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동맹인가 평화 동맹인가? 윤석열 대통령과 참모들의 인식에 우려를 표하며

[정태욱]

<가치 동맹? 평화 동맹!>

윤대통령은 한미동맹은 보편적 가치로 맺어진 평화의 동맹이자 번영의 동맹이라고 규정합니다(광복절 경축사). 가치 동맹이라는 말은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단어입니다.

윤대통령은 한미 동맹은 개별적 국가들의 특수 이익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맹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 동맹에 기초할 때 참으로 평화 동맹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윤대통령은 미국 한국 그리고 일본의 자유민주주의가 그러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윤대통령에게는 가치(‘자유민주주의’)가 우선하고, 평화는 그 다음에 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국가 운영에서 평화보다 가치를 앞세우는 인식은 찬성하기 힘듭니다. 위험부담이 매우 큰 사고방식입니다.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미국의 가치를 선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 외교 관계, 국제관계에서 미국에 대한 환상은 경계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 가운데 미국이 가장 덜 탐욕적이었던 나라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미국의 대외 정책이 항상 자유민주적 가치에 따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구한말 역사에서도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승인했습니다. 일본의 강제 병합도 사실상 승인하였습니다. 이 모두 1882년 체결된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의 미국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참고로 그 조약 제1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후로 대조선국 군주와 대아미리가합중국(大亞美理駕合衆國)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 President) 및 그 인민은 각각 영원히 화평우호를 지키되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는 일이 있게 되면 일차 조지(照知)를 거친 뒤에 필수상조(相助)하여 잘 조처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한다.”

제3국의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경우 양국이 우의에 기초하여 서로 도와야 함을 규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관계에서 그와 같은 상호 우호의 가치를 저버리고 패권국가들의 이익을 우선한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와 민주를 위한 것인가요?

또한 일제 패망 후 미국은 한반도 북반의 러시아(구 소련) 점령을 사실상 허용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한민족의 즉각 독립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등의 제국주의 식민정책을 고려하여 한국의 즉각 독립이 아니라 신탁통치 방안을 택하였습니다. 그것도 자유와 민주의 정신에 맞지 않음은 물론입니다. 게다가 이어서 러시아의 대일 참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38도 선을 제시하여 사실상 한반도 반 이상의 러시아 점령을 용인하였습니다.

어째서 한반도 북반을 러시아에게 넘겨주게 되었을까? 그것은 결국 일본에 대한 미국의 단독 지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애초에 한반도 분할이 아니라 일본 홋카이도 분할을 얘기했고, 일본 점령 통치에의 공동 참여를 얘기했드랬습니다. 미국은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였고, 대신 러시아의 한반도 북반부 관할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자유와 민주에 부합하는 것인가요?

미국 제3대 대통령 제퍼슨이 말한 ‘자유의 제국(empire of liberty)’이란 미국의 이상일 따름입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이 자유와 민주라는 보편적 가치에 의해 수행된다고 하는 것은 미국의 정치적 선전일 뿐입니다. 실제 미국의 대외 정책은 미국의 국익, 미국 지배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적인 이슈인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이 중국 국공내전에서 결국 국민당을 저버린 것, 그리고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중공과 대결을 전쟁을 벌인 것, 그리고 다시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관계 개선을 한 것, 그리고 지금 21세기 다시 미국의 중국과의 대결을 선언하고 중국 포위에 나서는 것 이 모든 정책은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변화되어 온 것입니다.

한국 전쟁에서도 우리를 구해준 것이 미국이긴 하지만, 애초에 전쟁 발발에서 미국의 무책임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반도에 남북 대립 정권이 수립된 후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과 바로 방위조약 혹은 미군 잔류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에 응하지 않았고 그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를 미국의 방위선에서 제외하였습니다(소위 ‘애치슨 라인’). 그러다가 북한의 침략이 자행되자 다시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군대를 파병하였던 것입니다.

