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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교인드라망 원문보기 글쓴이: 신행도(117기)
4월 초하루 회주 無一 우학 큰스님 특별법문
- 선종사찰 특강 (百丈禪寺) -
불기 2555년 5월 3일
부처님오신 날을 일주일 앞둔 음력 사월 초하루
우리절 옥불보전에서는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신도님들의 열기 속에 초하루 신중기도가 봉행되었다. 요즘 감사하고 사랑하며 신간 사인회와 각종 행사등으로 바쁘신 회주 큰스님께서 우리절 신도들을 위해 특별히 축원을 해 주셨고, 초하루 법문 선종사찰순례특강 (백장선사)의 인과에 대해 법문을 하시면서 그 동안 힘들게 감포도량을 되찾은 과정을 들려 주셨다. 비온 뒤에 땅이 굳듯이 어려움을 극복한 감포도량에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서원하며, 우리 불자님들 가정에도 부처님 가피 가득한 한 달이 되길 발원해 본다.
(회주 無一 우학 큰스님의 초하루 법문)
모두 합장하십시오.
천상천하 무유불(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은 분 없으시니)
시방세계 역무비( 시방세계에 견줄 이 없도다)
나무아미타불!
(사월 초하루 법문을 하고 계시는 회주 無一 우학 큰스님)
오늘은 선종사찰 순례특강 ‘백장선사’,‘백장사’라는 절과 ‘백장회해’스님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유인물을 다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얘기 듣기로는 감포 도량은 너무 변방이라서 이것이 아직 도착하지 못했고
또 인터넷선과 팩스선이 무슨 이유로 다 끊어지고 없어서 보내려고 해도 보낼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감포도량처럼 변두리에 사시지 마시고 도심에 와서 살아야 될 텐데. 빨리 다 도시로 나오셔야 합니다.
선종사찰특강 유인물을 다 돌리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감포도량이 오랜만에 정상화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끝부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백장사’ 또는 ‘백장선사’라고 하는 절이었습니다.
유인물 보시면 선종사찰순례특강 괄호 속에 까물까물한 글자가
백장선사(百丈禪寺)
백장스님이 거주하셨던 선종사찰이다 이 말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백장선사 (백장선사)
백장선사 (백장선사)
오늘 공부하러 오신 분들은 이것을 강의라고 특강이라고 생각하시고 정신 바짝 차려서 들으셔야 됩니다.
아주 중요한 내용들입니다.
이 ‘백장스님’ ‘백장선사’는 ‘백장회해스님’을 말합니다.
거기 라에 ‘백장회해' 끝줄에 보시면 720년에서 814년까지, 95세까지 사셨던 스님입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백장회해(백장회해)
괄호 속에 뭐라고 해 놨지요?
9조. 예 9조입니다.
백장회해 스님은 현재 한국 불교사에, 한국 스님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대단한 스님입니다.
이 스님에 대해 얽힌 일화도 무지 많습니다.
오늘 음력 사월 초하루는 백장스님과 스님께서 계셨던 ‘백장선사’, ‘백장선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백장스님은 얼마나 중요한 분인가!
먼저 유인물을 보시고 감포도량은 들으십시오.
초조 보리달마,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
그 다음은 뭐죠?
남악회양, 그 다음에 8조 마조도일, 제 9조 백장회해, 제10조 황벽희운, 제11조 임제의현
임제의현 스님에 대해서 저번 초 하루날 들으셨습니까?
들으셨는지 안 들으셨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요?
임제스님의 참사람, 진인, 무위진인(無位眞人), 차별 없는 참사람 얘기 들어 보셨습니까?
임제 의현스님의 위에 스승 그 위에 스승, 할아버지 스승 되는 분이 바로 백장회해 라고 하는 대단한 분입니다.
우리가 불교공부를 하면서 이런 스님들 이름은 그냥 구구단 외우듯이 외우고 있어야 되요.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백장회해 (백장회해)
백장회해 (백장회해)
이 백장회해의 제자 되시는 분이 황벽희운 스님인데 이 황벽희운 스님에 대해서는 다음 달 초하루 목요일입니다.
다음 달 첫 주 목요일 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무튼, 백장회해 스님의 스승은 누구지요?
마조도일이라고 하는 분이네요.
이 마조도일이라고 하는 분도 아주 대단한 분입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마조도일 (마조도일)
마조도일 (마조도일)
마조도일의 제자가 백장회해입니다.
그래서 백장회해스님의 스승 되는 마조도일 스님하고 얽힌 이야기를 단 하나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마조도일 스님을 모시고 백장회해 스님이 행차를 하게 되었습니다.
들판을 지나는데 들오리 떼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때 마조스승께서
‘저것들이 무엇인고?’ 했더니
그의 제자 되는 백장회해 스님이 마침 시자를 보고 있었는데
큰 스님을 시봉했던 시자스님, 백장회해 스님이
"들오리입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랬더니 스승이 말하기로
"어디로 갈까?"
이렇게 말했어요.
그랬더니
"이미 날아갔습니다." 그랬어요.
그러자 스승 되는 마조 큰스님께서 백장회해 스님을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손가락을 코에 집어넣어서 코를 아주 비틀어 버렸습니다.
아주 영문도 모르고 당했지요.
스승 마조스님께서 말하기를
"어디 다시 한 번 날아갔다고 말해봐!"
다시 날아갔다고 말해보라 이거지요.
그 때 스승의 말 속에 느낀 바가 있었더라 이거지요.
무엇을 느꼈는지 느꼈다 이거지요.
다시 본 처소(절)로 돌아왔을 때 시자의 거처인 요 사채에 들어갔는데
그냥 막 목을 놓고 울었습니다. 또 다른 상좌가 옆에 있다가 말했어요.
"왜 우는가? 부모 생각 때문에 울고 있는가?" 물었어요.
"아니다"
"그럼 누구에게 욕이라도 얻어 먹었단 말인가? "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목을 놓아 울고 있는가?"
"은사 마조 큰스님께서 코를 비틀었으나 나는 철저하게 깨닫지 못해서 울고 있노라"
그렇게 말했어요.
그랬더니 또 다른 상좌가 말하기를
"그럼 무슨 이유로 깨닫지 못했는가?"
그랬더니 지금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백장회해 스님이
“그것은 스승님께 가서 직접 물어보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래서 또 다른 상좌가 마조스님께 가서 물었습니다.
"백장회해 시자는 무슨 이유로 깨닫지 못했습니까?
