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푸른 5월의 아카시아꽃이었다
아카시아꽃 향기가 짙어가는 오월의 하늘
계속되는 연휴에 즐거운 시민들은
방 구들을 짊어 메고 지내는 시간들이 지겨운지
하나 둘 아니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울 근교 산이나 바다나 숲으로
나들이 가는 5월말의 일요일이다.
어느새 그렇게 푸르게 변했는지
싱그런 녹음들이 눈을 시원하게 하고
뜨거운 햇살을 받은 도로는 ‘빤짝빤짝’
잘 닦아 놓은 수정 유리알처럼
눈이 부시게 빛나고
새순이 자라 움터진 나뭇가지 끝에는
하얀 새 한 마리 머리를 쫑끗대며
노래하고 있다.
시골에서 전학 온 지 3달되는 보라와 평강이,
참이도 연이은 연휴에 몸살이 났던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공주처럼 화사한
옷과 멋진 구두로 갈아 입고
들뜬 방심을 추스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뚝섬 유원지로 나들이 간다.
강원도 태백에서 살던 세 명의 주인공들은
형편은 어렵지만 늘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원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되었고, 여중 동창이고 같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아 부모님들도 아주 친해
1개의 자취방을 얻어 같이 기거하고 있다.
물론 생활비면 집세는 얄짤없는 뿜빠이다.
탄광일을 하시는 아버님, 어머님과
나이 어린 동생들이 걱정되어
싫다고 하였지만 막무가내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서울에 있는
명문 원곡여자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였다.
탄광촌 마을에서는 줄곧 1,2,3등을
놓치지 않고 번갈아 하던 그녀들이지만
서울로 와서는 약발이 안 먹히는지
반에서 늘 중간 정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뚝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경
벌써 나들이 온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는
유원지에는 놀이기구마다 길게 늘어진 줄,
놀이 기구를 타며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오월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성질 급한 참이가 얼른 냉큼 달려가
놀이기구 해적선앞에 줄을 서고, 언제나
자신이 공주처럼 대접 받고 싶어 공주행세를
하는 보라는 ‘사뿐사뿐’ 우아하게
주변을 의식하며 개폼을 잡고 있고, 실리
주의자 먹통 평강이는 근처 매점에서 먹을
음료수와 과자를 사러 부리나케 달린다
원래부터 놀이기구 공포증을 갖고 있던
보라와 평강이는 해적선 중앙에 앉자고
하지만 출렁거림이 즐거운 참이는 스릴을
마음껏 느낄려고 해적선 가장자리에 앉자고
거기에 자리를 정한다.
놀이가 시작되자
해적선 끝부분은 중앙보다 얼마나 출렁
대는지 보라와 평강이의 가슴은 터질 직전,
단지 참이만 즐거워 괴성을 지른다.
급기야 보라와 평강이는 서로를 붙잡으며
얼굴이 노랗게 변하고, 슬며시 오줌까지
싸 팬티가 젓어 축축해진다.
‘씨팔년! 저 년은 늘상 자기만 생각해.
그저 확 가죽을 벋겨 돼지껍질 요리나 해
먹을 년. 남은 심장이 오그라들어 죽겠는데
지만 좋다고 난리지랄이네‘
보라와 평강이는 이심전심 속으로 엄청 뒤땅
까며 근처 간이화장실에 들어가 갈이 입을
여분의 팬티를 준비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젓은 팬티를 벗어 백에 넣고 바지만 겨우 입고
나온다.
얼굴 표정은 돼지 쓸개 씹은 것처럼 시금털털
하지만 참이가 아는 것이 싫어 아닌 척 왕내숭을
멋지게 까버린다.
오후 1시가 되자 북썩대던 놀이터도 한산해지고
모두들 그늘이나 파라솔 아래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고, 우리의 주인공 3명의 여고생들도
근처 미루나무 아래 풀밭에 자리를 깔며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처 놓는다.
반찬이며 밥, 김밥을 먹을려고 평강이가 젓가락을
들고 김밥을 집을려고 하고, 보라는 물을, 참이는
반찬을 먹을려고 하는데
‘아닌 밤중에 왠 홍두깨냐’ 갑자기 돌개바람이
불더니 근처에서 선버너에 삼겹살을 구워 소주와
애인의 수다에 즐거워하던 연인들의 펼친 음식들이
날려 자리채로 보라와 평강이, 참이를 이불처럼
뒤집어 씌운다.
돼지고기의 비게, 시큼한 김치국물, 소주를
뒤집어 써 얼굴이며 옷도 엉망이 되고 가져온
밥과 반찬도 흙먼지로 코팅되어 먹지도 못하고
점입가경 난상토론 진퇴양란이다.
미안하다는 젊은 연인들의 사과를 뒷전으로
하고 창피가 우선 얼른 달려가 근처 싸구려
난장판에서 뚱뚱한 아줌씨들이 입는몸빼와 월남치마,
조잡한 티를 사서 화장실에서 급히 바꿔 입은 후 가해자를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잠적했는지 종적이 모연하다.
‘에이! 씨팔! 참 디러운 날이다, 개년놈 자식들’
모두 다에 침을 ‘칙 퇘’ 뱉고 근처 구멍가게에서
컵라면을 사서 끼니를 해결한다.
