 하며 좋은 삶을 규정하는 서로 다른 시각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
※아프로만 주석: 그 개인들이 각각 - 독일인 유태인, 일본인 소위 위안부가 된 조선여성, 호주 백인 토착 원주민 이 된 것이 - 그 개인의 자발적 선택과 의무에 따른 합의 이므로 그 합의에 따라 저질러진 역사적 사건이 '정의' 다 ~ 라고 볼 수는 없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하지 못한 합의의 공동체 최고단위가 바로 '국가' 이다 -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저술의 동기를 제공한 것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제 9강 바로 이 쳅터(Chapter)이다.
9강의 발제는 국가와 정부로 초점이 모아진다
발제 3.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마이클 샌델 의 발제:
인간의 선을 (= 니코마스 윤리학에서의 '도덕적 성품' 추론의 대상으로써 인간은 '개인' 이다) 미리 정해 놓고 그것을 바탕으로 추론한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론은 <목적론>이다
이는 칸트 와 롤스가 거부하는 추론법 이다.
칸트는 " 윤리적 고민을 최상의 선을 정의하는데 온통 쏟아 붓고는 (그 선을) 도덕법을 결정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 이는 앞뒤가 바뀐 일 이다. 자유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가 자신을 자율적 존재로 여긴다면 도덕법부터 정할 일이다. 그런 뒤에야. 즉 의무와 권리를 규정할 원칙에 도달한 뒤에야 비로서 그 원칙에 맞는 선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다."
롤스 가 말하는 정의의 원칙 " 평등한 시민의 자유는 목적론적 원칙에 근거할 때 위태로워진다"
" 권리가 <공리주의적 계산>에 좌우되면 얼마나 취약해지는 가는 쉽게 알 수 있다.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존중되는 이유가 오로지 전체의 행복을 늘리기 위해서라면, 어느 날 절대다수가 내 종교를 업신 여기고 금지하려 든다면 어찌 되겠는가? "
" 목적론적 원칙의 체계에는 심각한 오류가 존재한다 그 원칙은 애초부터 권리와 선을 잘못 연관 시킨다. 우리는 독립적으로 규정된 선을 보고 그에 따라 삶의 틀을 형성하려 해서는 안된다"
발제 4. ' 정의와 자유 '
쳅터(Chapter) 9강 중 이 부분 '정의와 자유' 를 따서 만든 게
유시민의 슬로건 " 국가는 정의롭게 시민은 자유롭게 "
유시민의 책 [국가란 무엇인가] 책 전체가 쳅터(Chapter) 9강 - 정의와 자유- 를 심화 탐구한 내용.
발제 5. 공동체의 요구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그 '자유' 의 약점과 모순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의 가시 돋힌 비판:
"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그 '자유' 가 오히려 - 카스트나 계급, 신분이나 서열, 관습이나 전통, 타고난 지위로 정해지는 운명을 인정하려는 정치적 공동체의 해악으로 발전했다. "
그리고 또 발제
"그렇다면 공동체의 도덕적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 문맥상 '개인' )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 까? "
" 만약 인간 (= 문맥상 개인) 은 자발적 존재라는 개념이 희박하다면, 만약 의무가 전부 우리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우리를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유로운 자아로 볼 수 있겠는가? "
※아프로만 주석: 괄호( ) 안에 삽입문구 (개인), (공동체) (동시에)는 마이클 샌델의 원문이 아닌 문맥상 아프로만이 삽입한 것임.
이하 발제
- 6. 이야기하는 존재
- 7. 합의를 넘어서는 의무
- 8. 연대와 소속
- 9. 애국심은 미덕인가?
- 10. 연대는 우리사람만 챙기는 편애인가?
- 11. 충직이 보편적 도덕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 까?
- 12. 정의와 좋은 삶
마지막 10강 (Chapter 10) 정의와 공동선
※ 아프로만의 총평:
인류 2천 년에 걸친 인문, 철학과 종교의 강론 내지 설법 그리고 논쟁에서 '어머 깜빡~" 까 잡수심 내지 생략으로 인해서 빚어진 오해와 갈등과 역사적 비극 그 모든 오류를 빚어낸 총체 - " 개인 과 집단은 다르다 "- 를 제대로 인식하고 비교해서 발제하고 탐구한 것이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책 전체의 내용이라고 해도 전혀 네버 네버 과언이 아님.
그 모든 오류를 빚어낸 요체:
- 개인과 집단은 다르다 - 이것이 노하우 업 (Knowhow Up)의 중심 테제
다음 발제]
-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 조x~
에블바리 투비 콘티뉴어드
글쓴이:아프로만 / 2012년 5월 10일
■ 원문: 노하우업 카페 - http://cafe.daum.net/knowhowup/Dnqf/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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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팩트만 맞다면 뉴라이트 글도 존중해야 하나? 차별없이 공평하게 대문에 걸 수 있나?
