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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시평
신광철
침향沈香
박라연
잠시 잊은 것이다
생에 대한 감동을 너무 헐값에 산 죄
너무 헐값에 팔아버린 죄,
황홀한 순간은 언제나 마약이라는 거
잠시 잊은 것이다
저 깊고 깊은 바다 속에도 가을이 있어
가을 조기의 달디단 맛이 유별나듯
오래 견딘다는 것은 얼마나 달디단 맛인가
불면의 향인가
잠시 잊을 뻔했다
백단향白檀香이,
지상의 모든 이별이 그러하다는 것을
깊고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침향을,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불 속으로 뛰어든 시인
사람이 외로움을 잘 갈무리하면서 사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그 사람이 숨어서 익어가는 깊이가 그윽하면 그윽할수록 향도 깊어지겠지요. 세상에서 깊은맛이 아무 맛도 없는 맹물 맛이듯이 향기도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가장 깊은 향기는 없는 듯 있는 향기가 으뜸이지요. 다 품으면 색깔이 없는 햇살 같이 말입니다. 지상의 것들을 다 품은 빛깔은 검은색이지요. 하지만, 천상에서 다 품은 빛깔은 투명함입니다. 빛의 여러 빛깔을 다 합하면 투명한 빛이 됩니다. 신기한 일이지요. 다 품으니 투명해지고, 다 품으니 향기가 부드러워지고, 다 품으니 물맛이라니 말입니다. 침향을 아시나요. 오늘의 주제는 침향입니다. 침향 자체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열을 가해야 비로소 향을 내는데 거부감이 일체 없는 자연스러운 향이라고 합니다. 기적 같은 것이 생이듯이 기적 같은 현상이 존재하는 곳이 세상이었습니다. 우리는 놀랍게도 기적을 몸 안에 지니고 사는 존재들이었고요. 생명을 몸에 들이고 사는 것처럼 신비하고 기적 같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름다움을 다 품으면 웃음 하나 마음에 걸 수 있겠지요. ‘하늘 웃음’이라 이름 짓고 싶었습니다. 글을 다 품으면 짧은 시가 탄생하듯이 말을 다 품으면 침묵이 맑게 고이지요. 침묵이 만들어낸 적막을 온전히 품으면 맑고 향기로워지는 비결을 터득한 셈이 되겠지요.
침향沈香, 가라앉는 향이란 뜻입니다. 침향은 팥꽃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일종의 수지樹脂입니다. 송진이나 옹이처럼 비정상적인 과정에서 생겨나는 물질입니다. 세상 어디에서 정상적인 과정으로 특별함을 만들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침향은 상처의 눈물이 굳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상처를 향기로 만들어내는 그 특별함에 침향의 존재는 빛나는 것이지요. 중국의 영남 광동 광서지방 사람들은 침향이 워낙 귀해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침향나무를 도끼로 찍어 흠을 만들어 두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빗물에 젖으면서 향이 뭉친다고 합니다. 백 년, 천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시간이 그대로 향기가 되는 원리가 침향이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굳고 검으며 속이 옹골차서 빈 데가 없고 물에 가라앉은 것을 침향이라 하는 게지요. 물에 뜨는 것은 전향煎香이라 하는데 가라앉는 침향보다는 못하다고 합니다. 동물성이 아닌 식물성의 향이니 받아들임의 미학을 알고 있는 향이라 생각됩니다.
잠시 잊은 것이다
생에 대한 감동을 너무 헐값에 산 죄
너무 헐값에 팔아버린 죄,
황홀한 순간은 언제나 마약이라는 거
잠시라고 했지만 잠시가 아니라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습니다. ‘살아있음을 고마워하라, 그러하지 못하면 살아있을 때 차라리 죽어라.’라고 소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잠시 잊은 것이다 / 생에 대한 감동을 너무 헐값에 산 죄 / 너무 헐값에 팔아버린 죄,>라고 박라연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생에 대한 감동’은 무엇일까요. 생이 한바탕 축제라고 우기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내내 초행길이어서 종종 길을 잃습니다. 인생을 축제로 만들려면 자신을 태워야 합니다. 존재를 발화시키는 게지요. 세상이 준 것들을 다 태워 세상을 밝히는 불이 되는 게지요. 황홀한 순간은 그렇게 옵니다. 박라연 시인은 말합니다. <황홀한 순간은 언제나 마약이라는 거>라고요. 경계해야 할 것임을 살짝 숨겨놓은 발언입니다. 황홀한 순간을 기억하고 다시 찾으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인생의 진정한 멋은 황홀한 순간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닌 내면을 잘 다스려 어느 날 스스로 바람의 결을 닮고, 물의 흐름을 닮아있어야 하는 것이었거든요.
