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상(無常) 4
두이리는 뒷방에 있었다.
큰 머리를 틀어 올렸다.
금옥주패(金玉珠貝)를 꽂고 칠보 족두리를 쓰고 있었다.
분단장을 한데다 연지와 곤지를 찍었다.
검고 어글한 눈을 깜박할 때마다 더욱 찬란하게 화사하여 보였다.
말 울음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 왔다.
신랑 불아라가 마당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이윽고 신랑은 늠름한 모습이면서도 허리를 굽혀 대청 위로 올랐다.
북향(北向)하여 기러기를 땅에다 놓았다.
두 번 큰절을 하고 허리를 펴는 순간이었다.
밖에서 아우성 소리가 일었다.
"조선 군사가 온다."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인지도 몰랐다.
불아라는 벌끈 허리를 펴면서 눈을 빛내어 주위를 둘려보고 나서 신랑의 몸으로 마당 허리를 질러 뛰어나갔다.
조선 군사들이 벌써 동구 앞에까지 밀려왔다.
"조선 놈들이 온다. 잔치는 그만두고 다들 창과 칼. 활을 들고 싸움터로 나오너라."
불아라가 고함을 지르며 다시 대청으로 뛰어올라 두이리를 바라보고 나서 말을 날쎄게 집어 타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것이 바로 윤필상이 이끈 조선의 군사들이었다.
잔칫날 이어서 마음을 탁 풀어 해치고 마냥 즐겁기만 하던 야인들은 집으로 뛰어가 무장을 하고 나왔으나
이미 무장이 되어 있는 조선의 군사들을 맞아 싸우는 데 이로울 수는 없었다.
도원수 윤필상이라는, 영기(令旗)를 휘날리며 밀려오는 조선의 군사를 보자 박가로는 눈에서 불이 일었다.
"조선에 해로운 일을 아니하였거늘 이놈들 어찌하여 야인땅을 침범하느냐!"
추장 박가로는 말을 잽싸게 몰아 난군 중에 뛰어들어 고함을 지르며 조선 군사 몇 명을 찔러 죽이고
채찍으로 말을 후려 갈기며 빠져 나갔다.
불아라가 잿빛 말을 타고 뒤달려 적과 죽을 둥 살 둥하며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야인 군사가 어우러져 싸우고 있으나 점점 뒤로 밀리기만 했다.
추위에 견딜 줄 알고 용감한 야인이었으나 거의 급습을 당한 거나 다름없어서 전열이 흩어져 이쪽에서
쳐들어 갈때와는 달랐다.
만령 고개 마루턱까지 왔을 때에는 이미 태반이 몰살당하고 패잔병이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며 달아나오고
있었다. 이 때 불아라가 말의 코에서 김을 뿜으며 피묻은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추장, 이미 사태가 글렀소이다. 패잔병을 이끌고 얼른 일시 몸을 피하시우. 두이리를 찾아오리다."
말을 마치자 불아라는 채찍으로 말 엉덩판을 후려갈기며 눈길을 차고 나갔다.
그러나 불아라가 사잇길을 빠져 마을로 가 보았을 때에는 집이며 토굴에서 불기둥이 오르고 사람의 시체만
눈 위에 널려 있을 뿐 살아 있는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두이리......두이리......,"
말을 뒤달려 불아라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 때는 벌써 한 합(合)에 야인들이 패주하고 야인의 아낙네들만 포로로 잡혀 수백 명이 끌려간
다음의 일이었다. 그 속에 두이리가 끌려 간 줄을 불아라는 모르고 있었다.
"화랑아......,"
윤필상은 나직이 불렀다.
손으로 화랑의 젖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윤필상은 잠이 아주 달아난 모양이었다.
화랑은 졸려서 어렴풋시 그러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윤필상이 조금 거칠게 젖가슴을 만지고 있는 바람에 화랑은 몸이 옥죄는 것을 느끼며 눈이 펀뜩 뜨였다.
"잠 오느냐?"
윤필상은 손으로 화랑을 애무하면서도 소곤거리면서 물었다.
"예."
화랑은 긴 다리를 윤필상의 허리 위에다 얹으면서 생글 웃었다.
"어허......, 이런 버릇,.....,"
"대감 마님."
"응."
"저도 알 수 없어요."
"뭐가 말이냐?"
"때로는 대감 마님을 죽이고 싶도록 밉다가도 이렇게 가까이 누우면 싫지 않아요."
화랑은 말을 하고 나서 살며시 손으로 더듬어 윤필상의 수염을 잡았다.