요 사채에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큰스님께 물어보라고 얘기합니다."
그 때 스승 마조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백장회해 그가 알 테니 그에게 묻도록 해라."
다시 또 엉뚱한 소리를 하셨습니다.
그 때 또 다른 상좌가 요사채로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그대가 알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대에게 물어보라 하셨네."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러자 백상회해 시자가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깔깔대고 웃는 겁니다.
그에 또 다른 상좌가 말하기로
"조금 전에는 통곡하더니 어찌 이제는 깔깔거리고 금방 웃는가! "
이렇게 또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백장회해라고 하는 스님이 말하기로
"조금 전에는 울었지만 지금은 나는 웃고 있네."
그 뿐 이예요.
조금 전에는 울고 있었지만 지금은 웃고 있네.
그에 또 다른 상좌는 멍청하게 보고 있었을 뿐이다.
전체 얘기 줄거리는 아시겠습니까?
좀 복잡한 것 같아도 제가 영어로 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말로 하는데 이걸 못 알아 들으시면 엘리트 불자가 아니죠! 이게.
아무튼 이렇게 해서 마조도일 스님 은사되는 스승과 백장회해 스님간에 얽힌 일화가 아주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스승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후계자로 지목을 받습니다.
마조! 그 엄청난 마조도일스님의 제자, 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백장회해 스님이 제 9조로서 후계자가 되는 거지요.
백장회해 스님이 이렇게 아주 대단한 분인데 우리 교단사에 미친 영항이 대단히 큽니다.
아주 대단한 그런 영향을 많이 끼쳤어요.
아무튼 백장회해 스님이 머무르셨던 그 절 이름이 ‘백장선사’라 그랬어요.
다시 유인물 꼭대기에 보시면 백장선사 되어 있네요. 보시겠습니다.
(법문 도중 잠시 생각에 잠기신 회주 無一 우학 큰스님 )
백장선사 ((百丈禪寺)
‘백장선사’라고 하는 이 절은 어디에 있느냐?
중국은 27개의 성이 있는데 그 가운데 광동성에 붙어 있는 '광서성'이라고 하는 성이 있어요.
우리나라만큼 크지요. 하여튼 광서성 ‘봉신’이라고 하는 곳에 있습니다.
이 봉신까지 찾아가는 데는 많은 공력과 시간이 투자되었습니다.
아무튼 아까 그러한 백장스님에 대한 일화를 그리워하면서 드디어 이제 광서성 '의풍'이라고 하는 곳에서
광서성 의풍은 황벽희운 스님이 계셨던 곳인데
먼저 황벽희운 스님이 계셨던 ‘황벽사’를 참배하고
그 다음에 찾아간 곳이 백장회해스님이 계셨던 바로 이 ‘백장선사’였어요.
광서성 의풍에 있었던 황벽사에서 백장회해스님이 계셨던 봉신의 백장선사까지는 밤 한 대 여섯 시간을 자동차로 달려갔습니다. 중간에 어디서 자야 되겠는데 지금 그 시간에 절에 들어가서는 재워줄 사람도 없고 일주문도 열리지 않았을 거니까 중간에 자야 되겠는데 숙소를 찾지 못해서 애를 먹었어요.
산은 얼마나 깊고 깊은지 옛날 같으면 산적들이 분명히 나올만한 그런 곳이었어요.
아주 뭐 대단한 깊은 산 속을 지나가는 겁니다.
밤 자정이 다 되 가도록 간간이 민가는 나타났지마는 잘 수 있는 여인숙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 많던 숙소는 다 어디가고 막상 찾을 라니까 잘 데가 없어요.
그런데 마침 빌려서 타고 가는 자동차가 중국에서는 보기 힘든 네비게이션이 달려 있어가지고 밤길이라도
아주 계속해서 광서성 봉신으로 계속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백장선사, 백장사 거의 근처에 가서 드디어 여관 하나를 만났는데
그 여관이 1번에 나오는 서탑빈관 이라고 하는 여관이었습니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서탑빈관 (서탑빈관)
'빈관’ 변관인데 우리 발음으로는 그렇지만 중국 발음으로 ‘빈관이라고’ 하면 ‘여관’을 말해요.
이 ‘여관’은 그냥 우리나라의 여인숙 정도 수준의 그런 여관이라고 보면 되요.
중국 사람들은 영어를 거의 잘 안 쓰고 호텔 이런 말도 안 씁니다.
모텔이라는 말도 안 쓰고 그저 그냥 ‘빈관’ 또는 ‘주점’이라는 말을 써요.
옛날에는 여기서 다 술을 먹었던지 좀 큰 호텔은 ‘대주점’ 그렇게 말해요.
아무튼 이 여관을 만나서 얼마나 반갑던지 여기서 하루를 지내고
아침 일찍이 여섯시 전에 일어나서 절로 향했습니다.
절은 백장사를 얘기하는 거예요.
백장선사는 새로 지은 큰 절이 있고 옛날부터 내려오던 조그만 절이 한 구석에 있었습니다.
대웅전, 옥불전, 조사전 요정도.
당호가 한 세 채 정도 되는 그런 작은 절이 있었는데 새로 절을 지었어요.
4번 그림이 옛날부터 내려오던 절이고
눈에 보이는 2번의절, 3번의절, 5번의절, 6번의 절,
그 다음 뒤페이지에 보면 7번의절
이런 절들은 다 최근에 지은 새 절 큰 절입니다.
이게 그러면 언제부터 절들을 이렇게 크게 지었느냐!
한 오륙년 사이에 이걸 다 지었어요.
요즘 짓는 중국 절들은 예술성은 그렇게 없어도 규모는 아주 큽니다.
2번 그림을 보시면 대웅산 그 아래, 2번 향로 밑에 이게 향 꽂는 향롭니다.
그 아래 ‘대웅산 백장선사’ 보이십니까? 한문!
대웅산! 바로 백장선사, 백장사가 있는 뒷산이 대웅산이고 그 절 이름이 백장선사라 이 말입니다.
그리고 3번 그림을 보시면 2007년은 서기고 3034년은 불기입니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공식불기는 몇 년이지요? 2555년이요.
그렇다면 3034년 이것은 뭐냐?
옛날부터 내려오는 북방(중국, 일본, 한국)으로 넘어온 또 다른 불기가 있어요.
북방불기라고 말하는데 북방으로 전해져 오는 불기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공식불기 2555년보다도 483년이 앞서고 있어요.
이건 아마 불교 대학을 20년째 다녀도 처음 듣는 얘기일겁니다.