인생의 깊은맛은 자족이었습니다. 감동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순하게 아름다워지는 자족이어야만 합니다. 향도 마찬가지겠지요. 거친 것을 부드럽게 완화하고 깊어져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자족이 쉬울 듯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을 세상에 중심에 세워놓고 모자라지만 그런 자신을 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 커다란 끌어안음을 배워야 가능한 일입니다. 미움도 순하게 물을 닮게 하고, 성냄도 순하게 바람을 닮게 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침향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그렇습니다. 상처를 보듬어 안고 참아내서는 향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침향이 생기는 지난한 과정이었습니다.
잠시 잊은 것이다
저 깊고 깊은 바다 속에도 가을이 있어
가을 조기의 달디단 맛이 유별나듯
오래 견딘다는 것은 얼마나 달디단 맛인가
불면의 향인가
“시는 생명체처럼 어디선가 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뜻대로 되지도 않고요.”라고 발언하는 박라연 시인은 시에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잠시 잊은 것이다, 라고요. 그러면서 완성이 이루어지게 위해서 공들여야 할 것이 시간인데 시간은 견디어야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적 표현이 각별합니다. 박라연 시인이 바다 속에 가을을 끌어들인 능청이 커서 그렇습니다. 가을조기의 달디단 맛이 유별난 이유를 바다 속에도 가을이 있어서라고 얼토당토않은 자연원리를 끌어들이고 있거든요. 가을은 한곳에 머물러 사는 지상의 식물들에만 유용한 계절인데 말입니다. 침향이 가진 기다림을 비유적으로 끌어들이는 품이 여간 거침없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품이 크니 시도 한결 듬직해 보입니다. 공간을 확대하는 시적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언어에 향기를 담고, 바람에 날개를 달아주는 능력이지요. 도대체 침향은 어떤 향이기에 신비의 향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한국어를 가장 한국적인 언어로 풀어낸 서정주 시인은 침향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실파와 생강과 미나리와 새빨간 동백꽃, 거기에 바다 복지느러미 냄새를 합친 듯한 미묘한 향내”라고요. 서정주 시인의 침향에 대한 표현이 시어를 토속과 인간원형의 살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던 시인답습니다.
「침향」, 짧은 시지만 느낌은 강렬합니다. 세상을 읽어내는 능력이 연륜만큼의 깊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만큼은 깊어지는 것이 생이거든요. 박라연 시인의 인생이 만만치 않았듯 박라연 시인의 심연도 만만치 않습니다. 벌써 마지막 연으로 갑니다.
잠시 잊을 뻔했다
백단향白檀香이,
지상의 모든 이별이 그러하다는 것을
깊고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침향을,
<잠시 잊은 것이다> 라고 1연과 2연에서 단정 지으며 시작했던 시가 마지막 연에서는 <잠시 잊을 뻔했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단정이 앞에 나오고, 가정이 뒤에 나오는 드문 경우의 시입니다. 두 개의 목적절을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답을 내어놓지는 않고 있습니다. <백단향白檀香이, / 지상의 모든 이별이 그러하다는 것을>부분에서 ‘그러하다’는 것에 대한 해명이 없습니다. 해명이 없어 아득해지고 먹먹해지지만 그것도 이 시의 매력이겠지요. 앞 연의 것들을 부연해서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뒷부분의 <깊고 깊은 곳에 숨어 사는 / 침향을,>이라는 목적절에서 그렇지 않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잠시 잊을 뻔한 것이 두 가지지만 무엇 하나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쉼표 하나를 달고는 끝을 맺었습니다. 쉼표가 주는 여운, 할 말이 있지만 참는 모습으로 끝을 맺은 것이지요. 한국적인 정서는 다 드러내지 않는 데 있습니다. 지상의 이별이 모두 그러하다는 것에 대한 해명이 없듯이 시 전체에 대한 해명도 없이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결혼도 하기 전 혼인신고를 해버린 첫사랑 남자 덕분에 면사포도 쓰지 못한 채 유부녀가 되었다는 여자, 가족들이 알고 난 후에야 자신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여자, 박라연 시인은 자신의 자화상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건망증과 실수는 나의 분신 같아서 물건 잃어버리기, 심부름 잘못 가기, 헛생각하다가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 10살 넘은 후에도 눈 감고 어디만큼 가나 시험하다가 큰 다리 아래로 떨어져 딱 죽을 상황, 즉 (하얀 원피스 덕에)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시던 편지 배달아저씨 눈에 띠어 구조되기 등 이런 성향은 대책 없이 확대 혹은 재생되면서 세상 한 가운데에 던져져서는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는 나이에 이르러 시인이 되었을까.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는 나이에 이르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는 나이는 여자라는 이름 위에 공명을 울리며 떨어져 시인이 되었습니다. 박라연 시인은 왜 견딜 수 없는 나이에 이르러 시인이 되었을까요. 시인이라는 이름도 이 땅에서 견디기 어려운 일인 것을. 그것에 대한 해명도 없습니다. 박라연 시인의 글쓰기 버릇인가 봅니다. 던져놓고 설명 없이 침묵하는 버릇. 시인이라는 직업에는 높낮이가 없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거나, 시를 읽는 사람이거나 그저 같이 사람일 뿐이지요. 그러면서도 지평을 무한 확대할 수도 있고, 축소할 수도 있는 이 세상에서 유폐된 땅에 사는 사람이 시인이지요. 유배지에서 시인의 낙원인지도 모릅니다. 고립을 자초하였으니 말입니다. 시가 탄생하는 곳은 견딜 수 없는 사람의 천국인지도 모르고요. 그 유배지는 꿈을 생산하는 공장이니 그렇습니다.