- 상기과 관련된 의문과 쟁점 입니다
뉴라이트라는 <역사성>, 그리고 <집단성> 그와는 별개로 뉴라이트 라는 <집단>에 속하지만 <개인> 자격으로 제기한 서술의 팩트 이것을 어떻게 구분 및 판별 해야 하는 가?
<개인> 이라고 해서 <역사성> 및 <공동체>와 분리된 독립적 자아가 동시에 발동 하는 가?
만약 이를 부정한다면 지나친 진영논리 아닌가?
무뇌성 패거리즘 아닌가?
근원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발동할 수도 있죠. 그 상황이 철저히 본인과 본인이 속한 집단의 <이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ㅈ일보의 간교함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제가 기억하기로 노무현도 딴지일보 인터뷰 등에서 지적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와 비슷한 논쟁 중에 하나가 요런 게 있습니다. "미당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문학을 전공한 제 친구는 미당의 정치적, 역사적 행보와 미당의 문학적 위상, 문학적 소양, 능력은
구분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더군요. 역시 이 문제는 조금 더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류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는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우리 노하우업이 해야 할 숙제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역사란 무엇인가 리뷰와 팩트 관련 블로그 포스팅을 찾아야 관련 주제를 포스팅 할 수 있을텐데 큰일 났습니다. 서울은 아마 이달 말쯤에나 올라가게 될 것 같은데.. 어흑.. ㅠ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 부분에 대한 포스팅 만큼은 꼭 올리겠습니다. 공개적으로 약속드립니다. ㅠㅠ
덧붙여 드릴 말씀이 하나 있는데요. 그렇지 않아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 예전부터 생각해 둔 부분이 있었고 관련해서 ㅈ일보의 기사 하나를 개인적으로 스크랩해 둔 것이 있습니다. 오늘 오후나 저녁 쯤에 고거 포스팅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현재 논의 주제와 연관이 되고 있고, 대문에만 내다 걸지 않으면 일단은 괜찮을 것 같으니 회원님들께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이 모든 논란과 논쟁의 Key 는 결국 - 개인과 집단 - 입니다.
그리고 - 개인과 집단 - 논쟁의 Key가 되는 참고 자료 및 글들은 '노하우업' 에 지천으로 널리고 깔렸습니다
애당초 - 개인과 집단 - 테제를 다루기로 '작심' 하고 개설한게 노하우업 이니까요.
정치란 뭐다? 커뮤니티다. 그 '커뮤니티(소통)' 는 결국 개인 과 집단 에서 다르게 <발현>된다
다르게 <발현>되는 그것이 소통의 왜곡이고 정치의 왜곡을 초래한다
종교? = 마찬가지다. 예수조차 개인과 집단을 분별한 설파가 미흡하다- 이것이 기독교도 들이 개독되는 이유
개인과 집단의 자아 = 유일하게 '붓다' 만이 제대로 간파했음 - 카스트 철폐 때문에
동감입니다. 개인과 집단, 기록과 역사라는 두개의 심장이 노하우업의 자랑이요. 존재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 '직립'이 가능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적 담론이 진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key가 바로 저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 같으면 개인과 집단에 대한 정확한 사리 분별이야 말로 직립과 진보로 나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예수의 경우 개인과 집단에 대한 부분을 꽤 두루뭉수루하게 넘어갔죠.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도 개인과 집단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힌트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원죄론'이죠.
어떤 어린이가 쓴 글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제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 못했거든요. 저는 죄가 통 없는 사람인 줄만 알았던 거예요."
죄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원죄란 무엇일까요?
요거 요거 좀 깊이 따져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고미생각/ [ 노무현도 딴지일보에서 비판 ]
노무현이 딴지일보에서 비판한 것은 ㅈ 뿐만 아니라 [시오니즘] 역시 비판 했습니다
이 역시 - 개인과 집단 - 의 역사적 변증론 이죠.
예. 김어준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던 부분이 바로 '시오니즘' 비판이었죠.
"대한민국 어느 정치인도 그렇게 '대놓고' 시오니즘을 '국수주의'라고 정면에서 공격한 적이 없었다"고 술회했을 정도니 말입니다. 마침 잘됐네요. 우리 까페에 있는 개인과 집단 TAG의 글들 몽조리 다시 정독해야겠습니다. :)
도덕적 개인의 자유만으로는 정의로운 공동체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
개인과 집단의 정의는 다르다
요새 이 문제를 생각하다 스쳐간 생각이 그렇다면 '상속'은 어떻게 볼 것인가? 였습니다.
때마침 무브온의 어느 분께서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더군요.
상속은 어떻게 볼 것인가? 좀 더 찬찬히 생각해보고 고민해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