483년이 앞선 불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불기가 왜 이렇게 바뀌었느냐?
요즘은 하도 과학이 발달하다보니까 부처님이 정확하게 언제 사셨다는 것을 다 알게 되었어요.
특히 인도에 가면 아쇼카왕이 직접 세웠다는 ‘아쇼카 왕 석주’가 있어요.
그 ‘아쇼카 왕 석주’에서 큰 기둥 돌에서 부처님이 언제언제 사셨다는 것을 분명히 기록을 해 놨어요.
그러한 공으로 해서 불기를 전 세계적으로 불교도 회의에서 전세계 불교자들이 모여서 불기를 다시 고쳐야 된다 해서 북방에 쓰는 불기를 폐기하고 다시 불기를 정확하게 잡았는데 그게 불기 2555년입니다.
현재 시간으로 말하면 이해가 되십니까?
그렇지만 옛날부터 내려오던 관습이 있으니까 관습대로 중국 사찰에서는 절을 지을 때 아직도 북방의 불기를 사용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2007년이 3034년이니까 2011년이면 불기 현재 몇 년이지요?
산수가 그리 빨리 안돼요. 4를 더하면 얼마죠? 그게!
그래 가지고 애들한테 공부 못한다고 야단칠 자격 없다.
한 번 봐요. 2007년 더하기 4하면 2011년이지.
3034년에 4 더하면 얼마예요?
아이구! 등신처럼(웃음) 어찌 그러실고.
그러니까 북방불기로 말하면 지금은 3038년이요.
이해가 되지요.
혹시 중국여행을 다니거나 우리나라에도 약 3, 40년 전에 세워진 절 시주자 명단이라던가
사찰의 건립연혁을 쭉 밝혀 놓은 데 보면 다 3000년이 넘어요.
이게 왜 이럴까? 북방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던 재래식 불기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해가 되시죠?
북방에서 쓰던 불기는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공식적인 불기보다는 몇 년 앞선다 했지요?
483년 약, 한 오백년 정도 앞선다고 보면 딱 맞아요.
우리가 그러한 상식을 좀 지니고 있으면 공부를 하는데 편하지요.
편하게 앉으세요 다.
앞의 스님들도 편하게 앉아요.
그리고 9번 그림을 보시면 막 이제 대웅전 안으로 들어섰어요.
우리 한국절들은 보면 대단히 깔끔해요.
중국 절들은 들어가 보면 대웅전부터 뭐가 주렁주렁 달려져 있어요.
9번그림이 바로 대웅전 부처님인데 구도량이죠.
옛날절에 모셔져 있는 대웅전 부처님인데 이것도 우리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중국 사람들은 주렁주렁 달아 놓는 걸 좋아하는구나 저 사람들 하나의 성향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봐야지
우리식대로 옳거니 그르거니 시비 걸 문제가 못되는 거죠.
그리고 이제 7,8 번 그림을 봐봐요.
7,8번 그림은 공덕비입니다. 시주자 공덕비죠.
8번 봐봐요. 그건 작은 공덕비인데 우리돈으로 20만원이면 중국돈으로 인민폐20만원이라고 써놨죠.
20만원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삼천만원 되요.
그래도 공덕비를 세워놨습니다.
아무튼 중국 사람들은 절에 시주하는 것을 인생의 큰 보람으로 생각을 해요.
내가 돈 벌어서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다음 내생길도 좀 닦아야 되지 않느나 이거라,
그러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부처님전에 시주하겠다는 이런 정신이 아주 많아요.
사업하는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 일반 신도들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정신이 아주 꽉 찼어요.
그러면 이런 절들이 오륙 년 만에 지금 대가람 우리나라의 해인사, 통도사보다 더 큰 이런 절들이 어떻게 들어왔느냐?
이 사람들이 다 시주해서 한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중국 정부 돈으로 하는 게 아니냐 하는데 그건 다 거짓말입니다.
그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스님들한테 물어보고, 중국 관료들한테 물어보면 중국정부에서는 그냥 ‘허락’하는 거다 .
허락! 지어도 좋습니다.
허락만 해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라는 거요.
그럼 짓는 것은 누가 짓느냐!
그 일대 주민들 또 중국에서 내노라하는 돈있는 사람들이 다
시주에 의해서 단 4,5년만에 이걸 다 지어버리는는 거죠. 대단하죠 그러니까.
그런데 제가 염려하는 것은 지금 이 ‘백장선사’도 대단히 산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 불사하는 모든 절들이 산중에 있어요.
만일에 중국이 좀 더 개방이 되어가지고 우리나라처럼 시내에 교회가 터를 잡는 일이 생긴다면
중국불교가 한국불교처럼 , 한국의 종교처럼 밀려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아주 제가 걱정이 돼요.
중국사람들도 시내에 절을 좀 많이 지어줘야 되는데 대부분 산중에 이렇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절들이 대부분 산중에 있는 것처럼 지금 그런 불사를 하고 있는 거죠.
아무튼 우리가 생각을 많이 해야 될 것이고 10번 그림을 보시면 이것은 게시판입니다.
게시판에는 이 절의 활동상황을 사진으로 이렇게 실어 놨어요.
중국의 모든 절은 게시판에 사진을 이렇게 많이 실어 놨습니다.
그래서 저도 중국 순례를 하면서 아, 우리절에도 사진으로 좀 많이 보여줘야되겠다 하고 한국에 왔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제가, 저도 나이가 많아지니까 잊어버려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강의를 해야겠다하고 사진을 뒤지다가 보니 이게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숙제를 드리건데 포토매니아 우리 사진기자들은, 제가 우리 시자스님한테 지정을 해놨습니다.
왼쪽 여기에는 포토매니아 사진,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의 행사사진을 붙이라 해 놨습니다.
그 사진을 책임지고 붙여주시고,
옆에는 보면 보왕삼매론이라 우리가 늘 외우는 보왕삼매론 있죠.
그 글이 붙여져 있어요.
일반 기자들에게 숙제를 드리기로 여기서 제가 하는 법문이라든가 신행수칙이라든가 많은 내용들이 있어요.
그것을 잘 요약해서 눈에 얼른얼른 띌 수 있도록 게시판 한 쪽을 드릴 테니까
무조건 책임지고 기자들이 좀 붙여주기 바랍니다.
보면 뭐 모집하는 것밖에 없는데 모집하는 거 말고 우리 절에 누가 왔을 때
' 아! 참 그 게시판 어디 구석에 가니까 아주 좋은 말씀이 있더라 !'
