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식 축사에서 일어나는 일상화된 폭력을
어린 소녀 솔렌의 입을 통해 고발하는 이 책은
공장식 축산 방식의 말도 안 되는 끔찍한 현실과
오늘날 우리가 동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그 어떤 정식 보고서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추천의 글] 과연 우리가 동물들에게 무슨 짓이든 해도 될 권리를 갖고 있는가?
공장식 축산 방식은 돼지에게나 돼지들을 돌보는 사람들에게나 엄청나게 폭력적인 환경이다. 암퇘지들이 난산을 할 경우에 사육자들은 암퇘지를 살리기 위한 노력보다는 자궁을 마구 헤집어 새끼를 끄집어내야 하며, 마취도 없이 수퇘지를 거세하거나 갓 태어난 새끼 돼지의 꼬리나 이빨을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내야만 한다.
병에 걸린 돼지들을 연민을 갖고 돌보는 일은 사육자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돼지를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 부품처럼 대해야 하는 사육자들의 스트레스는 아주 극심한데, 심지어 그들은 고통으로 인해 내지르는 돼지들의 날카로운 비명으로부터 귀를 보호하기 위해 소음 방지 헬멧을 써야 할 정도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어린 소녀 솔렌은 묻는다. “ 과연 우리가 동물들에게 무슨 짓이든 해도 될 권리를 갖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라고.
그렇다면 이런 대규모 공장식 축산을 제어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인류가 모두 채식을 한다면야 가장 이상적인 해결 방안이겠지만, 그건 너무 비현실적인 소망일 뿐이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육식을 절제하는 것만이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지구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임순례 (영화감독, KARA 대표)
본문에서
비육돈사의 새끼 돼지들은 이상해요. 마치 오지 않을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여기 돼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료를 먹고 있으니, 밥 주기를 기다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루해 보이는 게 아마도 바깥에 나가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엄마와 함께 일하는 사람 가운데 ‘ 레미 ’라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삐쩍 말랐는데 목소리는 우렁차지요. 사실 평소에 아저씨는 별로 말이 없어요. 그런데 아저씨는 돼지들을 보고 나온 뒤에는 으레 소리를 지릅니다. 내가 돼지들 때문에 짜증을 내는 것이냐고 물으니 아저씨는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어요.
“ 돼지는 그저 돼지일 뿐이야. 네 발 달린 햄이라고 생각하면 돼. 햄 좋아하니? 그럼 멀리 가서 찾을 것 없다.”
나는 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햄이 될 서글픈 운명의 돼지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나는 이 모든 게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내가 어려서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요. 일단 나는 그렇게 어리지 않고, 게다가 나중에 나이가 더 든다고 해서 내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거든요. 내가 볼 때 어른들은 너무 바쁘기 때문에 ‘ 깊은 생각 ’이란 걸 할 겨를이 없어요. 일해야지, 돈 벌어야지, 아이들 돌봐야지, 또 장도 보고 빨래도 하고 집안 청소도 해야지…….
깊이 생각하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잡생각도 버려야 해요. 깊이 생각할 때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생각에만 몰두하지요. 그런데 어른들은 텔레비전 앞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가만히 있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하지만 텔레비전은 생각을 하라고 만든 물건이 아닙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생각을 할 수는 없지요. 텔레비전은 사람들에게서 생각할 시간조차 빼앗아 버렸습니다.
자신의 내면에 대해 또 세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혼자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토론을 할 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아마도 평소에 엄마가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일 거예요.
돼지나 염소들과 함께 있을 때, 내 머릿속에는 갖가지 질문이 끊임없이 떠오릅니다. 그 동물들은 눈빛과 몸짓으로 내게 온갖 질문을 던져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요.
축사 사무실에는 돼지들에 관한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있는 컴퓨터가 한 대 있습니다. 컴퓨터에는 암퇘지들이 무엇을 먹는지, 언제 새끼를 가지는지, 어떻게 가지는지 따위의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돼지들이 언제 축사를 떠날지도 기록됩니다. 엄마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컴퓨터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모든 게 엉망이 돼 버린다고요.
그런데 컴퓨터는 암퇘지들을 알지도 못하고, 구별하지도 못합니다. 컴퓨터는 다만 수치만을 알고 있을 뿐이죠. 그리고 이 수치가 낮으면 암퇘지들이 축사를 떠나야 합니다.
나는 이 모든 게 이상하기만 합니다. 사람이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가 결정을 하고 사람은 그저 컴퓨터의 결정을 따르기만 할 뿐입니다. 클레르 이모는 다른 곳도 다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수치가 잘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도 쫓겨난다고 합니다. 돼지들은 도축장으로 가고, 사람들은 길에 나앉는 거지요.
클레르 이모는 삶이란 선택의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뒤로 되돌릴 수 있지만, 또 어떤 때는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늘 신중해야 한다고요. 엄마가 스스로를 야만적이라고 느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지금 이 길은 과연 엄마가 마음속에서 바라던 길이었을까요? 만일 이 길이 엄마가 잘못 접어든 길이라면,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나는 엄마랑 소피 아주머니가 정말 야만적인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은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두 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지은이 조슬린 포르셰
동물학 박사. 대기업 비서로 근무하던 조슬린 포르셰는 1980년대 파리를 떠나 암양 사육업에 종사한 뒤, 이어 생태농업 기술자가 된다. 조슬린 포르셰는 공장식 양돈업에도 종사하였는데, 과거에 양을 키울 때와 기업형 양돈 축사에서 일을 하던 때는 무척이나 달랐다. 이에 조슬린 포르셰는 사육업에서 동물과 인간 사이의 노동 관계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농기술자 학위를 딴 조슬린 포르셰는 논문 작업을 시작하여 2001년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2003년부터 프랑스 국립 농업연구소에서 사육자와 동물 사이의 노동 관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지은이 크리스틴 트리봉도
브르타뉴 지방에서 오랜 기간 기업식 양돈업에 종사했던 현장 업무 경험자이다. 사회복지사 공부를 한 뒤 2001년 이후로는 사회 동화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옮긴이 배영란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순차통역 및 번역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여자, 남자 차이의 구축》, 《저주받은 아이들》, 《인간의 대지》, 《전시 조종사》, 《야간비행》, 《인간이란 무엇인가》, 《욕망이라는 이름의 권력》, 《생텍쥐페리 컬렉션》, 《오페라의 유령》,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이 있다.
★ 이 책은 판매수익금의 일부를 동물보호 시민단체 KARA에 기부합니다 ★
생명의 숲에서 길을 묻다 01
우리 안에 돼지
원제 : UNE VIE DE COCHON
분야 : 청소년, 환경
조슬린 포르셰, 크리스틴 트리봉도 씀, 배영란 옮김
2010년 2월 5일 숲속여우비 펴냄
128x188mm | 112쪽 | 7,000원
ISBN 978-89-962921-2-8 43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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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