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체온이 섭씨 40도를 넘어 사람보다 3도 이상 높다. 닭만 해도 체온이 41.7도나 된다. 조류의 체온이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알을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상 알이 부화되려면 37.5도를 항상 유지해야 한다. 만일 닭과 사람의 체온(36.5도)이 같다면 부화가 힘들어 번식은 불가능하게 된다.
바로 조류와 사람의 간단한 체온 차이에 조류독감, 다시 말해 ‘가금(家禽) 인플루엔자’의 가공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닭에서 발생한 독감이 사람 몸에 침투하면, 독감바이러스는 살기 위해 인간의 체온을 41도 이상으로 높이게 된다. 사람은 고열과 두통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지게 된다. 사람과 조류라는 이종(異種)간 신종질병인 조류독감의 공포가 현재 아시아권을 위협하고 있다.
닭만큼 친숙한 먹거리는 없다. 시집간 딸이 걱정스런 어머니들은 사위를 위해 언제나 주저없이 아끼던 씨암탉을 잡았고, 통닭과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은 신세대들의 영양식이 된 지 오래다. 독재에 짓눌려 어렵던 시절,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서로 격려했던 민주투사들의 외침이 엊그제 아니던가.
-돈벌이 혈안 자연섭리 무시-
삼국시대부터 키워온 닭은 소·돼지 못지않은 식솔이었다. 개나 고양이로부터 암탉을 지키려 발톱을 곧추세우던 수탉의 용맹은 언제나 늠름했고, 노란 병아리떼를 몰고 다니던 어미닭들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언제나 반찬을 제공할 뿐 아니라 텃밭을 휘저으며 해충을 먹어치웠고, 삼복더위엔 보신용으로 그만이었다.
조류독감은 인간이 자연에 도전해 자초한 재앙이다. 닭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빨리 키우려면 어떤 사료를 주며, 물과 온도는 어찌해야 되는지 현대축산은 정확히 가르치고 있다. 이익만 따지는 축산은 몸조차 움직이기 힘든 계단식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서로 쪼아 죽이는 것을 막기 위해 부리부터 미리 잘라낸다. 산란이든 고기용이든 돈버는 축산은 닭을 생명체로 여기질 않는다. 그저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한 배로 부화한 닭들도 성질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현대축산은 유전적 다양성을 거부한다. 오로지 돈되는 단일품종만 키우기 때문에 다양성 결여로 역병에 매우 취약하다. ‘공장식 축사’에 조류독감이나 광우병 등 역병이 돌면 가축들은 삽시간에 전염돼 죽게 된다. 또 인근 축사의 산 놈들도 예방을 빌미로 생도살당하고 만다.
수년 전 푸에르토리코에서 3살짜리 여아가 국부에 털이 나고 월경을 한 기이한 일이 있었다. 조사 결과 아이가 먹던 계란은 미국에서 수입됐고, 문제의 양계장은 달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여성호르몬이 과다하게 섞인 사료를 먹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어린이에게 난소암, 당뇨, 고혈압 같은 성인병이 느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돈만 된다면 가축과 생태계, 그리고 아이들의 본성까지 왜곡한 데서 비롯된 부작용인 셈이다. 더 늦기 전에 각 생명주체의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다.
-‘느리게 살기’ 로 대안 모색-
조류독감 등 신종질병은 필연적 부메랑이다. 가축들은 스스로 진화원리를 지켜오고 있지만, 인간은 이들에게 가혹한 인위적 조절을 가해 재앙을 불러온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이제 ‘느리게 살기’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제철, 제고장에서 나는 싱싱한 농산물과 고기를 먹어야 한다. 돈보다 생명을 위해 가축에게도 본성과 권리를 되돌려주는 작은 노력이 이제부터 시작돼야 한다. 횃대에 올라 맨 먼저 새벽을 알렸던 수탉의 우렁찬 외침이 유난히 그립다.
첫댓글 너무 많이 생산해내고 다시 그것을 폐기처분 하고...... 현대 문명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를 돌리기 위해 이상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느리게 살자' 동감합니다. 이는 생존을 위한 피해갈 수 없는 대안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