한 말씀이라도 듣고 갈 수 있도록,
불교대학에서는 이렇게 노인들을 위해서 노인잔치를 열었구나!
그러한 것들이 사진으로 딱 나타나가지고 사진으로만 봐도
이 절에 어떤 활동 상황이 이해가 되도록 그렇게 좀 해라 이거죠.
그래서 제가 두 팀에게 포토매니아팀하고 기자단에게 숙제를 드립니다.
아무튼 게시판이 아주 잘 돼있고 11번 그림 보시죠.
11번 그림은 옥불전이라고 하는 법당에 놓여져 있는 불전함인데 이 안에 벌들이 집을 지어가지고 벌들이 들락날락 하고 그러니까 돈을 넣으려고 불전을, 저는 어디가든지 꼭 불전을 내요.
내가 불전을 내야 우리절에 신도들이 불전을 많이 안 내겠나 이런 생각도 있고
저도 공덕을 닦아야 되기 때문에 불전을 꼭 내요. 얼마가 되든지.
불전을 내는데 불전을 낼 수가 없는 거예요!
벌들 때문에, 바로 이안에 벌집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불전 안 들어오는 것도 감수해가면서 스님들이 벌집을 제거하지 않는 데는
그 스님들의 철학이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왜 벌집을 안 뜯고 놔 두었는지 한 번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 4층 대법당에서 초하루 기도를 올리는 우리절 불자님들 )
그리고 16번 그림은 새로 지은 ‘백장선사’ 큰 절의 주방시설인데 전부 스텐으로 되어 있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주방시설 못지 않아요. 아주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물론 아침 일찍 6시에 갔기 때문에 여기서 백장선사에서 공양을 우리가 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그런데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늘 가지고 있지요.
아무튼 현지에 다녀보면 미국, 호주, 유럽, 중국, 우리나라, 일본을 가든지 현지의 문화는 거의 다 보편화되어 있어요.
텔레비전 없는 데가 없고 휴대폰이 없는 데가 없고 공양간에 들어가면 이런 시설이 안 돼 있는(세계적으로 봤을 때)
절은 없어요. 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나라 또는 각 민족의 진정한 국가적으로 봤을 때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가!
바로 전통문화에 가치가 있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해요.
전통 문화가 가치 있음을 진정 깨달았을 때 그 나라 민족은 자부심을 느끼고 사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중국, 일본은 불교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중국정부도 교회 세우는 것은 막지만 불교사찰을 복원하는 것은 아주 쌍수를 들고 허락을 해 줍니다.
지원을 하고...
하여튼 우리는 우리 불교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불교문화는 불교라고 하는 것은 우리 민족정신이다 이런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안 그러면 우리는 내놓을게 전혀 없습니다. 대외적으로 뭘 자랑하고 싶을 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불자로서 당당한 불자로서 누가 말하더라도 나는 불교인이다. 우리문화자체다 불교는!
우리한국은 불교문화로 해서 지탱되고 있는 자부심 있는 민족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셔야 돼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백장스님이 계셨던 백장사 전체 절을 대충 이제 보고 있는 거죠.
12번 보시죠.
12번은 대승보탑이라고 하는 탑인데
구도량에 모셔져 있는 백장스님의 사리탑입니다.
9층으로 되어 있어요. 9층탑이지요.
그리고 13번 그림은 바로 조사전에 계시는 백장스님의 진영입니다.
13번 백장스님, 백장회해 스님이 바로 이분입니다.
물론 조성해서 모셨지마는 백장스님이죠.
그리고 17번 그림은 구 도량에서 한 10분 거리에 있는 뒷산 능선 돌입니다.
이 돌 하나 삐쭉 올라와 있죠.
이 돌은 백장스님이 쓰시던 붓을 던졌는데 그 붓이 꽂혀 가지고 돌이 되었다는 거예요.
훌륭한 분이 나타나면 언제나 재밌는 얘기가 따라 붙습니다.
어쨌든 훌륭한 사람이 되고 봐야 되는 거죠.
그러면 뒷사람들이 자꾸 말을 만들어 줍니다.
이거는 우리 큰스님께서 붓을 던졌는데 거기에 꽂혀 가지고 돌이 되었다.
얼마나 재밌는 얘깁니까!
그 다음에 14번 그림은 바로 천하청규라.
규자가 조금 이상하지만 천하청규로 되어 있어요.
읽어보겠습니다.
청규 (청규)
천하청규 (천하청규)
14번 17번 이 그림들은 같이 붙어 있는 돌덩어리들입니다.
지금부터 백장스님의 사상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유인물 가에 보시면 백장청규라 되어 있죠. 백장청규!
읽어보겠습니다. 앞면이죠.
백장청규(백장청규)
백장청규(백장청규)
스님들한테 물어보면 청규! 그러면 무조건 백장청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상식적인 문제예요
지금,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백장청규 (백장청규)
백장스님은 720년에 나셔서 814년에 돌아가셨다고 얘기했잖아요.
청규라고 하는 말은 청정대중의 규칙이다.
즉,사찰 운영에 관한 규칙 및 그에 관한 제도를 말합니다.
청규라고 하는 것은
인도에서의 참선이 중국의 참선으로 토착화되는 과정 속에서 변화의 틀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변화의 틀이 청규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도 그 시대나 세월에 따라 방식이 바뀌어야 되는 겁니다.
불교가 마냥 변하지 않고 있다면 옛날 그대로 있어도 좋을 것 같지마는 그거는 망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정지되는 것은 퇴보이다!' 이런 생각을 해야 되요.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청규라고 하는 건데 바로 백장스님은 중국에 맞도록 청규를 제정하고 운영했다 이 말이죠.
백장청규가 성립됨으로써 재래의 선종이 율종에 늘 갇혀 있었는데 율종에서 드디어 독립해 가지고
명실상부한 중국고유 선종의 종교와 종풍을 드날리게 되었다 이 말이죠.
나중에 또 얘기가 나옵니다마는 청규의 성립으로 해서 중국 선종은 많은 발전을, 독자적 발전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5과 7종이라고 해서, 조동종, 위앙종, 운문종, 법안종 임재종이라고 하는 5과와,
황룡파, 양귀파 등 두 파가 나옴으로서 7종,
5과 7종이라고 하는 선종의 황금시대를 맞게 되는데 그 시발점이 바로 백장회해 스님의 청규에 있었다 이 말이죠.
청규라고 하는 것은 간단해요.