미국에게 한반도와 한민족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국에게 한반도는 중국, 러시아, 일본, 태평양의 전략에서 한 부분일 따름입니다. 러일 전쟁에서 미국은 일본을 파트너로 하여 러시아를 견제하였고, 한민족은 일본에 넘겼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처리에서 미국은 일본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였고, 그 반대급부로 한반도 38도선 이북을 러시아에 넘겼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정부는 중국 대륙 공산화에 대한 정치적 곤경을 벗어나고자 적극 참전을 결정하였습니다. 1970년대 미국은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앞서기 위하여 중국과 전격적으로 관계개선을 하고 주한 미군 철수까지 계획했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다시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기업들에 압력을 넣고 또 주한미군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한미 동맹이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의 초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계 역사에서 영원한 관계는 없습니다. 한미 동맹이 한반도의 평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방어 동맹인 한에서 그것은 훌륭합니다. 그러나 이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헌신으로 믿는 것은 행복한 착각입니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인 것은 자국 내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인 것이지, 국제 관계에서 미국이 자유민주적 국제질서에 헌신해 온 것은 아닙니다. 국제관계에서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입니다.

가치 동맹을 평화 동맹 앞에 두는 것은 위험합니다. 일본의 태평양 전쟁은 소위 서양의 지배에 맞선 ‘대동아공영’이라는 가치를 내세운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일본-독일-이탈리아의 소위 추축국(axis-power) 동맹도 ‘방공(防共)협정’으로 체결된 것입니다. 즉 러시아 공산주의에 공동으로 대항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침탈과 공격은 모두 어떤 대의명분을 표방하며 이루어졌습니다. 미국의 경우도 정당한 전쟁만을 수행한 것은 아닙니다. 정당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는 부정의한 전쟁을 수행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일찍이 19세기 멕시코 전쟁에서도 택사스의 미국인 보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하여 결국 서부의 광할한 영토를 획득하였습니다. 인도차이나 지역에 공산주의 확산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참으로 부도덕한 베트남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라크 전쟁도 처음에는 이라크의 핵 위험 제거라는 소위 ‘선제적 방어전쟁’을 주장하였다가, 그것이 거짓임이 드러나자 그 다음에는 후세인 독재 타도,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전쟁임을 내세웠습니다.

패권국과의 동맹은 우리를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한미 동맹이 평화 동맹이 아니라 가치 동맹으로 재규정되면 우리는 그 명분에 휩쓸려, 아니 그 명분을 내세우는 패권국의 이해관계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가치 동맹, 이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중국의 동아시아 패권질서 속에서 오랜 동안 ‘가치동맹’을 맺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적인 것이 우리 문화와 사회질서를 규정하여 왔습니다. 또한 그에 따라 중국은 임진왜란 등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구한말 동아시아 개화기에 우리는 구질서에 의존하고 안주하다가 패망의 길을 걸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소 대립의 새로운 시대 해방 공간에서 소련 공산주의에 환상을 가졌던 우리 애국지사들은 결국 민족의 운명을 파탄내었습니다. 지금 21세기 소위 미중 대립의 신 냉전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 냉전이 과거 냉전의 패러다임을 반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2050년 세계 GDP(구매력 기준) 규모는 중국-인도-미국-인도네시아 순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정치군사적으로 세계의 패권국가이지만, 사회경제적으로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초강대국이 아닙니다. 미국은 과거 미소 냉전을 승리로 이끈 사회경제적 힘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도 국제관계에서는 국익을 우선하는 현실주의를 취합니다. 그리고 미국 정권의 변화에 따라 미국 정책은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이 중러와의 대립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도 확실치 않습니다. 일본도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단절을 감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미국과의 관계, 평화 동맹으로서의 한미 동맹의 유지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이나 미국에 대한 과신은 금물입니다.

해방 후에 이땅에는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 믿지 말고, 중국(되놈) 다시(되) 오고, 일본은 또 일어난다.’는 노래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그 노래는 ‘조선 사람아 조심하자’로 마무리된다고 합니다. 우리 백성들의 지혜가 이렇게 높았습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국제 관계에 필요한 것은 이념적 선명성이 아니라 평화에의 결의일 것입니다. 가치 동맹을 평화 동맹보다 앞세우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치 동맹에의 용감한 헌신이 아니라 평화 동맹, 평화 외교를 위한 조심스럽지만 확고한 결의가 소중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