박라연 시인의 「침향」의 매력은 전체적으로는 마무리 짓지 않은 형태로 완성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단정 지음의 매력이 돋보입니다.
잠시 잊은 것이다
생에 대한 감동을 너무 헐값에 산 죄
너무 헐값에 팔아버린 죄,
황홀한 순간은 언제나 마약이라는 거
잠시 잊은 것이다
저 깊고 깊은 바다 속에도 가을이 있어
가을 조기의 달디단 맛이 유별나듯
오래 견딘다는 것은 얼마나 달디단 맛인가
불면의 향인가
잠시 잊을 뻔했다
백단향白檀香이,
지상의 모든 이별이 그러하다는 것을
깊고 깊은 곳에 숨어 사는
침향을,
모두가 단정 짓고 결론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확정된 단정을 하고 있지만 시 전체로는 미결로 남겨 놓은 시거든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인의 버릇인가 봅니다. 박라연 시인은 전남 보성 출생으로 1990년 동아일보에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시집으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공중 속의 내 정원』,『우주 돌아가셨다』,『빛의 사서함』이 있습니다. 산문집으로 『춤추는 남자, 시 쓰는 여자』가 있습니다. 박라연 시인은 자신을 담담하게 회상하면서 바람도 적었습니다. 한 번 보시지요.
진창을 밟지 않고서는 세상의 한쪽도 읽어낼 수 없는 것이 문학의 진리인 양 나는 헤매고 무너지고 피 흘렸다. … 분양받은 어둠으로 빛의 사서함을 바느질하는데 20년을 바쳤다. 어둠의 시간도 빛의 시간도 부정할 수 없는 내 이미지의 살과 뼈가 된 것이다. 원컨대 지금처럼 건강한 밥상을 위해 김장을 100포기나 거뜬히 해내는 여자. 봄마다 고산을 헤매어 야생 두릅을 캐는 여자. 고산의 쑥들을 거두어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는 농부처럼 흐뭇해 웃는 여자로 살다 가게 해주소서! 하고 빌어본다. 아니다. 나는 나의 내일을 예감하지 않겠다. 왜? 시인이니까!
김명인 시인은 박라연 시인의 시를 ‘폐허의 현실을 통과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려 한 의지의 소산’이라고 평했습니다. 박라연 시인에게도 생활의 뒷골목은 늘 어수선했습니다. 박라연 시인은 그곳에서 치열했습니다. 문학을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문학을 위하여 스스로 무너지고 피 흘렸다고 술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라연 시인의 길을 지배한 것은 어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시간도 빛의 시간도 부정할 수 없는 내 이미지의 살과 뼈가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스스로 선택한 시인의 길이 고행이었음을 이미 알았음에도 그 길로 들어오는 마음의 갈피는 또 무엇일까요. 자학이라고 하기보다는 또 다른 하늘을 찾는 과정이었을까요. 시인의 지상목표였던 시가 누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닌데 시인은 왜 시에 몰입하는 걸까요. 묘한 일입니다. 끝을 보이지 않는 삶의 정의는 또 다른 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치닫는 것이 인생이듯 고통인 줄 알면서 시를 쓰는 것은 천명의 박해일까요. 박라연 시인의 「치사량의 독, 그리고」라는 시를 화두로 놓고 갑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꿈의 냄새에 취해 죽을지도 모릅니다.
치사량의 독, 그리고
지독한 꿈의 냄새에 취해버린 몇 년
몽사夢死할 수 없어 깨어난다
누운 채로 밤새워 걷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
그 길에서 만난 세월
이름 모를 분홍색 꽃잎 사이사이
검은 나비가 꽃잎을 빨고 있다
내 몸 가득한 꿈의 냄새가 빠져나간다
한 아비의 마당에
한 어미의 옷섶에 뚝 신문 떨어지는 소리
하염없이 떨어지는 꽃송이들
너희가 우리를 취하게 했구나
삶은 때로 진부해서 살 만하고
꿈은 때로 지독한 제 몸 냄새로 죽음을 밀어낸다
허약한 일상들은
꿈의 갈비뼈 사이에서 잠이 들고
초 분 시간을 따라 송이송이 꽃이 된다
누군가의 미숙한 사랑이 되고
지상의 하루가 되고 전생이 되고 전생애가 된다
치사량의 독, 그리고
<박라연 시인의「치사량의 독,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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