가정으로 말하면 가정의 규칙이 있을 것이고,
나라에도 나라의 법규가 있고,
절에도 절 규칙이 있고 하는 것처럼 백장스님에게도 청규가 있었다 이거예요.
청규를 만듦으로써 선방의 질서가 잡혔다 이 말입니다.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 관음사도 대관음사 운영규정이 있어요.
운영규정대로 잘 하니까 우리 불교대학이 잘 돌아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이걸 요즘으로 말하면 시스템을 만들었다 시스템 경영법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한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것도 중요한데, 제도, 시스템이 그 단체를 잘 이끌어 갔을 때 그 단체가 살아나가는 거지요.
(우리절 입구에 끝도 없이 펼쳐진 복덕가득한 연등의 행렬)
한국 불교대학 대관음사의 발전도 저는 늘 말합니다.
기자들이 와서 얘기할 때 시스템 운영이다.
자기 분야에서 자기일만 다 제 각각 열심히 해 주면 저절로 우리 불교대학은 돌아간다.
제가 어디 외국에 가서 몇 개월 근 일 년씩 있어도 돌아가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시스템 경영이라는 거죠.
외국에 가 있으면서도 거기서 강의해서 보내면 되는 거잖아요! 인터넷을 통해서.
그러면 내가 하는 역할은 끝나는 거고.
여기는 동문회도 있고 각 많은 신행단체가 있고 대중스님들이 있고,
각 도량은 도량대로 움직이고 있고 종무소는 종무소대로, 공양간은 공양간대로
이렇게 돌아가는 거니까 자기 역할 따라서, 시스템에 따라서 돌아가면 절 전체가 다 움직여 가는 거지요.
나는 생각했을 때 가정도 그렇지 않겠는가!
가정이 잘 되는 가정은 분명히 자기 역할을 잘 하는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서 살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해요.
아무튼 백장청규(百丈淸規)는 실천하는 참선을 표방하면서 각각의 역할을 잘 분담했다 이런 얘깁니다.
그래서 살아 움직이는 선, 활선 (活禪)을 했다는데 백장스님의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불자들도 시스템을 잘 따라야 되요.
한국불교대학에 왔다 이러면 한국불교대학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이 뭐냐 그걸 따라 갔을 때
적응을 하고 또 열심히 살게 되는 것이지요.
(초하룻날, 법화경 봉안식을 위해 열심히 사경중인 우리절 스님들과 불자님들)
모두 다 따라 해 보십시오.
나는 수준 있는 불자로서 한국 불교대학 대 관음사가
운영하는 시스템을 존중, 청규를 잘 지켜 보겠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 백장스님이 우리들에게 알려준 큰 메시지가 뭐냐면
(다) 번에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불식(一日不食)하라,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 이 말입니다.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
대중들이 연세가 많으신 노스님께서 연장을 들고 나가면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연장도구를 자꾸 숨겼어요.
그러면 노스님은 그날 저녁에 절대 공양을 안 드십니다.
왜 안 드십니까? 내가 하루 일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밥을 먹겠는가!
하면서 공양을 안 드시는 겁니다.
내가 덕이 없어서 나도 공덕 좀 지으려고 하는데 왜 내 연장을 숨기느냐 이거죠.
그래서 나온 말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마라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마라.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오늘 다 굶어야 된다.
오늘 일하러 온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일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일거리가 없으면 세상살이가 무료해요. 얼마나 무료하냐 이거죠.
가정주부 같으면 가정일 열심히 하는 것도 일이겠죠.
또 정년퇴임 해가지고 일거리가 없어 봐요. 얼마나 갑갑해요.
또 일할 데가 없어서 아예 집에서 노는 젊은 아이들, 한 번 봐 봐요.
백수들 있죠, 백조들 얼마나 괴롭겠느냐 이거죠.
보는 사람도 괴롭고, 세상살이는 일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해 가야 합니다.
일없는 사람은 멍청한 거죠.
그렇다면 꼭 돈을 벌기 위해서 움직이는 게 일인가 그걸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됩니다.
일의 개념이 도대체 뭐인가?
우학스님이 말하는 일의 개념은 이렇습니다.
생각을 가지고 하는 모든 행위는 다 일이다. 생각을 가지고 의식이 살아 있으면서 하는 행위는 다 일이다 이 말이죠.
반대로 부지런히 뭐 왔다 갔다 하지마는 생각이 없이 멍청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이 신성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살아 있는 의식 즉 또렷또렷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일이 신성한 겁니다.
만일 남 보기에는 노는 것 같아도 그 사람 생각이 살아 있으면 그건 노는 게 아닙니다.
논다는 것은 멍청한 상태를 말하는데 놀면서도 생각이 살아있는 사람이 많아요. 그건 노는 게 아니예요.
모두 따라 하십시오.
나는 놀아도 생각을 가지고 놀겠다.
사람이 취미 생활을 하고 무슨 여러 가지, 요즘 스포츠 운동도 많이 하고 그러잖아요.
다 생각이 살아 있으면 취미 생활이라도 큰 일거립니다. 그게.
보람이 있고 인생에 있어서.
다 자아실현을 할 수 있고 그런 일이 되는 거지요.
그렇지만 멍청해서는 안 된다 그 말이죠.
그 다음에 세 번째 백장스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줬던 메시지는 뭐냐 하면 (나)번에 나오는
불락인과 (不落因果) 불매인과(不昧因果)에서 이 인과의 도리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인과(因果)
인과(因果)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 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원인, 결과는 늘 사이상관 늘 서로 관련 지어져 있다.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불락인과 (不落因果)
불락인과 (不落因果)라는 말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 인과가 소용없다. 이말이고
불매인과(不昧因果)
인과에 어둡지 않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 이 말은 인과를 늘 생각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 어머니같이 자애로운 마음으로 우리불자들을 지켜 주시는 4층 대법당 백의 관세음보살 )
백장스님께서 많은 대중들을 데리고 안거 때 보름마다 법문을 했는데
안거가 거의 끝날 즈음 돼서 마지막 날에 법문이 끝났는데도 어떤 노인네가 앞에 버티고 서서 안 가고 있어요.
그래서 백장스님이
“그대는 누구 이길래 가지 않고 있는가?” 했더니
“스님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옛날 가석불 시대 벌써 오백생 이전에 살던 사람인데
지금 여우의 몸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대는 여우의 몸을 받았는고?”
“예, 저도 옛날에 지금 이 절의 오백생 전에는 이 절의 주지였습니다.”
