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雪嶽山)1,707.9m ♣
위 치 : 江原道 麟蹄郡.束草市.襄陽郡
설악산은 남한의 백두대간 중에는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며 그 정점인 대청봉을 주축으로 하여 화채능.공룡능. 용아능.서북능.등의 능선이 골격을 이루고, 능선 사이엔 천불동.가야동.구곡담.수렴동.백담.탕수동.등의 대표적인 계곡이 있으며,계곡마다 폭포와 담 등의 명소가 무수히 산재되어있다
천태만상(千態萬象)의 기암(奇巖)과 거대한 암봉(岩峰).암릉(岩綾)은 천고의 수림과 더불어조화를 이루면서 계절에 따라 변모하는 그 아름다움은 산악 미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온천과 약수로도 유명한 설악산은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세계의 고봉을 등정하기 위한 훈련장으로도 사랑 받고 있는 산이다.
첩첩한 능선과 계곡이 다양하게 전개되는 설악산을 몇 번의 등산으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산이다. 이곳은 동해와 내륙을 경계로 하는 산맥이라 일기의 변화가 많고 때로 예기치 않던 상황도 발생하는데,이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오늘의 코스 및 소요시간 ★ 한계령 07:20출발~서북능선삼거리09:09(1시간50분소요)~끝청11:39(4시간20분소요)중청대피소12:10~대청봉12:25(5시간소요)~점심식사~소청갈림길13:14(5시간50분소요)~소청대피소13:37(6시간20분소요)~봉정암14:20(7시간소요)~수렴동대피소16:20(9시간소요)~오세암갈림길16:40(9시간20분소요)~영시암16:45(9시간45본소요)~백담사앞주차장17:55(10시간45분소요)총산행거리 : 23.60km(10시간45분소요) 후미기준 및 휴식시간포함.
서북능선(갈림길) 삼거리
끝청
중청산장(대피소)
중청
소청삼거리(길림길 희운각)
소청산장(대피소)
봉정암
“ 봉정암 5 층 석가 사리탑(보물 제1832호) ”
석가 사리탑은 신라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해지고, 통일신라 문무왕 13년(673) 원효대사를 비롯한 승려들이 암자를 새로 보수 한 후 이 탑을 보존 하였다고 하나 현재 이 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일반적인 탑과 달리 기단부(基檀部)가 없고, 탑을 바치고 있는 바위 윗면에는 연꽃을 새겨놓았다.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어 고려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31 호 ” 소 재 지 :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 산 77번지.
♣ 봉정암(鳳頂菴) ♣
소재지 : 강원 인제군 북면 설악산(雪嶽山:1,708m) 소청봉 북서쪽에 있는 사찰.
“본문”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성지인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대청봉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해발고도 1,244m 지점에 있어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기 위한 산행은 매우 힘겹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현존하는 전당은 법당과 요사뿐이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慈藏)이 중국 당(唐)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6·25전쟁 때 화재로 자칫하면 명맥이 끊어질 뻔하였다.
설악산의 가장높은곳에 위치한 암자가 봉정암(鳳頂庵)이다..해발1,244m로 5월 하순에도 설화(雪花)를 볼수있는 암자로 백담사에서 대청봉을 향하는 내설악의 최고의 절경을 이룬 용아장성 기암 괴석군(寄岩怪石群) 속에 있다.봉정암은 내설악의 백담사의 부속 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13년(서기644년)에 자장율사가 중국 청량산에서 구해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려고 시창(始創)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 영시암(永矢庵) ※
영시암이 지어진 때는 조선 숙종왕때이다. 서인과 동인의 대립 남인의 대립이 절정에 달해 있을때 이다.숙종의 비(妃) 민씨는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런데 총애를 받던 후궁가운데서 장소의가 아이를 낳았다. 숙종은 그 아이를 세자로 삼을 작정이 었는데,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이 반대할것을 짐작하고 남인을 등용하기 시작했다. 세자책봉의 문제가 나타나자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반대의 상소를 올렸다. 당시 숙종의 나이는 29세 민비의 나이는 23세이니 후궁에서 낳은 아이를 세자로 책봉하는 것은 시기 상조라는 것이다. 남인은 숙종의 의견에 찬성했다. 숙종은 남인의 힘을 업고 서인들을 숙청하고 남인의 정권을 형성했다. 이때 숙청된 사람중에 전 영의정 김수항이 있었다. 수항의 아들 김창흠이 속세와 인연을 끊을 셈으로 수렴동계곡 깊숙한 곳에 집을지어 놓고 영원이 맹세한다는 뜻으로 영시(永矢)이름을 짛었다. 김창흠이 매월담 김시습과 쌍벽을 이룰 만큼 문재(文才)가 뛰어난 사람으로 같이 살던 하녀가 호랑이에 물려갔는데 그 후 혼자살던 김창흠이 나이가들어 떠나고 그후 없어졌다가 기호스님이 중수하였으나 일제때 화재로 소실된것을 근대에 보수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