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가?
지금은 무시無時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며 늘 새롭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여기는 무처無處다. 더 나은 장소가 없다. 내가 있는 곳이 영원한 고향이고 안식처임을 일깨워 준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귀한 시간이고 여기가 나에게 가장 좋은 장소임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것이 생멸 없는 나를 깨어나게 하는 무시선이며 분별 주착하지 않는 성품, 허공, 자성을 오득悟得하는 참다운 선禪이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인사를 한다. 성공하세요. 부자 되세요. 행복하세요. 큰 인물 되세요. 하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지금 여기의 나를 무시하고 분별하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 좋고 나쁜 것을 차별하며 나누는 것이 어리석은 중생의 모습 아닌가? 놀랍게도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만족하지 못하며 언제나 불만하고 불평하고 있다. 참 나, 일원, 자성, 성품에서는 누구나 성공자며 거부장자이고 원만구족하며 온전한 존재다.
또한 나는 능히 성공자며 능히 실패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지금 여기를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언제나 능히 부자이고 능히 가난한 자다. 능히 불행하고 능히 행복하다.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한자로 현존하며 지혜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는 나쁜 것이어서 싫어하고 성공은 좋은 것이라 판단하며 좋아한다. 때문에 실패를 해서는 안 되고, 언제나 성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범부 중생이 지니고 있는 가장 깊은 어리석음이며 분별주착인 줄을 알고 있는가?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모든 성공은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실패하지 않겠다는 것은 바로 성공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패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놀랍지 않은가? 실패와 성공, 행복과 불행, 부자와 가난한 자, 유식하고 무식하며, 지위가 높고 낮은 등의 차별을 하나로 볼 수 있는가? 이들은 처음부터 둘로 나눌 수 없다.
실패하는 사람이 성공하며 불행한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즐길 수 있다. 부자와 가난, 지위가 높고 낮으며, 유식하고 무식한 것을 나누어서 분별주착 할 때 삶은 괴롭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실패하고 실수하는 것이 좋은 경험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더 멋진 성공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동안 오랜 세월을 유무식, 남녀노소, 선악귀천, 지위고하, 제가출가를 나누어서 분별주착 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었다.
이것이 가장 큰 죄이며 악이고 불의였다. 이처럼 둘로 나눈 것을 내려놓고 이들을 하나로 보는 것이 가장 지극한 복至福이며 지극한 선至善이고 일심이며 정의임을 자각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