중국은 주지를 다 방장이라고 그래요.
“저도 그때는 방장이었는데 스님처럼 법문을 하고 막 돌아서는데 어떤 젊은 수좌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어요.
스님! 스님!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인과에 안 떨어집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인과라고 하는 것은 이거는 진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반드시 지은만큼 결과를 받는 다는 것은 그건 진리예요. 진리!
“그럴 때 나는 그냥 섣불리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불락인과(不落因果)입니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이렇게 대답했는데 그것이 죄가 돼가지고 제가 여우의 몸을 받고 말았는데
저는 아직도 그것이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인과의 질서를 위배하는 겁니까? 인과의 질서를 따라가야 하는 겁니까? 그 말이잖아요.
그럴 때 백장스님은 말씀하시기로
“그렇다면 정식으로 법을 청해라”
그래서 삼배를 받고 정식으로 법을 청했더니
“스님! 스님!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인과에 떨어집니까? 안 떨어집니까? 했더니
스님의 답변이
“불매인과니라!”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인과에 어둡지 않느니라 이 말입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불매인과 (不昧因果)
불매인과 (不昧因果)
인과에 어둡지 않다.
인과를 안다 이 말이잖아요. 우리가 어둡다, 인과를 모른다.
그런데 인과에 어둡지 않다 이 말이잖아요. 불매인과라는 말은.
그래서 노인이 백장스님의 이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크게 깨쳤어요.
그리고 곧 예를 갖추면서 말하기로
“스님! 저는 이제 여우의 몸을 벗었습니다. 저의 껍데기는 뒷산에 남길 것이니 황송하오나
저도 옛날에는 스님이었기 때문에 스님들 장례 치르듯이 저를 장례 치러 주시면 너무나 감사하겠습니다” 그랬어요.
그래서 점심공양한 후에 백장스님이 유나(維那)를 시켜서 종을 쳐서 대중을 모아 가지고
"오늘 장례 치르러 간다! " 이렇게 말했어요.
대중스님들이
"우리절에는 연세 많으신 스님도 안 계시는데 누가 지금 죽었는고?" 하면서 스님을 따라갔어요.
따라갔더니 이런 굴이 하나 나타났어요.
15번 야호암이라 야호암 밑에 그 굴입니다.
15번 밑에 앉아 가지고 밑에 여우 있나 없나 들여다 보고 있는 사람은
중국 칭다오 도량에 있는 제 상좌 바로 태허 스님입니다.
태허 스님이랑 같이 갔었는데 지금 바로 야호암!
오백년 묵은 여우가 이 속에 널브러져서 죽어 있었던 겁니다. 올라 갔더니.
그래서 스님이 전부 갈고리로 끄집어내가지고 스님 장례 치르듯이 다비를 해서 잘 해드렸다
이런 얘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입니다. 여기가.
그러니까 불매인과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말이냐 이거죠!
불매인과 (不昧因果)!
인과에 어둡지 않다.
우리가 인과에 어둡지 않으려고 여기 와서 공부를 하는 겁니다.
진리를 알려고!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야호암 (야호암)
야호암 (야호암)
스님! 우리도 이런데 가서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갈려면 한 일주일은 생각하고 백장선사를 찾아가야 돼요.
여기 앉아가지고 일주일 갈 수 있는 그런 힘을 들인 그걸 생각하면
여기 앉아 강의 듣는 게 감지, 아주 뭐 공짜 강의니까 오늘 시주 많이 해야 돼요.(웃음)
그래서 저는 이 굴을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늘 제가 공부시간에도 불락인과 불매인과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직접 가서 굴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불매인과라는 말이 나왔어요.
불교에서는 탐. 진. 치를 삼독이라고 말해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 그렇다면 이 어리석음 탐. 진. 치 이 치심이라고 말하잖아요.
치심. 어리석다고 말하는데 뭐를 어리석다고 말하는 건가!
뭐를 치심이라고 말하는가!
바로 그것은 진리에 대한 무지를 어리석음이라고 말해요.
진리에 대한 무지! 진리를 모르면 어리석은 겁니다.
아무리 사회적인 지식을 많이 알더라도 진리를 모르면 다 어리석은 거죠.
그래서 사회적인 지식이 높다 해서 진리적 지혜가 높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진리라고 하는 말은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그 말 가운데서 단 한마디로 말 할 수는 없지만
진리의 범주 속에는 ‘인과’라는 말이 들어 있어요.
인과(因果)!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
인과를 모르면 어리석다.
이렇게 말해도 틀리는 말이 아닌 겁니다.
인과(因果)!
원인과 결과는 서로 늘 관계된다. 즉 상관관계에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인과를 부정하려고 그래요.
인과, 원인과 결과 관계를 부정하려고 합니다.
그 어리석은 사람이죠. 그런데 여기서 봐 봐요.
인과 불매라고 하는 말은 인과의 도리에 어둡지 않다
이 말은 인과를 안다 이 말이잖아요.
그러니까 수행을 많이 했다는 것은 인과를 잘 안다 이 말이죠.
인과를 아니까 나쁜 짓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인과에 어둡지 않아야 돼요.
모두 따라 해 보십시오.
그런 빛깔 원인을 심었으면
그런 빛깔 결과를 가져오고
그런 모양의 크기를 입력했으면
그런 모양의 크기가 출력되는 것은 당연하다.
(옥불보전 2층 법당까지 꽉찬 열기 속에서 하루 기도를 드리는 우리절 불자님들!)
인과의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감포도량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감포도량에 대해서 제가 직접 말하는 것은 제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은
말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감포도량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도 계속 묻고 있기 때문에 애기를 할 수 밖에 없어요.
감포도량이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것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 사람들이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런데 감포도량에 나오는 상당 수 사람들이!
지금 감포도량 법당에 앉아 있는 상당 수 사람들이!
아직도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오늘 마침 감포도량까지 화상법문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인과라는 말이 있기 때문에 아주 법문 소재에 적당한 얘기인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얼마 전에도 마을에 있는 어떤 거사가 밤중에 술을 먹고 올라와서
“왜 거기 절에 있었던 연봉(성씨가 문씬데) 문씨를 내쫓았느냐”
고 하면서 행패를 부렸다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 동문회가 갔을 때도 동네 사람들이 다 하나같이
얼마나 세뇌를 당했는지
“왜 한국불교대학에서 절을 뺏었느냐” 이거라!
한국불교대학 것인데 왜 뺏었느냐?
한국불교대학 것인데! 우리는 우리 것인데 왜!