3분 지나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라면의 올을
아주 맛나고 먹고, 마지막 남은 국물이 아까워
참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입에 쏟아 부던
평강이는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어 뱉아보니
아니 쥐꼬리가 아닌가.
그리고 먹는 속도가 느린 보라는 중간쯤 먹은
라면에 노랗게 익은 구더기가 딸려온다.
놀라서 컵을 놓는 바람에 떨어진 라면국물에
발이 화상을 입고, 둘이는 1년전에 먹어서
똥물된 노란 액을 속이 비도록 털어낸다.
‘정말 기분 디럽고 꾸리꾸리한 날이다’
아니 어찌 우리만 이러냐‘
근처 풀밭에서 쉬던 3명은 기진맥진 의욕이
사라져 집으로 가고싶지만 놀이라면 일등인
참이의 성화로 마지막으로 한강에서
오리배를 타기로 한다.
집에 갈 차비만 남겨두고 사정사정 윙크,
야한 제스처를 동원하여 배삭의 50%만 주고
오리배중 아주 낡은 오리배를 타고 한강으로
나간다.
위험하지만 형편이 그러니 필자도 모른척
하는 것이 신상에 좋아 입 ‘뚝’
재미있게 30분 노 젓고 히히덕거리며 기분전환
했는데 갑자기 참이의 얼굴이 야차처럼 변해버
린다. 보라와 평강이는 어리둥절하다 보니
바로 앞 배에 참이의 남친 늴리리가 아주 멋진
여고생과 우아하게 배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 기분 꾸리꾸리하던 참에 모든 울화는
그리로 표출되고 3명은 있는 힘을 다해
늴리리가 탄 배의 선수를 힘껏 들이 받는다.
‘꽝’ 하고 큰 소리가 나며 늴리리가 탄 배는
뒤로 물어나며 그 여파로 둘이는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근처 수상 안전요원에게 구출되고
너무 좋아 웃던 보라와 평강이, 참이가 탄 배는
우회전하는 순간 마침 근처에서 놀던 오리배에
배측면을 받쳐 개구리처럼 흰 배를 보이며 드러눕는다.
물에 빠져도 그냥 바지면 구하기도 쉬울텐데
뒤집혀진 배안에 갇힌 그녀들은 한참이나
한강물을 배터지도록 마시고 허우적대다 늦게 출동한
119구조대에의 의해 구출되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반죽음되어 한강변 풀밭에 축 늘어져버린다.
기자가 달려오고 여기저기서 ‘펑펑’ 사진 터지는
소리,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고, 응급조치를
받은 그녀들은 119구조대차에 실려 근처
병원으로 후송된다.
그날 저녁 KBS 9시 저녁 뉴스 시간 메인
뉴스에 그날 하루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던 물놀이
사고들이 연이어 보도된다.
그리고 아주 비중있게 한강에서 무모하게
물놀이하며 배싸움을 한 3명의 여고생들의
용감한 무용담이 타산지석으로 소개되며
논설위원의 평까지 곁들여진다.
9시 뉴스라면 한번도 거른적없는 태백에 계시는
보라와 평강이, 참이의 부모님들은 서울로
유학 간 딸들이 9시에 뉴스에 나오자 박수를
치며 엄청 좋아하다가 뚝섬유원지에서 생긴
철없는 여고생들의 물놀이 사고라 하자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당황하고 노여워한다.
‘아니! 우리의 형편이 좋아서 서울로 보낸 것이
아닌데. 단지 가난이 싫어서 자식들 중 똑똑한
1명만 잘 키워보자고 허리띠를 졸라메고 있는데.
보라와 평강이, 참이만 잘 되어 서울에서 터를
잡으면 밑의 동생들도 그 덕을 보지 않을까
했는데. 어찌 저렇게 철없이 놀기만하고....‘
3명의 딸을 둔 집에는 그날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소주만 마시며 신세타령 하시는 아버지
말없이 술자리 앞에 앉아 눈물 짓는 어머니,
특히나 내일 막내 아들 월사금 걱정에
시름겨워하는 보라 엄마, 3월 월사금도 못 냈는데.
일주일안에 올라간 전세금을 마련해야지
쫒겨나지 않는데 라며 어디 돈 나올 구멍이라도
있는지 생각하며 눈물 짓는 참이 엄마,
두 칸짜리 허름한 양철집, 비만 오면 여기저기
새는 바람에 잠 못자고 깡통이며 세숫대야를
받쳐 놓고 날 새우는 평강이의 집,
3년전부터 시름시름 아프며 걷지도 못하는
아내를 돈이 없어 병원 한번 못 데리고 가는
평강이의 아빠는 앞길이 막막해 담배만 피우며
닭똥같은 눈물만 짓는다.
누군 태어나서부터 부자이었던가
부자가 계급이라도 되는가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인데 유독 우리만
이렇게 지지리 궁상 떨고 앉아 무어라고
특별히 할 일도 없잖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탄 캐는 노동일 뿐
마지막 가는 종착역인 탄광인부
진폐증으로 시름시름 죽어가는 사람들
여기를 떠나면 갈 곳은 저 푸르고 넓은
동해바다 용궁.
빚내고 가불해서 유학 보낸 보라와 평강이,
참이만 잘 되어주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으련만..............................................
지성이면 감천, 진인사 대천명
탄광촌의 일요일 저녁시간은 모두의 뜻이 아닌
서글픔만 안개처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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