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경제의 명운(命運)의 갈림길에서
내 생애의 30대 때엔 우리나라의 명운이 걸린 경제기획을 다루는 부처인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하고 젊음을 보냈다.
그러니까 1961년부터 제1차 경제개발계획에 이어 1967년 제2차 계획이 시행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내가 경제기획을 다루고 경제기획을 다루기 시작한 해는 1967년 제2차 계획이 이어지는 해 이었다. 1962년부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9.2%였을 만큼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도성장국가로써 세계의 경제학자들이 입을 모아 극찬을 보내오고 있었으며, 후진 개발도상국가 들의 모범적 개발 국가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루하루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다를 만큼 대한민국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결과 1인당 국민총생산은 1961년 95$에서 1971년 253$로 늘어났다. 산업구조에도 변화가 생겨 1961년 농림수산업, 제조업, 서비스(사회간접자본 등)의 비중이 40.2:15.2:44.6(%)이었던 것이 1971년 28.9:22.8:48.3으로 달라졌다. 다시 말하면 농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제조업 중심으로 변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경제의 대변혁이 이루어진 것이다. 즉 1차와 2차의 경제개발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나타난 산업패러다임의 대변화를 이룩한 것이다.
나라의 경제개발계획이 대성과를 거두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에 대한 우리 경제 관료들의 평가도 최고조에 달할 만큼 호평을 받았고 우리나라의 경제기획원, 재무부와 관련 금융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국가경제발전을 위하여 뼈를 깎는 노력과 깊은 고뇌, 그리고 개인을 회생하여 국가를 위해 헌신신한 흔적들이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점 등은 큰 아쉬움 중의 하나로 남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라의 명운(命運)의 갈림길에서 취했던 모든 결정과 정책들이 성과를 그때그때 유효 적절히 이루어지고 빛을 발함으로서 괄목할만한 성장 동력을 불어넣어 준 계획들은 참으로 대견스럽다고 말하고 싶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경제정책을 예를 들자면, 먼저 경제개발계획을 세워 진행한 사실과 외자를 도입해 활용한 외자정책이며, 또한 환율정책인데 72년부터 3차5개년 계획을 앞두고 외자를 도입해 활용한 면과, 세제개혁을 포함 저평가됐던 환율을 상향조정했던 일이다. 저평가에서 오는 수출저해와 수입촉진, 국내자원개발의 상대불리를 감수하면서도 이를 단행해 국내의 물가를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경제안정을 되찾은 일이다.
그리고 또한 IMF구제금융의 조기졸업과 기업을 살린 세제지원들은 우리 경제정책의 중추적 역할은 물론 환율제도의 개편 등으로 외환의 안정을 기한 사실 등은 높이 평가되고 있음이다.
하여간 경제 관료들의 판단과 우국충정 심은 알아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며 오늘의 한국경제가 그 기틀을 잡는데 기여한 공을 인정하며 앞으로도 끊임없는 노력이 더해지길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돌이켜보면 조선시대에도 경제를 다루는 관료가 중심이 되어 나라경제를 바로잡았고, 그 이후 해방이후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등 관련 기관들이 중심을 잡아 나라경제를 바르고 옳은 길로 인도해 오늘에 이른 것은 그 공덕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긴다.
우리 대한민국은 반세기만에 세계 백 여개국가 중에서 경제규모가 세계10위, 수출규모 5위의 국가로 발전한 위대한 대한민국이며 이를 이룩한 우리국민도 위대한 국민임엔 틀림없다.
물론 이 짧은 글로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지만 경제개발 초기부터 정부와 기업이 긴밀하게 협조해 가면서 한국경제의 오늘을 이룩하는 관정에서 때로는 정부가 기업에 대해 정부의 관심사항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당연시하는 사고가 정부와 기업 양측에 모두 뿌리 깊게 잡혀 온 것이 사실이라 생각한다. 소위 말해서 “한국주식회사의 신화”가 낳은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의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와 관련기관들의 지난 수 십 년간의 압축 성장 발전기에 노고를 아끼지 않은 관료들의 노고를 위로하면서 기억에 남는 여러 경제정책들의 중심에 있었던 기억과 추억들이 떠오르고 그 어렵고 시련이 많았음도 아울러 기억에 남는 평생의 자랑으로 남음이 아닌가 싶어진다.
첫댓글 어르신!
잘 읽고갑니다.
선생님이 견인축에 계셨다면
저는 오랜 후이지만 열사에서 진주를 캐는데 기여를 했지요.
건설근로자의 공 또한 만만치 않은 공이랄 수 있지요.
대한민국 모두의 노력입니다.
그 때는 정말 신명나는 굿판이었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셧습니다.
훌륭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저희는 편히 살았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 뒤에는 어려움을 견디신 분들의 노고가 있으심을 잊지 않습니다
경제뿐 아니라 모든것이 어둡고 음침하고 칙칙합니다.
게는 게가 하는 대로 따라하는데 게를 조정하는 것은 게 위에 게가 있다는 것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