동네 사람들은 문씨가 다 지은 절인 줄 착각을 한 거죠.
참 기가 찬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얘기를 조금 더 말씀드리면 지금은 감포도량이 거의 정상화 되었습니다.
정상화되었지마는 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는 거죠.
그리고 신도들의 요청에 의해서 지금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제가 아주 잠시만 말씀드리면
한국불교대학 감포도량은 제가 우리 대구 큰 절을 열기 전에 우연히
감포를 이렇게 지나가는데 당시에 절 이름이 해황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어요.
조금만 절이었지요.
양씨 성을 가진 노스님이 계시다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마침 들어가는데 그 스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장례를 잘 치러 드렸지요.
그랬더니 그 자식 되는 사람들이, 이 노스님은 자식이 있는 그런 스님이었습니다.
대처승이죠. 옛날 스님들은 가족 있는 스님들이 많았어요.
지금으로 봤을 때는 흠이지만 그 때 당시에는 그게 정상이었어요.
그래서 노스님이 돌아가시자 자식들이
“이 절은 스님께서 장례도 치러주시고 했으니까 스님이 가지십시오.“ 했지만은
저는 당시에는 공부도 더 해야 되고 해서 절을 사양했어요.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아직도 절이 운영이 안 되고 해서 그걸 ‘주원’이라고 하는 제 도반스님에게 얘기했더니
자기가 거기 들어가서 살겠다고 해서
일부 돈을 주고 (자식들도 대가는 있어야 되니까 돈을 일부줬죠) 절을 인수를 했나 봅니다.
도반스님이 2,3년 혹은4,5년을 쭉 살았는데 도반스님도 사정이 있어서 그 절을 떠나가게 됐어요.
가면서 그 스님이 있으면서 관음굴!
지금 신입생 여러분들은 아마 2.3주후에 가게 될 겁니다.
큰 굴이 하나 있어요.
(감포도량에 있는 관음굴)
관음굴, 관세음보살님 굴이 있고
육각정 건물도 있고, 여러 건물이 만들어 놓은 게 있습니다.
그러한 건물도 짓고 하는 바람에 한 4억 정도의 돈이 소요됐던 모양입니다.
옆에 땅을 또 많이 사 넣고 그런 바람에.
그래서 어딜 가면서 내가 주원스님한테 소개를 해줬기 때문에 저한테 부탁을 하셨어요.
“이것을 내가 돈이 이만큼 들었는데 3억 5천정도 나한테 해주면 어떻겠느냐?”
내 입장에서는 우리 신도 입장에서는
(큰절 입구에서 항상 웃으면서 우리절 신도들을 맞아주시는 포대화상)
그 때는 우리 대관음사 ...
그 때가 2000년이었습니다.
2000년 9월20일 날 대웅전 건물이 낙성이 되고, 그런 시점이었는데.
우리 신도들이 잘 가지도 않으면서 시골 절! 시골 절! 그래요.
그래서 좀 자주 가서 기도나 하실라나 싶어서,
도반스님도 그런 얘기를 하고 해서 시점이 맞아 가지고
3억5천을 주고 감포도량을 인수를 하게 된 거요. 도반스님한테.
그 뒤로 관리인이, 한 두 어 번 바뀌었어요.
그 쪽 감포도량의 주지이자 관리인이 두 번 바뀌고
2002년 가을부터 나한테 와서 머리를 깎았던 아까 말했던 문씨 성을 가진 그놈이
나이가 많았지만은 억지로 자기가 좀 살게 해 주십시오 하는 바람에 거기서 살게 했어요.
그래서 감포도량을 관리하게 되었죠.
그 이후로 지금까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아니,2002년 전에 들어간 비용까지 포함하여,
감포도량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한국불교대학 법률팀이 구성되어 검찰과 경찰에 많은 자료를 내는 중에
우리 큰절에서 전적으로 그쪽에 지원한 돈이 53억이었어요.
엄청난 돈을 들여 가지고 감포도량이 조성되었는데,
심지어는 감포도량 대웅전 언덕에 있는 그 나무들, 나무들이..
원래는 이 도로(큰절앞)가 이렇게 넓지 않았어요.
좁은 도로였어요. 이것이 확장되면서 우리절 마당이 많이 들어갔지요.
절 마당에 있던 그 많은 나무들이 감포 도량의 언덕에
향나무라든지, 모과나무라든지 그게 다 대구큰절의 나무가 그리 옮겨져 심어지게 된 거지요.
큰절의 정원수가 다 지금 그리 가 있는 것입니다.
감포 도량은 우리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대구 큰절의 한 귀퉁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살림을 관리하라고 부탁을 했는데 수년전부터
준비를 해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 됐어요.
그래서 작년 2010년도 8월 중순에 감포절 전체가 다른 재단에 통째로 넘어가고 자기가
창건주 권리를 행사하는 그런 권한을 쥐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서는 전적으로 50억이 넘는 돈을 투자해서 만들었지마는
감포도량 자체가 완전히 도둑을 맞은 거예요.
완전히 도둑을 맞는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그 큰 절이 한 사람 입에 꿀꺽 삼켜지게 됐는데
복도 안 되는 사람은 줘도 그게 자기 입에 안 들어가는 겁니다. 그게!
다 자기 복만큼 살게 되어 있는데 그래서 이번에 아주 힘든 작업,
이거는 왜 힘든 작업이라고 말하느냐 하면은 현재 법으로써는 이미 다 장치를 했기 때문에
돌아올 가능성은 0.001%도 안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다시 작업을 해서 100% 모든 서류를 다시 원상복구를 했어요.
100% 원상복구를 해서 이제 감포도량이 얼마 전부터 정상운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도 초하루 법회도 같이 하고 있고. 그래서 저는 생각했어요.
처자식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 내가 복잡하게 살아서 되겠는가!
그렇지만 우리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의 신도들이 돈을 내 가지고
시주를 해서 만든 절이 어느 한 개인의 욕심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 생각을 가지고 아주 다부지게 일을 했어요.
그래가지고 가능성 0.001%도 안 되는 것이었지만은
우리 대관음사 부처님이 어떤 부처님이냐 이거죠
우리 대관음사를 지키는 신장님이 어떤 신장이냐 이거죠
(옥불보전 2층 신중단)
그런 신장들이 여기저기 검찰, 경찰, 변호사 온갖 곳에서 다 우리를 지원했어요.
전부 다 신장이 되어 가지고.