"예끼 버릇없이.....,"
"대감 마님."
"왜 그러느냐."
"아직도 야인들이 살아 있을까요?"
"그럼.....,"
"저희 아버지를 ..... 데려다 벼슬시켜 주세요?"
아버지와 불아라마저 데려다 벼슬 시켜 주겠느냐고 말을 할까 하다가 아버지만 말했다.
"그렇게 될 거다. 미구에......,"
"집이 없는데요.....,"
"얘, 벼슬을 하면 집은 자연 따라오기로 되어 있느니라."
"그럼야 오죽 좋으리.....,"
화랑은 두 손을 모아 잡고 눈을 마룩마룩 굴리면서 불아라의 건장한 모습을 그려 보았다.
어느 새 윤필상은 스르르 잠이 들어 있었다.
숨소리가 높았다.
화랑은 생글 웃었다.
윤필상을 구슬러 주고 싶은 충동이 금방 떠올랐다.
"대감 마님."
대답이 없었다.
"잠 들려는 사람 깨워 놓고 자다니....."
화랑은 손으로 윤필상의 사타구니를 살며시 더듬었다.
윤필상은 소스라쳐 깨었다.
그리고 몸을 움츠리면서도 화랑을 꽉 껴안고 한 손으로 다독거렸다.
"이제 잠자자. 내일 정사를 보아야 할 것이 아니냐."
"대감 마님."
"얘가 날 애먹이는구나."
"정사야 늘 보는 정사가 아니에요. 사람에게..... 세월이 오래에요?"
"하하하.....,"
"왜 웃으세요?"
"네가 애초 서울에 태어났다면 큰일날 뻔했구나."
"왜요?"
"세월이 가는 걸 슬퍼하니.....,"
윤필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오십이 지났다.
이제 고작 살아야 이십 년 아니면 삼 십 년일 것이다.
그것도 이처럼 풍만한 어린 첩을 다룰 만한 세월이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겨졌기 때문이다.
"왜 한숨을 쉬세요?"
"과연 세월이 가는 게 슬프구나."
"불로초를 잡수셔요."
"화랑아."
"예.....,"
"내가 죽거든 좋은 서방을 얻어 가거라."
"싫어요.....,"
화랑은 갑자기 윤필상의 몸을 껴안고 일부러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천리만리 흩어지고 있음을 느겼다.
화랑은 눈이 깔린 들판과 산으로 불아라와 뛰놀던 고향 산천이 자꾸만 다가들었다.
세월은 빨랐다.
중전이 빈으로 강등되어 자수궁으로 나온 지도 벌써 삼 년이 되었다.
친정 어머니인 장흥부부인도 직을 삭탈(削奪)당하여 옛날의 가난한 윤기무의 아내 신씨로 돌아갔을 뿐만
아니라 대궐 출입마저 금지되어 있었다.
이것은 신씨가 삼월이와 내통이 있어 중궁전 사건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직 중전을 아주 폐위하지 아니하고 새로이 책봉되지 않아서 거처를 옮겼을 뿐 범절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나 세력이 뚝 떨어져 옛날의 중전을 대하듯 하지 않는다는 눈치는 보이도록 드러나 있었다.
시비도 여럿 있어 별로 불편을 느끼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시비들은 머리를 숙여 더 없이 공손한 것처럼 몸짓을 하여 보이나 다 중전의 허물을 물어 옮기고 있는
염탐꾼이나 다름없었다.
귀인 정씨나 소용 엄씨의 지시를 받고 또 이쪽에서 앞질러 고자질을 일삼는 시녀들뿐이었다.
또 이즈음 갑자기 윤 숙의 얘기가 입에 오르내리면서부터 귀인 정씨나 소용 엄씨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은
물론이려니와 자수궁 시녀들도 자연 윤 숙의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윤 숙의란 대왕대비의 친정 일가 쪽인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지내고 정조사(正朝使)로 명나라에까지 다녀온
윤호(尹壕)의 딸이었다.
이 윤 숙의가 왕비로 책봉된다는 말이 쉬쉬하고 돌았던 것이다.
113부에서 계속...
작가 : 박연희
첫댓글 연산군 잘 보고 감사합니다.
잘 보고감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연산군 잘 보고 갑니다.
연산군.112.좋은 글 감사한 마음으로 즐감하고 나갑니다 수고하여 올려 주신 덕분에
편히 앉아서 잠시 즐기면서 머물다 갑니다 항상 건강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멋진 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연산군 글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잘 보구갑니다
즐감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