그래서 이것이 모든 분들이 힘을 보태 줘 가지고 도둑맞을 뻔 했던 재산이
완전히 다시 한 2주전에 100% 다 이쪽으로 넘어 오게 된 거죠.
그런 상황도 (박수가 터져나옴)... 이거는 뭐 박수칠 일도 아니요.
이런 상황도 모르고 그 감포도량 거기 얼쩡거리는 사람들, 또 뭐 이제 그렇잖아요.
아무리 못된 사람 곁에도 친구가 있는 것처럼
자꾸 말을, 딴 말을 뿌려내는 거예요.
그렇지마는 한 번 생각해봐요
은사가 만들어 놓은 절!
신도가 만들어놓은 절!
그 절에 앉아가지고 오는 사람한테
한국불교대학에 대해서 온갖 나쁜 이야기를 하고
모처에 대해서 은사에 대해서 온갖 사실 무근의 얘기들을 해가면서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온갖 나쁜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얘기에 편승해서 같이 입을 모아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신심 떨어져요. 정말!
세상을 이렇게 살아야 되겠는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 무리가 되어서 온갖 장난을 치고 그런 걸 보고 분명히 이것은 과보가 있을 것이다.
과보가 없을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아무튼 법적인 절차가,
법에서는 ‘당연히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거네’ 요즘은 통장에 명백하게 다 나와 있으니까
그렇게 거의 절차가 마무리 되어가는 무렵에 절 공양간에 있는 큰 업소용 ,
절이 운영 되려면 요즘은 냉장고도 큰 게 있어야 되잖아요.
큰 냉장고 서너 개도 가져가 버리고 (그 몇 푼 한다고),
그리고 절 차도 두 세대 있었는데 그것도 가져가 버리고,
심지어는 연장통 넣어 놓은 컨테이너까지 다 가져가 버리고
제 방에 있는 작은 냉장고 다 가져가 버리고
종무소 컴퓨터까지 다 가져가고 그리고 신도카드 있잖아요!
신도카드까지 그것도 다 가져가고,
움직이는 것은 다 꺼내 가 버렸어요.
이런 사람들이 과보가 없겠느냐 이거예요!
나는 분명히 과보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일층에는 그 무슨 황당무계한 일을 해가지고 일층에는 납골당을 만들어 놨어요.
그걸 다 들어내야 돼요.
그거 다 들어내려면 시설한 업자하고 타협을 또 해야 되고
거기는 이층 올라가는 법당 앞에 납골당이 있어서 될 문제도 아니고
거기는 신도들이 참선하는 ‘무일선원’이라고 간판이 붙어 있는데 거기
어떻게 납골당을 시설하느냐 이거죠.
납골당도 분위기 있게 한 게 아니고 무슨 궤짝 들여다 놓듯이 들여다 놨어요.
기가 찬 거죠. 그것도 또 재판이 걸려가지고 시설한 주인이 돈 내 놓아라 하고
그것도 재판이 걸리고 시끄럽다니까요. 그게요.
그럼 돈을 제 때 주던지 그래야 되잖아요.
아무튼 그 밑에 있는 마을 덕원2리 사람들도 그렇고
문씨 얘기만 듣고
우리한국불교대학 신도들이 나쁘다.
우학스님이 나쁜 사람이다
문씨의 재산 다 뺏어갔다
이렇게 얘기한다는 거예요. 참 기가 차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럴 수는 없는 거죠.
강탈하고 훔친 물건을 원주인이 찾아가는데 원주인이 어떻게 나쁜 사람이냐 이거죠.
그 밑의 마을에 소도 다 웃을 일이다. 그게. 기가 찬 일이예요. 이게.
그러니까 상좌라고 하는 것은 자식하고 똑같은데!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은 다 자식들 조심해야 돼요.
절대 통장은 죽을 때까지 통장, 현금 있으면 장판 밑에 넣어두고 절대 내주면 안돼요.
자식 놈들이 다 도둑놈들이요(웃음)
물론 천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하는 얘기를 가지고 하니까 경우가 안 맞습니다마는
천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하는 그런 사람이예요.
(4층 옥불보전에서 4월 초하루 기도를 올리고 있는 우리절 불자님들!)
인과라는 것이 무엇이냐!
인과!
원인이 있으면 결과 가 있다는 것이지요.
반드시 과보가 있게 되어 있는 거예요, 이게. 그러면 생각 잘하셔야 돼요.
은사를 배반하고 한국불교대학 모든 분원의 신도들이 다 합심해서 만든 그 도량을 어지럽게 한 죄
다음 생까지라도 과보가 있을 겁니다.
분명히 과보가 있어요!
이세상이 이렇게 혼탁하고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 찼다 하는데 절 집안에서까지
은사가 해놓은 절, 신도들이 해놓은 절을 도둑질하려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이런 일이 어디있느냐 이거죠.
그래서 내가 말하기로 천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한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잖아요.
바로 탐. 진. 치 삼독에 눈이 가리면 인과라는 것이 무시됩니다.
인과라는 것이 눈에 안 보이는 겁니다.
나는 인과를 피해가겠지
나는 인과의 법칙에 안 떨어지겠지,
인과불락이겠지. 아까 얘기했잖아요. 인과불락이라고
그런 착각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과는 반드시 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인과불매,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과에 어둡지 않다, 인과의 도리를 잘 알기 때문에 함부로 사기치고 함부로 도둑질 못하는 거죠.
인과가 있는 줄 아는데 어떻게 그래 하느냐 그거죠.
모두 다 따라하십시오.
인과의 분명함이여!
세상은 바른대로 돌아가나니
헛된 욕심일랑 버리고
앞으로 우리 감포 도량은 누구든지 가면 아주 편안한 도량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숲길걷기 명상, 해변걷기 명상 등을 활성화해서
참선기도를 많이 하는 도량으로 가꿀 생각입니다.
장차, 노인복지 도량으로도 키워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거기 가서 쉴 수 있도록 그런 배려를 하게 될 입니다.
그리고 또 불교대학 공부도 우리 지금 전체도량에서 이루어지는 공부 진도에 맞추어서 공부를 할 것입니다.
이미 공문을 다 보내 놨습니다.
그래서 현재 지금 감포 도량에서 이 방송을 듣고 있는 불자들은 나와서 공부를 좀 하셔야 돼요.
공부를 해야지 인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공부를 안 하는데 인과가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 이 거죠!
세간소유아진견 (世間所有我盡見)
일체무유여불자 (一切無有如佛者)
나무아미타불 ( 南無阿彌陀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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